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맥브라이드만큼 미국 소시민들의 삶과 역사, 인종 차별 문제 그리고 종교까지, 편견과 차별이 난무하는 우리들 삶에 대한 성찰을 적절한 가벼움과 버무려 잘 보여주는 작가가 또 있을까.
그의 회고록 『컬러 오브 워터』(1996)가 미국 전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될 정도로 미국 문학의 한 획을 그은 이후, 맥브라이드는 늘 절망의 그림자 속에서도 기적에 가까운 활기와 유머가 넘쳐나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 결과, 노예제 폐지론자 존 브라운에 대한 소설 『더 굿 로드 버드(The Good Lord Bird)』가 2013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고, 브루클린 빈민가의 이웃 코믹 서사시 『어메이징 브루클린(deacon kingkong)』은 2020년 미국 문학계의 큰 수확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는 이처럼 화려한 집필 경력 내내 인종과 편견에 대한 야만적인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도 유머와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하늘과 땅 식료품점』은 아프리카계 흑인 아버지와 유대인 백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제임스 맥브라이드가 자기 뿌리와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소설로, 실존하는 펜실베이니아 포츠타운에 ‘치킨힐’이라는 가상의 마을을 세워 우리를 이렇게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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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1972년 펜실베이니아주 포츠타운의 우물에 묻힌 해골이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한 추리 소설이 아니라 1920년대와 30년대 대공황 전후 포츠타운의 작은 마을 치킨힐로 거슬러 올라가 치킨힐 마을의 흑인, 유대인 및 이민자들의 당시의 삶과 역사와의 연관성을 탐구한다. 치킨힐은 사랑과 연대감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공동체로, 맥브라이드의 장대한 서사가 시작되는 곳이다. 치킨힐의 주민들은 초나와 흑인 주민들과의 우정을 우리 모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할 수 있다는 미국의 미뤄진 꿈인 평등과 연대라는 이념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긴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하늘과 땅 식료품점’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모셰의 극장에서 일하는 흑인 남성 네이트 팀블린이 초나와 모셰에게 12살에 고아가 된 청각 장애 흑인 아이 도도를 숨겨 달라고 부탁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 당국은 도도의 지적 능력을 완전히 무시한 채 그를 특수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하는데, 치킨힐의 주민들은 그 학교가 학교가 아니라 인권이 무시되고 감금과 학대가 자행되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최악의 수감시설 ‘펜허스트 주립 정신병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치킨힐의 주민들은 정부로부터 흑인 소년 도도를 구하기 위해 각자의 노력을 기울이며, 그렇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다 같이 뜻을 모으고 행동하며 통합을 이루어 간다. 이 모든 활동을 이끄는 도덕적 원동력은 관대함과 정의로움을 가르친 랍비의 딸인 초나이다. 유대인의 대의를 알리고 지역 KKK단을 비난하며 마을의 백인 권력자들과 주기적으로 대치하던 초나는 이 흑인 소년을 지켜야 하는 소명을 ‘양심의 관점’이 아닌 ‘사랑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이 소설에는 초나와 모셰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캐릭터가 등장해 누가 주인공인지 감히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작가는 스쳐 지나가듯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에게도 각자의 이름과 사연을 부여하고자 노력한다. 누군가는 쓸데없이 왜 그리 많은 인물이 나오는지, 줄거리와 상관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왜 그렇게 시시콜콜 전부 설명하는지 모르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서의 오늘을 살고 있지만, 나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또한 각자의 삶과 이야기가 있지 않겠는가. “하늘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별 하나 보다, 여러 별들이 각자의 중력으로 서로를 붙잡아 주고 밀고 당기며 돌아가는 별자리 전체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맥브라이드의 의도가 이 소설에서 충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서두르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온 세상을 보여주고자 하며, 소설이 시작될 때의 이야기 골격은 거의 잊힐 만큼 과거에 얽힌 이야기로 흘러가다 다시 약속된 골격으로 돌아와 이 거대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훌륭하게 엮어내고 있다.
“절망의 그림자 속에서도 기적처럼 꿈틀거리는 삶의 활력. 복잡한 인종 갈등 속에 실제보다 과장된 캐릭터와 터무니없이 웃음이 나는 장면들이 뒤섞여 다분히 디킨즈적이다. 그의 작품을 ‘맥브라이드적’이라는 형용사로 부르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_ 워싱턴포스트
이 소설은 아주 작은 포인트가 다른 곳에서 더 큰 결과로 이어지는 구조이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통해 그가 어떻게 상상력의 구석구석에서 캐릭터를 끄집어내어 그들만의 독특한 삶을 만들어내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소설을 발전시키는지 확인하는 즐거움은 독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또한, 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숨은 이야기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마치 영화의 속편을 기대하는 것처럼 각자의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또 다른 소설을 상상하게 된다. 패티와 페이퍼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을까? 모셰와 이삭이 장애아동을 위한 학교를 만든 것은 초나의 유언 때문이었을까? 소설 속에서 짧게 지나간 이야기의 다음 내용이 궁금해진다면 맥브라이드의 의도가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작가는 또한 이 소설에서 이민자들과 과거 노예로 살았던 유색인들의 눈을 통해 당시 급변하는 미국의 모습을 훌륭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는 이주와 차별, 폭력과 충돌을 겪으면서도 미국이 미국다워지고 있던 미국인의 공유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불가능해 보이는 역경 속에서도, 인류의 가장 사악한 시설 속에서도, 사랑과 공동체, 정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
『하늘과 땅 식료품점』은 매력적이고 영리하며,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소설임에 틀림없다. 우리를 갈라놓는 모든 차이를 뛰어넘는, 활기차고 사랑을 긍정하는 이 소설은 인간의 선한 의지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하고 큰 영향력을 갖는지를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