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동 이사를 와서 한 단지에 사는 세째 처형 얼굴 보기 하늘의 별따기다. 월요일에 잠깐 얼굴 볼까. 그럴 밖에. 날마다 근처 복지관에 가서 교육을 받는다. " 이번에 수강생 모집을 하니 배워 봐요. 회비는 6개월에 단돈 3만 원이다가 5과목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처형 덕분에 공부하게 됐다. 정말 배우고 싶은 게 있다. 음치라서 노래는 음정 박자 놓치고 만질 줄 아는 악기 하나 없는 나다. 책상 설합에 있는 하모니카를 써 먹을 일을 배우고 싶던 차다.
20일. 이날 오면 교육 수강 신청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단다. 노인들 몇 명 쯤 왔겠지.
명일동 성당이 바로 사회 교육을 맡고 있으니 내가 성당갈 일이 생겼구나.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강당은 사람들로 꽉 찼다. 식당 안에 들어 가니 내가 맨 마지막으로 들어 갔다.
노인들이 경로당에 화투 치고 장기를 둔다고 생각했으면 참으로 착각이다. 여자 노인들 열 명이면 남자들은 두어 명 정도. 배움에 있어서도 여자들이 더 열심이다.
교육 신청을 한다고 다 자기가 받고 싶은 것을 신청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순위가 있단다. 첫째 먼저 과목을 신청할 수 있는 우선건을 가질 수 있는 뽑기에서 앞번호를 타야만 자기가 원하는 과목을 신청할 수 있다. 둘째 기존 회원 보다 신입 회원에게 우선권이 있다. 세째 여자 회원 보다 남자 회원에게 우선권이 있다. 신입과 남자가 귀한 대접을 받는다. 바로 내가 해당이 된다.
이날 뽑기를 했다. 600명 중에 나는 574 번을 뽑았다.
늘 뽑기에는 나 이 모양이다. 내가 원하는 하모니카 반에 들어가는 일이 가능할지.
자신이 뽑은 번호를 등록하여야 한다.
21일 오후에 다시 온다. 여기 성당의 소강당이다. 안내자가 몇 번 까지 신청하세요. 지금 무슨 과목은 다 마감입니다. 그러나 남자와 신입은 남은 과목이 있으니 끝번에 가까운 나도 가능성은 있을 지.
남자에다가 신입이라서 나는 내가 듣고 싶은 과목을 청해서 다 된다. 컴퓨터는 고급반이 있으나 다른 시간과 겹쳐서 신청을 못한다.
학창 시절에 남들은 제법 당구알을 굴렸으나 나는 한 번도 당구를 쳐 본 일이 없다. 이 나이에 한 번 당구나 한 번 쳐보는 일도 어떨까. 일본어 중국어도 공부를 한 지 아주 오래되었으나 나는 늘 초보이니 다시 초보를 신청한다. 영어 팝송 하나 제대로 아는 게 뭐 있나 영어 팝송을 배워 보자. 악기 하나 못 다루니 하모니카 좀 해 보자. 이왕이면 키타도 배우고 싶다. 그러나 키타를 장만해야 하고 기분 따라 아무데서나 꺼내 하기 힘들겠다. 하모니카로 나는 오빠 생각이나 짠자라를 부르고 싶다. 6개월 배우면 뭔가 부를 수 있겠지.
신청을 하고 성당을 나선다. 그런데 처형도 과목을 신청 했을 텐데. 얼굴도 안 보이네. 뭐야, 여기 선배가 전화 한 번 없고. 오늘 여기 온다 하고서는....
삼익 아파트 옆을 지나 우리 동네로 간다. 집에 가니 아내가 버럭 나중에 온 처형도 더 버럭 " 전화를 열 통화나 걸었는데 받지 않고 뭐에요?" 내 휴대폰에는 단 한 통의 전화 번호도 찍히지 않았다. " 그 전화기 버리고 말아요." 그나 저나 동생의 남편을 재미있게 해주려는 처형이 고맙다. 생각하니 한 동네 사시던 어머니께서 생전에 이런 교육 장소를 모르셨다. 그림 드리시고 악기를 다루고 싶어 하시던 어머니가 진즉 아셨으면 얼마나 기뻐 하셨으리. 어머니가 못 하신 교육을 어머니 따라 늙어 가는 아들이 받으러 갈 날이 오는구나. |
출처: 일파만파 원문보기 글쓴이: 일파 황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