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시진핑을 말하다
김용옥 지음 |통나무
올해 초 JTBC에서 방영된 '차이나는 도올'을 글로 풀어낸 책이다 . 당시 방송을 이끌었던 도올 김용옥이 중국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도올은 중국 일반인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진핑이 어떻게 갑자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한사람으로 뽑히고 14억 인구의 최고지도자로 등극했는지를 그의 인생행로를 통해 알아본다.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의 핵심 일꾼으로서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태도를 보면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다.
시진핑이라는 인물 분석을 통해 중국의 권력구조와 정치 시스템에 대한 이해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도올은 책 서문에 “이 작업은 어디까지나 한국인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소망은 시진핑 본인이 이 책의 내용을 개인적으로 한번 숙독해주었으면 하는 것이지만 그런 희망은 절망일 뿐이다. 한국어를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중국인은 극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적었다.
"바지끈이 점점 헐렁해져도(의대점관·衣帶漸寬) 끝내 나는 후회하지 않으리/그대를 위한 것이라면 내 몸 하나 초췌해진들 그 무엇이 걱정이랴(제2경지). 길거리에 밀려 넘치는 군중들 속에서 천 번 만 번 그녀를 찾아 헤매었지/문득 무심히 고개 돌려 쳐다보니(맥연회수·驀然回首)/등불이 희물그레 꺼져가는 난간 곁에/바로 그 여인, 서 있지 아니한가(제3경지).“ 당 간부들에게 독서와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인용한 이 시구는 묘하게 자신의 인생 역정과 닮았다. 도올 김용옥은 이 3단계 경지의 핵심을 망진천애-의대점관-맥연회수로 본다. 환란의 세월이 닥쳤더라도 고매한 이상과 비전을 갖고 살아갈 길을 바라봐야 하고, 이상의 실현을 위해서는 고통과 환란을 우직하게 감내해야 하며, 그렇게 찾아 헤매는 진리와 이상은 '문득' 발견된다, 도올의 해석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장제스의 백군에 밀려 산시(陝西)성 옌안(延安)까지 대장정을 해야 했던 마오쩌둥의 홍군이 여기서 다시 반격을 도모할 수 있었던 근거는 이 일대에 혁명의 근거지를 마련한 시중쉰(시진핑의 아버지)의 공이 지대했다. 하지만 마오가 초심을 잃고 집권 후 독재의 길을 걸으며 문화혁명을 일으켜 동지들을 몰아세우자 시진핑은 열다섯 나이에 안락한 베이징 중난하이를 떠나 아버지의 고향 옌안으로 하방해야 했다. 여기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빈궁한 농민의 삶을 경험한다. 무작정 도망을 쳤다 베이징에서 징벌적 중노동에 시달리던 시진핑은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고 도망친 잘못을 뒤늦게 뉘우치고 중국 문명의 도도한 바탕인 농민의 삶 속에서 자신의 삶을 재건하기로 마음먹고 옌안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이런 뉘우침의 근저에 어릴 적부터 아버명가 강조한 <논어>의 가르침이 있었을지 모른다. 위령공 편에 있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이라는 구절인데, 도올은 이를 동양적 도덕 윤리의 고갱이로 본다. 짧게는 '서(恕)의 철학'으로 칭할 이 가치관은, 민중과 동떨어진 안락한 삶을 살던 소년 시진핑의 마음 깊이 잠들어 있다 이때 나락에서 신음하는 농민과 자신을 동일시(如)하는 마음(心)으로 깨어난 것은 아닐까?
7년간의 하방 생활에서 그는 민중과 동고동락하는 삶의 가치를 깨달았고, 모든 것을 희생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후 공청단 입단, 공산당 가입, 칭화대 입학, 중앙군사위 비서장이자 국무원 부총리 겅바오의 비서로 승승장구했다. 스물여덟에 그는 군(軍)·정(政) 양쪽을 경험하는 전도유망한 비서직을 버리고 다시 허베이(河北)성 정정 현 부서기로 내려간다. 상관이나 조직의 틀에 제약되고 의존적인 삶보다는 자신의 노동이 인민의 고락과 함께 호흡하는 삶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런 비전을 향해 묵직한 걸음을 멈추지 않은 그는, 아버지의 후광과 자신의 업적,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권력 쟁투라는 외부환경의 조화로 일약 14억 인민을 대표하는 당총서기에 오른다. 국가 위에 군, 군 위에 공산당이 있는 중국에서 역대 지도자들은 3개 조직 대표자리를 후계자에게 한꺼번에 물려주지 않고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마오 이후 당·군·국을 모두 거머쥔 지도자는 시진핑이 처음이다. 후계자 발탁은 장쩌민의 강력한 천거 덕이었지만, 상왕정치 청산은 후진타오의 선물이다.
<삼국지>보다 흥미진진한 중국 현대사와 시진핑 집권기에 도올이 주목한 이유는 2022년까지인 시진핑의 재임기간이 중국은 물론 남북한 화해와 동아시아, 넓게는 인류 문명사에서 결정적 시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올에 따르면 민주주의 자본주의 자연과학, 근대 이후 인류를 지배한 이 3가지 서구문명의 무기가 그 효용을 다해가고 있다. 제도보다 도덕(문화), 돈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동양적 가치가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느냐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강대국 중국, 그 지도자 시진핑의 어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을 무조건 치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도올의 말처럼 인류의 존속과 한민족의 평화·화해를 위해 그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중국에 대해 아직 우리가 의문시하는 인권과 민본을 신장하려면 그는 지도자로서 '서의 철학'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초발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멀리 갈 것 없다. 한국의 위정자들부터 '기소불욕 물시어인'에 얼마나 충실한지 살펴볼 일이다. 사드도 원전도 제 옆에만 없으면 그만이고, 이익의 사유화·손실의 공유화가 일반화된 한국이 과연 중국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일제 치하 김구 선생이 저장성에서 펼친 독립투쟁에 중국 인민들이 힘을 모았던 현대사를 언급하는 시진핑에게, 독립투쟁사를 뭉개는 건국절 지정을 추진하는 이 땅의 집권세력은 얼마나 우습게 보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