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27대 왕인 선덕여왕때 세워진 첨성대는 높이 9.17m의 천문관측대로 국보 제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관측대라는 첨성대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원통형의 몸체가 27단으로 되어 있는데 단 하나의 높이는 30cm 정도이다.
12단까지는 안쪽에 흙이 채워져 있고 19, 20단 그리고 25, 25단 두 곳은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2단이 놓여 있다. 13, 14, 15단에 걸쳐서는 네모난 창과 같이 생긴 출입구가 나 있다. 1년을 나타내는 365개의 석재를 사용하였다. 천문관측대 치고는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을 들어 천문관측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동양최대의 천문대 첨성대(국보31호)는 경주시 반월성 동북 쪽 평탄한 곳에 우아하고 정된 병과 같은 모습으로 1천 3백여년의 풍상을 거슬러 서 있다. 현존하는 천문대 중 동양 최고라 일컫는 이 첨성대는 신라 선덕 여왕16년(647년)백제의 석공 아비지가 세운 것이다. 높이9m11cm 밑 지름 4m93cm 윗 지름 2m85m신라 궁궐이던 반월성 동북쪽에 세워진 첨성대는 지금 서울에 비하면 중앙청 앞 세종로 네거리에 서 있는 셈이다.
왕은 바로 천자로 하늘이 그 권세를 내린 것 이라는 정치철학아래 있던 고대 국가에서는 하늘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거기서 하늘의 뜻을 읽는 것은 국가 즉 왕의 안위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내부는 남문이 나 있는 12단 까지는 흙이 차 있고 그 위에는 비어 있는데 19단은 2장의 장대석이 나란히 놓여 있으나 그 끝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지 않고 25.26단의 정자석도 역시 장대석을 나란히 엇바꿔 놓았으며 27단 내부의 반원 위치에는 길이 약 5.1척(1.56m) 너비 약2척(0.6m) 두께 약 8촌(24cm)가량의 반석이 있고 그 맞은편에 편목을 놓았던 자리라고 보이는 자리가 나 있고 정상의 정자석은 길이 10척(3.03m)의 정방형으로 정대석을 십자맞춤으로 놓았다.
첨성대의 기능에 대해서 학자들의 주장이 각자 틀린다. 첨성대 맨위에 정자석위에 목조건물이 세워져 운천의 같은 관측기구를 두고 관측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남쪽 창문까지 사다리로 올라가 거기서 부터 안으로 천정에 올라 관측했을 것으로 풀이하나 매일 같이 오르내리는 곳을 그렇게 불편하게 시설 했을리 없고 또 정자석 부분을 편목으로 덮어 관측기구를 고정시켜 두었다면 사람이 안쪽에서 올라 다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감을 받지 못했다.
첫댓글 첨성대를 만나러 가는 날 역시 흐린날씨에 잔잔한 비가 내리기도 했다.
첨성대를 바라보는 순간 선조들의 영혼의 소리가 빗물을 타고 온 몸으로 스며들었다.
희미한 얼굴들과 손놀림안에 가장 과학적인 방법으로 동원된 지혜의 명석함이 스쳐간다.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죽어갔고 배 앓이를 했을까도 생각나게 했다.
이끼긴 웅장한 돌들을 바라보며 한 바퀴를 돌았다.
가슴한켠에 감동의 물결이 흐린 잿빛 하늘과 함께 다듬이방망이질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