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힘] 1부 힘든 시절 ⑧‘아침마당’ 생방송을 촬영하며
난생 처음 수면제 처방을 받다
셔터스톡
이런 상태가 보름, 한 달째 이어지면서 육체적인 이상 징후가 뚜렷이 나타났다. 우선 자율신경 조절이 잘 안 됐다. 아직 쌀쌀한 3월말인데도 나는 땀을 뻘뻘 흘렸다.
식사할 때나 길거리를 걸어갈 때나 쉴 새 없이 땀이 흘러나왔다. 손수건이 금세 흥건히 젖었고 주위 사람은 그런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맥박은 왜 그리 빨리 뛰는지.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고 한밤중에도 맥박이 벌떡벌떡 뛰었다.
간헐적으로 마음이 아픈 현상이 잦아졌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마음이 맹렬히 아프면서 순식간에 파김치가 되곤 했다. 주말에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등산을 가도 등산로 초입에서부터 맹렬하게 마음이 아파 아예 올라가지도 못하고 돌아오곤 했다.
그 와중에 TV 생방송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K-TV에 나가 우리나라 한류 현상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평이 좋아 KBS-2TV ‘아침마당’에서 1시간 특강을 맡았다.
시청률이 보통 5퍼센트 이상 나오는 인기 프로였다. 날짜가 다가오면서 걱정이 커졌다. 평소 같으면 1시간짜리 생방송이라도 별로 겁을 내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한 달 가까이 불면증이 계속되면서 머리가 쉬지 못해 모든 게 정상이 아니었다. 혹시 중간에 내용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주저하다가 결국 동네 정신과 병원을 찾아가 수면제 처방을 받았다. 수면제를 직접 산 것은 처음이었다. 약을 먹었더니 잠이 쏟아졌다. 오랜만에 잠을 잤으나 아침에 일어나니 골이 아팠다.
애초 일주일 치 분량을 받아왔으나 이틀 정도 먹고 더 먹지 않았다. 약을 안 먹으니 역시 잠도 오지 않았다.
드디어 방송 당일이 됐다. 전날 밤 수면제를 반 알 먹고 간신히 2~3시간 눈을 붙였다. 새벽에 일어나 아파트 근처 학교 운동장을 뛰었다.
아침 8시, 그다지 맑지 않은 정신으로 분장을 마치고 방송 대기 상태에 돌입했다. 마음은 한없이 무력한데 전국의 시청자를 상대로 아주 활기찬 모습으로 1시간가량 혼자 말을 해야 했다. 혹시 돌발 상황이라도 벌어지면 어떡하나. 온갖 걱정이 엄습했다.
방송 시작 사인이 들어왔다. 나는 밝게 웃으면서 텔레비전 카메라 앞 무대로 나아갔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어떻게 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와중에 기타도 치고 노래도 했다. 마치고 난 뒤 주변의 평은 나쁘지 않았다.
시청률도 6퍼센트 이상 나와 선방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아무도 내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활기차게 활동하던 유명 인사들이 우울증에 걸려 어느 날 갑자기 자살했다거나 활동을 중단했다는 보도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란 존재는 마음이 매우 힘들어도 외견상 다른 사람에게 멀쩡하게 보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위 사람은 마음의 병이 걸린 사람의 상태를 외견상 잘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다 며칠 뒤 공황발작이 일어났다. <계속>
남산 작가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