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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점(1634~1713), 송경 송균, 송宋清 송길금 송위금 등 송씨 일가신찰권.宋 荦(1634~1713)、宋 炌[清初]、宋 筠(1681~1760)、宋 [清初]、宋吉金(1672~1713)、宋韦金(1680~1741)等 宋氏全家信札卷
출처:서령경매 소스: EK 이페어케이 플러스
도록 번호: 1401
평가 RMB: 800,000-1,000,000
거래가격 RMB: 920,000 (수수료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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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점(1634~1713), 송경[, 청초), 송균 (, 1681~1760), 송(宋清, 청초), 송길금(宋吉金, 1672~1713), 송위금(宋金金, 1680~1741) 등 송씨 일가신찰권.
종이책 두루마리
식문: 1. 별래수력 다년, 서로 깊이 생각하여 현질외지에 동정이 있으리라 생각함.서문 안방은 지금 이미 장민·복산·문강의 삼공단사로 바뀌었는데, 아들이 돌아가면 길일을 택하여 공업을 일으키고, 둘째 형과 현질부 두 명을 상하였다.둘째는 현질 종신대사도 완결시킨다..솔직히 들은 바가 없으니 절절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이름은 따로.충.도인:목중(주)
2. 시메바이는 수개월을 거르지 마라, 운수지념은 날마다 잠들어 있다.노년의 웅정 소리가 우거져 높은 승진에 올랐고, 동생도 영광이 있었다.장중께서 귀한 편지를 받들고, 아울러 가혜를 욕되게 하였으나, 지금까지도 여전히 깊이 취하여 배불리 먹었다.이에 회색으로 말미암아 편지로 고치고 사의를 표하며 닥치는 대로 두리번거린다.어찌 승전하리오. 제수께서 구구를 삼가 주시옵소서.경충.
3. 현인의 조카 승전음을 듣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던 옛 조상들의 덕이 쌓여서 인을 쌓은 탓도 있고, 또한 내 조카가 소일심심심독서의 보답도 있다.호관은 북상하여 팔의 아픔이 있어 미처 치하하지 못하였고, 며칠 만에 현질에게 편지를 받아 전시하니 뿌듯하고 뿌듯하였다.북경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현자 조카가 그 안에 있는 것이 지극히 타당하다.네, 무슨 일로 다시 여쭈었습니까?시림소우(詩林仅)는 우매한 곳에 단지 한 편만이 남아 있고, 수필로 비평하여, 할 수 없다.나누어 부치다. 서적 시장의 평가가 매우 많아, 남하할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한 부를 찾아야 한다.축하의 귀와 웃음.부원장은 한 통, 책은 두 통, 형산선생치공자는 각각 한 통씩 보내는데, 나누어 줄 수 있고, 선포하지 않는다.5월 23일, 청륜관이 수발하다.
4. 해가 바뀌면 그리움이 쌓이고 한을 인수할 때가 되니 온 집안이 길함을 안다.다섯 조카가 미나리를 따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나, 술 한 잔을 얻어 현제에게 축하를 드리지 못하니, 어떻게 왕무조의 진원지 한 편을 부치느냐 하면, 거업일조를 할 수 있으나, 현제만은 엄하게 독계하고, 명령하지 말아야 한다.시일을 허비하고, 가을이 오기 위해 하늘을 찌른다.나는 것이 어찌 현제 일가의 경사뿐이랴, 못에 이르러 기뻐 날뛰는 것이 아니랴.왕 원고는 소경에게 형의 공로를 인정하였다.
5. 다섯째 동생이 평안하기를 기다리며, 앞서 보니 도중에서 온 글자가 오제께서 이미 북경에 가서 남궁시에 시찰하신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때 포고하니, 당연히 스스로 첫 줄을 서게 될 것이니, 오종이 여기에 창대하옵소서.이로써 독서중의 비밀, 모두 마음에 드는 일을 늘어놓으며 축하하고 축하한다.세전에 큰아버지와 축하하는 글씨를 썼고오래 전부터 이미 접견하였으니, 좋은 소식이 멀리 있다.눈여겨보면서 기다리니, 지상에서 교활하게 일어나다.삼월 십일, 형 길금구.
6. 형님의 복안을 기다리며, 전호관이 입도하기를 기다렸으나, 시동생은 뜻밖에도 통척일(通,一)을 하지 못해 매우 죄송하고, 후관회(观觀回)하여, 형님이 청길(淸吉)을 잘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세월이 유난히 화려하여, 속순보다 관각의 작품이 더 많으니, 나를 좋게 하고 몇 편을 보여 준다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천리 밖에서 화답할 수 없다.큰아버지는 늘상 만나시는데, 전병은 십중팔구, 내조카는 영영특상, 우리 형은 꼭 필요하지 않다.나날이 생각나고, 자란심곡 앞에 편액을 보내오니, 매우 정묘하여 걸려 있다.중당, 영생봉호모두 우리 형의 광화문을 빌려 주었네.음운에 관한 책을 요구하여, 가는 사람이 휴대하기 어려우니, 당나라를 찾아가서 드리니, 오 선생을 만나, 동생을 대신하여 아뢰고, 영년을 뵙고, 또한 소리를 질렀다.성리서가 아직 수여되지 않았으니, 만일 있다면, 한 권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정월 초열흘에 동생 위긴이 손을 빌었다.
7. 큰형 복안, 큰형 복안, 큰형 둘째 동생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장안의 근황을 잘 알고 있고, 동시에 우리 형의 수완이 예전보다 훨씬 촘촘하다는 것을 들었으며, 시학연이 깊어 더욱 흠모하였으므로, 장차 폐관할 것이 틀림없다.어려서부터 독서를 하면서, 자못 진취적이 되고자 하였는데, 중도에서 길을 바꾸니, 지극히 불초하여, 실로 꼭 필요하다.이미, 모르는 사람은 운을 띄워 축하한다.남이 듣는 것을 몹시 싫어하다. 앞에서 말을 받아도, 큰 동행이 있으니, 내 동생이 득의양양해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나의 마음을 얻었으니, 먼저 한 장의 언지를 부치고, 또 한 수를 현정에 보내어 녹음을 하였다.가르침을 주다. 동생이 책을 기증하여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출발 날짜가 또 봄 2월로 바뀌었다.덧붙여서 묻노니 남은 것이 없느니라 십월 사일에 동생 위긴이 삼가 보내니라가을날 가형에게 기이한 것을 대답하다.유서지 피애오루, 병적무영정청소…세말기 연시리, 마른 토란 타서 이거.교현정. 소소론 미이별, 십 년떠돌아다니다가 전기(前期)를 잃다…. 문을 닫는 것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도망스럽고 길도 험하다.
제발:1. 상구 송만당 선생의 온 집안 서찰의 정수.도인: 운간 육씨(주)
2. 만당 연보에는 강희32년(1693) 계유12월에 송씨(宋氏) 선현사(先賢,)를 짓고 장민(敏、)·문강(文康)·복산(福山)의 삼공(三公)을 모시고 소장형사비(碑長祠碑)가 있다.이 글자는 공께서 예순 살 때 쓴 글이다.윤오식. 도인: 운간 육씨(주)
3.송아지, 얼룩덜룩하다.강희거인, 관내각중서, 공서화.
4.송균, 얼룩덜룩하다.강희진사는 관경조윤으로 장서가 풍부하고 녹파원 시집이 있다.이 도장은 먹으로 찍어서 얼룩덜룩한 후에 복제가 덜 되었을 때 쓴 것이다.
5.송의 얼룩덜룩한 조카.강희공생은 관교유와 현성이 있고 부지유전은 있다.
6.송길금, 얼룩덜룩하다.강희거인(康熙人人)은 지보경부에 혜성부유전.
7.송위금, 점손, 강희거인, 관명대명병비도부사, 수장이 매우 풍부하여, 수연재 시집이 있고, 주이존이 서문을 지었다.
8.시 두 수를 붙여서 하나는 송회금 진사, 하나는 고잠대령이다.도인: 운간 육씨(주)
사인: 상구 송만당 가족 서찰 에센스.
설명: 본 박품은 상구 송씨 일가신찰 합집으로 칠통이다.그 중 송점, 송점, 송점, 삼남 송균, 송점, 송점, 송점, 조카 송지, 송점, 송점손 송길금이 각각 한 통씩, 송점손 송위금이 두 통을 하였다.
이 권은 송점적 및 상구송씨 연구에 중요한 역사 문헌이다.송나라의 가족 구성을 보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송나라와 그 후대의 생애를 연구할 수 있는 사료로서 매우 중요한 문헌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첫 번째는 '서문내방금(西門內房改为)이 장(庄)으로 바뀌었다.민·복산·문강 삼공단사《만당연보》 권2에 따르면, 강희32년(1693년)12월에 송나라가 송기·송폭의 여러 조카를 거느리고 공공택을 건립하였다.현인의 사당은 또한 송나라를 거느리고 있다.기설제전(基若干祭田)을 두어 송흔(宋与)과 소장형(长長分别)이 각각 《송씨선현사제전기(宋氏先賢祭祭田記)》(《서피류고(西类類》) 권25 참조)》《송씨선선선선사비(宋氏先先先碑碑》(《청문여고》 권7 참조)를 저술하였다.일곱째는 송위김이 집안의 맏형에게 기탁한 것으로, 송위김경기는 시학의 기초가 깊다.후, 그래서 최근 지은 시 두 수를 보내어 형의 가르침을 기대했는데, 주목할 만한 것은, 그중 한 수가 송점(宋高)의 외손자 가오첸(高之作)의 작품에 보답한다는 것이다.고잠 자는 현정(峴亭)이며 청대의 유명한 시인으로 《조추루 시집》 8권을 저술하고 시 600여 수를 받았다.
송점(宋文物)은 청대에 가장 중요한 유물 수집과 감상가 중의 하나로, 많은 중요한 작품에서 송씨 감장인 "상구 송점(宋审)이 진적을 검정한다" "송점(宋审)이 검정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청나라 초의 양청표(清淸標)·손승택(孫承澤) 등의 가르침에 힘입어, 고증감정 공력이 깊고 수장하였다.아주 두껍다. 송나라의 죽은 후,그 소장품 중의 경문 고서는 송균이 계승하고, 대량의 법서 서화는 송위금이 계승하였다.송위금의 《수연재감장록》을 계승. 연구하면, 송점(宋荦)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생존 시점의 개인 소장품개황.
SONG LUO, SONG KAI, SONG YUN, SONG JIJIN, SONG WEIJIN, ET AL. LETTERS
Ink on paper, hand scroll
59×18.5cm 33×18.5cm 49.5×18.5cm 42.5×18.5cm 29×18.5cm 53×18.5cm 70×18.5cm
RMB: 800,000-1,000,000
저자 소개: 1. 송점(宋(, 1634~1713), 자는 목중(牧,), 호는 만당(又堂), 또 호는 면진산(津津山) 사람, 만호는 서파노인(西老人老人), 일작서피방압옹(一作西放鸭翁,河南), 하남상구(河南商人) 사람이다.송 권자는 음사로 이부의 상서에 이르렀으며, 학식이 깊고, 시를 짓고 고문을 쓰며, 왕사와 함께 일했다.훌륭한 명성과 훌륭한 감상, 풍부한 수집품.수묵화, 난대나무도 절묘하다.
2. 송경[청], 자는 천성, 청상구인, 송권의 셋째 아들이다.처음에는 그늘을 국자로 삼아 내각에 입후보하였다.강희(康熙) 20년(1681) 순천향사(順天士士)를 거사(顺卒)하여 연졸을 넘겼다.《서미당시》 한 권을 저술하였으며, 《중주예문록》에 실렸다.권십.
3. 송균(宋挥, 1681~1760), 자는 난휘(3.,), 호는 진재(晋齋), 송나라의 아들이다.강희(康熙) 48년(1709) 중진사(中進士)로 벼슬을 순천부윤(順天府尹)·한림원(韓林院)에 이르렀다.균역희(,汲藏书)는 장서를 잘 소장하고 있는데, 추구각에 소장된 비본은 대부분 난휘를 위해 얻은 것이다.저서로는 《청륜 소장 도서 목록》이 있다.《녹파원 시집》, 《사전록》 등의 책.
4. 송지[청]는 얼룩덜룩한 조카이다.강희공생은 관교유와 현성이 있고 부지유전은 있다.
5. 자는 강명(铭,), 자는 송길금(宋吉金, 1672~1713), 자는 송육(宋陸)의 아들이다.제생들을 보충하고, 임영현의 가르침을 선발하다.강희(康熙) 47년(1708)에 광진주부사마(廣马州府司馬)를 수호하였다.후에 보경부지부로 승진 임명되어 임지에 이르렀다.
6. 송위금(宋~金, 1680~1741), 자는 경일(經一), 송육(宋之)의 손자이다.청(淸) 강희(康熙) 50년(1711)에 거인(人人), 수례선원외랑(选禮選員外郞), 승랑중(郎郞中), 감찰어사(監御御史)를 거쳐 직예청하도(直,淸河道)로 출직하고, 명도(名道)를 옮겼으며, 병한 살 먹은 사람이 송나라로 금과 송나라로 패하였다.위위사. 《수연재시집》 한 권을 저술하였다.송나라 위금은 수집이 풍부하고, 송나라 육기와 육기가 풍부하다.사망 후 남긴 경문의 고서는 송균에게 많이 주고, 법서와 서화는 많이 주었다.송나라의 위긴, 당나라와 송나라가 되었다.원, 명, 청나라 초에 각 대가의 필적은 4,500여 종에 지나지 않으며, 기타 먹물벼루와 같은 고물도 매우 풍부하다.송위금은 『수연재시집』 『수연재감장록』, 『원인영물시선』 등을 저술하였다.
발자소개: 육윤오[현대], 하남 상구 사람으로 원래 상구 송씨 절친으로 송가의 영향을 받아 문물을 깊이 사랑하였다.신중국이 성립된 후 오랫동안 고서화를 매매하고 골동품을 겸업하였다.
宋 荦(1634~1713)、宋 炌[清初]、宋 筠(1681~1760)、宋 [清初]、宋吉金(1672~1713)、宋韦金(1680~1741)等 宋氏全家信札卷
图录号: 1401
估价RMB: 800,000-1,000,000
成交价RMB: 920,000(含佣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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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 荦(1634~1713)、宋 炌[清初]、宋 筠(1681~1760)、宋 [清初]、宋吉金(1672~1713)、宋韦金(1680~1741)等 宋氏全家信札卷
纸本 手卷
识文:1. 别来遂历多载,相念殊深,想贤侄异地有同情也。西门内房今已改为庄敏、福山、文康三公端祠,至儿归即择吉兴工,二兄及贤侄妇两丧,当速卜日归窆,一则得以早奉三公蒸尝,二则亦完贤侄终身大事也。率闻不既,望切望切。名另具。冲。钤印:牧仲(朱)
2. 西湄拜别忽忽数月,云树之思,日劳梦寐。老年翁政声茂著,竚膺高擢,弟亦与有荣施矣。庄捧瑶函,兼辱嘉惠,迄今犹深醉饱。兹因蘧使言旋,一函修候,敬布谢悃,临楮西望,曷胜瞻企。弟炌拜具。敬冲。
3. 连闻贤侄捷音,喜不自胜,固祖宗积德累仁所致,亦吾侄素日沉心读书之报也。胡官北上,因一时有臂痛之患,未及作札致贺,不数日即接贤侄手书,展览一过,欣慰实深。京寓无人居住,贤侄在内殊属妥便,何劳复询耶。诗林韶濩愚处仅存一部,且系手批,不能分寄。是书市估甚多,有便人南下,当觅一部以当贺礼耳,笑笑。外寄院长字一封、书二部,荆山先生峙公字各一封,可分送之,不宣。五月廿三日,青纶馆手发。
4. 别来岁序两易,想念与日俱积,适接手翰,知阖眷纳吉。五侄得与采芹,喜不自胜,但不获躬进一觞为贤弟称庆,如何寄去汪武曹真稿一部,可作举业一助,惟贤弟严加督戒,勿令旷废时日,为来秋冲天之飞,岂仅贤弟一家之庆已耶,临池欣跃,不既。汪稿向绍京取。兄功之顿首。
5. 字候五弟平安,前阅都中来字,知吾弟已到京赴南宫试,此时榜发,自必裒然首列,吾宗昌大其在斯乎。由此胪传读书中秘,皆意中之事,预贺,预贺。岁前曾具一字与伯父贺喜,想久已接览矣,好音匪遥,拭目以待,临池翘跂之至。三月初十日,兄吉金具。
6. 恭候大兄福安,前胡观入都,时弟竟不知,是以未通尺一,甚歉甚愧,及胡观回,备悉吾兄近履清吉,殊慰相思。岁华方新,想馆阁之作多于束笋,若能惠而好我,示我几篇,未必不于千里外一酬和也。大伯时常相见,前恙十减八九,来侄亦英英特上,吾兄正不必日日思归,自乱心曲,前寄来匾额,甚精妙,悬之中堂,荣生蓬户,皆借吾兄光华也。所索有关音韵之书,以去人难于携带,容当觅便奉上,晤吴先生,代弟禀候,见永年,亦致声。性理一书尚未颁发耶,如有,希惠一部,余不既。正月初十日,弟韦金拜手。
7. 恭候大兄福安,高二弟抵里,备悉长安近况,兼闻吾兄工夫纯密,倍于从前,而诗学渊深尤所钦仰,将来散馆前列无疑矣。第自幼读书,颇欲上进,中道改辙, 极知不肖,实非得已,而不知者动云恭喜,殊厌人听。前接来字,有大同之举,非吾弟得意,而可谓实获我心矣。率赋一章言志,又寄岘亭一首,并录呈教。弟以捐册未到行期又改于春二月也。附问,余不尽。十月四日,弟韦金拜手谨寄。秋日答家兄蕴奇。幽栖地避爱吾卢,屏迹无营静扫除……岁晚相期燕市里,焚枯煨芋话离居。酬岘亭。少小论交未别离,十年漂泊失前期……闭门非是耽高蹈,惭愧驽骀路又岐。
题跋:1.商丘宋漫堂先生全家书札精华。钤印:云间陆氏(朱)
2. 漫堂年谱载康熙三十二年(1693年)癸酉十二月,建宋氏先贤祠,祀庄敏、文康、福山三公,有邵长衡祠碑。此札乃公六十岁时所书也。润吾识。钤印:云间陆氏(朱)
3.宋炌,荦弟。康熙举人,官内阁中书,工书画。
4.宋筠,荦子。康熙进士,官京兆尹,藏书甚富,有绿波园诗集。此札钤以墨印,当是荦卒后服制未满时所书也。
5.宋之,荦侄。康熙贡生,官教谕,有贤声,府志有传。
6.宋吉金,荦孙。康熙举人,知宝庆府有惠声府志有传。
7.宋韦金,荦孙,康熙举人,官大名兵备道副使,收藏甚富,有授砚斋诗集,朱彝尊为之序。
8.附诗二首,一与宋怀金进士,一与高岑大令。钤印:云间陆氏(朱)
签条: 商丘宋漫堂全家书札精华。
说明:本拍品为商丘宋氏全家信札合集,共七通。其中宋荦、宋荦三弟宋炌、宋荦六子宋筠、宋荦侄宋之、宋荦孙宋吉金所作各一通,宋荦孙宋韦金二通。
本卷为研究宋荦及商丘宋氏的重要历史文献。既可补足宋荦家族之构成,同时也可作为研究宋荦及其后人生平及交游之史料,具有十分重要的文献价值。第一 则提及“西门内房今改为庄敏、福山、文康三公端祠”,据《漫堂年谱》卷二记载,康熙三十二年(1693年)十二月,宋荦率宋起、宋壆诸侄捐公宅建宋氏先贤祠堂,又率儿宋基设祭田若干亩,宋荦与邵长蘅分别撰写《宋氏先贤祠祭田记》(见《西陂类稿》卷二十五)《宋氏先先祠碑》(见《青门剩稿》卷七)。第七则为宋韦金寄致家中大兄,宋韦金敬其诗学功底深厚,因而寄近日所作诗二首,以期大兄指点,值得注意的是,其中一首为酬宋荦外孙高岑之作。高岑字岘亭,是清代著名诗人,著《眺秋楼诗集》八卷,收诗六百余首。
宋荦清代最为重要的文物收藏和鉴赏家之一,许多重要作品上皆可见宋氏鉴藏印“商丘宋荦审定真迹”、“宋荦审定”,他获益于清初梁清标、孙承泽等人教导,考证鉴定功力深厚,收藏十分丰厚。宋荦身故后,其藏品中的经文古籍由宋筠继承,而大量法书字画由宋韦金继承。研究宋韦金《授砚斋鉴藏录》,可上溯宋荦在世时之私家收藏概况。
SONG LUO, SONG KAI, SONG YUN, SONG JIJIN, SONG WEIJIN, ET AL. LETTERS
Ink on paper, hand scroll
59×18.5cm 33×18.5cm 49.5×18.5cm 42.5×18.5cm 29×18.5cm 53×18.5cm 70×18.5cm
RMB: 800,000-1,000,000
作者简介:1. 宋荦(1634~1713),字牧仲,号漫堂,又号绵津山人,晚号西坡老人,一作西陂放鸭翁,河南商丘人。宋权子,以荫仕至吏部尚书,博学嗜古,工诗词古文,与王士祯齐名。精鉴赏,富收藏,工画,水墨兰竹,亦极超妙。
2. 宋炌[清],字生性,清商丘人,宋权第三子。初以荫为国子生,候选内阁中书。康熙二十年(1681年)举顺天乡士,逾年卒。著有《西湄堂诗》一卷,载《中州艺文录》卷十。
3. 宋筠(1681~1760),字兰挥,号晋斋,宋荦之子。康熙四十八年(1709年)中进士,官至顺天府尹、翰林院检讨。筠亦喜藏书,汲古阁所藏秘本多为兰挥所得。著有《青纶馆藏书目录》、《绿波园诗集》、《使滇录》等书。
4. 宋之 [清],荦侄。康熙贡生,官教谕,有贤声,府志有传。
5. 宋吉金(1672~1713),字姜铭,宋陆之子。补诸生,铨选临颍县教谕。康熙四十七年(1708)授湖广辰州府司马。后擢授宝庆府知府,卒于任。
6. 宋韦金(1680~1741),字经一,宋荤之孙。清康熙五十年(1711)中举人,授例选员外郎,升郎中,历监察御史,出为直隶清河道,移大名道,因病乞归,年61岁卒,以宋佩金子宋齐魏为嗣。著有《授研斋诗集》一卷。宋韦金富于收藏,宋荤去世后遗留的经文古籍多给了宋筠,法书字画多给了宋韦金,唐、宋、元、明及清初各大家手迹不下四五百种,其他如墨砚古玩也非常丰富。宋韦金著有《授研斋诗集》《授研斋鉴藏录》,辑有《元人咏物诗选》等。
跋者简介:陆润吾[现代],河南商丘人,原是商丘宋氏至亲,因受宋家影响,深爱文物。新中国成立后,长期从事买卖古字画,兼营古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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