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은 드래곤볼 슈퍼를 보며 z 후반부 때의 작화스타일을 그리워 하는 소리를 하곤 합니다. 사실 스탭진도 바보는 아닌지라 여태껏 그러한 기법을 사용한 사람이 단 하나도 없던 건 아닙니다. 이세키 슈이치, 시마누키 마사히로, 카라사와 유이치 등이 대표적으로 그러했는데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슈퍼의 캐릭터 디자인’을 바탕으로 두고 z 기법을 살짝 얹힌 거지, 순수 우리가 원하던 부우전의 그것은 아니었죠. 그러던 중 114화, 드디어 잭팟이 터져나옵니다.

ㅗㅜㅑ 잘생긴 거 보시래요. 이 주인공은 바로 114화 작화감독을 맡은 ‘타카하시 유야’로 부활의 F, 슈퍼 13화, 110화 등에 참여하며 점점 기대감을 모으던 그가 결국 일을 냈습니다. 시청자들은 전부 환호했고 타카하시는 이후 122화, 그리고 피날레 131화에도 모습을 보입니다.

이 사진은 131화의 타카하시가 그린 한 장면입니다. 어라? 근데 이상하네요? 첫번째 짤과는 무언가가 많이 다릅니다. 한치 둥그래진 얼굴형과 볼 쪽의 눈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광택이 이건 위와는 달리 마치 슈퍼의 그것을 보는 느낌이죠. 분명 같은 사람이 그린 같은 캐릭터의 같은 초사이어인인데 뭐가 문제일까요? 그건 바로 직급의 차이입니다. 타카하시 본인이 ‘작화감독’으로서 직접 114화와 122화의 작화를 총괄했던 때와는 달리 131화에서 그는 작화감독 역할을 다른 이에게 내주고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원화가’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 결과 타카하시가 그린 그림이 그 회차 작화감독에게 검토되어 그 사람의 취향대로 수정된 거죠. 그렇다면 대체 그 괘씸한 양반은 누구일까요? 그 사람은 바로 드래곤볼 프랜차이즈의 터줏대감인 ‘야마무로 타다요시’입니다.

닥터 슬럼프로 첫 커리어를 시작한 야마무로는 단기간에 작화감독으로까지 빠르게 승격하며 브로리가 출연하는 드래곤볼z 8기 극장판을 시작으로 모든 드래곤볼 구극장판의 총작감 역할을 하며 명망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위는 93년도에 나온 그 8기 극장판 열열초의 한 장면. 얼굴형이 상당히 날카롭고 눈썹이 곡선을 그리며 볼 부분의 명암 역시 곡선을 띄어 입체감을 더해줍니다. 하나 느낌이 올 건데요, 타카하시의 그것과 스타일이 상당히 비슷하죠? 이 시기의 야마무로는 정말 최고로 칭송받아 부족한 점이 없었습니다. 참고로 z 후반부인 부우전의 캐릭터 디자이너 겸 총작감은 나카츠루 카츠요시였으나 야마무로의 극장판 캐릭터 모델 몇몇개가 부우전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초사이어인 손오공이 그랬고요.


z가 끝나고 gt가 시작, 야마무로는 점점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날카롭던 눈매와 얼굴형은 둥그래지고 볼 부분에 입체감을 주던 곡선 명암은 직선적으로 바뀌며 캐릭터들의 얼굴이 평평해졌습니다. 윗쪽 두 사진들의 주인공은 동일인물, 오반입니다. 왼쪽이 z 극장판 시절, 오른쪽이 gt 시절이죠. 무슨 gt 오반은 원작 10년도 더 후라 나이를 먹어서 얼굴이 변했다는 소리는 하지 맙시다. 사이어인은 늦게 늙잖아요 껄껄껄. 또한 이 시기의 야마무로는 원작자 토리야마 아키라의 채색에 영감을 받은 것인지 얼굴에 광택을 추가시킵니다.

gt마저 끝나자 야마무로는 원피스 등에 몸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는 틈틈이 드래곤볼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특히 플스2판 게임인 부도카이 오프닝 영상의 작화감독을 맡는데 그 중에서 팬들에게 물음표를 자아낸 것은 ‘부도카이2’ 오프닝, 야마무로는 우리의 좋았던 기억들과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습니다. 위에서 얼굴에 광택이 추가되었다고 언급했으나 이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건 뭐 아예 오일을 통째로 발라버린 수준이라 보는 이들 입장에선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기 어렵죠. 그 후 그는 카이 오프닝 등을 맡기도 하였으며 한편 드래곤볼은 여러 컨텐츠로 사람들을 내내 찔러보다가(?) 드디어 2013년, 신극장판 ‘신들의 전쟁’과 함께 본격적으로 팬들에게 돌아옵니다.


이번 극장판 역시 캐릭터 디자이너 겸 총작화 감독은 야마무로였습니다. 드래곤볼이 오랜만에 돌아온 만큼 그 역시 팬들에게 많은 기대를 받았는데요. 안타깝게도 이것은 오히려 위에 언급된 야마무로의 문제점들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됩니다. 강철의 연금술사 등에 몸담은 젊은 원화가 ‘카메다 요시미치’는 신들의 전쟁 티저 영상을 보고 “나의 드래곤볼은 이렇지 않아”를 시전하며 “마에다 시절의 디자인을 돌려달라”라는 말을 하였는데요. 마에다는 z 초중반부까지 총작감을 맡았던 이입니다. 같은 바닥의 사람한테 이런 소리를 들었다는 건 야마무로의 문제점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대로 말해주죠.

하지만 그럼에도 야마무로는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켰고 아예 더 나아가 ‘부활의 F’ 때는 작화와 캐릭터 디자인을 넘어 극장판 전체 총괄 감독과 콘티 담당까지 꿰차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부활의 f는 (물론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뒀으나) 작품적으로 적지 않은 혹평을 받게 되었고 그 중심엔 경험 부족을 보인 야마무로의 책임이 컸습니다. 원래라면 토리야마의 원안이 주어지면 슈퍼의 애니와 코믹스가 그러하듯 스토리에 각각 살을 덧붙여 재미를 주어야 하는데 야마무로 감독에게 그런 건 없었습니다.

심지어 부프에 참여한 ‘에구치 히사시’라는 원화가는 섭외 당시 자신은 기존 캐릭터 디자인을 무시하고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을 담아내도 좋다는 약속을 받았었으나 (슈퍼의 시다 나오토시가 이렇습니다.) 정작 자신이 그린 파트를 야마무로가 나중에 전부 제멋대로 수정해버렸다고 폭로합니다. 이 때 에구치는 야마무로를 두고 ‘발전이라곤 뭣도 없는 한심한 녀석’이라는 비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이 사진이라 생각하니 답답하지 않으신가요. 얼굴형은 상당히 납작하고 작화도 많이 부자연스러우며 특히 저 구극장판 8기 베지터 사진과 비교하면 더더욱 아쉬움이 남습니다.

만화 영화의 캐릭터 디자이너를 애니메이터가 많이 맡는 이유는 애니메이터야말로 움직임을 그리기 쉽게 캐릭터 모델의 포인트가 되는 부분들의 덩어리감이나 형태를 깔끔하게 디자인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마무로는 이것마저도 합격점을 주기 어렵습니다. 신극장판 싸움들을 보면 움직임이 전체적으로 뻣뻣하여 액션에 긴장감이 담기기가 영 쉽지 않았고 이건 tva판인 슈퍼에도 종종 나타났던 문제입니다. 당연히도 슈퍼의 총작감은 야마무로였죠. 네, 제가 맨 첫문단에서 말한 ‘슈퍼의 캐릭터 디자인’을 설정한 게 바로 이 사람이었는데요. 결국 그는 2018년 12월에 개봉되는 ‘드래곤볼 슈퍼 신극장판’ 스탭진에서 제외됩니다.

야마무로 타다요시는 드래곤볼 프랜차이즈의 왕고격이자 프랜차이즈를 대표하는 이들 중 하나입니다. 당장 tva판이 새로 돌아오면 그가 다시 총작감 자리에 복귀할 지도 모르죠. ‘야마무로가 나쁜 실력의 애니메이터이냐?’라고 묻는다면 거기에 차마 맞다고 답하기는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문제점은 그의 연륜을 거의 송두리째 부정 중입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스스로에 대해 “애니 부우편 스타일과 토리야마 선생님 지금의 스타일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려 한다”는 코멘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네요.
쓸데없이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유튜브 같은 걸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어차피 집에 컴퓨터도 없어서 그냥 시간 날 때 여기에 하나 올려봅니다 ㅋㅋ 다음엔 올해 말에 나오는 신극장판에 대하여 얘기해볼까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신 극장판 기대가 더해 지네요~
외워서 아는척해보고 싶은 글이네요ㅎ
헐 이런 글 존좋
선 댓글 후 감상
야마무로는 최강으로의 길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신들의 전쟁에서 변화된 그림체로 실망스러웠고
부활의 f에선 더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뒷얘기가 있었군요.
야마무로가 히어로즈 오프닝 작화도 매번 맡는 걸로 알고 있는데..
프레임은 말할 것도 없고 작화도 점점..ㅜ
원화 수정은
http://m.cafe.daum.net/FoReVerDB/DQna/16816?svc=cafeapp
이것도 수정 전이 훨씬 나은데 말이죠
@십칠호 히어로즈 오프닝, 슈퍼 엔딩, 홍보 아트 등을 맡았는데 퀄리티가 많이 널뛰는 모습이더군요 안 좋았던 엔딩이 대표적으로 라그리마(도깨기불)였고 홍보 아트는 아예 캐릭터들 포즈가 전부 에네르기파밖에 없는 등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고인물은 썩게 됩니다
정확합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팬들은 잘모르는 그들만의 리그였네요 드래곤볼 원작느낌나게 잘그리던분이 슈퍼와서 갑자기 둥글해진 원인이 궁금했지만 다른 감독님들이 그렸어도 저분의 화풍에 벗어나지 않을정도로만 작업하셔서 좀 아쉬웠는데 야마무로 감독님 조금 실망했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