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옛날 사람(반공 세대)을 가늠하는 기준이 두가지가 있다 합니다.
1. 6,25 사변(전쟁) 노래를 알고 있는가?
2. 국민교육 현장을 암송했는가 라 합니다.
농담같은 구분이지만, 참 일리있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6월이 되면 의도하지 않아도 6,25 전쟁 노래가 떠 오르는 세대가 학교 다닐 때 반공 교육을 받았던 이들입니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정치인들이 반공을 이데올로기로 삼으며 정치적 이익을 누렸던 부분은 분명 시비를 따져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조국의 현실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라는 사실이며, 지금도 북한 정권의 야욕에 이땅을 지키기 위하여 휴전선을 지키고 있는 젊은 청춘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지방선거시에 가장 가슴이 아팠던 모습 가운데 하나는 한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가 되겠다는 많은 이들이 주적이 누구냐라는 물음에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이라는 두리뭉실한 대답을 자연스럽게 하는 현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최전방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이 주적이라 정의를 한다면
여름철에는 벌레와 모기에 뜯기고, 겨울철에는 영하 20도 이하의 혹한 속에서 최전방을 지키기 위해 고생하는 장병들의 헌신과 노고는 무엇이라 말할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알링턴 국립묘지에 새겨진 글귀인““당신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자유롭게 삽니다.”는 자유는 당연함이 아닌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주어지는 고귀한 가치임을 일깨워줍니다.
주초에 오래전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교회에서 알게 된 군인형제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육사를 졸업하고서 이후에도 계속하여 군사학을 전공하고서 종합행정학교 교관 및 과장으로 재직하는 이광수 형제께서 “인사이트 6,25”라는 책을 출간했다며 보내 주겠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육군대학 한국전쟁사 과장을 5년간 하며 연구했던 연구물이라며, 6,25에 대한 쟁점 사항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이라 합니다.
약 20년전 몇 명 되지 않았던 청년부원 가운데 한명이었던 형제와의 인연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것도 감사한 일인데 그동안 땀흘려 노력한 결과물을 책으로 펴냈다며 선물해 주신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전후 세대이며 후방지역에서 성장하고 더군다나 여러사정으로 제2국민역의 신분인 저로서는 늘 군인들을 보면 빚진 마음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지랖 사역이라는 타이틀로 양구에 있는 21사단 군목분과의 우연한 계기로 최전방 장병들에게 성탄절에 햄버거를 선물했던 일이 계기가 되어 21사단장님으로부터 사단 마크가 새겨진 동패와 감사장을 몇해 전에 받았었습니다.
그후부터 군대와 관련된 이야기가 대화 소재가 되면 21사단 출신이라 우기며 살아갑니다.
미필이지만 유튜브를 통하여 한국전쟁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책을 받고서 읽고 있는 중입니다.
내용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6,25 전쟁을 일으킨 북한이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3일간 서울에 지체했던 이유에 관한 대목입니다.
사실 그동안 역사스페셜이나 국군방송 같은 유튜브를 통해서 북한군이 서울에서 남하를 할 수 없었던 여러 요인들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자인 이광수님은 흥미로운 주장을 <인사이트 6,25/이광수 지음/길찾기>라는 책을 통해 펼치고 있습니다.
북한군이 3일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서울에서 지체해 미군 참전의 시간을 허용했다는 기존의 학설과 달리 저자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북한군이 서울에서 3일간 지체했다”라는 기존 표현 자체가 상황을 왜곡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3일간 지체했다 라는 표현은 북한군이 능동적으로 진격을 멈추고 서울에 머물며 정비, 휴식을 취했다는 인상을 주지만, 실제 전황을 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북한군의 상황은 서울에서 3일간 지체했다기 보다 한강 남쪽으로 3일간 진출할 수 없었다 가 정확한 표현이다.
북한군은 6월 29일 이후 줄곧 한강 도하를 시도했으나, 3-4일 동안 그 모든 시도가 좌절되어 이남으로 내려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인사이트 6,25/103쪽 일부 인용)
그러니까 북한군은 서울로 진입한 후 서울을 점령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28일까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월 29일부터 한강 도하를 시도했지만, 도하 장비 부족과 한강을 방어하던 시흥지구사령부 장병들의 분전과 완강한 저항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국방이나 군과 관련하여 문외한의 입장에서 책의 내용에 대하여 평가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6,25 전쟁 당시 이땅을 지키기 위하여 피땀 흘린 선열들의 숭고한 나라 사랑과 희생 정신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6,25전쟁을 한국전쟁으로 명칭을 다르게 부르는 것을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한반도에서 일어난 동족상잔의 전쟁이라는 이유로 여겨지지만, 여기에는 시간이 흐르면 6,25 전쟁을 일으킨 원흉이 누구인지가 잊혀질 개연성이 담긴 명칭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인사이트 6,25를 보면서 다시금 자유 대한민국의 소중함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감사하고 귀한 노력의 결과물을 선물로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6.25 사변 당시 어린 나이에 피난 갔었고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까지 처들어왔던 해에 입대해
논산훈련소에서 신병 훈련 중 국민교육헌장을앙송 하기하기도 한 세대입니다.
육군 15사단 GOP 근무.
적근산으로 잠입한 공비 토벌 작전 나가다가 탑승차량 전복 사고로 이동외과병원 입원....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끝이 없습니다.
자유 평화
피로 지켜온 우리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