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드라이아이스 / 민소연 -결혼기념일 평생 함께하겠습니다 짙은 약속을 얼떨결에 움켜쥐었을 때 새끼손가락 끝에 검붉은 피가 모였을 때 치밀한 혀를 가지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 어떤 밤엔 마침내 혀를 쓰지 않고도 사랑을 발음했다 맺혔던 울음소리가 몇 방울 떨어지고 태어나고 수도꼭지를 끝까지 잠갔다 한밤중엔 그런 소리들에 놀라서 문을 닫았다 너무 규칙적인 것은 무서웠다 치열하게 몸을 움직이는 초침 소리나 몸을 웅크린 채 맹목적으로 내쉬는 너의 숨소리가 그랬다 거듭 부풀어 오르는 뒷모습을 보면서 호흡을 뱉었다 어쩌면 함께 닳고 있는 것 같았다 박자에 맞춰 피어오르는 게 있었다 입김처럼 희뿌옇고 서늘했다 숨을 삼키다 체한 밤이면 너를 깨웠다 내기를 하자고 했다 누가 더 먼저 없어질 것 같은지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해보자고 했다 너와 나는 모두 내가 먼저일 거라는 결론을 내려서 우리는 오래도록 같은 편이 되었다 내가 죽은 척을 하면 너는 나를 끌어안았다 서로의 등 뒤에서 각자의 깍지를 움켜쥐었다 영원한 타인에 대해 생각했다 손끝에 짙은 피가 뭉치면 동시에 숨을 전부 내쉬었다 품 안에서 녹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살갗이 들러붙었다 ◆심사평 안도현·유성호 “착상·비유 안정적 구현… 서늘한 감각 탁월” 202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많은 작품이 응모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예심을 거쳐 올라온 여러 편을 함께 읽어가면서 일부 작품이 만만찮은 공력과 시간을 쌓아온 성과라는 데 공감하였다. 대상을 좀 더 일상 쪽으로 구체화하여 타자들을 관찰하고 해석한 결실도 많이 보였고,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쏟아 내면의 정직한 기록이 되게끔 한 사례도 많았음을 기억한다. 이 가운데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이들은 모두 세 분이었는데, 김운, 노수옥, 민소연씨가 그분들이다. 오랜 토론 끝에 결국 민소연씨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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