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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8일 토요일 맑음
아침에 오늘 오후에 도착할 더블린의 숙소를 확인했다. o양의 도움으로 겨우 구한 숙소다. 주방에 비치된 콘푸러스트와 우유로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이 제공되지 않는 숙소다. 숙소의 겉은 멀쩡한데 속은 좀 낡은 느낌이다. 오늘의 일정은 오전에 벨파스트 시내를 구경하고 오후에는 더블린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다. 주인아주머니가 알려준 대로 길을 건너 9B 버스를 탔다. 시내로 가는 2층 버스다. 2층 버스를 타면 늘 기분이 좋다. 버스 터미널 앞에서 내렸다. 버스터미널은 상가와 함께 있어 제법 넓어 보이고 분주했다. 더블린으로 가는 버스는 두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우리는 Air Coach 버스를 예약했다. 1시간 마다한 대씩 출발한다. 탑승시간은 맘 대로다. 당일에 탑승하면 된단다.
시내 구경을 하려니 가방이 좀 무겁다. 가방을 맡길 곳을 찾았으나 마당한 곳이 없다. 여행사에 들어가 물으니 가방 하나 당 2.5파운드(5000원)를 내란다. 알뜰로 무장된 아내는 눈이 커졌다. 결국 그냥 매고 다니기로 했다. 다행히도 우리 가방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다만 좀 불편할 뿐이다. 시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지도에 표시된 번호대로 찾아다니기로 했다. 우리가 서있는 위치를 지도에서 확인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버스터미널, 바로 옆 건물이 17번 오페라 하우스였다. 먼저 만난 것은 인디언 느낌이 오는 남 여 조각상이다. 그랜드 오페라 하우스는 1896년에 오픈한 이래 벨파스트의 문화 중심지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발레,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빅토리안 스타일의 극장 건축에 일각연이 있는 건축가 프랭크 매첨의 디자인으로 완성되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무료투어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투란도트 와 사운드 오브 뮤직 포스터가 싱싱하게 붙어있다. 건물이 여성스럽게 우아해 보인다. 옆에 있는 유로파 호텔 폭탄 사건으로 파괴되었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복구되었단다. 구교도와 신교도 간의 폭력과 테러의 중심에 유로파 호텔이 있었단다. 1995년에 IRA 가 유로파 호텔 폭탄 테러가 있었고 그 밖에도 많은 테러가 이 호텔에 있었단다. 여기가 그 테러의 현장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맞은편에 있는 크라운 바에도 관광객이 많이 들린다. 유명한 곳인가 보다. 1849년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카페란다. 내부는 섬세한 나무 조각으로 꾸며져 있다. 참으로 멋진 펍이다. 1800년대 문을 열고 들어온 것 같이 시간의 흐름의 정지된 느낌이다. 창문도 스테인드그라스로 되어 있어 술집인지 교회인지 착각이 든다. 나무 장식으로 된 천장과 기둥의 조각과 바닥의 타일로 모자이크 식으로 장식된 문양을 살펴보면 예술작품 같다. 북아일랜드에서 국가 보물로 지정해 놓았다. 이 바의 내부가 침몰 당시 타이타닉의 이탈리아식 인테리어와 똑같기 때문이란다. 초호화 유람선인 타이타닉의 실내장식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작업을 했는데 이곳 크라운 바도 같은 사람들이 작업을 했단다. 영화 타이타닉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영화를 구상할 때 이곳에 자주 들렀다고 한다. 그 다음 찾아 간 곳이 18번 얼스터 홀이다.1862년에 지어졌다. 각종 공연과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신교도들의 중심지란다. 댄싱 경연대회 그리고 11월에 맥주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1층은 회색이고 2층은 흰색으로 칠한 단순한 건물이다. 건물 위주로 찾아다니다 보니 이제 1번 시청사에 도착했다. 시청은 시내 중심인 도네갈 광장에 있다. 시청 건물은 1898년 착공하여 건축가 알프레드 토머스(1868~1948)의 감독 하에 1906년 8월 1일 완공했다. 19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의 시청사는 이 건물을 본떠서 건축하였단다. 고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었다. 건물 외관은 포틀랜드 돌을 사용했다. 건물 네 귀퉁이에 푸른색 탑을, 중앙에는 높이 53m의 돔을 설치하였다. 내부가 화려하고 아름답단다. 2006년 8월에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단다. 오늘날에는 주정부 청사로 이용하고 있단다. 1886년 빅토리아 여왕은 이 도시를 벨파스트라 이름지어 주었단다. 시청 입구 중앙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시청 주위에는 11개의 동상과 기념물이 있다. 그중에는 타이타닉 기념물도 있다. 타이타닉 호는 1909년 벨파스트 조선소에서 제작되었다. 1911년 첫 항해에서 침몰하여 151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벨파스트 출신의 유명인이 많다. 고무 타이어에 공기가 들어있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이것을 발명한 사람이 벨파스트 출신의 의사 던로프이다. 아들이 세 발 자전거를 타기 쉽게 해주려고 생각한 것이 게기가 되었는데 지금은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그 은혜를 입고 있다. (독수리 춤을 추듯 하강하였다) 등의 소설로 알려진 히킨즈(40여개 작품으로 1억 권 이상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가)도 이곳 출신이다. 세계적인 플루트 연주자 골웨이트도 이곳 출신이다. 왕성한 문화의 도시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한다. 시청사 정원에는 한국전쟁에 참가한 영국인들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한국전 중 참전 영국군은 미군 다음으로 많은 육해공군을 파견하여 사상자도 미군 다음으로 많이 배출했다. 해군의 역할 또한 아주 커서 항공모함까지 파견하는 등 바다에서 근 역할을 차지했다. --1950년 12월 말 영국 얼스터 대대는 현재 은평 789단지의 북쪽 6km에 있는 쟁고개에서 남진해 오는 중공군을 막고 지연작전을 명령 받아 긴급 투입되었다. 1951년 새벽 서울 시민의 1.4 후퇴 작전을 완료하고 철수하다가 중공군의 기습을 받고 157명의 전사자와 20명의 포로가 발생한다. 전투가 있던 장소는 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매네미 고개 산기슭으로 그곳에 영국군 157위의 묘지가 마련되었다. 재편한 대대의 신임 대대장 카슨 중령은 근처 석물 공장 앞을 지나다가 붉은 색채가 나는 화강암을 발견하고 묘비를 제작하여 이를 영국군 묘지에 세웠다. 영국군의 유해는 그곳 양주에 1950년대 중반까지 잠들어 있다가 부산 유엔군 묘원으로 이장했고 그 자리에 남아있던 묘비는 1962년도 영국 해군 순양함 벨파스트 호에 의해서 엘스터 연대의 고향인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로 이전 되어 현재 이곳 시청에 있다. (자료 검색) 시청 철 대문에는 영국 문양이 붙어있다. 호랑이가 아니고 개 형상이다. 왼쪽도 개 모양이고 오른쪽은 개형상의 해마가 그려져 있다. 좀 특이하다. 도네갈 광장으로 건너간다. 왼편에는 2번 투어리스트 인포가 있다. 아름다운 교회(성 메리 교회) 건물에 거리가 아름답다. 북쪽 방향으로 걸어간다. 보행자 도로에 고급 상점들이 있는데 활기가 없다. 로얄 아베뉴 거리다. 큰 쇼핑 센타 인 13번 Castle Court shopping centre를 왼쪽에 끼고 걸어간다. 재래시장 12번 Smithfield Market을 찾아갔다. 외부에 과일 상들이 보인다. 내부로 들어가니 문을 닫은 상점들이 많다. 오늘 열리는 날이 아닌 것 같다. 오래된 세탁소, 구두수선 집 카페트 가게 등 흑백 영화에 나오는 영화 세트장 같다. 다시 나와 시 도서관 건물(26번)을 거쳐 6번 St Anne’s Cathederal을 찾아갔다. 세인트 앤 성당이다. 이 성당은 역사가 오래되 보인다. 들어가 보니 웅장하다. 특이하게 의자에 매달린 방석의 크기는 같은데 문양이 제각각이다. 꼭 미술 작품 같다. 마침 청년 8명이 찬양 연습을 하고 있어 소리도 은은하여 성스러워 보인다. 입구 천장에 만들어진 모자이크 작품은 러시아의 성당을 연상케 한다. 타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 작품인데 아주 섬세하고 화려하다.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황금빛 타일 작품이 인상적이다. 본 당 앞으로 가보니 중앙 강단 뒤로 뾰족한 기둥이 햇빛과 함께 수직으로 세워져 있다. 나중에 밖으로 나가 확인해 보니 엄청 뾰족한 기념물이 하늘 높이 치솟아 교회 강단 아리로 향해 있다. 벨파스트 스파이어란다. 특이한 형태다. 벽화가 있다. 좀 무시무시한 벽화다. 분노와 슬픔이 가득해 보이는 벽화들이다. 잔인해 보이고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것도 있다. 친구이며 가족이며 이웃이었던 이들이 서로 물고 죽이는 아픔을 벽화로 표현해 놓았다. 샨킬 로드로 가면 벽화를 많이 볼 수 있다. 관광안내소에 가서 알아보면 더 많은 벽화들을 안내해 준다. 벽화의 위치 뿐 만 아니라 각 그림에 대한 설명까지 들어있는 상세 지도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 보는 벽화들은 대부분 장난 끼가 있거나 내용이 있어도 색상이 화려하여 보는 이를 즐겁게 하는 데 여기서 만나는 벽화들은 슬프고 아프게 한다. 전쟁 기념관 건물을 따라 15번 The Mac을 찾아갔다. 맥 홀은 현대식 건물이다. 작은 광장을 품고 있는 연주장인 것 같다. 예술, 댄스, 영화, 뮤직 등 다양한 연주나 공연을 하는 장소다. 21번 Custom house 광장에 도착했다. 무역항 겸 조선으로 유명했던 벨파스트의 한 때를 엿볼 수 있는 세관 건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1857년에 세워졌다. 맞은편에는 시계탑이 있다. 영국 런던의 작은 빅벤 모양이다. 원 이름은 Albert Memorial Clock Tower 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알버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시계 밑에 있는 동상이 알버트의 동상이다. 세관 건물 앞에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데 연설을 하는 사람만이 쓸쓸하게 광장을 지키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동상의 이름도 연사‘Speaker’다. 아내가 동상 옆에서 같은 폼으로 사진을 찍는다. 뭐라고 말하는지 잔뜩 화가 난 표정이다. 라간 강으로 향했다. 커다란 물고기가 강 밖으로 나와 있다. 라간 강에 도착하면 만나는 형상이다. 라간 강의 재건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벨파스트의 새로운 랜드 마크, 물고기 동상이다. 1999년에 존 카인드네스에 의해 만들어진 연어를 형상화한 빅 피시 동상이다. 겉에는 벨파스트의 역사를 보여주는 그림과 글이 새겨진 타일이 여러 조각으로 덮여 있는데, 푸른색이라 연어보다는 고등어 같다. 바다와 만나는 강물은 조용히 흐르고 강폭이 넓지는 않다 강을 따라 걸어내려가니 또 동상이 있다.
Thanksgiving Square Belfast 라는 이름이 있다. 여인이 원을 들고 있는 철 구조물이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고, 온 세상 사람들이 함께 나가자는 내용이다. 둥그런 지구를 밟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 다리와 여왕의 다리 사이에 있다.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었다. 걸어 다니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멀리 타이타닉 박물관이 있는데 시간이 부족해 보인다. 늦지 않게 더블린에 도착하려면 점심을 먹고 차를 타야한다. 타이타닉 박물관에 가보지 못해 아쉬웠다. 타이타닉이 바로 이 벨파스트의 조선소에서 만들어졌다는 것! 1911년 주조당시의 타이타닉 호를 만들고 “신神도 이 배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장담했다. 세계 최대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1912년 3월 31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조선소에서 영국 화이트 스타사의 주문으로 할랜드 앤드 울프사에 의해 건조된 타이타닉 호는 다음 달인 4월 10일, 영국 사우샘프턴 항에서 뉴욕 항으로 처녀 출항을 나선다. 닷새 후인 4월 15일 새벽 2시 18분. 타이타닉 호는 미국 북동 뉴펀들랜드 400마일 해상에서 부류하던 빙산과 충돌한 후 두 동강이 나면서 해저 3,821m 아래로 가라앉았다. 승선인원 총 2,228명 가운데 711명만이 살아남은 최악의 대형 참사였다. 수심 3900m 에 잠긴 타이타닉 호는 현대과학으로는 인양이 불가하다고 한다. 이런 타이타닉의 출생에서 사망까지 모든 히스토리를 따라가 볼 수 있는 곳이 벨파스트에 있다. 바로 타이타닉 워크(Titanic Walk)가 바로 그것이다. 타이타닉의 역사를 따라 도보 여행할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으로 2시간30분 동안 3km 정도 코스다. 잠시 아내와 타이타닉 영화를 더듬어 보면서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강을 따라 간다. 옥스퍼드 스트리트를 따라간다. 가는 길에 7마리 양과 지팡이를 든 목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실물이 아니라 동상이다. 조형물의 제목을 보니 ‘Sheep on the Road’ 이다. 재미있어 보인다. 무슨 의미로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지만 보는 이가 즐겁다. 1990년에 만들어진 청동제품이다. 1927년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Deborah Brown 작품이다. 데보라 브라운은 북부 아일랜드의 조각가이다. 광범위한 활동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갖게 되었고 영국의 최고의 조각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녀는 Cushendun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을 기억하여 거리 조각에 양들과 목동을 만들었다고 한다.
19번 Waterfront Hall에 도착했다. 1997년이라고 적혀있다. 벨파스트 북 아일랜드의 워터 프론트 홀은 다목적 시설이다. 로빈슨 McIlwaine이 건축했다. 이 홀은 1989년 32만 파운드를 투자해 1997년에 완성했다. 2241개의 좌석을 가지고 있는 원형 홀이다. 다양한 콘서트가 열리는 곳으로 현대적인 기능을 갖추고 있다. 건물 옆에는 고전틱힌 건물 힐튼 호텔이 있다. 알버트 다리 방향으로 걷다보면 건너편에 중앙역이 있다. 북아일랜드 중앙역이다. 역으로 들어가 보니 공연장 입구 같다.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가방을 들고 길게 줄을 서 있다. 홀 구석에는 집에서 만들어 온 각종 케익과 빵을 팔고 있다. 냄새가 구구하다. 아담하고 포근해 보인다. 역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지 않고 다시 시내 방향으로 간다. 역 옆에 커다란 공터가 있다. 널빤지로 이루어진 파래트를 쌓으면서 10여명의 중고등학생들이 작품을 만들고 있다. 파래트를 쌓아서 탑을 만들고 그 꼭대기에 국기를 세우는 커다란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힘과 지혜 그리고 협동으로 폐자재로 작품을 만드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보였다. 보라색 꽃향기를 맡으며 그들의 작품을 쳐다보는 마음이 흐뭇하다. 큰 길을 건너니 재래시장이다. ST GEORGE'S MARKET 세인트 조지 마켙, 1890년대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재래시장. 주말인 금, 토요일에만 문을 연다. 밖은 조용한데 안으로 들어가니 활기차다. 눈도 즐겁고 코도 즐거우며 귀도 즐겁고 발걸음도 가볍다. 여행객 보다는 주민들이 많고 역동적이다. 열린 시장도 다양하다. 예술적인 그림과 공예품 음악에서부터 입이 즐거울 각종 음식이 펼쳐져 있다. 치즈 종류도 다양하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 터키 식 커리다. 구수한 커리 냄새에 노란색 요리는 금방 바닥이 날 정도다. 집에서 만들어 가지고 온 잼과 아이스크림 매운 양념 등 먹거리도 다양하다. 거기에 바다에서 잡아 올린 연어 대구 등 각종 생선과 밭에서 재배한 각종 야채들과 먹음직스러운 과일들도 풍성하다. 홀 가운데에는 기타와 트럼펫, 바이올린 연주가가 분위기에 맞는 곳으로 연주를 해준다.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에 음악소리가 작게 들린다. 나무 공예품인 여러 가지 목각 제품과 자수 제품, 그리고 칼라풀한 인형 가게도 분위기를 밝게 한다. 말고기도 팔고 있다. 무거운 발걸음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시청 건물을 다시 만났다. 옆에 있는 오래된 거물에는 와트, 무어, 세익스피어, 호머 등의 얼굴이 붙어있다. 버스 터미널 앞에 있는 Subway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커다란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해서 아내와 반을 잘라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참 맛있다. 이제 북아일랜드를 떠나서 아일랜드로 가야할 것 같다.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탄다. 오후 13시 21분 버스를 타게 되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으로 간다. 창문을 내다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국경을 넘어 더블린에 도착하게 되었다. 국경의 검사도 없이 그냥 통과했다. 더블린에 있는 공항이라는 방송을 듣고서야 넘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공항 터미널 2개를 멈춘 후에 우리는 더블린 시내에 도착했다. 오코넬 거리에 있는 크고 멋진 건물 시티 센터 건물 앞에서 모두 내렸다. 이렇게 더블린에 도착한 것이다.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이 둥근 지붕을 가진 극장 Ambassador rk 보이고 사거리 중앙에 세워진 기념비가 눈에 들어온다. 사진에서 보았던 높은 첨탑 The Spire가 햇빛에 반짝인다. 라빈 강을 따라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길게 이어졌다. James Larkin Statue 동상이 보이더니 더 걸어가니 다리가 있다. 그 앞에 O'Connell Monument 가 있다. 라피 강위를 건너는 오코넬 다리를 건너가다가 한국 아가씨를 만나 숙소 방향의 길을 물었다. 한 눈 팔지 말고 곧장 가란다. 바닥에 성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에 잠시 눈을 팔고서 또 걸어간다. 엄청 사람들이 많다. 고급스런 가게들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는 트리니티 대학이 있다. 지도에서 우리 숙소를 확인해 보니 트램이 간다. 그린 라인 6번째 정거장 부근이다. 숙소를 찾아가는 것이 우선이다. 걸어가기로 했다. 등에 맨 배낭이 약간 무겁지만 택시를 타기에는 돈이ㅏ 아깝고 버스를 타자니 잘 모르겠고 트램을 타자니 걸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더블린의 삶의 모습을 구경할 겸 걸어가기로 했다. 아직도 건강하고 힘이 남아있으니....... 우리의 예상은 점점 빗나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멀었다. 거의 1시간을 넘게 걸어 겨우 숙소를 찾았다. 조용한 주택가다. 거리에는 사람도 없고 보이는 가게도 없다. 그저 길게 이어진 집들이 있을 뿐이다. 주소는 45 Nutgrove Park Clonskeagh Dublin(클론스키 더블린) 이다. 에어 비엔비를 통해 예약한 민박집이다. 반가웠다. 그러나 벨을 눌렀지만 소식이 없다. 몇 번 벨을 누르고 난 후 겨우 아가씨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준다. 샤워 중 이었단다. 뜻밖에 동양인이다.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란다. 시바라고 불러달라는 이 여학생은 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잠시 후에 주인아주머니가 도착했다. 친절하고 후한 분이었다. 전직 교사였으며 지금은 퇴임하고 건물관리와 숙박업을 하고 있단다. 지금 막 수퍼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포장된 도시락 말레이 커리 2개를 먹으라고 흔쾌히 내주신다. 주방에서 홍차와 과자를 꺼내주시며 잠시 쉬라고 한다. 아주머니는 우리가 묵을 숙소를 정리해 주셨다. 이 숙소는 주인이 살지 않고 인근에 있는 대학생들과 여행객들만 살고 있단다. 우리는 여기서 3일을 묵기로 했다. 제니라 불리는 중구인 여학생 이 또 있고, 스페인 2명, 포르투갈 1명, 독일인 2명 그리고 이스라엘 1명이 2층에 있단다. 주변에는 주택가라 수퍼가 멀고 또 교통이 불편하단다. 버스를 타는 방법과 시내에서 공연되고 있는 여러 가지를 중국 아가씨 시바가 친절하게 알려준다. 우리 숙소에 들어서니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이 우리를 맞아준다. 따듯하게 햇빛이 드는 정원이 보이는 예쁘고 밝은 방이다. 우리는 주인이 주고 간 말레이 커리를 저녁삼아 먹고 주변을 산책했다. 좀 떨어진 곳에 슈퍼가 하나있고 슈퍼 안에는 작은 식당도 있다. 또 UCD 더블린 대학 후문이 있었다. 밤이 되어 자리에 누우니 하루의 여정이 꿈만 같다.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