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외딴집에는 새롬이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흰색 푸들인 뽀미랑 함께 살았습니다.
새롬이네 집 울타리는 봄이면 흰 찔레꽃 울타리가 됩니다. 그리고 여름이면 빨간 산딸기 울타리가 되곤 하지요. 또 마당 한켠에는 진돗개 두산이와 발발이 뽀동이가 살았고요.
새롬이 할머니는요, 집 안팎의 비어있는 자리마다 돌아다니면서 온통 그림을 그려대는 화가이고요, 할아버지는 개인택시를 하십니다.그리고 할아버진 틈만 나면 식구들을 태우고 여행하는 게 취미랍니다.
할머니는 뽀미가 화장실에 쉽게 들어가라고 주로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살지만, 깜박 잊고 닫아놓을 때도 있지요. 그러면 오줌이 마려운 뽀미는 문 앞에 붙어서서 할머니의 눈을 빤히 바라봅니다. 그래요. 눈으로만 말을 하는 뽀미였지요.
“우리 뽀미가 오줌이 마렵구나.”
할머니가 문을 열어주면 뽀미는 화장실로 냉큼 들어가 수챗구멍 근처에서 뱅글뱅글 돌아다닙니다. 자리가 정해지면 한 쪽 다리만 살짝 들고 쉬를 하지요. 오줌이 발에 묻을까봐 그러나봐요. 그러고는 재빨리 뛰어나와 꼬리 잘린 엉덩이를 막 까불랑 거리는데요, 그 때마다 할머니가 닦자! 하면, 금방 엉덩이를 치켜들고 대령하지요.
뽀미는 사람 이불 속에서 자는 것을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할머니가 애견센터에서 사 오셨던 딸기무늬의 예쁜 집은요, 툭하면 왕따를 당한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뽀미는 할머니의 베개까지 슬쩍 차지하고서 넉살좋게 코를 골기도 했습니다.
“아이고오 요년이 또 외박을 하는구나?”
할머니가 뽀미의 머리를 쥐어박는 시늉을 합니다.
“아이구우, 뽀미가 내 베개로구나.”
할머니가 뽀미의 등을 지그시 베고 누워도 뽀미는 자는척 코를 곤답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할 수 없이 다른 베개를 꺼내시지요.
애완견 다이어트 법이 있다지만 새롬이네는 실패했답니다.
뽀미는 사람의 식사시간 때마다 입맛을 다셨는데, 할머니가 즐기는 설탕 안 탄 커피까지도 환장을 하고 덤벼들었지요. 그런데, 할머니는 안돼 안돼 하면서도 요것조것 뽀미가 달라는대로 먹였어요.
아무리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뽀동이가 꼬셔도 마당에는 숫제 나가지 않는 뽀미. 뚱순이라고 막 놀려도 들은 척도 안하는 뽀미.
드디어 뽀미는 운동부족까지 겹쳐 비대증에 걸린 것 같았습니다.
뽀미가 애완견 센터에서 첫 결혼을 했는데요, 할머니는 가끔씩 뽀미의 배를 쓰다듬으며 머리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원래부터 뚱순이라 표도 안 난다.”
밖에는 새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겨우내 방바닥에다 이불을 펼쳐놓은채 살던 할머니는 모처럼만에 방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할머니가 천방지축 이불 위를 뒹구는 뽀미를 밀치며
“이불장에 넣어야지.”
하고는 이불을 개키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뽀미가 재빨리 이불장에 들어가더니 떡 버티고 앉아버리는 거였습니다. 할머니는 얼떨떨해서 한참이나 뽀미를 들여다보았지요.
“할머니, 뽀미가 이불장을 자기 집 할라고 그래.”
새롬이가 뽀미의 말을 전했습니다.
“문이 닫혔다간 숨이 막히겠네... ”
할머니는 이불을 도로 펼치고는 이불장 문 사이에 종이를 끼워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맹랑한 뽀미의 눈치를 살폈지요.
“너를 넣는다는 게 아니었어. 이불을 넣는다는 거였지.”
할머니는 아차, 하고 놀라며 새롬이를 보았습니다.
“새롬아, 뽀미가 조기서 아길 낳을라나 보다.”
새롬이가 아기? 아이 좋아, 하고 손뼉을 쳤습니다.
“그런데, 이불장에다 낳는 건 너무해.”
할머니는 이불을 방바닥에 펼쳐놓고 살기는 하지만 가끔씩 가구들의 위치를 요리조리 바꾸는 변덕을 부리곤 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원래는 아래가 반닫이 옷장이고 위가 이불장이었던 이층 장이 말이죠, 어느 날 갑자기 옆으로 나란히 방바닥에 내려앉은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불장이 뽀미의 산실로 둔갑하게 되었는데요. 그 운명을 깨달은 할머니는 뽀미의 자리를 봐 주려고 이불장에 손을 집어넣었지요. 하지만 할머니는 금세 악!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흰자위가 보이도록 눈을 치뜨며 쌕쌕거린다싶던 뽀미가 이빨로 할머니의 손가락을 덮친 거였습니다.
할머니의 손가락에선 대번에 피가 흘렀지요.
“요년! 어디 두고 보자!”
하지만 뽀미는 할머니의 말이 진심이 아니란 걸 빤히 알고있는 눈치였습니다. 뽀미는 깜장구슬같은 눈망울로 할머니의 상처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새롬이가 뽀미의 마음을 할머니에게 전달했습니다. ‘여기서 아기 낳을 거니까, 아무도 오지 마세요. 다쳐!’
“알았다, 알았어.”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뽀미가 새끼 낳으려나 봐요. 모두 나가라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새롬이를 데리고 집을 비운 사이에 뽀미는 혼자서 다섯 마리나 되는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다섯 중에 네 마리는 영락없는 뽀동이었습니다.
“언제 바람을 피웠구나?”
할머니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혀를 끌끌 찼지요. 그리고는 뽀동이에게 야단을 쳤습니다. “요놈의 바람둥이!”
할머니는 결국 이를 악물었습니다.
“발발이를 방에서 키울 수는 없지.”
“방안까지 개판으로 만들 수는 없다.”
할머니는 결국, 뽀미가 화장실 간 틈에 아가들을 한꺼번에 싸안았습니다. 그리고 마당 한켠으로 이사를 시켰어요. 뽀미는 자기 아가들을 어쩔까봐 허겁지겁 새 집으로 따라왔지요. 물론 멋진 울타리를 친 꽤 널따란 독채였습니다.
할머니는 가슴이 쓰리다고 하시면서 뽀미의 까만 눈동자를 슬금슬금 피해다녔습니다. 새롬이도 날마다 뽀미네 별채를 들여다보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뽀미는 오직 아가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비바람도 천둥소리도, 번갯불도, 모두 견뎌냈지요. 끽소리없이 젖을 먹이고 똥오줌을 핥아먹고, 아가들의 몸 구석구석을 혓바닥으로 닦아주며 외로움을 달랬지요. 그러다가 뽀미는요, 아가들이 생후 한 달이 다 되어 갈 때에야 비로소 슬픈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툭하면 울타리를 부여잡고 낑낑거리면서 사람 사는 집으로 들여 달라고 애원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뽀미는 참 여행도 많이 했습니다.
자동차가 국도를 달릴때에는요, 세상 구경 하느라 머리를 밖으로 내어놓고 코를 벌름벌름 하면서 쉭 쉭 지나가는 바람에 곱슬머리를 휘날렸고요. 고속도로에선 어김없이 잠을 청했고요. 그러다 휴게소가 가까워지면요. ‘휴게소구나. 화장실 가야지.’ 하고 머리를 반짝 들고서 코를 벌름거렸답니다.
뽀미는 화장실을 찾아서 쌩하니 달려갑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휴게소 화장실 바닥에선 볼일을 못 보는 뽀미.
“오줌 눠!”
할머니가 지시하는 화장실 바닥은 언제나 반질반질 깨끗하기만 하였습니다. 사실, 화장실이 아니라 거실로 여겨질 판이었거든요. 뽀미는 혼동과 고민에 휩싸여 머리를 갸웃거리기 일쑤였습니다. 뽀미는 할머니의 품에서 내리자마자 이리 쪼르르 저리 쪼르르 귀를 팔랑이며 내닫습니다. 그러다가 끝내 화장실 바로 문앞에 타일이 끝나고 모래가적당히 버무려진 시멘트 바닥에다 실례를 하지요. 그것을 본 할머니는 늘 그렇게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노상 방뇨의 기준이 어디만큼인지 모르겠어, 정말.”
“엄연한 화장실을 마다하고 노상 방뇨를 해버려?”
가정집 화장실은 분명 사람 변기가 따로 있는 그 주변에 누게 되어 있는데, 휴게실 화장실은 그게 아니거든요. 뽀미는 그랬어요.
‘그런데요, 타고난 질서의식을 가진 푸들 체면에, 어떻게 사람을 따라 들어가 사람 변기에다 실례를 할 수가 있겠어요? 게다가, 제각금 거울을 보며 치장만 하는 이런 곳에서,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해도, 어떻게 그 멀쩡한 수챗 구멍에다 실례를 한단 말이에요?’
뽀미는 세 번째 출산을 했습니다.
10월 9일 한글날이었지요.
이번에도 뚱순이라 새끼를 못 낳을 거라고 주장하던 애견센터 전문가의 예언을 뒤엎고요, 암놈만 네 마리 낳았던 겁니다.
다행히 모두 하얀 푸들 순종이었죠.
경험 있던 산모는 새끼를 적당히 숨겨 놓고 할머니에게 목욕을 청했습니다. 깨끗이 해야 바깥의 별채로 쫓겨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요.
“삼칠일 안에 목욕을 하면 뼈에 바람이 들어 간단다.”
그래도 뽀미가 막무가네로 대야에 몸을 담그는 바람에요, 할머니는 하는 수 없이 뽀미에게 지고 말았답니다.
“서양에선 출산 후에 샤워도 한대. 뽀미도 서양개니까 괜찮겠지?”
뽀미는 목욕을 출산 일주일만에 한 번, 또 일주일만에 한 번 더 했습니다. 그런데, 뽀미는 두 번째 목욕을 한 다음 날에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새하얀 곱슬머리 사이로 새까만 눈망울을 굴려 아가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고 핥아주고 하더니 잠깐 새 숨을 놓아 버린 것이었지요. 출산 보름만이었어요.
할아버지는 뽀미를 대추나무 밑에 묻으면서 말했습니다.
“이담엔 사람으로 태어나거라.”
새롬이는 뽀미 무덤 앞에 퍼질고 앉은 채 울음을 그치질 못했습니다. 할머니도 줄줄이 눈물을 흘리면서 자꾸만 중얼거렸습니다.
“삼칠일 안에 목욕을 시켜서일까... 다산을 해서일까... 비대하면 빨리 죽는다더니 그래서일까.... 간염이었을까... 당뇨였을까.... 제 죽을 날을 예감하고 그리도 몸을 깨끗이 했을까? 천사처럼 깨끗하게 단장하고 죽다니... 뽀미야... 죽을 준비는 그렇게 하는 거냐?”
새롬이 할머니는 별안간에 네 딸들의 유모가 되었습니다. 부랴부랴 분유와 젖병을 구입하여 뽀미 새끼들을 밤낮으로 보살폈지요.
할머니의 정성으로 일랑이, 두랑이. 세랑이, 그리고 사랑이는 모두 건강하게 자라났습니다.
“세랑이가 제일 닮았네. 얼굴 생김새랑, 얌전 떠는 거랑, 싫고 좋은 걸 분명히 표시하는 거랑 또 영리함이랑... 쏙 빼닮았네.”
그렇지만 세랑이는 어미와 정 반대인 점이 딱 한 가지 있었습니다.넷 중에서 몸집이 제일 작았던 것이지요.
할머니는 가엾을 만큼 작은 세랑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하늘나라로 간 뽀미에게 말했습니다.
“뚱순이란 별명이 그토록 싫었니?”
새롬이가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는 뽀미의 소망을 할머니에게 전달했습니다.
“예, 할머니. 세랑이를 예쁘게 키워주세요. 절대로 뚱순이는 만들지 말고요.”
그 후, 할머니는 일랑이, 두랑이, 사랑이는 전부 시집 보내고 세랑이만 데리고 살았는데요, 세랑이는 제 엄마를 쏙 빼 닮았기는 했지만 언제나 앙징스런 몸매를 유지했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언제부턴가 세랑이를 그렇게 불렀지요.
“뽀미야-”
월간문학 제 93회 신인문학작품상 동화부문 당선작 (2001년 3월호)
-당선 소감-
주 영 숙
저는 그림을 직업으로 삼았으며 전통공예가이기도 하며 소설책도 시집도 몇 권씩이나 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 재주를 지닌 사람은 궁핍하기 마련이라거나 한 가지도 제대로 해내지를 못한다는 그럴싸한 유언비어, 그 터무니없는 고정관념 탓에 엉뚱하게도 스트레스를 받아왔습니다. 해서 저는, 그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결코 무시 못할 세월을 아둥바둥 소비하였을 뿐만 아니라, 종내는 지천명의 나이로 대학에 입문하게까지 되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저는, 내가 절차탁마의 노력이 요구되는 문학의 길에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확연한 현실을 알아챘고, 내 문학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이던가 하고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대책없음과 주책없음이 벽에 부딪쳐 동화에조차 손을 뻗치게 된 것입니다. 지난 1월 8일, SBS월화드라마 <여인천하>에 들어가는 병풍그림들을 끝낸 감격의 순간을 월간문학에 동화를 투고 하는 것으로 여미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2월8일 오늘, 그림을 그릴 부채를 구하러 담양에 가 있는 중에 느닷없이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똑똑한 세랑이가 빨리 전화 받으라고 공공 짖어댔고, 저는 알았다 알았어! 하며 부랴부랴 여행중의 첫 전화, 당선 통지를 받았지요.
부끄럽군요.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담백한 思考를 해야만이 동화를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상식쯤은 일찍이 간파하고 있던 터라, 세상 때가 덕지덕지 묻었기 짝이 없을 저는 원고를 보내놓고도 설마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선이라니, 불쑥, 2001 辛巳년의 내 운수가 탁 틔었나보다 하는 주제넘은 예감이 드는군요.
지난 학기에 “동화는 안 쓰요?”라고 지나가는 말인양 슬쩍 저를 부추기신 이문구 교수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아동문학의 세계>를 수강하기에 앞서 이 부문 ‘신인상’부터 안겨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께 참으로 감사 드리오며, 과분하기 이를데없는 두 분 격려에 힘입은 김에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실한 열매를 맺어보리라 다짐합니다.
첫댓글 돌메이님, 고맙습니다.
아 옛날이여!
참 좋네요. 읽는 것만 으로도
난정 아씨, 이미 지나간 잔치자리였지만, 축하드립니다. 항상 노력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난정 아씨, 화이팅!
^<>^*
아! 동화도 당선되셨군요. 동화는 아름답고 착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천사가 아니면 못하는데 난전님은 천사로군요. 주영숙천사, 라틴어로 제일 높은 천사 하나붙이지요. 가브리엘 천사!주 가브리엘 천사님 건필하세요. 아직 살아있는 날이 많아요.
히히히...... 가브리엘 천사... 황송하옵니다요. 천사가 추락하면 추락하는 겟에는 날개가 있으니.. 괜찮을까유? 안드레아님^&^*
내가 받아서 안아 줄께요.
아유, 그럼 얼릉 떨어져야겠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