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2 -
음식은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엄마는 겉보기엔 지독한 잔소리꾼이었지만 ―자신의 억지스러운 기대에 부응하도록 나를 끊임 없이 몰아 붙였던 탓에 ― 내 입맛에 꼭 맞춰 점심 도시락을 싸주거나 밥상을 차려줄 때만큼은 엄마가 나를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모르지만, H마트에만 가면 어쩐지 한국 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이런 저런 농산물을 어루만지면서 참외니 단무지니 하는 말들을 중얼거리고, 친숙한 만화 그림이 그려진 형형색색의 반짝이 봉지에 담긴 과자들로 쇼핑 카트를 채운다.
그러면서 엄마가 죠리퐁 봉지에 든 작은 플라스틱 카드로 숟가락을 만들어 캐러멜맛 뻥튀기 퍼먹는 법을 가르쳐주고, 나는 아니나다를까 그걸 셔츠 위로 와그르를 쏟아버려 자동차를 온통 엉망으로 만들었던 때를 떠올린다, 엄마가 어릴 때 즐겨 먹었다던 과자들과, 그때의 나만큼 어렸을 적에 엄마는 어땠을지 상상해보려고 무진 애를 쓰던 기억도, 그때 나는 엄마라는 사람을 온전히 그려내기 위해, 엄마가 한 일이라면 뭐든지 다 좋아하고 싶었더랬다.
나의 슬픔은 뜬금없는 순간에 들이닥치기 일쑤다,나는 욕조에 엄마의 머리카락이 허다하게 남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게 어떤 기분인지에 대해서는, 5주 동안 날마다 병원에서 밤을 지새운 일에 대해서는 태연한 얼굴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H마트에서 낯모르는 아이가 뻥튀기를 담은 비닐봉지를 양손에 하나씩 집어드는 모습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린다.
원반 모양의 그 앙증맞은 쌀과자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엄마가 내 곁에 있고, 방과후에 둘이서 동글납작한 스티로폼처럼 생긴 과자를 한입 크기로 입에 넣고 아작아작 씹으면 그것이 혀 위에서 설탕처럼 사르르 녹아버린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식당가에서 어느 할머니가 해물 짬뽕을 먹다가 새우 머리와 홍합 껍데기를 자기 밥뚜껑에 건져내는 모습을 보면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머리카락은 곱슬곱슬한 반백이고, 양쪽 광대뼈는 복숭아마냥 볼록 솟앗고, 눈썹에는 오래된 문신 자국이 프르스럼하게 남아 있는 얼굴. 나는 70대의 엄마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한국 여자들이 할머니가 되면 정해진 수순처럼 따르는 그 똑 같은 파마머리 대열에 엄마도 동참했을지도, 엄마가 팔장을 끼고 아담한 몸을 내게 기댄 채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식당가로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우리는 둘 다 엄마가 '뉴욕 스타일'이라고 말한 올 블랙 차림일 것이다.. 엄마가 생각하는 뉴욕 이미지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유행하던 시절에 영영 머물러 있었으니까, 엄마는 이태원 뒷골목에서 구입한 짝퉁 핸드백 아니라 평생 그리도 갖고 싶어하던 샤넬 누빔 가죽 진품 핸드백을 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