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도로프 국방장관의 인사 항명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군부내 혼돈 상황(일각에서는 페도로프의 난, 드론 반란으로 부른다/편집자)이 길어지고 있다. 2023년 6월 푸틴 대통령-쇼이구 국방장관-게라시모프 총참모장 겸 특수군사작전 총사령관으로 이어지는 러시아 군지휘체계에 불만을 품고 총구를 모스크바로 돌린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프리고진의 난'(6.24 군사반란)이 하루만에 수습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흐름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페도로프 전 장관의 요구를 받아들여 알렉산드르(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총사령관을 해임해야 하는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페도로프 장관-시르스키 총사령관 간의 충돌을 정리하는 군 인사에서 시르스키 총사령관의 손을 먼저 들어준 그가 어쩔 수 없이 총사령관까지 해임한다면, 앞으로 그의 군 통수권 행사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전시 체제(계엄령)를 이유로 선거도 치르지 않은 채 7년째 대통령직에 앉아 있는 그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야당 등 정적들이 원하는 '이름 뿐인' 대통령으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 최대 위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페로도프 장관의 복직-시르스키 총사령관 해임을 요구하며 길거리로 나온 '골판지 시위대'와 군 기득권 사이에서 그가 선택할 '신의 한 수'는 과연 존재할까?
그는 17, 18일 군 주요 지휘관들을 잇달아 만났다. 골판지 시위대에 맞서 기존의 군 지휘 체계를 유지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바깥에서 보는 시각은 또 다르다. 시르스키 총사령관 해임을 앞둔 '명분 축적용'으로 본다.
닷새째 계속되고 있는 페도로프 장관 복직-시르스키 총사령관 해임을 요구하는 길거리 골판지 시위대/텔레그램 캡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20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 중 '시르스키 (총사령관)는 해임될까? 그리고 어떤 변화가 닥칠까?'(Отправят ли Сырского в отставку и что это поменяет?)라는 코너에서 "시르스키 총사령관의 해임을 전망하는 외신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파이낸셜 타임스(FT)의 기사를 소개했다.
FT는 18일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우크라이나 최전선 방어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원활한 군권(軍權) 이양을 보장할 수 있는 적임자가 있다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시르스키를 해임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페로도프 전 장관과 시르스키 총사령관을 함께 만났다고 발표했다. 세 사람이 함께 얼굴을 맞대고 사태 수습 방안을 숙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시르스키 총사령관은 20일 '페도로프 장관과의 갈등을 후회하며 화해'를 원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군 주요 지휘관들과의 만남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차기 총사령관 후보를 검토하는 자리로 해석되는 상태다.
우크라이나 매체 '제르칼로 네델리'(주간 거울이라는 뜻)도 시르스키 총사령관의 해임 가능성을 내다보며 페도로프 전 장관에게는 군사및 군사 기술 개발 조정관이라는 새로운 직책이 제안됐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FT는 곧바로 "페도로프 전 장관이 대통령의 다른 자리 제안을 거절하고, 국방장관 복귀를 요구했다"는 후속 보도를 내놨다. 정치권과 일부 군사 전문 블로그들은 "시르스키 총사령관이 이미 사임했으며 발표만 남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통령실과 군총참모부가 이같은 주장들을 부인했는데, 이미 군통수권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짜 뉴스'들이 나도는 혼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일 주요 군지휘관들을 소집해 전선 상황을 직접 점검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지만, 현지의 최대 관심은 이미 시르스키 총사령관의 해임 여부에 가 있다.
후임 총사령관의 면면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야당 '골로스'(목소리라는 뜻) 소속의 젤레즈냐크 의원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시르스키 총사령관을 해임할 경우, 후임으로 고르바튜크 총참모부 차장, 드라파트 합동군 사령관이 후보로 거론된다"면서도 올레그(올레흐) 아포스톨 공수부대 사령관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았다. 그 이유로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시르스키 총사령관과 같은 인물이라는 점을 들었다.
공교롭게도 아포스톨 사령관은 19일 SNS에 "혼란은 적에게만 유리하다"는 글을 올렸다. 알렉세이 네이즈파파 해군 사령관도 "전시에 군 인사에 대한 의구심은 용납될 수 없고, 군 최고사령관에 대한 평가는 오직 대통령만이 할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은) 선동은 적의 손에 놀아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썼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주요 군지휘관들과 가졌다고 알린 텔레그램/젤렌스키 대통령 텔레그램 @Zelenskiy_official
언론 보도로 짐작컨대, 젤렌스키 대통령은 흐마라 국방장관 대행(전 국가보안국·SBU 국장 대행) 체제는 유지하면서 '시르스키 총사령관을 해임하라'는 페도로프 전 장관의 요구를 들어주되, 그에게는 군사 기술 개발 조정관과 같은 다른 자리를 주는 방식으로 사태 수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군사 기술 개발 조정관은 무기 및 무인 시스템(드론) 생산을 조율하고, 국가와 군대, 군수산업체 간의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총괄하는 자리라고 '제르칼로 네델리'는 전했다. 흐마라 국방장관 대행의 고수 의지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고르바튜크 총참모부 차장, 드라파트 합동군 사령관, 빌레츠키 제3군단 사령관, 오볼렌스키 헌병군단 사령관, 아포스톨 공수부대 사령관, 프로코펜코 아조프 여단 사령관 등과 회담하는 자리에 그를 배석시킨 데서 엿볼 수 있다.
길거리 '골판지 시위'는 수도 키예프(키이우) 등 주요 도시에서 5일째 계속되면서 시르스키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 가고 있다. '시르스키 타도!', '시르스키는 악마다!'와 같은 구호가 최근 부쩍 많이 등장했다. 우크라 서부 르보프(르비우)시(市)에서는 안드레이(안드리) 사도비 시장이 직접 골판지 시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터넷(SNS)에서는 일반 사병부터 장군, 군단장에 이르기까지 "군대는 변화가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전쟁에서 질 것"이라는 주장들이 올라오고 있다. 특히 세르게이(세르히) 소브코 제11군단 참모장의 비판은 총사령관에게 뼈아프다. 그는 (총사령관의) 인사 정책을 비판하며 "개인의 충성심이 능력보다 중요해지면, 필연적으로 최고의 인재가 아닌 가장 편리한 인재가 승진하고, 인사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며 "소신 있는 유능한 지휘관들은 갈수록 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거나 아예 군을 떠나게 된다"고 주장했다.
2024년 잘루즈니 총사령관이 경질되기 전, 당시 시르스키 지상군 사령관(현 총사령관)과 다정한 한 때를 보이는 잘루즈니/사진출처:텔레그램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시르스키 지상군 사령관으로 교체한 2024년 군인사에서 추구한 목적은 두 가지였다고 한다. 전쟁 종식 후 잠재적인 대권 후보가 될 정적을 쳐내고, 정치적으로 그에게 도전하지 않을 장군을 선택해 군 통제권을 확고히 장악한다는 것.
그 결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주요한 군사적 결정을 모두 직접 내릴 수 있게 됐다고 스트라나.ua는 짚었다. 시르스키 총사령관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제정러시아 차르 시대의 장군들처럼, 또 볼셰비키 혁명 당시 레닌과 트로츠키에 복종했던 적군(붉은 혁명군) 지휘관들처럼, 군 작전 수립및 지휘를 주도하면서도 최고 지휘관(군 통수권자)에게는 절대 복종하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한 군 소식통은 스트라나.ua에 "군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으로부터 전쟁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 반격을 시도하는 시르스키 총사령관의 군사 작전은 사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략과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 진영에 군사적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계속 공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군사 전략적인 관점보다는 정보·정치적 관점에서 판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러시아가 전선에서 주도권을 잃었다는 것을 서방 동맹국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더 많은 자금과 무기를 제공받고, 적(러시아)에게는 더 이상 진격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시켜 평화 협상에서 양보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크림반도 고립화'를 통해 더욱 극적인 효과를 거두려고 한다고 이 소식통은 설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군 총참모부 지휘관 회의를 개최하는 모습/사진출처:텔레그램@V_Zelenskiy_official
하지만 군 내부에서는 정치적 홍보 효과보다 병력 보존이 더 급하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격 지시를 반대하는 세력도 적지 않다. 공격은 가뜩이나 취약한 우크라이나군을 더 지치게 만들고 큰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공격은 방어보다 3배나 더 많은 손실을 낸다는 건 상식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드론 전쟁'에서는 공격 부대가 방어 부대보다 훨씬 더 많은 병력 희생과 장비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이같은 논리로 우크라이나군 내부에서는 길거리 강제 동원으로 간신히 채우고 있는 아까운 병력을 헛된 공격으로 잃어버리면, 앞으로 방어 작전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주장이 거세다. 장거리 및 중거리 드론을 동원한 러시아 후방 물류 공격으로 러시아군이 어느 정도 약화된 상태에서 공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러시아군에게 함락된 포크로프스크 외곽 지역을 탈환하려다, 우크라이나군은 막대한 손실만 입었다고 한다.
실제로 일부 지휘관들이 지난해 '공격은 자살 행위'라며 명령을 거부하자, 시르스키 총사령관은 어떤 명령이든 물불 가리지 않고 작전에 나서는 '특수 공격 부대'(현지에서는 '시르스키 연대'라고 부른다/편집자)를 창설했다. 하지만 위험한 공격 작전에 기꺼이 참여하려는 병력은 극소수다. 어쩔 수 없이 어떻게든 살고 싶어하는 군인들도 공격의 최일선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일부 군 부대에서는 병사들에 대한 처벌과 학대와 같은 가혹 행위가 동원된다. 스트라나.ua는 과거에는 공격 명령에 불응하는 병사들을 공개적으로 처형하거나 처벌했지만, 지금은 좀 더 교묘하지만 그다지 인도적이지 않은 방법들(가혹 행위)이 동원된다고 전했다.
페도로프 전 장관 측은 시르스키 총사령관의 부대 지휘 방식을 비판하는 차원에서 일부 부대 내 지휘관 폭력및 가혹 행위를 폭로하기도 했다. 이미 바깥으로 문제가 불거진 부대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한다. 폭력이나 가혹행위로 병사들을 몰아치지 않으면 공격 작전을 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사이, 그같은 비인간적인 폭력 및 불법 행위가 사실상 합법화되고 정상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트라나.ua는 "폭력에 익숙해진 지휘관들의 이같은 지휘 방식은 민간인들에게로 확대될 우려가 있었다"며 "최근 제155 기계화 여단에서 그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고 개탄했다. 제155 기계화 여단의 여단장이 아내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부하들에게 두 남자를 손 볼 것을 명령했고, 민간인 두 명은 시체로 발견됐다. 여단장과 부하들은 구속됐다.
우크라이나군 부내 내 가혹행위을 보여주는 사진/사진출처:스트라나.ua
부하들에게 '아내를 모욕한' 민간인들을 손 보라고 지시한 루차노프 제155독립기계화여단 여단장이 지난 13일 체포되는 모습/사진출처:텔레그램
젤렌스키 대통령은 더 이상 버티다 못해 "군 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에 응한다'는 이유로 시르스키 총사령관을 해임할 수도 있다. 그 경우에도 시르스키 총사령관처럼 '군사 기술자'이면서 대통령에게 정치적 위협이 되지 않는 인물을 택할 것이다. 아포스톨 공수부대 사령관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입맛에 맞는 후보를 택한다고 하더라도, 시르스키 총사령관의 해임만으로도 그에게는 '존재론적' 위기가 닥쳐올 가능성이 높다. 인사권에 대한 군통수권자의 권위가 우선 추락한다. 시르스키 총사령관의 해임은 골판지 길거리 시위대와 특정 정치 세력의 압력에 굴복한 결과로 해석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후임 총사령관이 전임의 해임을 요구했던 세력의 눈치를 보게 된다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더욱 급속하게 군 통제력을 잃게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드론 반란'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국내 입지를 확인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년 동안 시중에 유포된 부정적인 2개의 담론이 현실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 담론은 권력형 부패 스캔들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비합법적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이다. "군대가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영웅적으로 싸우는 동안,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나라를 약탈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쟁 초기에는 잘했지만, 이제는 물러나 새로운 지도자가 나올 때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러시아 후방 공격으로 '전쟁의 판을 바꿨다'는 군사적 성과를 강조하며 이에 대처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일반 국민들은 군사적 성과는 우크라이나군의 공으로, 대통령의 문제는 대통령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현 주영 대사)와 키릴 부다노프 전 정보총국(GUR)국장(현 대통령 실장)의 대(對)국민 지지가 치솟은 근본 이유다. 이제는 페도로프 전 장관도 젤렌스키 대통령과 맞서면서 지지율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대선 결선 투표에서 잘루즈니와 부다노프를 만난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방장관 교체로 초래한 권력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