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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春香傳)은 韓國(한국)의 古小說(고소설)이다.
1 槪說(개설)
1.1 事件(사건)背景(배경)
1.2 說話(설화)가 판소리계 小說(소설)이 되다
1.3 異本(이본)들
1.4 文學史(문학사)에서 가지는 뜻
2 主要(주요) 登場人物(등장인물) 紹介(소개)
3 줄거리
3.1 이야기 始作(시작)
3.2 헤어짐
3.3 葛藤(갈등)解消(해소)
4 눈여겨 볼 部分(부분)
5 其他(기타)
5.1 薄色(박색) 醜女(추녀) 說話(설화)
5.2 成以性(성이성)과 南原(남원)의 妓女(기녀)
6 關聯(관련)作品(작품)
6.1 原作(원작)에서 派生(파생)된 公演藝術(공연예술) 作品(작품)들
6.2 唱劇(창극) '대춘향전'
6.3 春香(춘향)을 parody[패러디:諷刺的(풍자적) 改作(개작) 詩文(시문)]한 作品(작품)
7 諷刺(풍자) 文學(문학)
7.1 兩班(양반) 社會(사회)에 대한 嘲笑(조소)
7.2 身分上昇(신분상승)에 대한 希望(희망)
槪說(개설)
廣寒樓園內(광한루원내) 春香祠堂(춘향사당)에 있는 春香(춘향)의 影幀(영정).
事件背景(사건배경)
大槪(대개)의 古小說(고소설) 作品(작품)들처럼 正確(정확)한 創作(창작) 時期(시기)와 作者(작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朝鮮(조선) 英祖(영조), 朝鮮(조선) 正祖(정조)時代(시대)에 生成(생성)되어 開化期(개화기)를 거치며 現在(현재)의 春香傳(춘향전)이 形成(형성)된 것으로 推測(추측)된다. 朝鮮(조선) 後期(후기) 全羅道(전라도) 南原(남원)을 背景(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時點(시점)은 全知的(전지적) 作家(작가) 時點(시점)이다.
說話(설화)가 판소리계 小說(소설)이 되다.
成以性[성이성, 1595年(년)(宣祖(선조) 28年(년) ∼ 1664年(년)(현종(顯宗) 5年(년)은 朝鮮(조선) 後期(후기)의 文臣(문신)이자 儒學者(유학자), 淸白吏(청백리)이다. 자(字)는 여습(汝習)이고 號(호)는 계서(溪西)이다. 本貫(본관)은 창녕(昌寧). 春香傳(춘향전)의 實際(실제) 主人公(주인공)으로 春香傳(춘향전)의 主人公(주인공)인 李夢龍(이몽룡)은 原來(원래) 成夢龍(성몽룡)이었다. 南原府使(남원부사)와 承政院承旨(승정원승지)를 지낸 성안의(成安義)의 아들이다.
剛直(강직)한 諫官(간관)이자 淸白吏(청백리)이다. 그의 直系(직계) 後孫(후손)들은 春香傳(춘향전)에 나온 '金樽美酒(금준미주) 千人血(천인혈)'이 그가 實際(실제)로 지은 漢詩(한시)라고 主張(주장)한다. 湖西(호서) 暗行御史(암행어사)와 湖南(호남) 暗行御史(암행어사)로 活動(활동), 監察(감찰)하며 腐敗(부패) 守令(수령)들을 封庫罷職(봉고파직)시켰다. 이것 亦是(역시) 春香傳(춘향전)의 素材(소재)가 된다. 學脈(학맥)으로는 김굉필(金宏弼)의 孫弟子(손제자)이자 그의 學脈(학맥)을 繼承(계승)한 강복성(康復誠)의 門人(문인)이다. 慶尙北道(경상북도) 出身(출신).
生涯(생애)初盤(초반)~出生(출생)과 家系(가계)
成以性(성이성)은 慶尙北道(경상북도) 奉化郡(봉화군) 物野面(물야면) 佳坪里(가평리) 胎生(태생)으로 아버지는 昌寧(창녕) 成氏(성씨)로 承政院承旨(승정원승지)와 郡守(군수)를 지낸 성안의(成安義)이고, 어머니는 禮安金氏(예안김씨)로 증(贈) 戶曹參判(호조참판)에 追贈(추증)된 金繼善(김계선)의 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는 學業(학업)에 熱中(열중)하여 13歲(세)때 그가 쓴 글을 우연히 정경세(鄭經世)가 보게 되었다. 鄭經世(정경세)는 그의 글을 읽고 將次(장차) 크게 될 人物(인물)이라 하였다.
수학)과 南原生活(남원생활)
어려서부터 工夫(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學問(학문)에 더욱 增進(증진)하여 조경남(趙慶男)의 門下(문하)에서 修學(수학)하다가 뒤에 강복성(康復誠)의 門人(문인)이 되었다. 康復誠(강복성)은 士林(사림)의 學統(학통)인 길재(吉再)-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이연경(李延慶)의 學統(학통)을 繼承(계승)한 學者(학자)였다.
1607年(년)(宣祖(선조) 40年(년) 南原府使(남원부사)로 赴任(부임)한 아버지 成安義(성안의)를 따라 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妓生(기생)과의 逸話(일화)가 後日(후일) 春香傳(춘향전)의 주 뼈대가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 成安義(성안의)가 參議(참의:朝鮮時代(조선시대), 六曹(육조)에 속한 正三品(정삼품) 벼슬)로 發令(발령)되면서 妓生(기생) 春香(춘향)과는 離別(이별)하게 된다. 이때 侍中(시중)에는 成以性(성이성)과 春香(춘향)을 素材(소재)로 한 春香傳(춘향전)이 戲劇(희극)과 人形劇(인형극), 漫談(만담) 等(등)으로 擴散(확산)되었는데, 兩班家(양반가)의 子弟(자제)의 scandal(스캔들)이라 하여 朝鮮朝廷(조선조정)에서 官(관)을 시켜서 禁止(금지)하게 되자 成夢龍(성몽룡)을 李夢龍(이몽룡)으로 바꾸고, 성씨(姓氏)가 없던 妓生(기생)인 春香(춘향)에게 成氏(성씨) 性(성)을 붙여서 試演(시연)하게 된다.
1616年(년)(光海君(광해군) 8年(년) 그는 司馬試(사마시) 兩試(양시)에 合格(합격)했는데 生員試(생원시)에 合格(합격)하여 생원(生員)이 되고, 그 해에 다시 進士試(진사시)에 合格(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그러나 光海君(광해군) 때의 亂世(난세)에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官僚(관료) 生活(생활)~科擧(과거) 及第(급제)와 官僚(관료)生活(생활)
1627年(년) 仁祖(인조)5年(년)에 式年(식년) 文科(문과)에 兵科(병과)로 及第(급제)하였다.
1635年(년) 仁祖(인조) 13年(년) 成以性(성이성)은 司諫院(사간원) 正言(정언)이 되고 弘文館(홍문관) 副修撰(부수찬)·副校理(부교리)를 거쳐 1636年(년) 司憲府持平(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637年(년)(仁祖(인조) 15年(년) 호서(湖西) 地方(지방)의 暗行御史(암행어사)로 派遣(파견)되었다가 돌아왔다. 그해 成以性(성이성)은 司諫院(사간원) 獻納(헌납)이 되어 功臣(공신)이며 西人黨(서인당)의 高官(고관)인 윤방(尹昉)·김류(金류)·심기원(沈器遠)·김자점(金自點) 等(등)을 彈劾(탄핵)하여 王(왕)을 잘못된 길로 引導(인도)했다며 오국불충(誤國不忠)의 罪(죄)를 論(논)하기도 했다.
暗行御史(암행어사) 活動(활동)
1639年(년) 仁祖(인조) 17年(년) 호남(湖南) 地方(지방) 暗行御史(암행어사)에 任命(임명)되어 5年間(년간) 湖南(호남) 地域(지역)을 巡察(순찰)하고 1644年(년) 仁祖(인조) 22年(년) 되돌아왔가. 그 뒤 1647年(년)(仁祖(인조) 25年(년) 다시 湖南(호남) 暗行御史(암행어사) 로 派遣(파견)되었다.
그러나 湖南(호남) 暗行御史(암행어사)로 赴任(부임)했을 때 身分(신분)을 露出(노출)시키고 마는데 成以性(성이성)은 暗行(암행)을 하고 다니다가 1647年(년) 11月(월) 25日(일) 順天(순천)에서 失手(실수)로 부득이 自身(자신)의 身分(신분)을 드러내고 以後(이후)에는 漢陽(한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는 日記(일기)에 돌아오는 길이던 12月(월) 1日(일) 南原(남원)에 들렀다고 적고 있다.
生涯(생애) 後半(후반)
1648年(년) 여름 成以性(성이성)은 全羅道(전라도) 潭陽郡守(담양군수)로 赴任(부임)해 장마철 江(강)둑이 氾濫(범람)해 被害(피해)가 큰 것을 보고 2年(년)에 걸쳐 堤防(제방)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심었다. 現在(현재) 官防堤林(관방제림)으로 불리는 숲이 그가 남긴 治世(치세)의 痕迹(흔적)이다.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等(등) 184그루가 傳(전)한다. 본디 堤防(제방)에 나무를 심으면 나무가 바람에 흔들릴 때 堤防(제방)에 해롭다 하여 심지 않았는데 成以性(성이성)은 비바람에 强(강)한 토종나무를 골라 심음으로써 이같은 常識(상식)을 엎었다. 潭陽郡(담양군)은 現在(현재) 官防堤林(관방제림)에 散策路(산책로)를 造成(조성)하여 觀光客(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外職(외직)으로는 晉州府使(진주부사) · 江界府使(강계부사) 等(등) 네 고을을 다스렸는데, 晉州府使(진주부사)로 在職(재직)할 때는 西人(서인) 出身(출신)으로 慶尙道(경상도) 暗行御史(암행어사)로 派遣(파견)된 민정중(閔鼎重)이 照査(조사)하여 그의 선치(善治)를 報告(보고)하여 特別(특별)히 王(왕)으로부터 표리(表裏, 옷감)를 받았고, 江界府使(강계부사) 때에는 女眞族(여진족) 等(등)의 掠奪(약탈)과 凶年(흉년) 等(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府民(부민)들에게 삼세(蔘稅)를 모두 免除(면제)해주어 百姓(백성)들이 기뻐하였으며 部處(부처)가 還生(환생)하여 돌아왔다며 '生佛(생불)' 또는 '관서활불'(關西活佛)이라며 稱頌(칭송)하였다. 1664年(년)(현종(顯宗) 15年(년)에 享年(향년) 70歲(세)를 一期(일기)로 死亡(사망)했다.
死後(사후)
故鄕(고향)인 奉化郡(봉화군) 物野面(물야면) 佳坪里(가평리) 1里(리)에는 成以性(성이성)을 追慕(추모)하는 祠堂(사당)인 溪西堂(계서당)이 建立(건립)되었다. 死後(사후)인 1695年(년)(肅宗(숙종) 21年(년) 淸廉(청렴)함을 認定(인정)받아 朝廷(조정)으로부터 淸白吏(청백리)로 選出(선출)되었다. 贈(증) 通政大夫(통정대부) 副提學(부제학)에 追贈(추증)되었다. 著書(저서)로는 <溪西遺稿(계서유고)>가 있다.
著書(저서) ~ 溪西遺稿(계서유고)
鬼神(귀신) 問題(문제) 解決(해결)
全羅道(전라도) 地域(지역)에 鬼神(귀신)이 자주 出沒(출몰)한다는 곳이 있었다. 그 곳은 商人(상인)이나 科擧(과거) 試驗(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들이 여러 번 變(변)을 당했는데, 成以性(성이성)이 이 問題(문제)를 解決(해결)하였다 한다. 湖南(호남) 暗行御史(암행어사)가 돼서 湖南(호남) 地域(지역)의 鬼神(귀신)이 많이 나오는 곳을 찾아가 抑鬱(억울)함을 달래주고 問題(문제)를 解決(해결)하였고 이것 亦是(역시) 입에서 입으로 傳(전)해져 說話(설화)가 되었다.
腐敗(부패) 官吏(관리) 罷職(파직)
忠淸道(충청도) 暗行御史(암행어사) 時節(시절) 地方官吏(지방관리)의 잘못을 發見(발견)하고 어떻게 處理(처리)했는가를 仁祖(인조)에게 보고한 '書啓(서계)'가 남아있었는데 KBS 放送局(방송국)이 이를 取材(취재)하였다. 를 보면 稅金(세금)을 過多(과다)徵收(징수)한 鎭川縣監(진천현감)과 生日(생일)날 過多(과다)한 잔치를 벌이고 國法(국법)을 어긴 石城縣監(석성현감)을 摘發(적발)하여 罷職(파직)시켰다는 記錄(기록)이 있다.
春香傳(춘향전)
春香傳(춘향전)
그는 아버지인 南原府使(남원부사) 成安義(성안의)가 赴任(부임)할 때, 아버지의 任地(임지)를 따라 南原(남원)에서 生活(생활)하다 우연히 南原(남원) 妓生(기생) 春香(춘향)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春香(춘향)과는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는 바로 春香傳(춘향전)의 motive(모티브:同期(동기)가 되었다. 뒤에 湖南(호남) 暗行御史(암행어사)로 赴任(부임)했다가 身分(신분)을 露出(노출)하고 되돌아갈 때 南原(남원)에 들렀다. 늙은 妓生(기생) 女眞(여진)이 찾아와 만났는데, 그는 春香(춘향)을 찾았다 한다. 그러나 그는 春香(춘향)을 만날 수 없었다.
‘서리와 함께 欄杆(난간)에 앉으니 눈빛이 뜰에 하얗게 깔려있고 대나무숲이 희었다. 나는 少年時節(소년시절)의 일을 생각하여 밤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春香傳(춘향전)은 판소리, 演劇(연극), 小說(소설)의 素材(소재)가 되었으나 兩班家(양반가) 子弟(자제)의 scandal(스캔들)이라 하여, 朝廷(조정)에서는 兩班家(양반가)의 威信(위신)을 떨어뜨린다며 春香傳(춘향전)의 上映(상영)을 禁止(금지)하였다. 할 수없이 民衆(민중)들은 成夢龍(성몽룡) 代身(대신) 李夢龍(이몽룡)으로 性(성)을 바꾸어서 演劇(연극)과 판소리, 小說(소설), 口傳(구전) 等(등)으로 傳(전)하였다.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황금술잔에 담겨있는 맛좋은 술은 천명 백성의 피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옥쟁반에 담긴 맛있는 고기는 만 맥성의 기름이라.)
촉루락시(燭淚落時)에 민루락(民淚落)이요,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피눈물이 떨어지고,)
가성고처(歌聲高處)에 원성고(怨聲高)라. (노랫소리 높은곳에 원망소리 드높아진다.) ”
— 《作中(작중) 李夢龍(이몽룡)이 읊은 時調(시조)》 —
春香傳(춘향전)에 나오는 金樽美酒(금준미주) 千人血(천인혈)은 成以性(성이성)이 지은 詩(시) 中(중)의 하나였다. 成以性(성이성)이 春香傳(춘향전)에 나오는 成夢龍(성몽룡)처럼 卞(변)사또를 膺懲(응징)한 南原(남원) 出頭(출두) 記錄(기록)은 實錄(실록)이나 文集(문집)에는 없다. 그러나 春香傳(춘향전)에 나오는 잔치연에서 李夢龍(이몽룡)이 卞學道(변학도)를 叱咤(질타)하면서 읊은 金樽美酒(금준미주) 千人血(천인혈) 로 始作(시작)되는 時調(시조)는 成以性(성이성)이 짓고, 읊었다. 이는 成以性(성이성)의 4代孫(대손) 성섭의 著書(저서) <교와문고>와 그의 스승 조경남(趙慶男)이 쓴 <亂中雜錄(난중잡록)>에 그의 作品(작품)으로 記錄(기록)되어 있다.
湖南(호남) 暗行御史(암행어사)가 되었을때에 湖南(호남) 12고을 郡守(군수), 縣監(현감)들이 잔치를 베풀었다. 이때 成以性(성이성)은 暗行御史(암행어사)가 乞人(걸인)의 行色(행색)을 하고서 宴會場(연회장)에 나타났다. 湖南(호남)의 12고을의 郡守(군수), 縣監(현감)들은 그를 嘲弄(조롱)하며 '그대가 詩(시)를 지으면 종일토록 놀고 짓지 못하면 가라.'고 했고, 그는 卽席(즉석)에서 金樽美酒(금준미주) 千人血(천인혈)을 짓는다. 이어 全羅道內(전라도내) 6名(명)의 腐敗(부패)한 守令(수령)들을 封庫罷職(봉고파직)시킨다. 石城縣監(석성현감)이 生日(생일)날 過多(과다)한 잔치를 벌인 것은 春香傳(춘향전)에 登場(등장)하는 卞(변)사또의 motive(모티브:同期(동기)가 되었다.
家族關係(가족관계)
祖父(조부) : 성적(成績)
祖母(조모) : 노사영(盧士英)의 딸 아버지 : 성안의(成安義)
어머니(繼母(계모) : 김계선(金繼善)의 딸
어머니(生母(생모) : 황근(黃謹)의 딸 夫人(부인) : 금개(琴愷)의 딸 아들 : 성석하(成錫夏) 孫子(손자) : 성세황(成世璜)
특히 司諫院(사간원)의 諫官(간관)을 歷任(역임)하는 동안 成以性(성이성)은 高官大爵(고관대작)과 身分(신분)의 高下(고하)를 두려워하지 않고 直言(직언)으로 一貫(일관) 하여 周圍(주위)의 猜忌(시기)를 받아 昇進(승진)이 순조롭지 못하기도 하였다.
科擧(과거) 及第(급제) 後(후) 그는 仁祖(인조)에게 直接(직접) 御史花(어사화)를 膳物(선물)받았는데, 科擧(과거) 試驗(시험)에 及第(급제)한다 하여 모두 御賜花(어사화)를 받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成以性(성이성)의 後孫(후손)들은 그가 仁祖(인조) 임금에게 下賜(하사)받은 御賜花(어사화)를 保存(보존)하고 있다.
같이 보기
暗行御史(암행어사)
金樽美酒(금준미주) 千人血(천인혈)
封庫罷職(봉고파직)
成安義(성안의)
廣寒樓(광한루)
春香歌(춘향가)
春香(춘향)
春香傳(춘향전)
이연경(李延慶)
김굉필(金宏弼)
강복성(康復誠)
성섭]과 南原(남원) 妓生(기생) 春香(춘향)의 逸話(일화)와 그밖에 薄色(박색) 醜女(추녀) 說話(설화), 艶情說話(염정 설화), 暗行御史(암행어사) 說話(설화), 官奪民女(관탈 민녀) 說話(설화) 等(등)이 합쳐져 판소리 《春香歌(춘향가)》로 發展(발전)하였고, 판소리 辭說(사설)이 小說(소설)로 脚色(각색)되어 傳(전)하고 있다. 이런 <說話(설화)→판소리→小說(소설)>의 변이(變異) 過程(과정)에서 여러가지 說話(설화)가 李夢龍(이몽룡)과 春香(춘향)을 中心(중심)으로한 基本(기본)Plot( 플롯:陰謀(음모)에 追加(추가)되며 하나의 판소리로 응집(凝集)된 것인데, 특히 當時(당시) 流行(유행)하던 암행어사설화(暗行御史說話)에 열녀설화(烈女說話)의 要素(요소)가 揷入(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異本(이본)들
春香傳(춘향전)은 板本(판본) 이본(異本)이 4種(종), 寫本(사본)이 約(약) 20여 종, 活字本(활자본)이 50여 종, 飜譯本(번역본)이 6, 7종이 있는데 代表的(대표적)인 것은 經板(경판) 《春香傳(춘향전)》과 完板(완판)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이다. 또한 作者未詳(작자미상)의 漢文本(한문본)인 懸吐漢文春香傳(현토한문춘향전)이 1次(차) 1917年(년), 2次(차) 1923年(년)으로 創作(창작), 發表(발표)年度(연도)로 標記(표기)되어 있으며, 1957年(년) 이가원(李家源)과 조윤제(趙潤濟)의 完板(완판) 교주본(校註本)이 各各(각각) 나왔고, 1958年(년) 구자균(具滋均)이 《문리논집(文理論集)》 第(제)3輯(집)에 京板本(경판본)을 주석(註釋)한 것이 있다. 民音社(민음사)에서 펴낸 《春香傳(춘향전)》에도 京板(경판) 《春香傳(춘향전)》과 完板(완판)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이 가톨릭Catholic大學校(대학교) 國語國文學科(국어국문학과) 송성욱 敎授(교수)가 現代國語(현대국어)로 옮긴 板本(판본)과 影印本(영인본)으로 收錄(수록)되어 있다.
文學史(문학사)에서 가지는 뜻
春香傳(춘향전)은 李夢龍(이몽룡)이 南原(남원) 廣寒樓(광한루)에서 春香(춘향)이가 5月(월)에 細柳(세류)(가는 버드나무)처럼 아름다움을 자랑하면서 그네를 타는 모습을 보고 한눈에 愛情(애정)을 느낀, 社會(사회)階級(계급)을 넘은 純粹(순수)한 戀愛(연애)와 더불어 當時(당시) 庶民(서민)들의 꿈과 情緖(정서)를 보여주는 作品(작품)으로 朝鮮(조선) 小說(소설)의 最大(최대) 傑作(걸작)으로 評價(평가)되고 있으며, 隨筆家(수필가)로 活躍(활약)한(隨筆(수필) 舞詠무영록[rock:1950年代(년대)에 美國(미국)에서 發生(발생)하여 世界(세계) 各地(각지)에 퍼진 大衆音樂(대중음악) 樣式(양식)] 尙虛(상허) 李泰俊(이태준) 作家(작가)는 階級間(계급간)의 對立(대립)과 鬪爭(투쟁)으로 읽기도 하는 等(등) 國文學(국문학)을 硏究(연구)하는 學者(학자)들이 多樣(다양)하게 解釋(해석)할 정도로 讀者(독자)들의 至極(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다.
主要(주요) 登場人物(등장인물) 紹介(소개)
成春香(성춘향): 退妓(퇴기) 月梅(월매)의 딸. 생김새가 아름다우며 詩畫(시화)에도 能(능)함, 初期(초기)의 作品(작품)에는 妓生(기생)이라 姓氏(성씨)가 없었으나 뒤에 成氏(성씨) 라는 性(성)을 붙여 成春香(성춘향)이 되었다.
李夢龍(이몽룡): 南原府使(남원부사)의 아들. 훤칠한 외모에 글재주가 뛰어난 人物(인물), 初期(초기) 作品(작품)에는 成道令(성도령), 成夢龍(성몽룡)으로 나타났다가 뒤에 李夢龍(이몽룡)으로 고친다.
香丹(향단): 成春香(성춘향)이 부리는 奴婢(노비). 春香(춘향)이와 李夢龍(이몽룡)이 서로 사랑하여 첫날밤을 보낸 날, 李夢龍(이몽룡)이 暗行御史(암행어사)가 되어 거지꼴을 하고 온 날 밥상을 차림으로써 둘 사이의 사랑을 잇는 輔助(보조)人物(인물) 役割(역할)을 한다.
幇子(방자): 李夢龍(이몽룡)이 부리는 奴婢(노비). 幇子(방자)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朝鮮時代(조선시대)에 官家(관가)에서 일하던 심부름꾼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幇子(방자)라는 職責(직책)은 官家(관가)에 駐屯(주둔)하고 있으면서 地方官(지방관)이 하는 이런저런 일 中(중) 肉體勞動(육체노동)을 擔當(담당)하거나 暗行御史(암행어사)와 같이 돌아다니면서 暗行御史(암행어사)를 補佐(보좌)하는 個人(개인) 祕書(비서) 役割(역할)을 하는 等(등) 官吏(관리)들이 有事時(유사시)에 才量(재량)껏 使用(사용)하라고 存在(존재)하는 職責(직책)이다. 實際(실제) 민음사에서 펴낸 春香傳(춘향전)에 실린 揷畫(삽화)에는 幇子(방자)가 官廳(관청)에서 일하는 심부름꾼 차림을 하고 있다.
月梅(월매): 妓生(기생), 南原(남원)의 退妓(퇴기) 出身(출신)으로, 南原(남원)에서 酒幕(주막)을 運營(운영)한다. 成參判(성참판)과의 사이에서 成春香(성춘향)을 낳았음.
卞學道(변학도): 統稱(통칭) 卞(변)사또. 李夢龍(이몽룡)의 아버지가 다른 官職(관직)으로 補職移動(보직이동)을 하자 그 後任(후임)으로 赴任(부임)한 南原府使(남원부사). 貪官汚吏(탐관오리)로 酒色(주색)에 빠져 百姓(백성)들을 돌보지 않는다. 게다가 稅金(세금)을 무겁게 徵收(징수)해서 잔치를 즐기길 좋아하기 때문에 百姓(백성)들이 塗炭(도탄)에 빠지게 되고 成春香(성춘향)에게 强制(강제)로 守廳(수청)을 들게 하지만 成春香(성춘향)이 拒絶(거절)하자 監獄(감옥)에 가둔다
雲峰(운봉): 卞學道(변학도)의 同僚(동료) 사또로 雲峰(운봉) 縣監(현감). 눈치가 굉장히 빨라서 李夢龍(이몽룡)이 卞學道(변학도)의 행적을 비꼬는 時調(시조)를 읊자 재빨리 逃亡(도망)친다.
곡성: 卞學道(변학도)의 同僚(동료) 사또로 谷城(곡성) 府使(부사). 굉장히 소심하다.
줄거리summary要約(요약)
이도령과 春香(춘향)이 作別(작별)하는 場面(장면)
이야기 始作(시작)
肅宗大王(숙종대왕) 卽位(즉위) 初(초)에 退妓(퇴기) 月梅(월매)는 子息(자식)이 없어 每日(매일) 祈禱(기도)를 하여 成參判(성참판)과의 사이에서 딸 春香(춘향)을 낳았다. 春香(춘향)은 어릴 때부터 容貌(용모)가 아름답고 詩(시)와 그림에 能(능)하여 온 고을이 春香(춘향)을 稱頌(칭송)했다. 어느 봄날 사또 子弟(자제) 李(이)도령이 廣寒樓(광한루)에 봄 구경 갔다가 그 곳에서 그네를 타는 春香(춘향)을 보고 春香(춘향)의 아름다움에 반해 幇子(방자)를 시켜 春香(춘향)을 데려오게 하지만, 春香(춘향)은 그에 應(응)하지 않았다. 李(이)도령은 그 날로 春香(춘향)의 집으로 찾아가 月梅(월매)에게 春香(춘향)과 百年佳約(백년가약)을 맺겠다고 盟誓(맹세)하고 春香(춘향)과 夫婦(부부)의 戀(연)을 맺었다. 그러던 어느 날, 父親(부친)의 南原府使(남원부사) 任期(임기)가 끝나자 李(이)도령과 春香(춘향)은 離別(이별)을 맞이했다.
헤어짐
李(이)도령은 春香(춘향)과 다시 만날 것을 期約(기약)하고 서울로 떠났다. 새로 赴任(부임)한 卞學道(변학도)는 萬事(만사) 제쳐두고 이름난 妓生(기생)들을 불러 모아 連日(연일) 잔치를 벌이는데, 그 渦中(와중)에 예쁘기로 소문난 春香(춘향)도 불려가게 됐다. 卞學道(변학도)는 春香(춘향)이 妓生(기생)의 딸이므로 春香(춘향) 또한 妓生(기생)이나 마찬가지이니 守廳(수청)을 들라고 했다, 그러나 春香(춘향)은 自身(자신)은 一夫從事(일부종사)해야하니 守廳(수청)을 들 수 없다고 拒絶(거절)하여 獄(옥)에 갇히게 되고, 禍(화)가 난 卞學道(변학도)가 春香(춘향)을 自身(자신)의 生日(생일)날 處罰(처벌)하겠다고 했다.
葛藤解消(갈등해소)
한편 漢陽(한양)으로 간 李(이)도령은 壯元及第(장원급제)하여 暗行御史(암행어사)로 다시 南原(남원)에 내려오게 됐다. 李(이)도령은 卞學道(변학도)의 橫暴(횡포)와 春香(춘향)이 겪은 일들을 모두 듣게 되지만 自身(자신)의 身分(신분)을 속이기 위해 거렁뱅이 行世(행세)를 하며 넋 나간 사람처럼 行動(행동)했다. 春香(춘향)은 그런 그를 怨望(원망)하기는커녕 여전히 변치 않는 사랑을 보여주며 月梅(월매)에게 그를 極盡(극진)히 待接(대접)해라주라고 付託(부탁)하기까지 했다. 드디어 卞學道(변학도)의 生日(생일)잔치 날, 남루한 行色(행색)을 한 李(이)도령이 들어와 自身(자신)이 詩(시)를 한 首(수) 지을 테니 술 한 잔만 待接(대접)해 달라고 하며 卞學道(변학도)가 百姓(백성)을 逼迫(핍박)하는 것을 꼬집는 詩(시)를 지었다. 卞學道(변학도)는 그 詩(시)를 보고도 李(이)도령의 正體(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春香(춘향)을 불러내라 命令(명령)하고, 곧 暗行御史(암행어사) 李(이)도령이 出頭(출두)했다. 卞學道(변학도)와 그 무리들은 포박당하고 李夢龍(이몽룡)은 春香(춘향)이 自身(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알고 自身(자신)의 守廳(수청)을 들라했다. 春香(춘향)이 拒絶(거절)하고 李夢龍(이몽룡)이 滿足(만족)해하며 事實(사실)을 밝히자, 春香(춘향)은 御使(어사)인 李(이)도령을 알아보게 되고, 둘은 기쁘게 再會(재회)하게 되었다. 春香(춘향)은 굳은 節槪(절개)로 因(인)해 稱頌(칭송)받고 李(이)도령과 함께 幸福(행복)하게 살았다.
눈여겨 볼 部分(부분)
妓生(기생)의 딸인 春香(춘향)과 兩班子弟(양반자제)인 夢龍(몽룡)의 '身分(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은 사랑.
百姓(백성)을 專制的(전제적)으로 支配(지배)하던 卞學道(변학도)가 暗行御史(암행어사)인 李夢龍(이몽룡)에 依(의)해 處罰(처벌)당하는 것.
목숨의 威脅(위협)을 받으면서도 굳은 사랑과 自身(자신)의 意志(의지)를 지키는 春香(춘향)의 모습.
作中(작중) 李夢龍(이몽룡)이 읊은 時調(시조).
“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황금술잔에 담겨있는 맛좋은 술은 천명 백성의 피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옥쟁반에 담긴 맛있는 고기는 만 맥성의 기름이라.)
촉루락시(燭淚落時)에 민루락(民淚落)이요,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피눈물이 떨어지고,)
가성고처(歌聲高處)에 원성고(怨聲高)라. (노랫소리 높은곳에 원망소리 드높아진다.) ”
— 《作中(작중) 李夢龍(이몽룡)이 읊은 時調(시조)》—
모든 文學(문학) 作品(작품)에서 그렇듯이, 春香傳(춘향전) 亦是(역시) 當代(당대)의 時代相(시대상)을 反影(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作者(작자)와 年代(연대) 모두 未詳(미상)이지만, 春香傳(춘향전)은 全(전) 百姓(백성)의 合作品(합작품)으로 推測(추측)된다. 어느 時代(시대)에든 不可能(불가능)했던 身分(신분)의 差異(차이)를 뛰어넘은 사랑을 그린 점이나, 百姓(백성)을 專制的(전제적)으로 支配(지배)하던 貪官汚吏(탐관오리)가 痛快(통쾌)하게 處罰(처벌)당하는 모습 等(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百姓(백성)들은 文學作品(문학작품)을 通(통)해 自身(자신)들이 꿈꾸는 것들을 代理(대리)滿足(만족)했을 것이다. 그리고 목숨의 威脅(위협)을 받으면서도 굳은 意志(의지)를 지키는 春香(춘향)의 모습은 烈女(열녀)의 倫理觀(윤리관)을 넘는 사랑에 대한 信念(신념)과 解放(해방)의 意志(의지)를 볼 수 있다.
其他(기타)
薄色(박색) 醜女(추녀) 說話(설화)
薄色(박색)의 處女(처녀)로 이웃집 도령을 戀慕(연모)하였으나, 도령에게 拒絶(거절)당하자 물에 投身(투신)하여 自決(자결)하였다는 傳說(전설)이다. 다른 이름은 薄色(박색) 春香(춘향) 說話(설화)이다. 春香傳(춘향전)의 素材(소재)에 影響(영향)을 준 民譚(민담)은 南原(남원) 周邊(주변) 地域(지역)에서 傳(전)하던 醜女(추녀)說話(설화)였다. 이를 一名(일명) 薄色(박색)春香(춘향) 說話(설화)라고도 한다. 正確(정확)한 年代(연대)를 알수 없는 事件(사건)으로, 成以性(성이성)과 南原(남원) 妓生(기생) 보다 앞선 時代(시대)부터 全羅北道(전라북도) 南原(남원)과 周邊(주변) 地域(지역)에 傳(전)해지던 傳說(전설)이었다.
兩班(양반)의 아들 혹은 이웃집 총각을 戀慕(연모)하던 女性(여성)은, 自身(자신)의 마음을 兩班(양반)의 아들 또는 그 이웃집 총각에게 告白(고백)하였으나 매몰차게 拒絶(거절)당한다. 失望(실망)한 女性(여성)은 江(강)에 몸을 던져 自殺(자살)한다. 이때부터 그女(녀)의 넋을 달래기 위한 慰靈祭(위령제)를 지냈고, 春香(춘향)이 戀慕(연모)하던 男性(남성)과 幸福(행복)하게 산다는 主題(주제)로 劇(극)을 만든 것이 口傳(구전)을 通(통)해서 내려와 春香傳(춘향전)의 誕生(탄생)에 一部(일부) 寄與(기여)하였다.
成以性(성이성)과 南原(남원)의 妓女(기녀)
朝鮮(조선) 後期(후기)의 文臣(문신), 學者(학자) 成以性(성이성)과 南原(남원) 妓生(기생)의 이야기를 뼈대로 했다는 主張(주장)이 있다. 다음은 그 主張(주장)의 內容(내용)이다. 春香傳(춘향전)이 兩班(양반)의 체신을 상하게 한다는 여론이 나오자 朝廷(조정)은 成(성)도령, 成夢龍(성몽룡)이라고 parody패러디[諷刺的(풍자적) 改作(개작) 詩文(시문)]한 作家(작가)와 소리꾼, 歌客(가객)들을 罰(벌)주게 되면서 成夢龍(성몽룡)을 李夢龍(이몽룡)으로 바꿔서 上演(상연)하게 되었다. 成以性(성이성)은 南原府使(남원부사)인 아버지 成安義(성안의)를 따라 왔다가, 南原(남원)의 妓生(기생) 春香(춘향)과 情分(정분)을 맺게 된다. 그러나 春香傳(춘향전)에서 貞烈夫人(정렬부인)으로 封爵(봉작)되고 李(이)도령(또는 成(성)도령)과 幸福(행복)한 餘生(여생)을 보낸다는 story(스토리)와는 多少(다소) 다르다. 成以性(성이성)은 아버지 成安義(성안의)가 承政院承旨(승정원승지)로 發令(발령)되면서 漢城府(한성부)漢城(한성)으로 되돌아가게 되었고 以後(이후) 連絡(연락)이 끊겼다. 한참 뒤 暗行御史(암행어사)로 全羅道(전라도)로 내려오게 된 成以性(성이성)은 옛날 南原(남원)에서의 妓生(기생)의 일을 搜所聞(수소문)하여 찾아보지만 찾지 못한다. 이때 成以性(성이성)은 南原(남원)에서 예전에 만났던 妓女(기녀)(혹은 酒母(주모)를 다시 만나지만 春香(춘향)의 行方(행방)을 찾아낼수 없었다. 그에 依(의)하면 이미 새로운 사또의 守廳(수청)을 들라는 强要(강요)를 拒絶(거절)했다가 獄死(옥사)했다고도 하고, 處刑(처형)당했다고도 한다.
關聯作品(관련작품)
原作(원작)에서 派生(파생)된 公演藝術(공연예술) 作品(작품)들
春香(춘향)이와 李(이)도령이 烏鵲橋(오작교)에서 만나는 場面(장면)
春香傳(춘향전)은 朝鮮時代(조선시대)에 판소리 《春香歌(춘향가)》로 널리 불렸으며, 只今(지금)도 판소리 다섯 마당 中(중) 하나로 認定(인정)받고 있다(같이 보기의 《春香歌(춘향가)》 參照(참조). 以外(이외)에도 20世紀(세기) 들어 판소리를 바탕으로 여러 登場人物(등장인물)이 出演(출연)하고 國樂(국악) 管絃樂(관현악)의 伴奏(반주)가 곁들여지는 形態(형태)의 唱劇(창극)으로도 公演(공연)되고 있다.
唱劇(창극)에 影響(영향)을 미친 西洋(서양) opera(오페라)나 musical(뮤지컬) 等(등)의 形態(형태)로 再誕生(재탄생)시킨 作品(작품)도 여러 편 있으며, 主要(주요) 作品(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opera(오페라) 《春香傳(춘향전)》 (현제명(玄濟明) 作曲(작곡). 1949年(년)
opera(오페라)《春香傳(춘향전)》 (장일남 作曲(작곡). 1966年(년)
musical(뮤지컬)뮤지컬 《대춘향전》 (김희조 작곡. 1968)
opera(오페라) 《春香傳(춘향전)》 朴準相(박준상) 作曲(작곡). 1986年(년)
신창악 opera(오페라) 《春香傳(춘향전)》 (김동진 作曲(작곡). 1993年(년)
大韓民國(대한민국) 外(외)에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日本(일본)에서 創作(창작)된 作品(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歌劇(가극)opera(오페라) 《春香(춘향)》 (리면상 作曲(작곡). 1948年(년)
民族歌劇(민족가극) 《春香傳(춘향전)》 (平壤藝術團(평양예술단) 명의의 집체작. 1988年(년)
opera(오페라) 《春香傳(춘향전)》 (다카기 도로쿠(高木東六) 作曲(작곡). 1947年(년)
唱劇(창극) '대춘향전'
1946年(년) 1月(월) 大韓國樂院(대한국악원) 主催(주최)로 國樂(국악)人(인)을 總網羅(총망라), 國劇社(국극사)의 創立公演(창립공연)으로 上演(상연)했다. 李(이)도령에 정남희(丁南希), 임방울, 春香(춘향)에 신숙(愼淑), 香壇(향단)에 임수(任洙), 幇子(방자)에 오태석(吳太石), 사또에 조상선(趙相善), 月梅(월매)에 임소향(林小香), 임유앵(林柳鶯)이 扮裝(분장)했다. 이 <대춘향전>은 解放(해방)의 感激(감격)과 우리의 音樂(음악), 우리의 唱劇(창극)을 되찾았다는 기쁨도 作用(작용)했거니와, 새로운 意欲(의욕)과 熱演(열연)으로 크게 歡迎(환영)받았다.
春香(춘향)을 parody패러디[諷刺的(풍자적) 改作(개작) 詩文(시문)]한 作品(작품)
日本(일본)의 漫畫(만화) 創作(창작) 集團(집단)인 클램프(clamp:クランプ)가 1992年(년)에 發表(발표)한 《신춘향전(新・春香伝)》 은 春香傳(춘향전) 原典(원전)을 參考(참고)한 作品(작품)이나, 거의 새롭게 創作(창작)되었다. 春香(춘향)은 受動的(수동적)인 女性(여성)이 아닌 武藝(무예)에 能(능)하고 豁達(활달)한 性格(성격)의 人物(인물)로 設定(설정)되어 있으며, 原作(원작)에는 없던 사또의 아들 等(등) 새로운 人物(인물)들이 追加(추가)되어 있다. 全般的(전반적)으로 fantasy(판타지)小說(소설) 풍의 story(스토리) 展開(전개)를 取(취)하고 있으며, KBS 2TV의 月火(월화)Mini series미니시리즈) 《Sassy Girl Chun-hyang(쾌걸春香(춘향)》도 2005年(년) 上半期(상반기) 放映作(방영작)으로 視聽率(시청률) 1位(위)를 記錄(기록)한 바 있다.
clamp(클램프:집게) 原作(원작)의 animation(애니메이션:생기) 《Tsubasa Chronicle(츠바사 크로니클)》의 〈Nayuthaya(나유타야 국(國)〉 編(편)에도 以前(이전) 作品(작품) 登場人物(등장인물)이 그대로 登場(등장)하는 Parallel World(패러렐 월드)가 設定(설정)되어 春香(춘향)이 登場(등장)하며, 여기서 登場(등장)하는 春香(춘향)은 原作(원작) 《新春香傳(신춘향전)》의 마지막에 收錄(수록)된 episode(에피소드)에 나오는 어린 時節(시절) 모습으로 登場(등장)한다.
KBS 2TV 月火(월화)Mini series미니시리즈) 《Sassy Girl쾌걸春香(춘향)》 (홍정은, 홍미란 劇本(극본). 전기상 演出(연출). KBS drama(드라마)本部(본부), 2005年(년)
諷刺(풍자) 文學(문학)
兩班(양반) 社會(사회)에 대한 嘲笑(조소)
春香傳(춘향전)에서 主人公(주인공)인 도령(李(이)도령 또는 成(성)도령)은 春香(춘향)을 誘惑(유혹)하려 하면서 失手(실수)를 보인다. 이런 失手(실수)는 兩班(양반) 社會(사회)에 대한 諷刺(풍자), 희화화[戱畵化:어떤 事物(사물)이나 사람이 誇張(과장)되거나 우스꽝스럽게 描寫(묘사)됨]로 드러난다. 主人公(주인공)인 도령은 幇子(방자)로부터 온갖 戲弄(희롱)과 놀림을 당하고도 아무런 對應(대응)도 못하고 노리개감이 된다.
또 도령의 行動(행동)은 兩班(양반)의 爲先(위선)을 暴露(폭로)하는 것이다. 이어 地方官(지방관)들의 橫暴(횡포)를 暴露(폭로)하고 그 威勢(위세)堂堂(당당)하던 守令(수령)들도 더 큰 權力(권력)(暗行御史(암행어사) 앞에서는 人事不省(인사불성)이 되는 一次的(일차적)인 人間相(인간상)을 보여준다.
身分上昇(신분상승)에 대한 希望(희망)
妓生(기생)의 딸인 春香(춘향)은 兩班(양반) 家門(가문)에 들어가 어엿한 며느리가 된다. 春香傳(춘향전)에서 春香(춘향)은 妓生(기생)의 딸이다. 原典(원전)에는 賤民(천민)인 妓生(기생)의 後孫(후손)이지만 뒤에 追加(추가)된 成參判(성참판)의 딸 說(설)을 基準(기준)으로 해도 어머니가 賤人(천인)인 妓生(기생)이다. 兩班(양반)으로 看做(간주)한다고 해도 春香(춘향)은 成參判(성참판)의 서녀(庶女)로서 庶孼(서얼)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는 現實(현실)에서는 不可能(불가능)한 일로 身分上昇(신분상승)에 대한 慾求(욕구)가 스며들어 간 것으로 解釋(해석)된다 實際(실제) 京板本(경판본)에서는 月梅(월매)가 따님의 身分上昇(신분상승)을 생각하면서 李夢龍(이몽룡)과 春香(춘향)의 사랑을 許諾(허락)한다...
烈女春香守節歌(열녀춘향수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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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준미주 천인혈
春香歌(춘향가), 廣寒樓(광한루), 成以性(성이성), 春香墓(춘향묘)
南原(남원)의 廣寒樓(광한루)는 平壤(평양) 浮碧樓(부벽루), 密陽(밀양) 嶺南樓(영남루), 晉州(진주) 矗石樓(촉석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4大(대) 樓閣(누각)의 하나로 꼽힌다. 廣寒樓(광한루) 하면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것은 春香(춘향)과 李夢龍(이몽룡)이다. 하지만 廣寒樓(광한루)의 가장 象徵的(상징적)인 것은 달이다. 廣寒樓(광한루)에 오르면 四方(사방) 天地(천지)에 여러 扁額(편액)과 懸板(현판)들이 걸려있는데 重要(중요)한 扁額(편액)과 詩文(시문)은 달과 關聯(관련)되는 內容(내용)이 많다. ‘광한루((廣寒樓)’,‘계관(桂觀)’,‘청허부(淸虛府)’ 모두가 달과 關聯(관련)된 名稱(명칭)이다.
南原(남원) 廣寒樓(광한루)
南原(남원)의 廣寒樓(광한루)는 平壤(평양) 浮碧樓(부벽루), 密陽(밀양) 嶺南樓(영남루), 晉州(진주) 矗石樓(촉석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4大(대) 樓閣(누각)의 하나로 꼽힌다. 「廣寒樓記(광한루기)」를 보면 南原府使(남원부사) 신감(申鑑)은 “廣寒樓(광한루)의 빼어난 景致(경치)는 三南(삼남) 一帶(일대)에서 으뜸이다”라고 했고, 유동연(柳東淵)은 “천상(天上)에는 廣寒樓(광한루)라는 큰 宮殿(궁전)이 있고, 廣寒樓(광한루) 앞에는 烏鵲橋(오작교)가 있으며, 옆에는 붉은 계수나무가 있다”고 하여 廣寒樓(광한루)가 地上(지상)에 存在(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存在(존재)하는 宮殿(궁전)으로 比喩(비유)하고 있다. 이처럼 廣寒樓(광한루)는 예나 只今(지금)이나 우리나라를 代表(대표)하는 樓亭(누정)으로 評價(평가)된다.
廣寒樓(광한루) 하면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成春香(성춘향)과 李夢龍(이몽룡)이 아닐까. 嚴格(엄격)한 朝鮮(조선) 儒敎(유교)社會(사회)에서 身分(신분)을 뛰어넘는 兩班(양반)과 妓生(기생) 出身(출신)의 사랑 이야기. 實際(실제)로 이루어지기 쉽지 않은 일이기에 머릿속에 오래 記憶(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廣寒樓(광한루)에는 牽牛(견우)와 織女(직녀)의 만남으로 象徵(상징)되는 烏鵲橋(오작교)가 세워져 있고, 朝鮮(조선) 後期(후기) 春香傳(춘향전)의 舞臺(무대)가 되었다.
事實(사실) 廣寒樓(광한루)하면 가장 象徵的(상징적)인 것은 달이다. 광한루(廣寒樓)의 意味(의미)가 그러하고, 廣寒樓(광한루)에 걸려있는 커다란 扁額(편액)들이 그러하고, 廣寒樓(광한루)를 노래한 詩文(시문)들이 그러하다. 廣寒樓(광한루)는 처음 이름은 광통루(廣通樓)였다. 우리나라 催告(최고)의 宰相(재상)으로 알려진 黃喜(황희)가 1418年(년) 故鄕(고향)인 南原(남원)에 流配(유배) 生活(생활)을 하면서 조그마한 樓亭(누정)을 지은 것이 廣寒樓(광한루)의 始作(시작)이었다. 그 後(후) 1434年(년) 南原府使(남원부사)인 閔汝恭(민여공)이 改築(개축)하였고, 1444年(년) 鄭麟趾(정인지)가 樓亭(누정)에 올라 “달나라에 있는 宮殿(궁전)인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가 바로 이곳이 아닌가”라고 그 아름다움을 월궁(月宮)에 比喩(비유)한 것에서 ‘廣寒樓(광한루)’라는 名稱(명칭)이 由來(유래)되었다.
廣寒樓(광한루)의 漏刻(누각)에 오르면 四方(사방) 天地(천지)에 여러 扁額(편액)과 懸板(현판)들이 걸려있다. 廣寒樓(광한루)의 詩文(시문)은 모두 200여 首(수)가 넘는다고 한다. 그 中(중) 가장 큰 글씨로 쓴 ‘廣寒樓(광한루)’, ‘계관(桂觀)’, ‘청허부(淸虛府)’라는 扁額(편액)이 눈에 띤다. 正面(정면)의 ‘廣寒樓(광한루)’ 扁額(편액)은 宣祖(선조)의 사위이자 領議政(영의정) 신흠(申欽)의 아들인 신익성(申翊聖)이 쓴 것인데, 세 扁額(편액) 모두 달과 聯關(연관)된 것이다. ‘廣寒樓(광한루)’와 ‘淸虛府(청허부)’는 물론이고 ‘桂冠(계관)’도 桂樹(계수)나무가 있는 달나라 神宮(신궁)을 意味(의미)하는 것이다.
南原(남원) 廣寒樓(광한루) 2層(층) 樓閣(누각) 內部(내부)
南原(남원) 廣寒樓(광한루) 桂冠(계관) 懸板(현판)
廣寒樓(광한루)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詩文(시문)들도 달과 關聯(관련)되는 內容(내용)이 많다. 朝鮮(조선) 後期(후기)의 文人(문인) 이경여(李敬輿)는 '桂宮(계궁)'에, 홍석기(洪錫箕)는 '月宮(월궁)'에 比喩(비유)하여 廣寒樓(광한루)를 노래했다.
銀河水(은하수) 떠 있는 차가운 밤 廣寒樓(광한루)
烏鵲橋(오작교)가 北斗(북두)와 牽牛(견우) 사이에 있네.
天上(천상)의 사람들 좋은 곳 遊覽(유람)하면서
桂宮(계궁)에 달을 千年(천년)이나 붙들어 두었네. (李敬輿(이경여)
龍城(용성)의 南(남)쪽 물가에 있는 廣寒樓(광한루)
樓閣(누각) 아래 구름다리로 푸른 물을 건너네.
銀河水(은하수)가 天上(천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月宮(월궁)이 오히려 世上(세상)에 있네. (洪錫箕(홍석기))
現在(현재)의 廣寒樓(광한루)는 여러 次例(차례) 重修(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582年(년) 全羅(전라)觀察使(관찰사) 정철(鄭澈)은 湖水(호수)에 물을 끌어 들여 三神山(삼신산)을 만들었고, 南原府使(남원부사) 張義國(장의국)은 烏鵲橋(오작교)를 築造(축조)하였다. 하지만 1597年(년) 丁酉再亂(정유재란) 當時(당시)에 모두 불타버린 것을 1626年(년) 南原府使(남원부사) 신감(申鑑)이 復元(복원)한 後(후) 여러 次例(차례) 重修(중수)가 이루어졌다.
現在(현재) 廣寒樓(광한루)는 正面(정면) 5칸, 側面(측면) 4칸의 팔작지붕팔작지붕(八作─:지붕 위에 까치 박공이 달린 三角形(삼각형)의 벽이 있는 지붕]이다. 重修(중수)하면서 익루(翼樓)를 追加(추가)로 設置(설치)하여 마치 朝鮮(조선)王陵(왕릉) 丁字閣(정자각)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樓閣(누각)과 달리 2層(층) 樓閣(누각)의 기둥 사이에는 門(문)을 달아 겨울에 門(문)을 내리면 커다란 房(방)과 같은 모습이고, 여름에 門(문)을 올리면 널따란 大廳(대청)마루가 되는 形態(형태)이다. 廣寒樓(광한루)는 寶物(보물)로, 연못을 包含(포함)한 廣寒樓苑(광한루원) 一帶(일대)는 名勝(명승)으로 指定(지정)되어 있다.
丁字閣(정자각) 模樣(모양)의 廣寒樓(광한루)
梁芳秀(양방수) 成春香(성춘향)과 李夢龍(이몽룡)을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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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승철~목 2021-04-01 오전 12:57 ~ 참 좋은 자료입니다. 늘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