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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제3공화국
이계삼
17대 총선이 끝나고 당선자가 발표되었을 때, '결국 박씨 성을 가진 그 분에게 표심이 녹아났구나', 싶었다. 그 분의 존재로 인해 우리는 살아생전에 '친박연대'라는 기막힌 이름을 가진 정당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친박연대로부터 전화 받고, 특별당비 내고, 비례대표 1번 받아서 곧장 당선되는, 아직도 뭐하는 사람인지 잘 파악이 안 되는 국회의원의 탄생도 지켜볼 수 있었다. 어쨌든 다들 아름다운 일이었고, 이게 다 그 분의 힘이었다.
그 분은 우리 정치사에서 선거에서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승률을 이끌어낸 승부사로 기록될 것이다. 4년 전 탄핵 역풍을 맞고 초토화된 한나라당의 어린 양들을 이끌고 '천막 당사'에서부터 와신상담 재기해서는 결국 120여개의 의석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그 분이었다. 지난 2006년 지방 선거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던 그 분이 깨어나면서 "대전은요?"라고 물었다던 그 순간, 유일하게 경합을 벌이던 대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나라당의 품으로 넘어왔다는 것은 그냥 전설로 묻어 두자.
어머니의 스타일을 물려받았다는 머리 모양과 화사한 웃음, 100개 단어 내외의 기초 어휘를 좀처럼 넘기지 않는 쉬운 언어구사, 초등학교 시절 모범생 여자 반장의 발표를 떠올리게 하는 또박또박한 말투, 노회한 남성 정치인들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결기와 기백, 거기에 근대화의 영욕을 이끈 부친의 후광까지, 그 분은 이 땅에서 성공한 정치인이 될 수 있는 모든 자질을 갖추고 있다.
이번 총선에도 그 분의 역량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저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습니다." 이 기막힌 한 마디에 쟁점 없이 비척대던 선거판은 깔끔한 구도를 찾았다. 강부자도, 영어 몰입교육도, 한반도 대운하도 거기에 묻혀버렸다.
그런데, 그 분만 이번 총선을 이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골 사는 나는 잘 몰랐는데, 한나라당이 서울의 48개 선거구에서 40곳을 싹쓸이하게 만든 데는 그 분의 존재 말고도 '뉴타운'이 있었던 것이다.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의 선거운동기를 담은 KBS 스페셜 <어떤 패배>편을 보면서 제일 마음 아팠던 부분은, 상계동의 가난한 산동네에서 장애인 아들과 함께 산다는 한 할머니가 나물인가를 다듬으며 인터뷰하는 장면이었다. 정치는 아무것도 모르고, 박근혜라는 이름 정도 안다는 그 할머니가 그 추레한 마을 골목길에서 "그래도 (뉴타운) 되면 좀 나아지겠지요"라고 느릿느릿 말하는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뉴타운 만들어지면 장애인 아들과 함께 당장 쫓겨날 한 세입자 할머니의 가난한 소망까지 지배하는, 근원도 정체도 가늠할 수 없는 이 경제 동물들의 광기가 무섭다. 정말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뉴타운'을 우리말로 옮기니 '새마을'이 된다. 박씨 성을 가진 그 분, 뉴타운, 그리고 중동 건설현장 출신의, 콘크리트와 삽질을 좋아하시는 우리 대통령, 바야흐로 이 땅은 3공화국으로 되돌아가 있다.
그래도 긴급조치는 없지 않냐고? 한반도 대운하는 우리 생태계에 선포된 긴급조치다. 특목고, 자사고, 일제고사, 영어 몰입교육은 아이들에게 선포된 긴급조치. 얼마 전에는 기획재정부 장관 강만수라는 분이 농업에 긴급조치를 선포했다. 그 분은 경제 관계 장관회의라는 데서 "이제 농업이란 말은 쓰지 말자."고 일갈하셨다 한다.
식량자급률이 30%도 안 되는 나라에서, 식량 공황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세상에서 국민의 생존권을 담보로 이렇게 겁도 없이 말할 수 있는 배포는 쿠데타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관동군 출신 국군 장교들을 닮아 있다. 바야흐로 제3공화국의 귀환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전교조신문 2008.4.21)
*** 녹색평론전국독자모임 카페에서 퍼옮겼습니다.
아래 글은 위 글에 달린 어떤 네티즌의 대글입니다.
금연못각: 밀양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이계삼선생의 글을 제가 참 좋아하지요. ...이 글에서 정치인 박근혜씨 부분은 모두 알고 느끼고 있는 일인데, 정말 까무라칠 일은 강만수라는 정승이 했다는 말, "이제 농업이란 말은 쓰지 말자", 대목입니다. 듣기로 근래 곡물 국제시장의 곡물값이 그 어느 때보다 올라 있다고 그러지요. 현재 지구촌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총량은 약 17-18억톤이라고 합니다. 그 중 2억톤 가량이 시장에 나오는데, 일본이 가장 큰 수입국, 우리나라는 2위라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곡물을 내다팔던 중국이 지금은 막대한 양의 곡물을 수입하는 나라로 변해버렸다지요. 어쨌거나 현재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곡물수입을 하는 우리나라는 매년 1,500만톤 이상의 곡물을 수입해 먹고 사는데, 세계식량회의에서 권하는 곡물비축량은 최소 60일이라고 합니다. 비축량이야 잘 모르지만, 문제는 언제까지 미국,캐나다, 호주, 방콕 등의 곡물생산지에서 일정량의 곡물을 생산해 내다팔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 곡물들이 먼 곳에서 우리 식탁까지 오면서 뿌려질 방부제,농약문제는 차라리 뒷일입니다....그 국제시장의 수급이 만약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 -[04/16-10:37:2609]-
금연못각: 면 우리는 가만히 앉아 굶게 됩니다. 흔한 말로 강만수장관 같은 이들이야 반도체 팔아 먹을 것 사오면 된다, 하는 철부지 같은 소리를 하고 있지만, 반도체 할애비로도 먹을 것을 못 사올 지경이 될 수가 있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굶게 됩니다. 국민소득 3만달러, 4만달러도 말짱 헛것이 되게 됩니다.그런데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국제시장의 곡물값이 오르고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도 이런 사태에 대해 사람들은 두려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식량자급율은 30% 이하, 우리 경작지는 매년 2% 이상씩 감소되고 있고, 강만수 같은 이들에 의해 농업은 죽어가고 있고, 급기야 <농업>이라는 말 자체도 입에 올리지 말자는 망발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실로 심각한 일은 제3공화국의 망령이 건재하다는 증거로서의 정치인 <박근혜현상> 따위가 아니라, 먹지 않고는 살 도리가 없는 인간조건으로서의 식량문제이고, 그런 일에 무관심한 강만수장관 같은 이들로 구성된 이명박정부이고, 이 정권의 부정의하고 한심스러운 각료들입니다. 물론 농업을 죽이기로 작정한 것이 이명박정부가 시초는 아니긴 하지만서도요. -[04/16-10:41:4736]-
첫댓글 눈 앞에 내 이익이 된다싶으면 팍팍 밀어주고.. 그 힘 믿고 어제 했던 얘긴 나몰라라..그들에게 최근 곡물값 폭등땜시 죽어나는 사람은 강건너 불이고, 금수강산이 검은 연기로 뒤덮이길 원했던 과거 지도자나, 농업국이 농업을 안하고 반도체로 밥을 먹겠다는 작금의 지도자나.. 한 치 앞을 못보는 붕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