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意義]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선물이란 뜻으로) '자기의 선물'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다.
[解義]
寸은 「手」(又·손)밑에 점(′)을 찍어 손목의 특정부위를 가리키고 있다.
名醫(명의) 편작(扁鵲)은 진맥의 達人(달인)이었다.
그의 맥서(脈書)에 의하면 손목아래 2∼3㎝ 되는 곳이 診脈의 適所(적소)다.
이곳을 '寸口' 라고 하는데, 寸은 바로그 '寸口'를 가리킨다.
손가락 '한 마디'쯤 됐으므로 寸은 '마디'를 뜻하게 됐다.
그런데 자[尺:자 척]가 귀했던 옛날에는 신체부위를 사용해 길이를 재곤 했다.
'한 뼘', '한 길', '한 발' 등. 물론 손가락 '한 마디'도 자주 사용했다.
대체로 '짧은 길이'에 속했으므로 寸은 '짧다'는 뜻도 가지게 됐다.
촌각(寸刻)·촌극(寸劇)이니 촌음(寸陰)·촌철살인(寸鐵殺人)등은 모두 그런 뜻을 담고 있다.
志는 士(선비 사)와 心(마음 심)의 결합인 것처럼 보여 '선비의 마음'으로 해석하기 쉽지만 사실은 之(갈 지)와 心의 結合으로 '마음이 가는 것'을뜻한다.
마음이 동(動)하는 것,그것은 곧 뜻·의지(意志)가 아닐까. 그래서志는 '뜻'이 된다.
지망(志望)·지원(志願)·동지(同志)·의지(意志)·초지일관( 初志一貫)등 많다.
따라서 촌지(寸志)라면 '극히 작은 뜻'이다.
'작은 정성(精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대체로 過多(과다)하지 않은 사례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不具(불구)하고 요즘 寸志는 다른 뜻으로 使用되고 있는 것 같다.
학교등에서 교사의 寸志가 문제가 되곤한다.
학부모가 아이의 선생님을 찾아갈 때 양말 두어 켤레, 고기 한두 근 사 가지고 가는 것이 촌지다.
미처 그런 것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봉투에 소주 한잔 값이나 넣어서 놓고 나오는 것이 촌지다.
교사는 사양해도 좋겠지만 성의로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 두어도 전혀 잘못 된 일이 아니다.
이런 우리 전통 사회의 미덕은 현대 사회에 와서도 얼마든지 살려 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촌지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액수가 심상찮아지고, 그것이 주고받는 인정과 감사의 범위를 넘어서면서 이 말이 아주 흉하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되면 그 안에 다른 요소들이 끼여들게 마련이고, 없는 사람들에게는 갈등을 일으키는 일이 될 것은 뻔하다.
몇몇 사람들의 일탈이 촌지라는 인정스럽고 좋은 말을 형편없이 망가뜨려 놓았다.
이젠 본래의 뜻을 살려 내기가 어렵게 되어 버린 것 같다.
[參考] 1998/10/26 한국일보 7면
[다시뛰는 한국] 촌지의 역사
전통적 사제관계에서 촌지(寸志)는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인간관계를 중시했던 동양에서 촌지는 스승에게 예의를 표하는 제자의 기본적인 도리로 여겨질 정도였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의 공자시대에도 스승과 제자 사이에 촌지가 오고갔다.
당시에는 각자 신분과 능력에 맞게 왕은 보석, 사대부는 양, 선비는 꿩, 평민은 거위를 스승에게 답례품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촌지 본래의 의미는 「작은 정성」이나 또는 「과다하지 않은 사례」.
전통사회에서 서당을 다니던 학동이 책 한 권을 다 마치면 훈장님과 친구들에게 한 턱 내던 「책거리」도 일종의 촌지라고 볼 수 있다.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의 김흥규(金興圭)부원장은 『전통사회에서의 촌지는 한창 무더운 여름날 스승의 몸보신을 위해 닭 한마리를 잡거나 가을철 수확한 밤 한 됫박을 보내는 등 순박한 마음을 전하던 미풍양속』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풍습은 일제강점기와 해방후에도 이어져 60년대 초반까지 집에서 정성스럽게 만든 떡이나 식혜, 한과 등 별미거리나 소고기 한 근, 계란 한 꾸러미, 고구마 한 보따리 등 자기 형편에 맞는 선물들을 촌지로 전했다.
30여년전 초등학교 시절 총각선생님에게 집에서 직접 담근 간장을 선물했던 회사원 박형규(朴炯圭·45·서울 도봉구 방학4동)씨는 『최근에 만난 그 선생님께서 아직도 우리집 간장맛을 기억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열이 높아지기 시작한 60년대부터 본래의 의미가 퇴색한 「돈봉투」가 촌지로 등장했다.
특히 일부 극성 학부모들이 치마바람을 일으키던 70년대부터는 「돈봉투」가 촌지의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남의 눈을 의식해 책이나 과일상자 등을 선물하면서 몰래 끼워주는 경우가 많았다.
80년대이후 신흥명문고가 밀집한 이른바 「8학군」이 등장하면서 촌지의 액수도 커지고 정기적으로 건네지는등 상납화하기 시작했다.
모초등학교 교사는 『당시 강북의 촌지가 5만원 정도였던 반면 강남에서는 10만~20만원 정도가 촌지로 오고갔다』고 말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교육부조리였던 학교촌지가 사회문제화한 것은 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전교조 출범이후 양심적인 교사들의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학부모운동이 시작되면서 촌지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김호기(金晧起)연세대교수는 『과밀학급과 부족한 교원 등 교육여건이 열악한 상황에서 지나친 가족이기주의, 뇌물문화의 성행 등 영향으로 「뇌물성 촌지」가 등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박천호기자)
[參考] 촌지킬러 불량티처의 고군분투 오지마을 탈출기
영화 [선생 김봉두]는 도시 학교 김봉두 선생(차승원 분)이 촌지만 밝히다가,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전교생 5명뿐인 분교로 부임하게 되면서 그 곳을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휴먼코미디영화다.
영화는, 촌지만 밝히는 속물인 김봉두 선생이 순박한 시골 아이들을 통해 점차 진정한 선생님으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을 코믹하고 가슴 찡한 감동으로 그려내고 있다.
선생 김봉두는 철저하게 나쁘지도 철저하게 착하지 않은 우리네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는 촌지를 밝히는 속물이지만 병환으로 누워 계신 아버지를 끔찍이도 아끼는 효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가 자신의 끼니를 위해 서울과 같이 급식을 하고 서울 전학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 '아~~아~~우리의 서울~우리의 서울~'는 밉지가 않고 귀여운 웃음으로 자아내며 낯설지 않은 친근한 인물로 다가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코미디에 머물지 않고 [선생 김봉두]는 감동을 자아낸다.
속물인 선생 김봉두는, 촌지로 인해 우애 좋은 마을주민들이 다투게 되고 급기야 어린 소석이가 돈봉투를 건내주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느끼면서 조금씩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단 하나뿐인 혈육인 아버지마저 임종한 그에게 아이들과 동내 주민들이 곁에 있어주면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글을 모르는 최노인이 어렵게 한글을 배워 몇 년이 지난 편지를 읽는 그에게서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되고 시골 분교를 떠나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작지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면서 진정한 선생 김봉두로 거듭나는 과정은 감동과 눈물을 자아낸다.
하지만 영화는 차승원의 코믹연기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아이들과 조연들의 연기에 힘을 실지 못해 더 많은 감동을 자아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다.
이밖에도 영화의 주요 소재인 '봉투'는 촌지를 밝히는 김봉두 선생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순박한 마음이 담겨있는 편지봉투이며 떠나는 선생 김봉두에게 마을 주민들이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한다.
제목의 '봉두'는 '봉투'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것.
'시골 분교들이 사라져가는 아쉬움'에서 영화를 기획했다는 장규성 감독의 [선생 김봉두]는 어린시절 순수했던 추억이 담긴 영화로 아련한 옛추억을 불러 일으키며 가슴 한 켠을 찡하게 할 것이다. (코리아필름 김철연 기자)
첫댓글 옳은 말씀입니다. 촌지는 작은 정성, 사레를 의미해서 아름다운 미풍으로 전해 내려 오는 것인데 금액이 커지면서 뇌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러나 한문 선생 입장에서는 한문의 참 뜻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