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토요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토요복생반 모임 위에 은혜를 부어 주시옵소서.
주님을 더 잘 알아감으로 우리들의 영혼에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모임 후 중부교회로 가서 내일 있을 연합신앙수련회 특송 연습을 합니다.
복생반들의 특송이 생명을 살리는 귀한 시간에 보탬이 되는 섬김이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5.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
16. 그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
17.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이르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들이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니
18.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그들을 지키게 하고
19. 너희는 지체하지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이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20.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살륙하여 거의 멸하였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들로 들어간 고로
21.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22.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를 열고 그 굴에서 그 다섯 왕들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23. 그들이 그대로 하여 그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을 굴에서 그에게로 끌어내니라
24.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2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26.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 채로 두었다가
27.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령하매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들이 숨었던 굴 안에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까지 그대로 있더라
28. 그 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본문 주해)
15~21절 : 여호수아가 크게 이기고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을 때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이 굴에 숨어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여호수아는 돌로 굴의 입구를 막아 두고 나머지 적들을 소탕하도록 지시한다.
적들을 거의 진멸시킨 여호수아의 모든 군대는 막게다 진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무사히 돌아왔다. 이제 그 땅에서는 어느 누구도 감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헐뜯지 못하게 된다.
22~27절 : 여호수아가 아모리 족속 다섯 왕들을 굴에거 끌어내게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불러 모으고 지휘관들에게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고 지시한다.
원수의 목을 발로 밟는 것은 승리자만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대적들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보여주는 표현이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다.
구약성경에서는 원수를 발 아래 두게 하거나 원수로 발등상이 되게 한다는 표현이다.
“내가 그들을 무찔러 전멸시켰더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고 능히 일어나지 못하였나이다”(삼하22:39)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110:1)
신약성경에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두었다는 표현이다.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고전15:27)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엡1:22a)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롬16:20a)
그리고 여호수아는 다섯 왕을 죽인 다음 나무 기둥 다섯에 하나씩 매달게 한다. 해 질 무렵에 여호수아의 명령을 받아 사람들이 그 시체들을 나무에서 내려 그들이 숨었던 동굴에 넣고 큰 돌로 동굴 입구를 막았다.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이 생명을 지키고자 들어간 굴이 결국 그들의 무덤이 된 것이다.
28절 : “그 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 성읍을 점령하고, 칼로 성읍과 그 왕을 무찌르고,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으며, 산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여리고 성의 왕에게 한 것과 꼭 같이 막게다 성의 왕을 무찔렀다.”(새번역)
(나의 묵상)
아모리 족속 다섯 왕이 목이 짓밟히는 굴욕을 당하고 결국 죽게 된다.
그들은 여호와께 항복하여 나아온 기브온을 대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항복하여 나아온 자를 대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동굴 속에 깊이 숨었다고 안심하다가 끌려나온 다섯 왕들은, 마치 내 안에 깊이 숨어있던 죄악들이 발각되어 끌려나온 것 같다.
매일 말씀 앞에 서면, 말씀의 빛이 내 안을 환히 비추니, 꼭꼭 숨었던 죄악들이 다 노출되는 것이다. 공기 중 먼지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햇살이 비치면 뿌연 것들이 다 드러나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너무도 당황스러워 아니라고 좀 버텨보기도 하지만, 말씀의 빛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는 것을 점점 알게 되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빨리 항복하게 된다.
자기부인은 주님의 뜻이요, 탐심은 그에 대적하도록 사탄이 뿌려주는 것이다.
아모리 족속 다섯 왕은 내 안에 탐심으로 존재하는 것들이다.
꼭꼭 숨어 있다가 어느 새 고개를 드밀어 주님의 뜻에 멀어지게 하고 적극적으로는 반항하게 한다.
복음을 알지 못하였을 때는 탐심이라는 이 악한 우상숭배를 그치지 못했다. 우상숭배이기는커녕 이 세상을 사는 자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마음(‘탐심’이라는 단어가 다소 마음에 들지 않지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님을 믿는 것을 나의 소원 성취를 위한 방편으로 삼았기에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최근 어떤 이(그는 목회자이다)로부터 신앙은 머리로 생각하는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면 절에 가서 소원 성취를 빌거나 무당이나 찾아가 문제 해결의 방편을 찾지, 왜 말도 안되게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까?
목회자라도 참 뒤죽박죽이구나..... 생각했다.
복음을 통하여 주님을 알아가게 되니, 내가 가지는 기독교 신앙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 위의 하나님을 바라는 신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 말한 그 목회자는 만물 위의 하나님을 바라는 신앙을 막연한 철학적 사고에 그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내 안에 꼭꼭 숨은 다섯 왕, 기브온을 대적하고, 주님을 대적하는 것들을 끌어내어 발로 밟아야 한다.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십자가에 연합됨이 없이는 주의 백성으로서 한순간도 올바르게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충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기로 작정한 ‘종교인’이라면 모를까, 성경이 증거하는 주님을 알고, 또 진심으로 주님의 자녀로 살기를 원하는 자라면 반드시 붙들어야 할 십자가가 아닌가?
그러니 이 얼마나 현실적인 것인가?
오늘도 내 마음 깊은 동굴 속에 숨어 있는 아모리 다섯 왕, 사탄이 몰래 뿌려 놓은 탐심의 씨가 말씀의 빛에 드러나니, 다시 십자가로 나아간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만물 위의 주님을 바라보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만물 위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니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복음을 통해 생명의 삶을 살게 하시니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아모리 다섯 왕을 발로 밟고, 이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음은
하늘에서 지금도 저를 위해 중보하시는 주님 은혜요,
이 땅에서는 주님 보내신 성령께서 이끌어 주심 때문입니다.
더할 나위 없는 안전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진리를 전파함에 마음이 상할 때가 있지만
조급함과 느긋함의 조화를 이루며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