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의 발명】
1846년 9월 10일, 견습 기계공이었던 일라이어스 하우는 박음질 방식을 활용한 기계식 재봉틀로 미국에서 처음 특허를 받았다.
하우의 발명품에는 오늘날까지도 모든 재봉틀이 갖고 있는
세 가지의 중요한 특징이 있다.
실 자동 공급 장치, 박음질을 하는 직물 뒤쪽의 직조기 북, 바늘귀가 달린 바늘
하우의 가족은 그가 꿈을 꾸다가 이 재봉틀을 생각해 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작업장으로 달려가 설계도를 휘갈겨 그렸고, 이렇게 해서 기계식 재봉틀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우는 이 기계를 제작하기 위한 자금을 끌어오지 못했고, 1847년에는 영국으로 가 250파운드에 설계도를 팔아넘겼다.
하우는 무일푼에 불행한 마음으로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집에서는 아내가 심한 병에 걸려 있었고 그가 도착하자마자 얼마 안 되어 숨을 거두었다.
여기에 더해 하우는 아이작 싱어라는 사람이 자신의 설계도를 그대로 베껴서 만든 ‘싱어 재봉틀’로 큰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우는 법적인 대응에 들어갔고, 그동안 생각했던 다른 발명 아이디어를 진척시켰다.
그중 하나가 자동 반복 옷감 마감 장치였는데 이것으로 하우는 1851년에 특허를 받았다.
나중에 지퍼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 장치를 발명하기는 했지만 하우는 싱어와의 법적 공방에 정신을 뺏겨 더 개선하거나 시장에 판매하려는 노력은 거의 기울이지 못했다.
1854년이 돼서야 하루는 싱어와의 재판에서 승리했고 상당한 로열티를 받기 시작했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에 자신의 재산 상당액을 쏟아 부었지만 일라이어스 하우는 1868년 큰 부호가 되어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의 자동 반복 옷감 마감 장치는 손을 대지 않고 버려둔 채였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재건이 시작될 무렵 미국인들은 단추가 높이 달린 긴 부츠나 고무 부츠를 신고 다녔는데, 시가지에서조차 발목까지 진흙과 말똥이 차올라 조심조심 걸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1893년 미국의 발명가 휘트컨 L. 저드슨은 하우의 원래 디자인을 변형해 더 쉽게 길쭉한 부츠를 신고 벗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몸이 뚱뚱했던 저드슨은 매일 몸을 구부려 부츠의 단추를 채웠다 잠그는 고역에 시달린 끝에 쉽게 벗는 장치를 고안했고, ‘잠금 로커’라고 이름을 붙인 후 회사를 차려 이 상품을 판매했다.
이 장치는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에서 부츠 잠금장치로 처음 선을 보였지만 판매 성적은 저조했다.
당시 부츠 제조업자들은 신발끈과 단추를 이용하는 값싼 제작 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드슨은 자신의 새로운 장치의 효용성을 확신했다.
1906년 그는 스웨덴의 전기 기술자 기디언 선드백을 고용했다.
선드백은 잠금 로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디자인을 개선해 1914년에는 더 새로워진 ‘분리잠금장치’에 대해 특허를 받았다.
저드슨은 이제 성공을 확신했지만 이 발명품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 1923년이 되어서야 나중에 세계적인 고무타이어 회사로 성장한 굿리치 회사가 잠금 로커를 그들의 새로운 부츠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회사의 마케팅팀은 ‘지퍼 부츠’라는 새롭고 현대적인 용어를 고안했고, 1925년에는 ‘지퍼’를 상표로 등록했다.
이후 10년 동안 지퍼는 고무 부츠나 방수 가능한 담배 주머니에만 쓰이다가, 어린이들이 옷을 쉽게 입을 수 있도록 지퍼를 사용한 새로운 아동복에 처음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1937년에는 프랑스의 몇몇 패션 디자이너와 잡지들이 남성 바지와 재킷에 지퍼를 도입했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일리이어스 하우의 발명품이 나온 뒤 1세기를 꽉 채운 시점이 되어서야 지퍼는 신기한 물건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히 쓰이는 잠금장치로 변신해 해마다 엄청난 수가 생산되고 있다.-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