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테렌스 힐을 아십니까. 혹은 기억하십니까.
헨리 폰다라는 대형배우가 있었지요. 딸도 아들도 꽤 알려진 배우였고. 캐서린 헵번과 노부부로 출연했던 <황금 연못>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이 냥반이 늘그막에 돈이 좀 필요했던지, 새카만 후배와 영화 한 편 찍었지요. 그 영화의 시작 부분입니다.
이발소 안입니다. 헨리 폰다가 얼굴에 거품을 잔뜩 바른 채 면도를 받는 중이었습니다. 칼질하는 남자의 인상이 엄청 비호감입니다. 뺨과 턱 부분의 면도를 마치고 목으로 내려왔습니다. 갑자기 긴장감이 흐르더니 이발사의 표정에 살기가 돕니다. 손과 칼과 목젖이 클로즈업 됩니다. 효과음악도 분위기를 살립니다. 면도칼의 자세가 수염깎기에서 멱따기 자세로 전환하는 순간, 아, 헨리 폰다가 누굽니까. 존 웨인과 더불어 서부활극의 대명사 아닙니까. 어느 새 그의 총이 가짜 이발사의 가랭이 아래쪽, 그러니까 다소 노골적이나 훨씬 알아듣기 쉽게, 똥창을 파고들어 있었습니다. 가짜 이발사는 똥 씹은 얼굴로 진땀을 흘립니다.
첫 작업이 실패할 것에 대비해서 한패들이 대기하고 있었지요. 옆에서 이발하던 놈, 손님인 척 기다리던 놈, 밖에서 엿보던 놈, 놈놈놈들이 한꺼번에 덮쳤습니다. 그래봤자 아, 헨리 폰다가 누굽니까. 주인공 아닙니까. 총성이 울리고 화면이 몇 번 번쩍번쩍 하더니 달려들던 악당들이 느린 동작으로 이놈은 이런 폼으로 저놈은 저런 폼으로 나뒹굴고 내동댕이쳐집니다. 아, 헨리 폰다가 암만 여러 놈을 상대해도 총알 낭비하는 것 봤습니까. 그저 한 방에 한 놈이지요.
순식간에 대여섯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어 놓고 무표정하게 이발소 문을 나서는 헨리 폰다. 골방에 갇혀 이를 바라보던 어린 아들이 얼빠진 그러면서도 존경이 그득한 표정으로 옆에 있는 진짜 이발사에게 묻습니다.
“저 사람보다 빠른 사람이 있을까요?”
잠시 가게를 내줬던 선량한 이발사가 역시 넋이 반쯤 나간 그러면서도 찬탄 어린 표정을 지으며 단언합니다.
“아무도 없어! (Nobody!)
그러더니, 바로 뚜둥~ 하고 장면이 바뀝니다. 마카로니 웨스턴스러운 음악과 함께 제목이 나옵니다
MY NAME IS NOBODY
사실 당시 저는 이 장면에서 제목 참 절묘하다고 가볍게 감탄을 토했습니다. 화면에 같이 나온 우리말 제목은 <무숙자(無宿者)>였습니다. 그리고 날건달 모습의 테렌스 힐이 멀리서 말을 타고 나타납니다. 그려? 니가 기여? 하지만 “내 이름은 노바디”라고 제목을 붙인 탓이었는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의 이름이 한번도 불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겨울하늘에 백설 난분분하듯 온 사방에 노바디 입니다. 매스컴에서는 이 ‘노바디’가 2008년 키워드의 하나랍니다. 아닌게아니라 망아지만한 딸년이 요즘 거실에서 “노바디 노바디 밧 츄”하면서 깨금발에 쌍권총 겨누는 자세를 짓는 걸 보면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테렌스 힐이 기억 나십니까. 눈이 보석처럼 새파랬던.
그가 바로 삼십여년 전 한 시즌쯤 방방 떴던 원조 노바디였습니다.
한 말씀 더. 영화를 못 보아 혹시 궁금해할 친구들을 위해 긴 사족 답니다.
당대 제일의 총잡이 헨리 폰다는 테렌스 힐의 존경의 대상이자 최고가 되기 위해 뛰어넘어야 할 상대. 더 빠른 사람이 있을까요? 아무도 없어. 노바디. 근데 내가 바로 노바디라며 나타났으니 결국 한판 붙어야겠지요. 테렌스 힐은 헨리 폰다를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하지만 역시 짐작대로 막판에 진총승부. 이런 목숨을 건 대결에도 최고를 이기는 장면을 남기려고 이 쌩양아치는 사진사까지 동원하는 만용을 부리나 어쨌든 상대를 쓰러뜨립니다. 이 걸로 끝? 아니죠. 그렇게 쉽게 죽으면 안되죠. 할리우드답게 반전이 있죠. “강호에 있어봐야 복수하려는 놈, 최고를 이기겠다는 놈, 개, 소 모두 찾아와서 목숨 달라고 할 테니 얼마나 귀찮겠으셔. 차라리 나랑 대결에서 져서 죽을 걸로 하고 외진데 쳐박혀 국으로 조용히 여생 보내셔” 대충 이런 내용의 편지를 읽고, ‘고맙다. 하지만 이제부터 네가 괴롭겠구나’라는 표정의 헨리 폰다… 마카로니 치고 美談性 마카로니라고나 할까요. <그들은 나를 튜니티라 부른다(They call me Tunity)>의 후속타로 나왔을 겁니다. 근데 이런 영화들은 따지며 재며 보면 안되는 거 알지요?
첫댓글 잘은 모르지만 좀 알것같아
난 둘 다 봤지. 글을 읽는 동안 그때 그 엉화를 다시 보는듯하군. 테렌스 힐~ 참 좋은 배우였어. 코믹하기도 하구...
내가 '엠마누엘'씨리즈 보고 있을 때 '튜니티' 씨리즈라...확실히 늦게 까졌구만 !
난, "노숙자"로 기억되는데 "무숙자"가 맞는갑다. 불쌍한 말 꽁무니에다 들것 매달아 끌게하고 그 위에 똥폼 잡고 누워가던 장면이 기억나는구먼.
글 좀 읽기 좋게 줄도 바꿔 가면서 써라. 숨넘어 갈 뻔 했넹. 고상한 띠물 아니랄까봐 그러냐?^^ 그러고 보니 띠물이 셤 좀 기르고 파란색 콘택렌즈끼면 테렌스힐처럼 보일까 몰것네.^^
ㅎㅎ 글 잘 봤다. 옛날 생각 나게끔 하는 글 솜씨네....역시 티나게 하는 티무르다.
그래 시리즈로 나왔었지. 아마.. 튜니티라 불러다오.. 아직도 내이름은 튜니티...^.^.. 스팅도 그 무렵 상영하지 않았나?? 아참 스팅은 테렌스 힐이 아닌갑다..^.^.. 어쨌튼 이발소에서 똥꼬 찌르던 모습이 선하다..^.^...
고상한 티믈이와 영화한판 눈빠지겠네 좀줄여주라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