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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 대 표 기 도 | 헌 금 기 도 | 시 기 도 | 식 사 당 번 | |
6월 4일 | 정 명 수 | 이 신 정 | 안 태 형 | 서 선 미 | |
6월 11일 | 안 태 형 | 서 선 미 | 이 샛 별 | 박연옥 | 교인예배 후기 |
6월 18일 | 이 수 정 | 이 신 정 | 공 은 주 | 이 수 정 | 본다 |
6월 25일 | 공 은 주 | 이 신 정 | 정 한 결 | 정 명 수 | 임원회의/교인예배 후기 |
오늘 공동식사를 준비하신 공은주 교우님은 평소 '재료의 물성'에 관심을 갖고 회화작업을 해온 바, 오늘 공동식사도 재료의 승리를 컨셉으로 준비해주셨네요.연어가 왕창 들어간 연어사케동,쇠고기 장조림,락교,시금치국 등으로 차려주신 밥상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0분 전 이 식탁의 풍경입니다.^^
블루베리가 알알이 맺혔습니다. 진보라색 블루베리로 익어가겠지요.
작년에는 분명히 연보라빛 꽃이 예뻤던 수국이 올해에는 진분홍 빛이 되었네요.
* 말씀 후기
말씀제목: 제국과 진리
본문: 요한복음 18장 33~38절
(요 18:33) |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
(요 18:34)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
(요 18:35) |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
(요 18:36)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
(요 18:37) |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
(요 18:38) |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
말씀요약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잡히시고 빌라도에 끌려나와 대면하는 장면을 총체적이고 극적으로 보여준다.
잡히시기 전에 기드론에서 제자들과 기도를 하시는데 이스라룟 유다가 대제사장에게 돈을 받고 예수가 있는 곳을 알려준다 .
성전수비대의 한 떼의 군사들이 예수를 체포하고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끌려간다.
안나스가 먼지 예수를 일차로 심문을 하고,행정권이 있는 가야바에게 예수를 넘기는데 가야바는 심문도 없이 바로 예수의 생사여탈권을 쥔 빌라도에게 바로 넘겨버린다.
그래서 지금 예수는 빌라도의 공관에 와 계신다.시간은 유월절의 이른 아침이다. 빌라도는 예수를 잡아온 유대엘리트들과 대화를 한 후에 예수와 대면한다.예수의 죄목이 무엇인지를 묻는 빌라도의 질문에 그들은 예수의 죄명을 대지 못한다. 그저 "죄가 없으면 우리가 왜 데려왔겠는냐?"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를 죽이고자하지만 로마법을 따라야하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데려와 예수를 죽여달라고 청하고 있다.
하지만 빌라도로서는 구체적인 죄가 없는데 예수를 죽일 수는 없는 것이고, 군중들은 계속 죽여라를 외치고 있기에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들이 점점 폭동을 행할 조짐을 보이므로 빌라도는 예수에게 채찍을 가한다.그러나 다시 또 예수에게는 죄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군중들이 다시 과격해졌기때문에 결국 예수를 재판정에 데리고 와서 십자가형을 언도한다.
요한이 이 이야기를 아주 긴밀하게 조직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의 권력자에게 심판을 받는 장면은 말할 수 없이 극적이다. 아마 이런 장면은 기독교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종교는 비정치적인 것이다.'라고 하면서 종교가 정치에 무관심해야함을 주장하지만 예수께서는 세상의 권력자에게 재판을 받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본문에서 어느정도 살펴볼 수 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하는 계획의 일환으로,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내어주시기로 작정하였고,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계획에 연루되었다라고 하는 것,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게 했다고 하는 것은 정통주의적인 생각으로서 냉혹한 측면이 있다.
빌라도 아내가 흉흉한 꿈을 꾸고나서 적극적으로 빌라도에게 예수를 죽이지 말라고 한것은 하나님의 계략을 방해할 사탄의 모략이었다고까지 마르틴 루터는 해석하고 있다. 심지어 현대 신학자인 칼 바르트조차 그렇게 말한다.칼 바르트는 예수를 배반한 유다야말로 새로운 계약,즉 신약을 최초로 집행한 자라고 한다. 이런 정통주의적사고에 진리의 일단이 있음은 사실이다.다만 우리는 그일이 일어난 후에야 사후적으로 이 모든 것들-예수의 십자가사건과 부활-이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는다'라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이미 죽은 다음에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고 사후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것이 정통주의적인 생각이다.
유명한 요한복음 3장 16절의 구절에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셨다는 부분이 있다.
이 '내어줌'의 드라마를 완성시키기 위해 유다 이스가룟은 예수를 유대인들에게 넘겨준다. 유대인들은 다시 그를 빌라도에게 내어주고
빌라도는 다시 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로마군인에게 넘겨준다.
제국은 이 세상의 나라들이 지향하는 욕망의 세계이다.진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내어준 자신의 아들,하나님의 자기계시,하나님의 진심이다.
인간에게 양도한 하나님의 아들 ,자기 계시를 인간들이 어떻게 취급하는지가 오늘 본문의 핵심이다.
빌라도가 예수와 대면하여 물어본다.
"네가 유대사람의 왕이냐?"
예수께서는 그 물음에 대답을 않으시고
"그 물음은 네 생각이냐?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말하여준 것이냐?"라고 빌라도에게 반문하신다.
이 반문으로 예수께서 드러내려고 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권력이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고 생각하여 권력을 얻고싶어한다. 우리는 권력자에게 구속되어있을 때 자유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누구를 자유롭게 부릴 때 자유롭다고 생각을 한다. 지금 빌라도는 유대
땅에서 최고권력자로서 자타가 인정하는 가장 자유로운 인간이다.
오늘 예수님이 빌라도와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은
"너의 자유는 네 것이냐? 아니면 남의 것이냐?"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정치적인 왕이 아니라 메시아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빌라도의 질문은 메시아라고 하는 '믿음의 차원'의 문제와 사실, 증거라고 하는 차원 사이에서 갈팡질팡 오락가락한다. 이 때 예수님이 그 유명한 말씀을 하신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내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고 하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사람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참 이중적인 말이다. 기독교신앙에서 예수님이 왕이다.예수님의 왕국이 이 세계에 근원을 두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 나라를 여기에 두고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모든 곳에 있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은 '겹침'을 말하고 있다.
빌라도의 세계와 예수의 세계는 어느 정도 겹쳐진다.예수가 말하는 '내나라'는 빌라도가 말하는 그런 개념의 나라는 아니지만 겹친다.빌라도는 예수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래서 '그러면 네가 왕이라는 말이로구나.'라고 인정을 한다. 그러자 예수께서 "네가 말한대로 나는 왕이다.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는다."라고 한다.
그때 빌라도가 갑자기 "진리가 무엇이냐?"하고 묻는다.여기서 빌라도는 흔들리는 인간이다. 빌라도는 팔레스타인 땅을 통치하기 위해 로마에서 파견한 최고 행정관으로 로마법에 입각해 예수를 판단해야하는것이다. 그런데 끊임없이 흔들린다. 예수가 주장하고 있는 세계가 내 세계는 아니지만, 그가 주장하는 세계가 내 세계와 겹쳐있거나 걸쳐있다고 이해한다.저 사람 (예수)이 말하는 진리의 나라가 내 세계와 완전히 무관하지 않는 그런 나라의 왕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하고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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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묻는 것은 유대의 망상을 로마의 지성이 한순간에 깨뜨려버리는 쾌거라고 니체는 말하고 있다.진리는 존재하지 않고 관점만이 존재한다라고 생각하는 관점주의자인 니체가 할 법한 생각이다. 니체가 왜 포스트모던 시대에 그토록 복권이 되고, 회자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내 관점을 권력을 가지고 주장할 수 있느냐?'아니면 '권력이 없어서 남의 권력앞에서 눈치 볼 수 밖에 없느냐'라고 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권력앞에 끌려나와 빌빌거리고 있는 예수와 그런 예수를 구세주 메시아라고 믿고 있는 기독교는 아주 최악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빌라도가 비아냥거리면서 예수에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빌라도는 분명히 세속적인 것과 신적인 것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자기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자꾸 예수에게 궁극적인것, 비법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가면 예수에게 흔들리고, 유대인에게 가면 유대인에게 흔들리고 있다.유대인들은 유월절의 금기를 지키려고 공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빌라도가 그들의 관습을 존중하여 왔다갔다하고 있다.
예수는 이 본문의 첫 질문을 통해 빌라도가 누리고 있는 권력의 자유라는 걸 묻는다. 놀랍게도 가장 강력한 권력자가 가장 연약한 자로 끌려나온 자와 그가 지배하는 사람들 앞에서우왕좌왕 오락가락하는 권력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도신경에서 3명의 인물이 나온다. 예수,마리아,빌라도가 등장을 하는데, 예수는 '진리'를, 마리아는 '인간적인 ,진리를 낳은 어머니', 빌라도는 '진리였던 한 존재를 죽인 사람'이다.
진리에 대한 전적인 적개심 속에서 진리가 살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내가 원하는 것이 나의 진정한 욕망인지 타자가 욕망하는 것인지,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둘러싼 타인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주체에 의해 살해당한다. 또 그런 주체만이 진리를 살해한다. 권력을 가졌다고 다 진리를 살해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장면은 권력자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 진리를 살해하는 권력을 보여주고 있다.헷갈리는 권력(빌라도)가 진리,예수님을 살해한다.
그러나 진리이든지 사실이든지, 주인이든지 노예든지 둘 중 하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주님
하나님의 진리가 세상권력에 의해서 심판당하는 장면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비록 세속적인 권력을 쥐지는 못하지만 세속적으로 남이 인정하는 휘황찬란한 권력을 쥐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쥐고 있는 고유한 권력이나마 놓치지 않기 위해 그것이나마 행사하기 위해 진리를 살해하는 자가 아닌지를 묻습니다. 빌라도에게 재판받으시는 예수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우리의 삶이 빌라도와 같이 진리를 살해하는 참혹한 삶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는가하는 두려움과 공포속에 있습니다.우리에게 말씀이 전하는 , 알맹이를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하여주시옵소서.말씀이 전하는 길에 따라서 우리의 삶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첫댓글 선미표 드로잉 왕창 예배후기 잘 보았습니다:) 설교말씀 녹취까지..감사해요~
후기 멋져부러 ~~ 쵝오 !!!
참 예배담당표 변경할 내용이 있어요(죄송..) 서기부장님하곤 이야기됐는데, 다음주 11일 대표기도 안태형, 식사당번 박연옥 / 18일 대표기도 이수정. 식사당번 이수정, 시기도 공은주 ..이렇게 수정해주시면 고맙갰습니다~
아~ 지난주 주보를 그냥 사용 하신것 같습니다 분기별 예배 담당표에는 수정이 되었습니다 전도사님! 주보 만드실때 분기별 예배 담당표 참고해 주세요~
재미있게 만들었네요! ㅎㅎㅎ
(안태형 씀)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