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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흉노와의 대화[애마]
이장희 추천 0 조회 76 15.12.31 22: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아래는 흉노족에 대한 대화 형식의 설명입니다.

 

천종 :

 

미국의 한 학자는 흉노족은 곧 고구려 유목민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내용은 역사스페셜에서도 다루었지요. 실재 흉노족은 탁월한 기마민족일뿐더러 뛰어난 활솜씨를 자랑했습니다. 특히 흉노족의 활은 우리 민족의 활인 '만궁'과 똑 같습니다. 실재 과거 아시아의 동쪽과 서쪽은 초원의 길이라고해서 기마민족들은 아주 쉽게 오갔습니다. 거리만 멀 뿐이지 말을 타면 몇 개월내에 주파할수있는 거리지요.

 

흉노족은 분명 아시아계 유목민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스키타이는 흉노의 한 일파입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아시아의 어느 종족인지는 아직까지 정설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궁을 가진점과 뛰어난 기마술 및 우랄알타이어계의 언어체계를 감안해볼 때 적어도 우리민족과 가깝거나 거의 동일하다고 봐야 합니다. 실재 중국인들은 만리장성 이북의 민족을 모두 '고려인' 이라고 불렀습니다. 몽골족도 선비족도 고구려인도 모두 고려인이라고 불렀지요. 고구려의 영토는 광대합니다.

 


주목할만한 내용중 하나는 고구려 고분벽화중에 수박도가 있는데 이 그림의 인물은 놀랍게도 서역인과 닮았다는 겁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인물의 외모의 특이성 때문에 서역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를 통해서 왔는지는 짐작하지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당시 고구려에도 분명히 서역이나 유럽계의 민족과 어느 정도 접촉이 있다는 점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초원의 길을 따라 무역을 하는것은 당시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요.

 

봉팔 :

 

흉노족은 고구려와의 관계보다도, 신라왕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신라의 고분을 발굴해 보면 5~6세기 부터 기존의 무덤양식과 유물 등과 완전한 단절됩니다. 出자 모양 왕관을 비롯해 북방계 기마민족의 종교와 양식을 나타내는 것들이 많을 뿐더러, 특히 "황금"세공물의 모습과 내용이 완벽하게 동일계열로 취급됩니다.

 

또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도, 내물마립간 이후 북방 기마계열의 새로운 왕족이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강력한 증거들이 풍부하게 언급됩니다. 즉 5, 6세기 이후 신라왕족의 지배계층이 완전히 바뀐 것은 사료로 보나 고고학적으로 보나 너무나 확연합니다. 결론적으로 바로 이렇게 교체된 지배세력이 바로 흉노족의 한 계열이라는 것입니다. .

 

"..삼국통일을 완수한 신라 30대왕 金法敏, 즉 文武王의 陵碑 파편 하나가 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961년 경주시 동부동 주택가에서 발견되었다. 이 비문 중에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火官之后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판독불능)枝가 英異함을 담아 낼 수 있었다. 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륜)이 7대를 전하여… 하였다.

 

15대조 星漢王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내리고, 그 靈이 仙岳에서 나와(下略)>

여기서 문제가 되는 대목은 「侯 祭天之胤傳七葉」이다. 侯는 漢武帝가 흉노와 싸울 때 청년 장군 곽去病(곽거병)에게 포로가 되었던 흉노왕 休屠(휴도)의 아들 金日(김일제)를 가리킨다.

문제는 이 金日가 중국 史書에 등장하는 유명한 흉노人이라는 데 있다.

 

이 碑文의 문맥상 문무왕 스스로가 우리 조상은 匈奴人 金日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金日와 그 후손들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漢書와 列傳에 실감 나게 쓰여 있고 中國 西安에는 金日의 무덤도 있다. 애매모호한 신화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체가 분명한 金日를 문무왕이 『우리 조상이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숭실대학교 역사학과 崔秉鉉 교수는 「新羅古墳硏究」(一志社)에서 이렇게 썼다.

<신라 적석목곽분을 둘러싼 고고학적, 역사적 상황들을 종합하여 볼 때, 신라 적석목곽분은 결코 내부의 先行墓制가 복합되어 이뤄진 것은 아니었으며, 기마문화를 배경으로 한 북방아시아 목곽분 문화의 직접 渡來에 의해 돌발적으로 출현한 것이었고, 그것은 3세기 말, 4세기 초부터 일어난 동아시아 기마민족 대이동의 와중에서 한 여파가 밀려온 결과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북방 기마민족의 일파가, 3~4세기 중국 북부 유목민족 大南進 때(5胡16國시대) 한반도로 밀고 들어와 경주에서 토착정권을 점령하고 金氏 왕족를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이들 유목민족의 상징이 金이다. 유목민족은 금제품을 좋아하고 금세공 기술이 뛰어났다.

 

이들의 본거지였던 알타이 산맥의 그 알타이가 金이란 뜻이다. 흉노계라는 신라 지배층이 성씨를 金이라고 정했다는 것도 퍽 상징적이다. 경주 천마총 안으로 들어가보면 무덤의 주인공이 금관, 금팔찌, 가슴장식, 금귀고리, 금허리띠 등 온통 금장식품들과 칼, 馬具를 뒤집어쓴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여기 누워 있는 사람이 과연 한국인인가 의아해 할 정도로 異國的이다.

 

적석목곽분이란 墓制, 북방系 출토 유물들, 풍부한 馬具와 금제품, 金씨, 麻立干이란 호칭 등이 흉노의 표시물들인 셈이다.

 

한국이 흉노국 :

 

한국 姓중 제일 흔한게 뭡니까? 김-이-박 입니다. 그리고 金은 곧 알타이를 뜻합니다. 김씨성은 원래 흉노 성인 것이지요. 금속과 철을 잘 다룬다고 해서 金이란 성을 가지게 되었겠지요.
그리고 헝가리인들의 혈통이란 이렇게 형성된 것이 아닐까요? 동쪽에서 온 기마민족 흉노족은 항복을 거부한 토착민 남자들을 제거하였겠지요. 그리고 그곳 여인들을 데리고 살았겠지요. 그 다음에 마자르족(* 말갈족?)이 다시 쳐들어오고, 그래서 오늘의 헝거리민족을 형성하였겠지요. 과거 일본에서도 한반도 도래인들이 비슷한 혈통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갈의 중국발음과 헝가리 발음이 비슷하더군요. 마갸~ㄹ... 말갈 -> 마가르 -> 마쟈르... 참, 흉노족 코 가운데뼈가 튀어나온 것도 한국사람이랑 비슷하네요. 그게 퉁구스족의 특징이라 그러더군요.

 

봉팔님의 잘 정리하셨는데 현재 안풀리는 수수께끼가 몇개 있지요. 우선 신라는 서역마를 탔읍니다. 천마총에서는 심지어 유니콘까지 그려진 유물이 나왔는데 현정권의 문화재청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기린이라고 우기고 있죠. 천마가 기린이라니... 그리고 아시는 바와 같이 고구려는 과하마를 탔읍니다. 즉 조랑말이죠. 그런데 제주도의 조랑말은 몽골말이 아니랍니다. 유전자 검사결과 인도지역말이라네요.

 

신라가 서역마를 가질수 있던 이유는 바로 흉노가 한족이 도입한 서역마의 위세에 눌린 시절이 있읍니다. 서역마를 신라가 취하는 경위는 바로 흉노가 유입되는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한반도 남부 지석묘 주인공의 신체 특징상 인도계열일 것입이다. 한반도 언어 특성상 수메르 언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즉, 수메르 문화가 해로를 거쳐 한반도로 이동하였다는 것이죠. 제주도의 조랑말은 그런 증거입니다.

 

고구려계열의 말은 과하마로 불리우는 말로써 몽골혈통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몽골계열 말의 특징은 단거리 스퍼트에는 뒤지나 장거리에 몹시 강하다는 것입니다. 징기즈칸의 장거리 전격전이 가능했던 이유도 바로 몽골말의 강인성에서 비롯되지요.

 

그렇다면 서구에서 말하는 훈족과 아시아에서 말하는 흉노가 과연 같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 됩니다. 북방 기마민족을 아우르는 통칭이 훈-흉노로 쓰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구요. 어쨌거나 혈통을 따라가다 보면 의외로 역사의 무대는 매우 커집니다. 즉 땅의 역사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사람의 역사는 분명 일치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메소포타미아를 건설한 수메르인들은 인도지역으로 이동하였고 다시 동진합니다. 다시 이들중 일부가 동진을 하는데, 이게 바로 금관가야에 나타난다는 것이죠. 금관가야의 쌍어문과 전래설화, 마다라스지역 언어와 문자의 한국어와의 일치성, 여러 재미있는 것이 많습니다. 지금의 이라크인들은 메소포타미아 유적과는 아무 상관이 없죠. 그런데 수메르인들의 이동통로중 북방으로 간 계열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금속문화를 유지시키는 과정에서 出자관이 출토되죠. 자작나무를 상징한다는 제사장의 상징물은 지금도 바이칼호 주변에 흔적이 있다고 하네요. 사실 유목민이 수준높은 금속문화를 지닌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즉, 유목 이전의 역사가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흉노는 그 이전에 무엇이며 어디서 왔을까? 여기까지 미쳐야 한민족의 기원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흉노의 후손 :

 

고대 스키타이문명을 이룬 종족의 후손이 바로 만리장성 이북의 흉노입니다. 스키타이제국이 분열되어 전세계로 퍼져나갔는데, 그 중 한 분파가 이룬 문명이 바로 유럽 문명의 기원인 수메르 문명입니다. 수메르는 우리말 '소머리'에서 변한 말로, 바로 소머리 가면을 쓰고 '소'를 부족의 상징으로 했던 부족입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족, 호랑이족과 같은 개념이지요.

 

이 수메르문명이 메소포타미아문명을 거쳐 고대 그리스-로마문명이 되었지요. 영어의 원, 투, 쓰리의 어원도 바로 우리말 '한->완->원'으로, '두->투'로, '서이->스이->쓰리'로 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우리민족의 뿌리는 바로 고대 스키타이제국에 있으며, 단군도 바로 지금의 바이칼호와 우랄알타이 산맥지역에 거주하던 흉노족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동쪽으로 이동하여 토착세력인 곰족과 연합하여 고조선을 건국한 것입니다.

 

현재의 만리장성 이북의 민족은 모두 이름만 다를 뿐, 결국은 거의 동일한 민족으로 봐도 될 것입니다. 일례로 '거란족'은 '고을안 족'에서 '몽골족'은 '먼고을 족'에서 나온 이름이 아닐까요? 그럴듯 하죠? 이 내용은 아직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가문(?)의 비밀이지만, 오늘 이자리를 빌어 공개합니다. 검증은 역사학자들이 하시겠지요.

 

참, 우리 한민족의 기원에 대해 빠뜨렸는데, 바로 스키타이제국에서 시베리아, 만주 벌판을 휘졌고 다니던 흉노족의 후예입니다. 위의 '봉팔'님이 잘 정리해 주셨는데, '박혁거세'가 바로 고조선 지역에 거주하던 단군의 후예로써, 서역마(?) (사실은 천리마임)를 타고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 남하한 세력입니다. 고구려의 '고주몽' 백제의 '온조'도 모두 뿌리는 고조선에 있구요.

 

따라서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지요. 원래 우리민족은 거인족이었습니다. 시베리아지역에서 출토되는 고대 흉노족의 시신을 보면 다들 엄청 키가 크지요. '박혁거세가 16세인가 18세에 지도자로 선출된 것도 이미 그 나이에 키가 180cm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인 남성의 평균키가 180cm가 넘었답니다.

 

또한 몽고의 침입 때 고려가 30년 전쟁을 겪으면서도 항복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큰 체구가 한 요인이 되었겠지요. 그 당시 전쟁이야 주로 칼, 창으로 했으니까요. 그리고 고대 우리민족이 일본인을 보면 "왜"라 불렀는데, 이는 곧 일본인이 우리에 비해 체구가 매우 왜소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이지요.

 

우리민족이 키가 작아진 원인은 임진왜란 이후 국력이 쇠약해진 틈을 타 성장한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였기 때문에 청나라의 엄청난 수탈이 있었고, 이어진 일제강점기에 왜놈들에게 또다시 수탈당하여 못먹어서 작아졌던 것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을 보면 다들 잘먹고 커서 키가 엄청 크지요. 현재 남자 평균키가 173cm를 넘었답니다. 청소년들만 따로 재보면 175cm를 넘겠지요.

 

참! 지금의 '일본'이란 명칭은 고대 신라에서 잠깐 국호로 썼던 명칭입니다. 그걸 신라 또는 백제 왕족이 건너가서 국호를 '일본'이라 정한 것입니다. 그당시 대마도는 당연히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이 분할 점령하고 있었구요. 이 대마도를 임진왜란 이후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제대로 관리 못했더니 그만 왜놈들이 꿀꺽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되찾는 노력을 해야지요.

 

질문 :

 

해박한 지식들,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데 만주족인 청태조 '누루하치'의 성이 '애신각라'이며, 따라서 청왕조는 신라인의 후손이라는데 정말인가요?

 

흉노의 후예 :

 

'누루하치'의 성이 '애신각라'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가 통일신라 이후 함경도 지역에 이주한 신라인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뜻은 신라의 은혜를 잊지말라는 것입니다. 신라인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 조상이 신라로 부터 많은 은혜를 받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사실 만주족(또는 여진족)은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지요.

 

가끔 먹을 것이 부족하여 국경 부근에서 소란을 피우기도 했지만, 윤관이 쳐들어가 9성을 쌓았다가도 그들의 처지가 너무나 불쌍하여 쌀을 주고 철수하기도 했었지요. 그 은혜를 고맙게 여겨서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명이 쇠약해진 틈을 타 건국과 동시에 조선이 아니라 명을 치러 가지요. "이제 우리는 힘을 얻었지만 그동안의 상국(조선)의 은혜에 감영받아 절대 조선을 공격하지는 않겠다"며 말이죠.

 

하지만, 청나라가 '우리도 이제 힘을 얻었으니 이제 형제처럼 지내자'고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만, 조선의 입장에서는 임진왜란 때 받은 명의 도움 때문에 친명반청 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었지요. 한편으로는 문간방에 세들어 살던 머슴이 돈벌었다고 하루아침에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니 기분이 찜찜했던 것도 있었겠지요. 그래도 광해군은 대세를 알고 절묘한 외교정책으로 전쟁을 피해갔지요.

 

하지만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세력이 광해군과 친했던 청과 거리를 멀리하는 바람에, 청은 광해군 축출을 이유로 병자호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지요. 그 결과가 나중에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게 되는 구실이 되구요. 뭐 청의 식민지인 조선을 독립시킨다나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말이죠. 예나 지금이나 왜놈들 갖다붙이는 건 한가닥하잖아요?

 

아무튼, 청나라는 자신들이 단군의 후계자라고 주장하면서, 백두산을 성지로 삼았습니다. 이 것이 바로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는 한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한수위 :

 

삽화를 보면 훈족이 웃통 벗은 원시적인 모습으로 나와있지만 사실 훈족은 철기문화가 발달되어서 기갑군단을 이루고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훈족 유적지에서 철제투구와 갑옷이 출토되고있는데 그 기교가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훈족이 야만족으로 비춰지고 있는것은 중국의 계략으로 인하여 왜곡되어진 것이라고 볼수있다..

 

또한 훈족 군사들이 웃통을 벗고있는 것은 그들의 활동무대의 자연환경으로 보아 가당치 않다.. 그들의 말달리던 몽골초원과 남시베리아는 연중 기후가 대부분 추운날이 많다.. 그리고 바람을 맞으면서 말을 타고 달리다가 밤이되면 초원한복판에서 잠을 자야하는데 웃통을 벗고 있는 모습은 전혀 맞지 않다..

 

훈족 혹은 흉노족이 우리가 혈연적으로 많이 가까울수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흉노족의 후예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생각해볼 일이다.. 몽고와 만주 등에 분포해있는 여러 퉁구스종족들중에서 각각 한 부분씩을 차지하고있던 종족이라고 봐야 맞지 누가 누구의 후예라느니 같은 민족이라느니 그렇게 말한다면 민족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진다.

 

과연 :

 

터키는 예전 국사교과서에 많이 등장하던 돌궐족이 서쪽으로 이동해서 세운 나라라네요..

 

한 훈 :

 

영어로 훈족은 HUN인데 유럽식 발음은 거의 한에 가깝다. 우리를 한민족이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닐까? 훈족은 흉노의 일파이지만 중국이 말하는 흉노와는 조금 다르고 그 원래 훈이 서방의 아틸라와 동양의 신라(신라왕중 아딜라가 있지요)으로 나누어 이동했다고 하던데...

 

천종 :

 

예~돌궐과 투르크는 같은 발음입니다. 터키인들은 스스로도 자신의 기원을 중앙아시아에서 찾으며 우리민족을 형제국이라고 하더군요. 형제국이라고 하는것은 625전쟁에 참전한 탓인지 아니면 진짜 혈연적 관련이 있다고 믿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역사적으로는 스스로 중앙아시아 기원설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라왕족은 흉노족의 일파임이 거의 인정됩니다. 그리고 흉노족은 선비족입니다.

 

훈=한 은 맞습니다. 실재 많은 이들은 (훈족)은 한(韓)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조선은 단일 민족이 아니라 9개의 민족이 뭉친 국가입니다. 한단고기를 보면 고조선(근세의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고조선이라고함)은 '구려'라고 하며 '9개의 민족이 모인 나라'라고 합니다. 실재 한자를 단군의 신하인 '창힐'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만든 목적이 서로 말이 달라서 뜻글자로 통일하고자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선비족은 곧 흉노족과 같으며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고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선비족은 또 '후연'을 세웠으며 연나라의 왕은 '모용씨'입니다. 당서(唐書), 그리고 신라는 23대 법흥(法興)왕에 해당하는 임금을 ≪량서(梁書)≫에 모명진(募名秦)으로 기록하였는데, ≪남사(南史)≫와 ≪통전(通典)≫에는 이것을 성모(姓募) 명진(名秦)-모진(募秦)으로 기록하여 신라 왕실의 성을 모(募)씨로 표시하고, ≪북제서(北齊書)≫에 진흥(眞興)왕을 김진흥(金眞興)으로 기록하여 처음으로 김(金)씨가 보입니다.

 

즉, 신라법흥왕은 '모명진'인데 '모진'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를 '김'씨와 동일하게 적용하고있습니다.놀라운것은 신라는 법흥왕 이전의 왕은 대부분 순 신라말의 이름이지만 법흥왕때부터는 갑자기 '김'씨가 되었고 이들은 곧 대대로 왕권을 세습했다는것이지요. 게다가 신라 법흥왕때부터 신라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죠.

 

지금도 신라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서기 514년 수수께끼같은 법흥왕의 출현을 이상하게 여깁니다. 법흥왕 이전에는 신라는 고작 소부족의 연합체같은 허약한 나라였죠.그런데 법흥왕이 출현하자마자 바로 유명한 '율령'을 반포하고 순식간에 정치제체를 정비하는한편 군제를 편제하고 불교를 받아들이며 사회각부분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합니다. 실로 비약적 발전을 이룩하지요.

 

즉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왕실의 일파라는 설이 분분합니다. 특이한  것은 '후연'와 고구려는 오랜 원한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후연은 고구려 광개토대왕 이전까지는 서로 일진일퇴의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광개토대왕에게 멸망당했지요. 이상한 것은 신라 김춘추가 고구려 연개소문을 만났을 때 연개소문이 김춘추에게 한 말입니다 "고구려와 신라는 오랜 은원을 잊고 서로 손을 잡아 당을 친후 옛영토를 따라 나누자" 라고 한 대목이죠.

 

연개소문이 말한 오랜 은원이란 대체 뭘까요? 국가간의 전쟁이란 늘 있으므로 오랜 은원이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만약 신라왕실이 '후연'의 일부라면 당연히 후연을 멸망시킨 고구려에 깊은 원한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옛 강역을 따라 나누자고 한 지역이 바로 당나라입니다. 이말은 당나라가 차지한 땅은 원래 신라와 고구려의 옛땅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재 '후연'이 신라의 옛조국이라면 중국의 일부는 당연히 신라땅이지요

 

KBS역사스페셜에서 방영된 내용중에 중국 역사학자와의 인텨뷰가 있습니다. 중국 역사학자는 "후연은 선비족의 나라이며 선비족은 곧 동이족이다"라고 한 것이지요. 중국학자들은 풍부한 역사자료를 갖고있습니다. 이들은 흉노는 선비족이며 선비족은 곧 동이족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후연의 모용씨가 신라 김씨왕족의 시조가 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요. 게다가 선비족은 스스로 '금'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흠 :

 

헝거리가 아시아 북방민족 계열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Hungary도 훈(hun)족의 땅(garia)이란 뜻입니다. 훈족이 곧 흉노족인 것이지요. 흉노는 음차이고 좋지 않은 한자를 음차한 것은 중화사가들의 흉노족에 대한 열등감을 반사적으로 보여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쟈르족도 말갈의 일파라는 얘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유일하게 헝가리도 성family name이 앞에 온다더군요.

 

그리고 같은 북방계 민족(사실 북방계란 중국 한족에 대비되는 용어에 불과함)이라도 앞선 제민족과 후에 크게 흥성한 민족들은 인종적으로 차이도 크다고 합니다. 철기문명의 도입시기도 차이가 크고 민족 이동 경로도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서로 충돌하고 병합하며 확장되어 온 것이죠.

 

천종 :

 

암튼 흉노는 크게보아 틀림없이 우리민족의 일파임이 분명합니다. 중국인들은 이방민족 이름을 표시할 때 한자음을 차용해서 표시하는데 비슷한 발음을 표시하는 한자중에 가급적 나쁜 뜻을 가지는 한자를 차용해 표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匈奴란 뜻은 흉하고 노예같은 민족이란 뜻으로 한고조 유방이 한때 치욕을 당했던 것을 앙갚음하려는 심보에서 지어준 것이지요. 역사를 공부하면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느끼실 것입니다.

 

끝으로 법흥왕 이전 왕들도 김씨가 보입니다마는, 이 김씨는 법흥왕이 김씨를 표방한 이후 선조까지 소급적용해 개명된 것으로 보입니다. 실재 우리 역사상에도 누군가가 새 성씨를 하사받거나 개칭했을경우 선조들까지 소급해서 이름을 개칭하는 전통이 있지요. 따라서 왕으로서 '김'씨를 정식으로 사용한 신라왕은 법흥왕이 최초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자국문화에 지나친 자신감이 있는 나머지 남의나라 문화는 터무니없이 얕잡아 보지요. 실재 신라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 때 프랑스는 왕들조차 제대로 목욕도 하지 않고 땟국이 줄줄 흐르고 머릿니가 우글대는 몰골이었죠. 당시 유럽인들의 질병사망률은 엄청났습니다. 페스트가 왜 유럽에서 유행했겠습니까? 워낙 위생관념이 희박한 나라라서 그렇죠. 향수문화가 발달한 것도 실상 그때문입니다.

 

말 안장을 아시는지? 최근 나온 영화 알렉산더대왕을 보면 알렉산더는 말안장없이 담요만 깔아 타고있습니다. 그런데 고구려와 신라의 주요 수출품 가운데 활과 더불어 '말안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말안장은 BC 3세기 - AC 1세기 사이에 중앙아시아에서 출현했다고 합니다만, 실재 말안장을 가장 잘 만들고 수출한 것은 바로 부여와 고구려 및 신라입니다. 특히 신라의 말 안장은 호화롭기 그지없다더군요.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무사들이 말타고 뒤돌아보고 활쏘는 장면이 나옵니다. 뒤돌아 활쏘려면 말안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죠. 특히 중앙아시아 기마민족들이 활을 잘 쏘는 것은 말안장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훈족이 유럽을 휩쓸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말과 말안장 및 만궁입니다.

 

노들선생 :

 

선비족 아골타가 세운 금(金)나라는 그 조상이 신라 김씨(金氏) 왕족의 일원이었는데, 지금의 만주 땅으로 망명했다가 환속하여 후손을 두었고, 그 손자인 아골타가 나라를 세운 후 원래 조상의 성씨로 국호(國號)를 삼아, '금(金)나라'로 했다고, 그들이 편찬한 <금사(金史)>에 기록하였다. 누르하치도 아골타의 후예라 <후금(後金)>이라 국호를 정했다가, 아들 홍타이치가 <청(淸)>나라로 개명했다.

 

http://cafe.daum.net/chosunsa

 

천종 :

 

역사자료가 궁금하신분들은 우리나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면밀히 살펴 보십시오. 비록 사대주의 사상에 입각해 쓰여있다고 해도 면밀히 살펴보면 우리역사가 눈에 보입니다. 그리고 한단고기(비록 비판 받고 있지만 최근 들어 역사성이 증명되고 있음. 일본 왕실도서관 정창원에도 국보급으로 보관되어있음) 및 중국의 역사서를 자세히 읽어보시면 됩니다. 중국 역사서는 오히려 우리 역사서보다 더 자세하게 대륙 한민족을 설명해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우리 역사서에서 이런 사실을 못 배울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직접 역사서를 읽을 수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해석해 가르쳐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가르쳐주는 역사학자의 대부분은 일제 식민사관에 영향받은 사람들이라는겁니다.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에게 배운 자들이 우리 역사학계의 거두가 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학자가 이병도입니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 치고 이병도 계열 제자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이병도는 고조선의 역사를 부정하고 고구려 신라 백제 한반도설을 주장했던 인물입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배웠지요. 그런 이병도가 죽기 직전 조선일보(친일매국신문)와 인텨뷰한 기사가 있는데 "고조선은 역사상 실재 국가이고 단군은 실존인물이었다"고 고백하고 죽었다는 겁니다(조선일보 기사를 찾아보면 있음). 그런데 제자들은 오히려 "노망난 발언"으로 치부하며 극구 은폐했다는 겁니다.

 

저는 이병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갈아 마시고 싶을 정도로 미운 생각이 듭니다. 이병도 때문에 우리 역사의 절반이 싹둑 잘려 나간 거죠.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 남겨진 역사서를 원문 그대로 연구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역사는 대륙역사다'라고 말한다는 점이죠.우 리들 대부분은 친일 강단사학계  학자들에게 배우기 때문에 대륙역사라는 사실을 배우지 못합니다. 역사자료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습니다.

 

하늬바람 :

 

흉노족(훈족)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1. 국정홍보처에서 운영하는 국정브리핑에 이종호박사님이 연재하는 과학으로 보는 우리역사
에 훈족과 우리 민족과의 관계가 잘 나와 있음(고대 유럽 휩쓴 '훈족'은 한민족, 5세기 동양은 광개토태왕, 서양은 아틸라가 패자였다, 훈족은 투르크 아닌 몽골계 , 한국인은 누구인가 등의 연재 참고)


http://www.news.go.kr/warp/webapp/news/list?section_id=sn_sec_7

 

2. 인터넷 프레시안에서 김운회교수가 연재한 바 있는 삼국지 바로읽기에도 흉노(대쥬신)에 대해 잘 나와 있음.
현재는 연재가 종료되어 볼 수가 없으나 엠파스 블로그 검샘해보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김운회교수가 현재 연재하고 있는 "대쥬신을 찿아서"를 참고하셔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http://www.pressian.com/

 

음 :

 

수메르의 후손이라고 자처하는 민족이 수십개라고 하더군요. 일본, 터키도 주장을 합니다. 한국도 그 중 하나죠. 그런데, 고고학자, 언어학자들의 견해로는, 아직 수메르와 관계가 깊다고 볼 수 있는 민족은 없습니다. 그리고, 수메르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계시다면, 수메르 문법책과 수메르 문화서적을 구입해서 보시기바랍니다. 저도 몇 권 사서 보고 있는데, 우리민족과 얼마나 관계가 있는지, 아직 확신은 없네요.

 

흉노족후손님의 글에 약간의 태클을 걸자면, '수메르'를 '소머리'란 뜻으로 쓰셨는데 제가 알기론 수메르란 뜻은 "검은머리" 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초의 경전과 법전 그리고 완벽한 도시건설을 하고 4대문명의 꽃을 피운 수메르문명에 관심이 많아서 그쪽으로 공부를 했었는데 어쩌면 그 해석에 있어서 자위적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와 많이 연관관계가 있습니다.

 

수메르인의 이동에 관해서, 수메르의 본 뜻이 "검은머리" 라는 뜻으로 오리엔트(동양)에서 이동해 온 아주 진보적인 인종입니다. 세계적으로 교착언어를 쓰고 있는 나라는 몽골과 우리나라 그리고 태국지방의 소수민족만이 쓰고 있는데 수메르어가 교착언어의 시초이고 우리나라어와 아주 비슷합니다.
특히 수메르인이 하루 아침에 망하는데, 그 주변 인종을 살펴보면 몽골과 우리나라 신생아에서만 생기는 몽고반점이 그 특징이지요.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고대 고조선의 영토와 고구려의 영토 그리고 신라, 백제의 대륙설이지요. 아직 위서로만 밝혀져 있는 환단고기의 진실성을 파악하면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을 수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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