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
전병식 목사(배화여자대학 교목실장)
1921년 미국의 동식물 연구가이자 탐험가인 ‘윌리엄 비브’가 남미의 기아나 정글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한 떼의 병정개미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는데 앞에 가는 개미의 뒤를 쫓아 모든 개미들이 따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서가는 개미가 다른 길을 찾지 못하고 계속 원을 그리며 움직이자, 뒤에 따라가던 개미들도 계속 그 원을 따라가면서 끊임없이 맴돌게 되었습니다. 큰 나선 모양으로, 둘레가 365m에 이르는 나선의 회오리를 그리며 움직이던 이 개미군단은 무려 이틀간이나 그 행진을 계속하다가 대부분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 믿지 못할 ‘죽음의 회오리’ 행진에 대한 비밀은 미국의 동물학자인 ‘테오도어 슈네일러’의 연구를 통해 밝혀지게 됩니다. 개미는 스스로 판단해서가 아니라 앞서가는 “개미가 흘려놓은 화학물질을 따라 이동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선두 개미가 경로를 잘못 설정할 경우 어느 하나 무리에서 이탈하지 못하고” 결국 모두가 죽게 되는 죽음의 회오리를 계속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과학자들은 개미의 이런 죽음의 회오리, ‘죽음의 나선 무도’를 ‘원형선회(Circular Mill)'라고 이름 붙이게 됩니다. 협동과 협력이 생존의 기본이자, 후세대의 미래이기도 한 개미사회일지라도 한번 원형선회에 빠져들면 죽음의 회오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정현천 SK에너지 상무가 DBR칼럼에서 지적한 바에 의하면 응집력이 강한 집단일수록 의사 결정에 있어서 “자기집단이 천하무적이라는 착각”에 빠져 “자신들의 도덕성을 확신한 나머지 어떤 목표를 이루는 수단의 부도덕성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뿐더러, 경쟁 집단을 “약해빠진 겁쟁이나 사악한 무리로 여기는 고정관념”에 빠지는 집단사고의 위험성에 쉽게 노출된다고 합니다. 자기 집단에서의 토론마저도 용인되지 않고 힘 있고 목소리가 큰 주도세력의 주장에 집단 전체가 휩쓸려서 다른 구성원이 제기하는 반론은 묵살되기 일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회의의 결과는 만장일치로 이루어진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한 조직이나 리더인 개인이 지나치게 성공 지향적이거나 권력 지향적일 때 이런 현상은 다반사로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조직의 리더는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보려하고 ‘얻고 싶은 결과’만을 기대하는 ‘자기위주편향(Self₋serving Bias)’에 빠져서 자신이 주도하는 일에 대한 ‘과잉확신(Overconfidence)’과 ‘우월 착각(Illusion of Superiority)’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반대는 과소평가하거나 폄하하고 자신의 생각만을 뒷받침하는 정보나 의견에만 치우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즉 '불합리한 낙천주의(Irrational Optimism)'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거부하는, 이른바 ‘자기 봉사적 속성(Self₋serving Attributions)’의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이란 단어의 영어사전적인 뜻은 “의론이나 제안의 타당성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반대의견을 말하는 사람” 즉 ‘선의의 비판자’를 말합니다. 원래는 라틴어 advocatus diaboli에서 온 말로 로마 가톨릭에서 성인(聖人)과 복자(福者)로 추천된 사람을 심문하는 검사관을 지칭하는 별명이었습니다. 성인 후보에 오른 사람을 검증하기 위해 후보자의 덕행과 이적에 관한 증거의 신뢰성을 검사하려고 그에 대한 반증을 찾다보니 당연히 후보자에 대해 비판적이며, 비호의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악마의 변호인’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모양입니다. 감리교회 최고 수장의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던 분들의 진영에 가신(家臣)들만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한마디 할 수 있는, 그런 데블스 애드버킷, ‘의도적인 반골(反骨)’이 한두 명 있었으면 지금 우리의 상황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방실 미래전략연구소 기업가정신센터장은 지도자나 한 그룹에게 편향된 의사 결정을 막기 위해서는 조직 내에
“데블스 애드버킷을 공식적으로
지정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토록 하는 방법”이 있다고 충고를 합니다.
자기 자신에만 집중하는 ‘자기애’와 ‘자기본위적 편향’은 현대 소비주의가 가져온 하나의 폐단일 것입니다. 자본과 권력으로 살 수 있는 ‘자기 가치의 상승’, 상품화된 교육행태가 가져온 ‘자기애의 강조와 부추김’ 등은, <신이 된 심리학>을 쓴 ‘폴 비츠’에 의하면, 그것은 “교묘히 가장된 자기 숭배에 지나지 않는”것입니다. 약 1만 명에 이르는 감리교회의 목회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높은 자리에 올라서고 싶은 일부 목사님들과 일단의 정치그룹들이 자기본위와 집단본위적 편향에 빠져서, 자신과 그룹 속에 있는 데블스 애드버킷의 목소리를 외면하게 된다면, 감리교회는 ‘자신들만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자리 찾기 후보자들’, 자기숭배에 빠진 우상들의 격전지에서 당분간 헤어 나오기 힘들 것입니다. 자기가 보고 싶지 않고 당하고 싶지 않은 일도 보고 겪어 낼 수 있는 그런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봉사하기로 서약한 성직자에게 자기 봉사적 속성이란 가당치도 않은 일이기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