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년년(世世年年) / 진방남
지금 흘러나오는 세세년년(世世年年)은
1930년 년대 말 "눈물의 백년화"라는 제목으로 백년설에 의해 불리어진 노래다.
당시 일제에 의해 금지 당하자 1940년 관계자들이 노래의 내용과 제목을 바꾸고
작사자 박영호는 예명인 불사조로 이재호는 예명인 무적인으로 편곡을 하여
작사가 반야월이 가수로 활동하고 있을때 예명인 진방남으로 불러 "세세년년(世世年年)"은 크게 히트하였었다.
가사에 나오는 "산홍은" 진주의 기생으로 기녀라는 하찮은 신분이었지만 논개의 절의를 계승한다는 자존심이 강한 절개 곧은 기생이었는데 그녀는 미모와 기예를 고루 갖추어 활량들에게 많은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을사오적중 한명인 이지용이 천금을 가지고 와서 첩으로 삼고자 간청 하였으나
자기가 비록 천한 기녀이긴 하지만 왜 역적의 첩이 되겠냐며 거절하고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하고 말았다 한다.
산홍의 시(詩)는 진주 의기사(義妓祠)에 걸려 있으며 의기사 아래 벼랑에는 이름이 깊이 새겨져 있는 유일한 여성이다.
세세년년은 이러한 의기(義妓) 산홍에 대한 의로움과 그리움을 주제로 표현한 것이다.
진방남(秦芳男) = 반야월(半夜月)
진방남이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과 반야월이라는 이름으로 작사 활동을 한 노래와 작사를 병행한 작사 가수다.
그는 1917년에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박창오(朴昌吾)이다.
어린 시절에는 집안이 넉넉했으나 곧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다.
1939년 태평레코드에서 주최한 콩쿠르에 당선되어 진방남이라는 이름으로 가수 데뷔를
해“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등 인기곡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1942년부터는 반야월이라는 이름으로 작사 활동도 했는데 직접 부른 「꽃마차」가 첫 번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광복 이후에는 남대문악극단을 운영했고 마산방송국 문예부장을 맡기도 했다.
1950년대 중반까지 가수로서 신곡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작사 활동에 주력했다.
대한레코드작가협회 이사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 등 다양한 단체 활동을 통해
대중가요계의 정체성 확립과 권익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1980년대까지도 현역 작사가로 많은 인기곡을 발표했고 1990년대 이후 대중가요계의 대표적인 원로로 부각되었다.
2010년에는 1940년대 일제군국가요 관련 활동을 공식 사과하는 입장을 밝혔으며 2012년에 노환으로 타계했다.
출처 : http://blog.daum.net/nationsky/1429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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