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克(이길 극)恭(공손할 공)의 春雲曉(새벽 효)靄(아지랭이 애)圖
고극공(1248-1310)의 조부는 서역인으로 산서성 대동에 와서 살았다. 아버지 고가보는 원의 상서의 딸과 결혼하여 북경으로 옮겨서 살았으나, 벼슬을 싫어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서 살았다.
원이 남송을 정복하자 고극공은 관리로 발탁되었다. 원의 고위직까지 역임했다.
고극공은 문장가로도 이름을 날렸고, 성격도 원만하여 상류-지식인 사회에서 인기가 좋았다.
춘운효애도는 54세에 그린 그림이다. 고극공은 처음에는 미씨화법을 배웠고, 뒤에 동원과 이성의 그림도 응용하였다.
이 그림이 그와 같은 그의 그림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