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 오가는 등산로 한 켠 힐끗 눈에 띄는 한 컷의 흑백사진 두 손 꼬옥 맞잡은 노부부의 주름진 풍경 세월의 흐름이 마냥 아쉬운 듯 느린 걸음 산책로 따라 추억을 새긴다.
원미산 자락 휘어 돌다 내려온 노부부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할멈에게 던지는 영감의 한마디 “여그 좀 앉었다 갈티어!” 말없는 끄덕임으로 대답한다.
“잠깐 있어?” 영감은 잰 걸음을 옮긴다 가판대 벽면에 졸고 있던 박스 한 개를 할멈 엉덩이 밑에 쑤욱 밀어넣는다
다시 또 어깨를 토닥이며 “잠깐있어?” 드링크 두 개가 들린 손아귀에서 피어난 연륜의 정 영감의 아귀힘에 뚜껑은 맥없이 무너진다. 할멈에게 건넨 후에야 영감은 들이킨다.
팔순은 훌쩍 넘겼음직한 두 사람. “인자 가~” “그려 가드라고~” 할멈 엉덩이 밑에 납작 엎드린 박스와 안녕 하고 영감은 할멈의 손을 다시 잡는다.
안개처럼 멀어져가는 노부부의 뒷모습 원미산 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봄 향기 따라 오늘도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원미2동 글쓰기교실 회원
모녀의 시장나들이 /김재희
딸이 긴 여행을 떠날 때마다 허전하고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는 것 같다고 하시는 엄마! 그래서인지 평소에도 집안에서 가방만 만지작거리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묻는다. “또 어디 갈라고?” 아니다. 오늘은 어머니의 허전한 마음도 달래줄 겸 함께 전통시장 나들이에 도전하기로 했다. 연두 빛이 나는 옥색의 푸르스름한 티셔츠도 한 개 사고 발톱이 살을 파고 들어가는 걸 제거하기 위한 뾰족한 손톱깎이도 필요하시 단다. 중동에 있는 우리 집에서 부흥시장까지의 거리가 다리 힘이 없고 허리가 굽은 노인들에게는 결코 가깝지 않다. 걷는 건 무리일 것 같다. 시장 근처까지는 차로 이동했다가 노인용 보조기구를 이용해 걸을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모처럼 맘먹고 나서는 길인데 가랑비가 살포시 내린다. 드디어 목적지에 입성.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신발 가게로 향했다. 엄마는 무릎 관절수술을 마친 후로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관계로 발등이 부어오르는 일이 늘 반복된다. 그렇지 않아도 무지 ‘외반증’ 때문에 신발 사이즈를 큰 걸로 골라야 한다. 당신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면서도 예쁘지 않다며 타박을 한다. 어른들은 세월을 살아 온 만큼 까다롭다는 걸 내 어머니가 아니어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이해는 간다. 마른자리 진자리 가릴게 아니라 발에 맞는 걸 찾는 게 급선무라고 해도 막무가내시다. 어린아이 달래듯 겨우 어르고 달래서 한 켤레를 샀다. 시장 둘러보기는 이제 시작인데 어머니의 발길이 갑자기 순대가게 앞에서 멈췄다. “이것 조깨 사가믄 쓰겄다” 아이처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순대를 주문하자 주인장한테 한마디 덧붙인다. “오돌오돌 한 것이랑 골고루 섞어 주쇼!” 다음은 내 차례다. 즉석에서 튀겨내는 꽈배기 가게서 우리는 다시 발길을 멈추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필요한 이것저것을 사느라 발길을 멈춤 가게가 몇 곳인지 셀 수가 없다. 전통시장인 부흥시장이 어머니의 눈에는 별천지로 보이셨나 보다. 이것저것 보물창고 뒤적이듯 필요한 것들로 양손 가득 채우고 마지막은 의료기 판매하는 곳에 들려 지팡이를 샀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 하시는 말씀. “모다 뭣들이 비싸졌고만” 살림에서 손을 뗀지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 요즘 세상 물정을 까맣게 잊으신 모양이다. 장보기를 마치고 돌아온 모녀는 푸짐한 식탁위에서 행복의 맛을 음미한다. 엄마가 묻는다. “아까 댕겨온 시장 이름이 뭐라구?” “부 –흥 – 시 –장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