투각(透刻) / 지 연
산도에서 길을 잃었다
팔다리뺨혀손가락발가락이 세상과 비대칭으로 자랐다
칼로 흙벽을 도려내다 쓸모없이 쓸쓸해서 그림자를 숟가락으로 떠낸다
안으로 들어오는 빛이 울렁거린다 집이 시차 없이 우주에 매달린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불균형이 궤도를 돌아온다
벚꽃이 날린다 우주를 떠도는 행성같이 놀러 왔다가 구멍 난간에 일그러져 와글거린다
왼쪽 다리가 웃음으로 흔들린다 뭐 있잖은가 한바탕 웃고 돌아서면 휑한 거 웃음처럼 무거운 게 없다는 거
내 몸은 웃음으로 가득 차 있다 엄마는 진통이 왔을 때 냉장고 반찬들이 차곡차곡 웃었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 울음소리가 개 울음소리인 줄 알았다고 했다
벚꽃이 떨어진 자리 잎사귀는 꽃의 의족 지금은 사라진 별빛 빛은 별의 의족 웃음은 울음의 의족
빛나는 밤 나를 파내는 구멍마다 그림자가 의족으로 번식한다
챗.GaPT분석
1. 제목의 이유: 「투각(透刻)」
**‘투각(透刻)’**은 ‘뚫어 새김’이라는 뜻으로, 조각 기법 중 하나입니다. 사물을 깎거나 도려내어 내부를 비워내는 방식으로, 이 시에서는 자신을 깎아내고 비워내는 행위와 연결됩니다.
시에서는 칼로 흙벽을 도려내는 장면, 빛과 그림자의 대비, 구멍의 이미지가 반복되며, 존재의 내부를 파내고 비우는 과정이 강조됩니다.
제목은 곧 존재의 결핍과 공허함, 그리고 그 안에서의 불균형과 흔들림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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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제
존재의 불균형과 결핍
→ “팔다리뺨혀손가락발가락이 세상과 비대칭으로 자랐다”라는 문장에서, 화자의 존재가 조화롭지 못하고 균형을 잃었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자아와 세계의 괴리
→ “산도에서 길을 잃었다”는 문장은 단순한 방향 상실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결핍과 보충의 순환
→ 벚꽃이 떨어진 자리의 잎사귀, 별이 사라진 자리의 빛, 웃음과 울음의 관계 등, 하나가 사라진 자리에 다른 것으로 채워지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웃음과 울음의 모순된 공존
→ 웃음이 가볍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 무겁고 휑한 것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삶 속에서 감정이 역설적으로 작용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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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징 분석
투각(透刻)
존재를 깎아내고 비우는 과정, 자아의 공허함을 상징
칼로 흙벽을 도려내는 행위와 연결 → 자신을 파내고 비워내려 하지만 결국 쓸모없이 쓸쓸해지는 과정
산도(産道)와 길을 잃음
태어나는 과정(산도)에서부터 방향을 잃었다는 표현은 근원적인 존재의 방황을 의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균형을 잃었으며,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성장
칼과 숟가락
칼은 흙벽을 도려내는 도구 → 존재를 깎아내고자 하는 욕망
숟가락은 그림자를 떠내는 도구 → 무언가를 없애고 싶지만 근본적인 결핍은 해결되지 않음
빛과 그림자
빛은 존재의 드러남, 하지만 울렁거리고 불안정함
그림자는 존재의 결핍과 공허함, 웃음과 울음처럼 본질적으로 함께하는 관계
벚꽃과 행성
벚꽃은 순간적으로 화려하지만 금방 떨어짐 → 일시적 존재, 덧없음의 상징
우주를 떠도는 행성 같다는 표현 → 화자가 세상과 단절되고 부유 voluntarily한 존재임을 강조
웃음과 울음
웃음이 가볍지 않고 “무거운 것”으로 표현됨 → 감정이 뒤바뀌는 역설
엄마의 진통과 냉장고 반찬이 웃었다는 표현 → 출생의 순간조차 웃음과 슬픔이 공존함
아빠가 엄마의 울음소리를 개 울음소리로 착각한 것 → 감정이 왜곡되고, 이해되지 않는 삶의 순간들
의족(義足)의 반복
벚꽃이 떨어진 자리의 잎사귀는 꽃의 의족
빛은 사라진 별의 의족
웃음은 울음의 의족
그림자는 나를 파내는 구멍마다 의족처럼 번식
→ 사라진 것들이 다른 형태로 남아있지만, 그것은 결코 본래의 것이 아님 → 결핍을 대체하는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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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투각(透刻)」은 존재의 불균형, 결핍, 그리고 그것을 보완하려는 시도 속에서도 근본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탐구하는 시입니다.
칼과 숟가락으로 자신을 도려내고, 떠내고, 비워내려 하지만, 남은 것은 결국 쓸모없는 그림자와 의족뿐입니다.
벚꽃, 빛, 웃음과 같은 일시적인 것들은 결국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의족처럼 대체물이 남지만, 그 대체물은 온전하지 않은 불완전한 존재일 뿐입니다.
시 전체가 끊임없이 균형을 잃고 흔들리며, 결국 존재의 불안정함과 공허함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