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이호2동 1918-3번지, 일주도로 남쪽에 있다.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유형 ; 수리시설
덕지물은 『제주의 물 용천수』에 따르면 용암류경계형이며, 1998년 3월 4일 측정했을 때 1일 용출량이 100㎥라고 되어 있다. 지금은 그렇게 많은 양이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예전에 수도가 보급되기 전에는 오도롱 주민들은 물론 광평마을, 신산마을 주민들까지도 소중한 식수로 사용했었다. 1931년에 수선을 하고 기념비석을 세웠다. 시멘트로 만든 물통 2개는 식수용으로 쓰기 위한 구획으로 보이고, 동쪽 구석에 담을 쌓아 나눈 구역은 목욕하던 곳으로 추정된다. 샘 주위에 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북쪽을 제외한 데크 밑에는 낮은 담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물팡으로 썼던 시설이다. 지금은 농업용수로도 쓰임새가 별로이다. 덕지물 위쪽 1932번지 일대를 덕지물동산이라고 한다. 수운교 교당이 있다.
샘 서쪽 벽에 德池泉修繕紀念碑가 있다. 앞·뒤·옆면에 쓰인 내용은
吾道千載(오도천재) 우리 도가(오도롱마을이) 천년 세월
德池一泉(덕지일천) 덕지샘이 하나 있네.
重修舊鑑(중수구감) 옛 모습(법식)대로 중수하니
復覩新天(부도신천) 새로운 하늘을 다시 보게 되네.
本洞仁擧(본동인거) 본동이 어진 뜻을 세우니
近居義捐(근거의연) 인근에 사는 주민들도 돈을 내었도다.
厥功不少(궐공불소) 그 공이 적지 않으니
永世銘傳(영세명전) 영세토록 새겨 전하리.
財力負擔 吾道一同 監督 金利休 金炳和 義捐 金熙洙 二十圓 廣坪下洞 六圓
一九三一年三月日 竣工
少年興愛會 謹竪
경비는 주로 오도롱 마을 사람들이 부담했고, 김이휴와 김병화가 감독을 했으며, 김희수씨가 20원, 광평마을이 6원을 희사했고, 비석은 소년흥애회가 세웠다는 내용이다.
감은모살 남쪽의 논을 덕지답 또는 덕지논이라 한다. 덕지물을 끌어들여 경작하는 논이라는 뜻이다. 이호동지(257쪽)에 덕은 엉덕에서 나온 듯하다고 하였다. 덕지답 일대의 토지는 지목이 거의 답(畓)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한쪽 구석에서 미나리를 재배하는 정도로 경작지로서의 이용가치는 떨어졌다.
《작성 2021-02-02, 보완 2026.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