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못하는 징
이순희
그는 쉽게 울지 못한다
울음이 목 너머까지 차 올라와도
속으로만 삼킬 뿐
저 잘 났다 피 튀기는 세상이다
울음은 값싼 것
눈물 따윈 용납되지 않는다
복어가 이 악물고 배 부풀리듯
눈 부라려야 살아남는다
심금을 울린다는 말
오래전에 폐기 처분되었다
울음마저 잃은 사람들이
차 안에서 번개탄 피우고
나무에 밧줄을 걸었다
밤마다 그도
내면의 골짜기에서는
혼자 숨죽여 운다
눈물을 마중물로
세상 곳곳
징, 징, 징 울음바다가 되는 날은
언제나 오려나
소리내 울지 못하는 그가
오랜 기다림으로 녹슬어 가고 있는데
그 울음보 한방에 터트릴 이
아무도 없소?
--이순희 시집 {그래그래}에서
백수의 왕인 호랑이를 만났을 때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정면으로 맞서면 살아남을 수가 있지만, 등을 보이고 달아나면 단번에 목덜미를 잡히고 물려 죽는다. 등을 보이면 싸움도 하기 전에 백기투항을 하는 것이고, 이것은 소싸움이나 프로복싱에서도 똑같이 적용을 받는다.
강한 자는 큰소리로 웃고, 약한 자는 통곡을 하며 운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잃은 엄마의 울음 소리가 그렇고, 그 옛날 새끼소를 잃고 밤새도록 울던 어미소가 그것을 말해준다. 이 세상의 삶이 어렵고 힘들 때 우리는 누구나 다같이 사회적 약자이며, 친구나 이웃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 옛날은 집집마다 대문이 열려 있었고, 상호적인 공동체 의지와 결속 형태로 묶여 있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공동체 사회와 가족의 관계가 다 파괴되고 개, 개인으로서만 존재한다.
“저 잘 났다 피 튀기는 세상이” 된 것이고, “울음은 값싼 것”이고, “눈물 따위는 용납되지를 않는다.” “복어가 이 악물고 배 부풀리듯”이 “눈 부라려야 살아남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자본주의 사회는 ‘이권 경쟁’으로 골육상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 조상 대대로의 선산과 가문의 유산을 두고 골육상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고, 스마트폰과 휴먼 로봇과 인공지능 등, 수많은 신상품들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모든 구성원들이 지적 재산권과 특허권과 상표권을 두고 사생결단식의 소송전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싸움은 ‘만인 대 만인의 싸움’이고, 그 싸움의 진행 방식은 사법절차에 따른 소송전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쉽게 울지도 못한다.” “울음이 목 너머까지 차 올라와도/ 속으로만 삼”키고, 이를 북북 갈며 무관용과 무자비의 원칙으로 독을 키운다. “심금을 울린다는 말/ 오래전에 폐기 처분되었”고, “울음마저 잃은 사람들이” 타인들의 자비와 선처를 호소하기 보다는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나무에 밧줄을 걸”고 이 세상을 떠나간다.
부모형제와 친족의 관계도 사라졌고, 친구와 친구, 이웃과 이웃의 관계도 사라졌다. 조국과 시민의 관계도 사라졌고, 자비와 사랑의 관계마저도 사라졌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독 묻은 관계이며, ‘너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적대적 관계’이다.
하지만,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풍요의 사회이며, 억만 장자와 조만 장자의 미덕과 행복이 밤하늘의 별들처럼 반짝이는 사회이지만,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나는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억만 장자와 조만 장자 역시도 밤마다 “내면의 골짜기에서는/ 혼자 숨죽여 운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도 사회적 동물로서는 더없이 나약하고, 끝끝내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요양원과 요양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울지 못하는 징]은 징이 아니고,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도 없다. 울음마저 잃은 사람들이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우거나 나무에 밧줄을 걸기보다는 그 “혼자 숨죽여” 우는 “눈물을 마중물로/ 세상 곳곳/ 징, 징, 징 울음바다가 되는 날”을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우는 동물이며, 그 울음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를 믿고 사랑하며 자기 자신의 행복과 공동체의 행복을 창출해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순희 시인의 [울지 못하는 징]은 오늘날 우리 인간들의 초상이고, 하루바삐 ‘만인 대 만인의 싸움’을 멈추고 ‘징, 징, 징,’ 인간 해방과 인간 사랑의 울음보를 터뜨렸으면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 철학으로 무장을 하고 제일급의 시인으로서의 이순희 시인이 우리 인간들에게 너무나도 간절하게 호소하는 ‘그래그래의 철학’인 것이다.
시집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