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이야기는 어떨까.
저 녀석이 지금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지만 옛날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세이버는 강하게 자신을 경계했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저 녀석도 과거에 미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미련? 분통한 건 있지만 뭐, 미련은 없어.」라고.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 낚싯대를 바라보며 비운의 아일랜드 영웅은 대답했다.
「……그럴 거 같긴 했지만 진짜 시원시원하네. 다른 서번트는 말이야, 없는 듯이 행동해도 고향의 향수 같은 게 남아있는데.」
「음, 놀라운 걸. 이제 와서 금의환향하고 싶어하는 녀석들로는 안 보이는데.
……아아, 캐스터는 미련이 아주 질척질척 남아있겠군.
그 여자는 애초에 온실 속의 화초였으니 성에 틀어박히는 편이 행복하겠지. 그러는 게 그 여자와 세상을 위하는 길이야.」
후아암, 크게 하품을 하는 랜서.
고기가 안 잡히는 게 마음에 안 드는지 아니면 옛날 이야기는 애초에 성질에 안 맞는지.
랜서는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제일 의욕이 없다.
「그럼 만약 네가 성배를 손에 넣었어도 소원은 없었겠네?
사람으로서 두 번째 삶을 살고 싶다던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던가.」
「글쎄. 소원 따위는 금방금방 변하니까 막상 그때가 되지 않으면 모르잖아.」
이렇다.
그날 번 돈은 그날 다 써버리는 녀석이다.
갖고 싶은 건 사는 동안에 거의 손에 넣는다. 축제가 끝나고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걸” 이라는 미련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호쾌한 인생이군……
아, 그래.있잖아, 랜서. 시간 있으면 네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래? 생각해 보니까 난 네 일화는 자세하게 몰라.」
「응? 그런 걸 물어서 뭘 어쩌려고. 아니면 뭐야, 니네들, 의외로 싸울 생각 있는 거야?」
「아니, 나도 세이버도 싸울 마음은 없어.
당신이 안 쳐들어오는 게 얼마나 고맙다고. 전에 말 안 했던가?」
「음……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뭐, 네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그럼 뭐야, 단순하게 남의 신세타령을 듣고 싶은 거야?」「아아. 흑심은 없어. 순수한 흥미야.」
「………………뭐, 알았어.
잡히지도 않고 심심풀이로 이야기해주지. 너한테 충고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말이야.」
만사 다귀찮은 것같던 랜서의 표정이 아주 조금 변화한다.
긴장을 풀고 있던 어깨의 힘을 아예 빼고 해수면을 향하고 있던 눈은 무기력하게 하늘을 바라본다.
한마디로, 더욱더 의욕이 없어진 것이다.
랜서.
쿠 훌린은 옛 아일랜드에서 전해져 오는 영웅이다.
그의 대지는 다섯 나라로 나눠져 있었고 그는 북방 얼스터의 왕 카너를 섬기던 전사다.
켈트신화기 때문에 이쪽에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저쪽에서는 아서왕을 능가하는 대영웅이다.
그의 출생내력은 여러 가지로 복잡하다.
쿠 훌린의 어머니 덱테라는 카너왕의 아버지, 적왕 로스의 비인 마가와 뛰어난 드루이드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였다.
텍테라 공주는 시집을 가지 않고 영원한 젊음의 땅으로 사라져 태양신 루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밴다.
이 아이가 세탄타후에 쿠 훌린이라 불릴 갓난아이다.
세탄타는 카너왕의 군대에 “언젠가 얼스터의 방패가 될 자” 로서 보내져 그 운명대
로의 인생을 보내게 된다.
세탄타가 쿠 훌린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그가 아직 소년일 때, 도공 쿨란의 번견을 맨손으로 죽인 데서 유래된다.
어느 날, 카너왕은 고명한 도공 쿨란의 저택에 초대받았다.
왕은 소년인세탄타도 데려가려 했지만 세탄타는 친구들과 한창 낚시 시합을 하는 중이었다.
여기서 제가 빠지면 시합에 집니다. 시합에 이기고 나서 따라붙을 테니 부디 먼저 가십시오
소년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왕은 늦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한 발 먼저 쿨란의 저택으로향했다.
불행은 쿨란의 종자가 부주의하게도 문을 닫아버린 것에서 시작된다.
늦게 도착한 세탄타는 번견의 습격을 받아 개의 목을 졸라 죽여버린다.
밖이 소란스러워 저택 안 사람들이 나와보니 세탄타가 되려 번견을 죽여버린 것에 놀라 입을 모아 칭찬했다.
하지만 자신의 자랑이던 번견을 잃은 쿨란의 눈에 희미한 슬픔이 서린 것을 보고 자신의 생각이 얕았음을 알고 이렇게 고했다.
『이 개의 새끼는 없습니까? 있다면 그 새끼를 제게 주십시오.
아버지에게 지지 않을 훌륭한 번견으로 키워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당신의 번견이 되어드리죠.』
도공 쿨란은 소년의 청에 감명을 받아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다.
『그럴 필요는 없다. 나의 저택을 지킬 번견은 내가 기르지. 너는 너 자신을 단련시키도록 해라.
언젠가 그 몸은 반드시 얼스터 전역을 지켜낼 번견이 될 것이다.』
모인 전사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소년은 “쿨란의 맹견”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소년의 첫 싸움.
그 후에 있을 고귀한 청을 기리듯이.
「그 정도는 아는데……그때, 너 몇 살이었어?」
「지금 너보다는 어렸지. 아직 전사도 아니었으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레드 브렌치의 기사가 되기 전 로우 클래스가 있었는데,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견습 전사를 모아놓은 곳이었어. 나도 그 일원이었지.」
「윽. 그럼 뭐야. 열두, 서너살에 나라 제일의 번견을 목 졸라 죽였다는 거야?」
「기세야, 기세. 목숨을 뺏은 건 그게 처음이었어. 그 후로 개만은 먹지 않는 게 내 금계가 됐지만.」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동족끼리 서로 치고 받은 거지라고 농담처럼 내뱉는다.
「뭐,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이름이 바뀌고 얼마 안 있어 있었던 일이야.
로우 클래스 녀석들이 한 드루이드한테 몰려가서는 언제 전사가 되면 좋은 운명을 타고나게 될지 점쳐 달라고 난리를 쳤지.
그 드루이드는 그, 뭐냐.
보기보다 실력 있는 할아범이었는데 그 할아범의 점괘가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결정할” 정도로 강했던 거야.
할아범은 난처해 하면서 그럼 오늘 전사가 될 자의 운명만을 점쳐주기로 했어.」
「음,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어?」
「별거 없는결과였어. 로우 클래스 녀석들이 아무도 무사의 의식을 치르려 하지 않을 정도로 싱거운 결과다.」
「……흠. 너는 뭐했는데?」
「흥미 없어서 개암나무에 기대서 고기 낚고 있었지.」
「…………미안한데, 지금 이야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모르겠어?
한 마디로 내가 그 날, 무사의 의식을 치렀다는 소리야.
왕이 펄펄 뛰면서 너 같은 어린애가 전사가 돼서 어쩌자는 거냐, 성장할 때까지 건강하게 자라기만 하거라, 라나 뭐라나.
열 받아서 성 안의 창을 꺾어버리고 전차를 부숴버렸지. 이래도 전사가 되기에 부족한가라고 협박했어.」
「………………」
오, 왕을 상대로 협박으로 나왔나. 이 남자 혹시 옛날보다 상당히 둥글어진 거 아닐까?
세이버가 버서커 클래스에도 해당된다, 라고 했던 말, 설마 했었는데.
「그래서 전사가 됐어?
……그, 레드 브렌치 기사단이었던가?」
「그래. 세이버랑 비교하면 기사도 같은 거랑은 거리가 멀지만 말이야.
뭐니뭐니해도 불충만 하지 않는다면 제멋대로 싸우든 말든 상관 안 하는 세계다.
내키면 다른 영토에 싸움을 걸어놓고 그날 밤 열린 연회에서 잊어버리는 일도 허다했으니까.
기사단에도 수상한 놈들 천지라 다른 나라보다 자기 나라가 마음이 안 놓이는 곳이었어.」
조금 즐거운 듯 웃는다.
……그런가. 이 자유분방함은 살아온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긍지는 다른 사람들처럼 복잡한 게 아니라 짐승처럼단순한 것이다.
「그렇게 전사가 되고 나서는 싸움의 나날이었지.
그러다 한 공주한테 첫눈에 반해서 성에 납치하러 갔었는데, 그 공주가 정말 괜찮았단 말이야.
아무런 명예도 없는 어린애의 화롯가에는 가기 싫다나.」
「잠시만. 어린애라니, 너 그때 몇 살이었어?」
「아, 아마 열여섯이었을걸. 그래서 명예를 얻으려 여행을 떠났지.
그림자의 나라에 스카다라는 여전사가 있었는데 이 여자가 또 괴물처럼 강하다더군.
소문에 많은 전사를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했어.」
그 후의 얘기는 알고 있다.
쿠 훌린은 마경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림자의 나라에 도착해서 거기서 여영주 스카다에게서
도약의 비술과 마창 게이볼그를 받게 된다.
「간단하게도 말하는군. 그 여자의 스파르타 교육엔 토오사카 그 아가씨도 맨발로 도망칠걸?
어쨌든 터무니없는 여자였어. 내가 도착했을 쯤에는 인간 때려치웠었지.
……그림자의 나라라는 건 뭐, 저 세상에 있는 영지였으니까 그 여자는 거기서 망령들을 타이르는 문지기였던 셈이지.」
「망령들 중에는 거의 신 같은 놈들도 있었어.
그걸 인간의 몸으로 억누를 정도로 창을 능숙하게 다뤘지. 어느 정도 맛이 갔는지는 알겠지?」
「알겠어. 토오사카의 파워업판 같은 표현이라 무서울 정도로.」
「그렇고 말고. 그리고 그 무서운 사부 밑에도 다른 제자가 있었는데
다들 스카다의 가르침을 받아온 전사였지만 그 중에 나랑 쌍벽을 이룰 정도의 녀석이 있었어.
페르디아라고 하는데 옆 나라 코노트의 기사였지.
게이볼그의 전수를 놓고 겨루다 보니까 어느새 형제의 맹세를 나누게 되었지.」
「……그, 뭐냐.
난 세 명 정도 얻기 힘든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한 형 같은 존재였어.」
그렇게 쿠 훌린은 각종 기술, 마술을 배운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고 있던 쿠 훌린의 무용담이 설마 열여섯도 채 안 되어 한 일이었다니
들은 대로라면 이 남자는 매일 전속력으로 날뛰고 다녔던 모양이다.
그야말로 죽음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준마처럼.
「그렇지도 않아. 그림자의 나라에선 오래 체재했었고 말이야.
좋은 사부와 좋은 경쟁상대가 있어서 떠나기가 싫었어.
그런데 그 떠나기 싫은 영지를 노리는 바보가 나타났지. 이웃 나라의 아이페라는 영주가 전쟁을 걸어왔던 거야.
스카다는 날 내보내기 싫어서 나랑 몇 번이나 말다툼을 했었지.」
「뭐, 그래도 마지막에는 나, 스카다, 페르디아 이렇게 셋이서 어깨를 맞대고 날뛰고 나서 1대1로 싸워서 아이페를 생포했어.
근데, 뭐냐. 처음엔 미운 적이었지만 막상 싸워서 잡고 보니까, 괜찮은 여자였지 뭐야.
그래서진지해졌다가 스카다한테 들켜서 돌 맞았지. 게이볼그 던지듯이 던져 버리더군.」
핫핫하, 어색한 웃음을 짓는 랜서.
그렇군. 적의 영주가 여자였구나. 아니
「잠시만. 진지했다는 게 그런 거였어!?」
「그야 뻔하지. 반했으면 안는 게 당연한 거 아냐.」
「하지만…」
그렇다. 영웅은 색을 밝힌다, 이런 점에서 전사들은 지조가 없었다……!
「그래도 작별의 시간은 오고야 말았지.
아이페와도 헤어졌어. 만약 아이가 태어난다면 콘라라고 이름 짓고 얼스터에 보내라고.
그때, 세 가지 맹세도 하게 해서. 하나, 이름을 물어도 답하지 말라.
하나, 절대 나아갈 길을 바꾸지 말라.
하나, 도전을 받으면 거절하지 말라.
뭐, 내 아들이면 최소한 이 정도는 지켜야지.」
「그리고 나와 페르디아는 같은 날에 그림자의 나라를 떠났지.
성을 나왔을 때, 동시에 꺼낸 말이 “내 나라에 오지 않겠나?” 였어.
이거 뭐, 빠져나가긴 글렀군, 이라고 같이 웃었지.
스카다는뭐, 여행을 떠나는 날에는 못 만났어. 전부 전수했으니까 가르칠 건 없다면서.」
그것이 그림자 나라의 이야기다.
이후, 랜서의 이야기는 소란스러움을 잃어버렸다.
얼스터에 돌아가 쿠 훌린은 화려한 싸움만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아일랜드 전역에 널리 알려진 전사가 되었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무훈을 세우고 약속대로 공주를 맞이하러 갔다.
공주를 넘겨주지 않겠다는 포르갈 왕과 그 군사를 말 그대로 전멸시키고
얼스터 기사의 명예를 건 기사단 내의 싸움에서도 승리한다.
화려한 경력은 동시에 영웅 쿠 훌린의 청년시절이기도 했다.
그 후.
쿠 훌린의 싸움은 항상 무거운 그림자를 짊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코노트는 대대로 여왕이 실권을 쥐었는데, 그 대의 코노트 여왕 메이브는 호전적이고 지기 싫어하는 여자였지.
뭐, 이러저러해서 얼스터에도 진군해왔던 거야.」
「애초에 코노트가 침략해온 이유 중 하나가 페르그스 숙부의 배반이었지.
우리 왕도 재밌고 유쾌한 사람이라 뭐, 젊은 여자를 가질 욕심에 페르그스 숙부의 아들을 죽여버린 게 원인이었지만.」
「……저기. 페르그스라면 너를 덱트라 공주에게서 받아온 기사 아니었던가?」
「그래. 레드 브렌치 기사단의 명예였던 페르그스 숙부가 얼스터 왕을 증오해서 적국 코노트의 기사가 됐지만
여왕 메이브의 강경함에 숙부가 한 몫을 해서 말이야.
게다가 얼스터 사람들에겐 어떤 저주가 걸려 있어서 타국에서 침략해오면 온 나라 남자들이 쇠약해져서 싸우질 못하는 거야.」
「뭐어!?」
뭐야 그게.
근데 어째서 그런 상태의 나라가 번영했던 거야, 아일랜드!
「어어, 어떻게 됐어! 못 싸운다는 건 약탈당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얘기잖아!」
「설상가상이었지. 그래도 나는 엄밀히 말하면 얼스터 출신이 아니야.
요정 나라 출신이니까, 나 혼자 사지 멀쩡히 움직일 수 있었다는 소리지.」
「뒷 이야기는 알겠지?
메이브의 군을 매일 죽이다가 저쪽이 항복할 찰나에 교섭을 했어. 앞으로 전쟁은 1대1 결전으로 바꾸자고.」
「나는 얼스터 협곡의 여울에서 1대1을 하겠다.
그 1대1을 할 때만 코노트군이 진군해도 좋다고.
하루 오 천명을 죽일 것인가, 한 명의 피해로 줄이고 조금이라도 군을 전진시킬 것인가.
메이브는 혀를 차면서 허락하고 그때부터 매일 결전이 시작됐어.」
「헤에……」
그것이 세상이 말하는 쿠 훌린 맹세의 룬.
명예를 건 1대1이 약속된 사방이 가지로 둘러싸인 결전장인가.
「머리 많이 굴렸네.쿨란의 번견이 1대1에서 질 리 없고, 코노트군은 거기서 멈춘 건가.」
「아니, 메이브는 조약을 어기고 진군했어.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나눈 맹약이니
진군이라곤 해도 사람 눈에 안 띌 정도로 일부야. 결과적으로 발을 묶기엔 최선의 선택이었지」
「근데 문제는 내가 하는 1대1쪽이었어.
죽이기엔 아까운 전사부터 이상한 전쟁의 여신이 방해 해대고, 28인의 괴물 등등 진짜로 위험했어.
한심하게도 너무 피곤해서 하루 종일 잔 적도 있고 말이야.
그래서 아직 전사도 안 된 애들이 쿠 훌린을 구하겠다고
일치단결했다가 반대로 메이브한테 몰살당한 것도 뭐, 내 실책이랄까.」
「………………」
실언이었다.
여울의 공방은 영웅 쿠 훌린이라 해도 사지였던 것이다. 그 평생에 첫 번째, 두 번째를 다투는 사지의 결말은……
「코노트에는 최강의 전사가 있어.
내가 이 세상에서 단 한 명, 싸우기 싫은 사내였지.」
그림자의 나라에서 함께 배웠던 전사.
쿠 훌린이 형으로 존경했던 페르디아와의 결투이다.
이 싸움은 페르디아의 의지가 아니라 여왕 메이브의 간계였다.
그 둘 사이에 얼마만큼의 갈등이 있었는지 랜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둘 다 주군을 섬기는 몸.
틀림없이 서로의 우정보다 가치 없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버려야만 한다.
실력은 백중지세라 막다른 곳에 몰린 쿠 훌린은 게이볼그로 페르디아의 심장을 꿰뚫는다.
그림자의 나라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마창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친구에게 그 남자는 쏘았던 것이다.
“게이볼그는 지극히 뛰어났던 전사에게 보내는 명예”
쿠 훌린은쓰러지는 사형을 끌어안으며
“그 빛나던 배움터에서 너야말로우리의 명예였다”
페르디아는 이승의 작별을 고했다.
……이 싸움의 결과는 적국 코노트의 패배로 끝난다.
어떻게, 어떻게 쇠약함에서 회복한 얼스터의 전사가 코노트군을 추격해 커다란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싸움 끝에 쿠 훌린은 여왕을 생포하지만 죽이지도, 굴욕을 주지도 않고 왕으로서 대접하여 코노트에 보냈다고 한다.
「여기서도 적의 대장을 놓아줬구나.……너, 여자를 죽인 적은 없었네.」
「그렇게 되지.
꼭 지키겠다는 생각은 없었으니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거지만. 뭐, 싸움에서 여자를 죽이는 건 좋아하지 않아.」
그건 좋고 싫고를 떠나 그 이전의 문제다.
사랑하든 증오하든 관계없다.
서번트가 된 지금이라면 몰라도 쿠 훌린이라는 영웅은 전장에서 여성을 죽이는 것을 싫어했다는 것인가.
「그 후의 얘기는?」
「그 후엔 큰 싸움은 없었어.
아……그러고 보니 해안에 이상한 꼬마가 와서 싸움을 일으켰었지.
건방진 꼬마라, 말을 거는 전사들을 연달아서 해치웠었어. 왕도 쫄아서 이 꼬마를 쓰러뜨릴 수 있는 건 쿠 훌린 뿐이래던가.」
「……우리 공주가 나를 말린 건 이 때랑 마지막 순간 뿐이었나.
가시면 안 됩니다라고 울었지만 왕의 칙명이니까 어쩔 수 없었지.」
「그래서 해안에서 그꼬마랑 싸웠는데상당히 강한 거야.그래서 게이볼그를 쓸 수밖에없었어.
해치운 후에 『그건 배우지 못했어.』라고 말하면서 뒈지더군. 스카다의 제자였나 보지.
아, 덧붙이자면 그 꼬마 이름이 콘라였다.」
「」
그것이 영웅 쿠 훌린의 황금기가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그 후는 얘기할 것도 없다.
복수를 다짐한 여왕 메이브는 쿠 훌린에게 원한을 가진 각국의 맹자를 모아, 수많은 간계로 쿠 훌린을 몰아붙인다.
그는 다시 쇠약해진 얼스터를 지키기 위해 단신으로 메이브의 군사에게 도전해
열 겹 스무 겹의 함정에 빠진 끝에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너무나 많은 무용을 남겨 얼스터의 방패가 되었던 대영웅.
그 영광과 비교해 그의 생애는 의외로 짧다.
소년의 나이로 전사가 되었던 쿨란의 번견은 말 그대로 쏜살같이 그 인생의 막을 내렸다.
이상이 쿠 훌린의 이야기다.
슬슬 일몰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지만 상당히 시간을 잡아먹고 말았다.
「이만 갈게. 긴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
흥, 콧방귀를 뀌며 등을 돌리는 랜서.
자기 성질과 영 안 맞는 얘기를 했다고 후회하는 거겠지.
「아, 그래. 깜빡 했었어.
맨 처음에 충고해주고 싶었다는 게 대체 뭐야?」
「모르겠어? 나는 여자랑 주군은 안 죽였다는 소리야.」
「아, 그렇군.」
거듭되는 싸움, 무모한 왕명을 한 번도 쿠 훌린은 내던지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그런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참고가 됐어. 이 인사는 나중에 꼭 갚도록 하지.」
「그래. 타이가를 통해서 술이나 좀 보내.」
항구를 뒤로 한다.
……정말 다시 봤습니다.
설마 이 단계에서 선수를 쳐올 줄이야
첫댓글 랜서의 과거를 다시 보게 되네요...
여자를 안 죽였다는데,, 그럼 바제트는 누가 죽인거에요??
코토미네 키레가 령주로 강제명령해서 어쩔수 없이 죽인걸로 알고있는데요...
바제트는 팔이 뜯긴 채로 방치... 죽진 않은 걸로 알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