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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새를 찾아서(24)....재두루미(2)
위성 송신기로 재두루미의 추적 이야기
by hiroyoshi higuchi, 동경대학 교수
A.봄철 이동 현황
1992년 2월 8일 카고시마현 이즈미시 환경청 철새표식스테이션으로부터 동경에 있는 일본야조회로 연구센터로 전화가 왔다. 당시 나는 동 센터의 소장을 하고 있었다. 이즈미에서 2주일 이상에 걸쳐서 포획과 위성송신기를 부착하였다는 작업을 알려오는 것이었다. 예정대로 재두루미 6마리, 흑두루미 4마리 합계 10마리에 송신기가 장착되었다한다.
야마시나조류연구소의 오자키(尾崎)씨를 위시하여 포획 작업을 한 사람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쉰듯하다. 위성 추적은 멋있는 기술이지만 그것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우선 새를 포획하여 송신기를 부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오랜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고 까다로운 일이다.
송신기를 부착한 내역은 재두루미 3가족, 흑두루미 2가족이었다. 두루미류는 가을 자식들을 데리고 이즈미까지 이동하여온다. 큰 무리로 되어도 그들은 가족들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가족 모두 통째로 추적을 하려는 시도이다. 각 가족 중에서는 재두루미의 한 가족을 빼고 성조 암컷과 유조 한 마리에 송신기가 붙여졌다. 재두루미의 남은 한 가족은 성조 암컷과 유조 한 마리가 대상으로 되었다. 두루미부부는 암수 함께 이동하고 번식도 같은 상대로 하므로 어느 쪽이던 한 녀석에게만 송신기를 부착하면 양방향 부부의 행동을 추적할 수 있게 된다.
송신기를 부착한 두루미류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은 2월 하순부터였다. 최초로 두루미가 날았는데 1과 3’였다. 3의 새끼인 3’는 27일 오전 3시 37분 대마도의 북쪽에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오전 3시라면 한밤중이다. 두루미는 이렇게 심야에는 이동하지 않는다. 아마도
전 날 큐우슈우 북쪽을 북상하여 대마도에 도착하여 그 곳에 하룻밤을 묵었을 것이다. 수컷 성조 1이 27일 오후 3시 0분에 북위 35도 37분, 동경 126도 10분, 한국 서해안 군산의 남쪽 50km 지점에 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7시 9분에는 서울 남쪽 수원 부근에 도착했다. 시간으로 봐서 여기에서 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날 28일 오전 9시 1은 수원에서 약간 서쪽으로 이동, 29일에는 서울 북쪽의 휴전선 즉 비무장 지대의 판문점 부근에서 쉬었다. 3’쪽은 28일 오후 4시에 역시 비무장지대인 판문점 부근에 도착했다. 29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머물렀다.
판문점은 남북한을 사이에 둔 요충지이고 군 시설이 건설되어있다. 이런 장소에 도대체 두루미들은 무슨 볼 일이 있는 것일까. 또한 주변에는 밭이 늘려있다. 두루미들은 밭에 내려서 낙곡 등을 먹는 것일까. 1의 새끼 1’부터는 유감스럽게도 전파가 수신되지 않았다. 송신기에 고장이 난듯하다. 3’의 엄마 3은 어떻게 된 것일까. 적어도 25일까지는 이즈미에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3’와 함께 이동한 것은 아닐까.
두루미들이 머무르는 위치는 매일 아침 인터넷을 사용하여 입수한다. 매일 아침 컴퓨터를 켜면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두루미들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먼 거리를 움직이는 것일까. 어디로 가는 것일까’라고 생각하면서 컴퓨터 키를 두드린다. 연월일, 시간, 위도, 경도 등이 개체마다 차례차례로 화면에 나타난다. 숫자를 (밥) 먹듯이 먹으면서 이동하지 않았는가 어떤가를 확인한다. 화면상에 표시된 숫자를 눈으로 쫓는 순간이 상쾌한 기분을 가져다준다.
그런데 우리가 부착한 송신기는 전지의 수명을 연장해서 오랜 기간에 추적을 할 수 있도록 전파송신기를 정기적으로 꺼두는 방식이다. 이 재두루미의 추적에서는 6시간 송신을 계속한 후 다음 12시간은 정지 시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따라서 새로부터 송신을 수신할 수 있는 위치에 위성이 있더라도 송신기가 휴지기에 들어가면 물론 신호가 오지 않는다. 한편 송신기간 중에서도 위성이 새가 있는 위치와 반대로 지구의 반대측을 통과하고 있을 때는 전파는 오지 않는다. 이런 조건적 작동 송신기에서 송신의 양부가 있고 체재 위치의 전부가 위성에 의해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3’의 엄마 3은 아마도 이런 난점이 겹쳐서 송신은 되었더라도 2월말까지는 위치가 측정되지 않았다. 3월 1일 새벽 4시 3은 북위 38도 19분, 동경 127도 17분, 역시 비무장지대 철월 부근에 있었다. 같은 시각 3’쪽은 28일 도착한 비무장지대 판문점의 같은 위치에 있었다. 비무장지대의 철원과 판문점에 각각 머무르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철원과 판문점은 50km 정도 떨어져있다. 이동 도중에 두 모자(母子)는 이미 떨어져 이동하는듯하다. 3이 있는 철원은 역시 비무장지대의 요지이다. 주위를 산으로 둘러싸고 남북 경계가 이어져있다. 비무장지대의 내부에는 저목림이나 초지로 이루어진 구릉지가 있고 인접하여 논과밭이 펼쳐진 민간 통제 구역이 있다. 두루미들은 이 주변의 습지나 논밭을 이용하는 듯하다.
두루미들로부터 송신은 그 후도 순조롭게 이어져 이동 경로는 차차로 밝혀지게 되었다. 두루미들은 모두 같은 경로로 한반도를 북상하고 중국 동북부로 향하였다. 단 1은 3월 9일 북위 38도 20분, 동경 127도 7분 비무장지대의 철원 부근에 머무른 것이 확인된 것을 최후로 송신이 두절되었다. 1은 비무장지대에 있는 판문점으로부터 철원으로 이동하여 그기에서 한참동안 머물러있다는 것이 된다.
3과 3’모자는 3월 초순 이후 각각 철원과 서울 북서부에 대략 20일간 머물렀다. 그 후 두 모자는 따로따로 같은 경로를 통해서 그러나 중계지로서는 다른 장소를 이용하면서 북상했다.
우선 어미의 3이 22일 북한 동해한 오랑군을 경유하여 그 다음날 23일에는 번식 분포역내의 한카호수의 북동, 우수리강 연안에 있는 이만호 부근에 도착했다. 3’는 23일 저녁에 북한 동해안의 금야(金野)로 이동하고 그 후도 북한 동해안을 따라서 북상하여 한카호수 남쪽에 있는 러시아의 스파스크다루니에 도착했다. 그기서 10일간 정도 머무른 후 7일 저녁에 중국의 후틴 남서부에 펼쳐진 삼강(三江)평원에 도착하여 이동을 마쳤다.
3’가 있는 지점으로부터 엄마 3이 머물고 있는 이만호부근까지는 100km 이상이나 떨어져있다. 3과 3’은 이동을 시작하여 바로 떨어졌고 거의 같은 경로를 거쳐서 번식기에 머무르는 장소에 왔고, (번식지이지만 약간 떨어진) 다른 지역을 골랐다.
카고시마 이즈미에서 번식지까지의 거리는 3은 약 1820km, 3'는 2580km였다(3’는 제법 둘러서 온듯하다). 이동에 걸린 시간은 3은 28일간, 3’는 42일간이었다.
한편 2와 2’두 모자는 3과 3’와는 다르게 월동지로부터 번식지까지 함께 이동하였다. 두 마리는 3월 7일 아침 일찍까지 이즈미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2는 같은 날 한반도의 부산, 다음날 오후에는 한반도 서쪽의 천안을 경유해서 10일 이른 아침 북한 동해안의 금야에 도착했다. 2’도 2와같이 10일 이른 아침 같은 위치에 있었다. 금야는 동해안의 영흥만에 있는 지역이고 몇군데 하천이 흐르고 있다. 하구 부근에는 습원이나 작은 섬이 점점이 있다. 그 후 약 10일간 금야에 머무른 후 2와 2’모자(母子)는 먼저 이동을 시작했던 3과 3’와 거의 같은 시기와 경로를 따라서 북상했다. 그리고 2와 2’두 마리가 같이 3월 23일 오후 번식지인 중국 삼강평원(북위 46도 50분, 동경 132도 17분)에 도착했다. 삼강평원은 그 이름대로 아무르강, 우수리강, 송화강이 둘러싼 큰 습지이다. 홋카이도만큼의 큰 습원이다. 광대한 습원이지만 여러 가지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고 농경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2와 2’두 마리는 삼강평야 도착후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하여 결국 20~40km 떨어진 곳에서 정착했다. 이동이 끝나면 어미와 자식은 떨어진다. 카고시마 이즈미에서 번식지까지의 거리는 약 2200km, 17일간의 여행이었다.
2.가을철 이동현황
1993년 7월 러시아 동부 아무르강 연안에 있는 힌간스크와 무라비요후카에서 합계 3마리의 재두루미에 송신기가 부착되었다. 아무르강은 러시아 동부와 중국을 사이에 두고 국경에 접한 큰 강이다.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고 한다.하늘에서 보면 확실히 검은 거대한 용이 가로로 누워있는 것처럼 보인다. 힌간스크는 그 중류 지역이다. 습원과 삼림으로 되어 있고 국립 힌간스키 자연보호구가 펼쳐진다. 재두루미가 번식하는 습원에는 녹색의 초원과 푸른 호수가 펼쳐져 있다. 습원은 녹색이고 호수는 푸른색이고 장소에 따라 색이 미묘하게 변한다. 세계적으로도 아름다운 자연이다.
무라비요후카는 힌간스크에서 500~600km 상류에 있는 습원이다. 농경지로 이용되는 곳도 있고 사람과 동물의 공존을 목표로 하여 환경보호단체의 활동 거점으로 되어있다. 힌간스크와 같이 재두루미뿐만 아니고 두루미나 황새도 번식하고 있다. 힌간스크에서는 한 마리의 성조(애칭 힌간, 성별은 불명)에, 무라비요후카에서는 두 마리의 성조(애칭 무라비, 요후카, 모두 성별 불명, 쌍이나 형제 관계가 아님)에 송신기를 부착했다.
10월 1일 힌간이 남하를 시작했다. 힌간스크에서 한카호수까지는 남동으로 약 500km. 힌간은 아무르 강을 건너서 중국 동북부의 산이나 평원을 지나서 한카호수까지 왔을 것이다. 힌간은 여기에서 11월 상순까지 머물렀다.
무라비와 요후카 두 마리는 모두 힌간보다 2주일 이상 늦은 10월 18일에 남하를 시작하였다. 힌간과는 다르게 남서 방향으로 500km 정도 진행하고, 중국 흑룡강성의 자론자연보호구 부근에 도착했다. 자론자연보호구는 재두루미나 두루미의 번식지로 알려져있는 장소이다. 습원이나 호수, 초원이 펼쳐져 있다. 여름에는 호수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난다. 한카호수와 자론호수는 1000km 정도 떨어져있다.
두 마리는 자론에서 더 남하하여 송화강을 건너고 중국 북한 국경을 넘어 한반도의 서쪽을 경유해서 10월 26일 비무장 지대의 판문점에 도착했다. 자론에서 판문점까지는 대략 1000km이다. 이 거리를 2, 3일에 이동한다는 것이 된다. 판문점은 봄철의 이동 북상점이기도 하다.
11월 6일 힌간이 북한 동해안의 금야를 경유하여 역시 비무장지대로로 이동하였다. 도착 지점은 철원이었다. 힌간의 여기까지의 남하는 봄철 이동 경로의 정확한 역방향이다. 비무장지대는 북상이나 남하에서나 중요한 중계지인 듯하다. 또한 힌간스크에서 이동하는 두루미들에게서도 무라비요후카에서 이동하는 두루미들에게서도 중요한 장소인 듯하다.
판문점에서 머무르는 두 마리 중 무라비가 11월 22일 큐우슈우 북부로 이동하였고 다음날 무사히 카고시마 이즈미의 월동지에 도착하였다. 그 다음날 24일 힌간도 이즈미에 도착한 것이 확인되었다. 판문점에 머무르고 있는 또 한 마리 요후카는 송신기가 두절되었다. 전지의 수명이 다한듯하다. 힌간은 총연장 약 2466km 55일간의 여행, 무라비는 2375km 37일간의 여행을 한 것이 된다. 어디에서도 출발하는 새이더라도 도중에 큰 경로를 변경하더라도 찾아온 곳은 이즈미였다.
이즈미는 카고시마현 북서부 야츠시라해 연안에 위치한다. 광대한 농경지로 이루어져 있다. 매년 재두루미, 흑두루미를 포함하여 1만 마리가 넘는 두루미가 온다. 재두루미는 그 중 약 20%를 차지한다. 약 245ha가 두루미 보호를 위한 국가특별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 있다. 겨울 기간 두루미를 위한 먹이가 제공되고 있다. 두루미들은 이 안주할 수 있는 땅을 향해서 몇 천km나 여행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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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고김수일 교수 저서 ‘나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꾼다’의 앞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철새인 두루미의 이동 경로를 알기 위한 연구가 일본 학자들의 주관하에 북한, 중국, 러시아와 공동으로 여러 차례 수행되었다.
전파 발신 장치를 부착하여, 이 신호를 인공 위성으로 수신하므로써 이동하는 무리의 위치를 확인하는 연구였다. 최근에는 그 연구 결과를 7인의 일본학자들이 <위성추적에 의한 재두루미 이동경로와 한국 비무장지대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으로 국제학회<Conservation Biology>에 보고했다. 한국인으로서 누군가 이 지역의 중요성을 말하기 전에, 일본 학자들이 이 같은 사실을 전파하고 있다는 사실에 한국인인 나는 ‘심한 수치감’마저 느꼈다“
이 책에서 김수일교수가 적은 ‘심한 수치감’이란 기분을 필자는 충분히 이해한다. 직장에 외국인 손님들이 왔을 때 먼저 차를 한잔하면서 덕담부터 하는게 상식이다. ‘오는데 불편한 점은 없었냐, 한국에는 몇 번째 방문이냐?’등의 가벼운 이야기를 하면서 환담을 하여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 과거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안되었던 시절에 테리비 뉴스에서는 매일 데모 뉴스가 나고 화염병이 쏟아지는 화면이 TV에 방영되었던 시절에는 이 ‘수치감’이라는 단어가 필자에게 절실히 다가왔다. 외국인들이 호텔에서 테리비는 보았을 것이므로 이 친구들이 ‘니네 한국은 민주화도 되지 않고 화염병이 날아다니고, 이게 나라니? 어떻게 이런 정글 사회에 있는 한국 회사와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겠니?’할 것같아서였다. 90년대 초반이라 기억하는데 그 때 ‘우지(牛脂) 파동’이라는게 일어났다. 삼양라면이 라면을 제조할 때 사람이 먹지 못하는 공업용 우지(소기름)을 넣어 제조했다는 것이었다. 이 소동이 절정을 이룰 시점에 일본인들을 접촉했었는데 이 담당자들이 ‘한국에는 라면 소기름 파동이 있다는데 무슨일입까? 정말 공업용을 사람이 먹는 식품에 넣었습니까?’라는 질문을 하였다. 말은 안했지만 ‘니네들은 먹는 음식에 공업용 기름넣고 그렇게 살아가냐? 한국 살기좋아졌다라고 하더니만 하는 짓은 아직 멀었구만. 돈만 많으면 뭐하니?’라고 하는 것같아서 수치스럽고 창피하고 뭐라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까 얼굴에 진땀이 났다. 짧은 외국어 실력에 매끄럽게 변명할 실력도 못되고...이것 당해 보신 분들은 이해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지금에도 일어나고 있다. 며칠 전의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해보면...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벌어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사건으로 국가 브랜드가 실추돼 아깝습니다.”
LG전자 김쌍수(金雙秀·사진) 부회장은 19일 낮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열린 대검포럼에서 ‘한국 전자산업과 국가브랜드’라는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자리에는 정상명(鄭相明) 검찰총장 등 300여명의 검찰직원이 참석했다.
김 부회장은 “한국의 전자 산업은 200여개국에 진출하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를 알리는 선봉 역할을 해왔는데, 외국 기업인이 (황 교수 사건에 대해) 물어보면 답하기 참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실추된 국가 브랜드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 정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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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수가 언급한 글의 주인공들은 동경대학 히구치 히로요시(?口廣芳)교수외 일본야조회, 야마시나조류연구소 연구원들을 지칭한다. 위성인공추적 프로젝트는 90년 초반에 실시되었는데 아마 이 때가 조류 추적에 GPS가 활성화된 시점인듯하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이 당시에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에 가면 자동차 네비게이션이 ‘나비’란 상품으로 다량 팔리던 시절이었다.
위성추적 기술은 그 당시에도 이미 상용화되었으로 위치확인등의 원천 기술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단지 조류에 이용할 때, 필자가 생각하는 문제는 송신기 소형화와 밧테리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야마시나조류연의 자료를 보면 무게가 20그램밖에 나가지 않는 제품을 NTT(일본전신전화국)에서 특별히 개발했다한다. 밧테리 문제는 3개월 정도의 수명을 유지해야하고 특히 저온에서도 장기간 수명이 있어야한다. 물론 소형화, 경량화가 된 조건이다. 밧데리는 영하 온도에서는 성능이 급격히 저하한다. 전해질의 이온화 활성이 급격히 느리게 되기 때문이다. 쇠재두루미의 경우는 10000m 높이로 날아서 히말라야를 넘어가는 것이 확인되었으므로 이 상공의 대기온도는 최소한 영하 10도 이하는 떨어질 것이다. 이 외기온도에서 3개월을 버텨야하는 밧데리 개발이다.
여담으로 일전에 새친구 박모선생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 밧데리의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좀 의외의 얘기였지만 충분히 타당한 근거라고 생각되었다. 이스라엘은 죽음의 호수 사해(死海)를 끼고 있는데 여기에서 밧데리 원료인 리튬(Li)다량 생산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리튬은 주기율표 1A에 속하는 1가 금속으로 나트륨과 같은 계열이고 반응을 잘한다. 냉동기용에는 브롬과 같이 섞어 흡수식 냉동기를 만드는데 이 두 물질이 이스라엘 사해에서 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실제로 원료 공급사는 이스라엘 회사이다. 죽음의 바다이만 유용한 광물이 나서 도움을 준다.
조류탐사용 위성송신기가 개발되고 난 후 이를 추적하면서 히구치 교수는 느낌을 그의 저서 ‘철새들의 여행’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근래 15년간 위성을 이용한 철새들의 추적 연구에 매달려왔다. 이것은 감동의 15년이었고 흥분이 연속된 나날이었다. 철새들의 수수께끼를 알면 알수록 흥미깊고 또한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학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수없이 보았다.“
이웃나라 연구진들은 과학기술 발전에 발맞추어 이런 자연 현상의 경이적인 현상을 연구하고 있고, 이를 근거로 남의 땅 DMZ를 보존해야되니 어쩌니 하면서 국제 컨퍼런스에서 떠들고 있을 때, 이런 연구에는 할 말이 없고 컨퍼런스에 가서도 꿀먹은 벙어리 모양 할 말이 없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김수일교수는 ‘심한 수치감’을 느꼈다는 사실이 이해된다.
첫댓글 짝짝짝!!! 늘 좋은 자료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한 열정과 훌륭한 자료입니다...사진이야 누굴 쫒아가서라도 어떻게 해본다지만...저 같은 사람은 흉내도 못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