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찬송가의 토착화를 반대하는 견해
가야금이나 거문고로 연주하는 것이 죄가 될 수는 없다. 5음계로 작곡된 찬송을 부른다고 해서 죄가 되지 않으며, 4/4조나 3/4조의 리듬 역시 죄가 아니다.
(1) 성경적인 토착화가 아니다.
찬송가의 토착화는 제일 먼저 유의해야 할 점이 바로 성경적이어야 한다. 그들의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이 이러하니 성경에 충실하게 적용하기 위하여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민족성을 찾자는 일종의 민족주의의 부흥을 주장하는 것이 문제이다.
성경은 민족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나 민족주의로 돌아가도록 가르치고 있지 않다. 기독교는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야지 찬송가를 통하여 민족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주장에 찬성할 수 없다.
(2) 5음계에 대한 문제 때문이다.
7음계는 서양음악이고 5음계는 우리 민족의 고유 음계인가? 5음계는 우리만의 전유물이 아다. 이미 스코틀랜드에서도 사용했었다. 5음계는 무당, 귀신의 음악이라는 한 만영 교수(서울대, 국악과)의 주장처럼 불교 음악의 유산으로 정착된 5음계를 우리 민족의 고유 음률이라는 이유를 들어 찬송 곡의 토착화를 외치는 이론을 수용하는 것이 신앙적일 수 있는가?
(3) 7음계는 기독교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7음계는 서양 음악의 산물이 아니다. 기독교의 전통적인 신앙 유산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낳은 훌륭한 신앙적 유산인 7음계를 서양 음악의 산물로 주장하며 배척하는 그들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
(4) 토착화의 배경을 살펴라.
찬송가의 토착화를 주장하는 상당수가 급진적인 신학 사상과 연계되어 있다. 그리고 토착화를 주장하는 작곡가중 한 사람은 1960년대 말에 찬불가를 작곡한 예가 있다.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를 작곡하고 석가를 찬양하는 찬불가를 만들 수 있는가? 어떻게 그 사람의 주장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5) 올바른 찬송의 생활
성경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흠 없고 티 없이 순결한 성도로 부르셨음을 가르친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의 부르심을 잊어버리고 세속 문화를 교회로 유입시키려는 찬송가의 토착화를 주장하는 자들을 찬성할 수 있겠는가?
* 엡 1: 4 -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리지는 교회 음악은 신성한 음악이므로 다른 곳에서 듣던 것과 구별되는 음악이라고 하였다. 미국 감리교의 음악인 겸 찬송가 작곡자인 R. C. 멕키트란은 세상과 구별되는 것, 일상생활에 하찮은 음악은 버려야 하고 현대 음악이 교회적 방법으로 작곡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따라서 범 종교 통합 사상과 관련되어 있는 찬송가의 토착화, 예배의 토착화 등 모든 토착화는 기독교 신앙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깨달아 절대로 미혹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의 피로 값주고 사신 바된 교회와 성도들이 정결한 신부의 믿음으로 단장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 행 20: 28 -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 고전 6: 19,20 -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고전 7: 22-24 -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5. 종교음악제
종교음악제는 종교 간의 막혀 있는 담을 음악을 통하여 교제하여 이해의 폭을 넓히자는 운동의 일환이다. 음악제에 참가하는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자기 종교의 음악을 발표하고 마지막에는 모두가 한 무대에 올라 함께 노래를 하는 음악제를 말한다.
다종교 사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근래에 TV나 극장에서 천주교와 불교 등의 종교단체들이 기독교와 더불어 합창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음악제를 후원했던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음악제의 성과를 보고 연례 음악제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하였다. 더 나아가서는 미술, 연극 등 다른 예술 분야에서 모든 종교가 참여하는 종교예술제로 확대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번 음악제를 통하여 각 종교 음악이 갖는 독특한 특성을 비교 감상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크리스챤 신문, 1990년 9월 22일자)
* 고후 6: 14-16 -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ㄴ)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ㄷ)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 찬성하는 견해
찬성하는 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몇 가지 긍정적인 면을 제시하며 그 타당성을 말하고 있다.
(1) 문화적 접근을 통하여 상호 이해와 화합이 도모된다.
종교, 문화 예술의 접근을 통하여 종교 간에 그리고 종교인과 비종교인 사이에 상호 이해와 화합을 도모하므로 다종교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종교음악제는 효과적이다.
(2) 음악을 통하여 타 종교를 이해한다.
종교 음악제를 통하여 각 종교가 가지고 있는 음악의 고유적 특성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므로 종교 음악제가 필요하다.
(3) 문화부 입장
대한민국 종교 음악제를 후원하는 문화부의 입장에서는 음악뿐 아니라 미술, 연극 등 다른 모든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 방면의 문화적 채널을 통하여 확대시켜 다종교 사회에서의 문제점을 해소해 나가겠다.
2) 반대하는 견해
(1) 교회 음악의 타락을 보여 준다.
종교 음악제는 세상적인 안목에서는 좋을지 모르나 성경적으로 볼 때에는 말씀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 간의 합창제는 교회 음악의 분명한 타락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2) 찬송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다.
기독교의 찬송은 하나님에 대한 성도들의 신앙 고백이며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들의 정성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감상용이 아니므로 종교간의 연합 합창제는 성경적 의미를 떠난 것이므로 논할 가치도 없다.
(3) 타종교의 이해가 필요 없다.
종교 음악제를 통하여 타 종교를 이해한다는 주장이 비 성경적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종교로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자이신 하나님 한분만 섬기는 것이지 여러 신들 중에 하나를 섬기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 종교를 기독교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모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인이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의 음악을 이해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며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난 것이므로 수용할 수 없다.
(4) 찬송의 정의를 망각한 행위이다.
기독교의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므로 우상을 섬기는 다른 종교와 같이 하나로 뭉쳐서 합창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우롱하는 처사요 멸시하는 행위이므로 용납할 수 없다.
(5) 이스라엘 백성의 사건에서 불가하였다.
* 출 32: 18 - 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아 내려올 때 산 아래에 있었던 이스라엘 진영에서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춤과 술의 향연으로 타락의 극치를 보였다. 모세가 하나님의 돌판을 진영에 던져 이스라엘 백성 3천 명 가량이 죽인 바 되었다.(출 32:28) 그러므로 기독교의 찬송은 예술만이 아니요 믿음과 신앙이요 제물이며 예배이기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6) 종교 통합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가르침은 마지막 때가 되면 알곡과 죽정이로, 양과 염소로 분리 될 것(마 25:32,33)이라고 가르치셨다. 이것은 역사의 마지막 날이 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된 교회와 세상과 벗되어 살면서 향락에 도취된 거짓 교회로 나누어질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거짓 교회들은 불교나 유교, 천도교, 이슬람교, 힌두교 할 것 없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과 하나 되는 종교 통합이 이루어 질 것이다. 따라서 음악은 이와 같은 역사를 자연스럽게 돕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성경의 가르침(행 4:12)을 외면하고 예수는 구원에 이르는 하나의 길로 전략시키는 무서운 사단의 계락이 담긴 운동의 앞잡이가 되는 종교 음악제를 반대한다.
(7) 혼합주의 사상이요 종교 다원주의이기 때문이다.
통합주의가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역사라면 혼합주의는 모든 사상을 하나로 섞자는 사상이다. 지금 세계의 경제 지도를 살펴보면 유럽이 하나의 경제로 묶여지고 미주지역 역시 단일화 되며, 아시아 지역도 하나로 묶이는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8) 포스트 모던이즘(Post Modernism)
이 시대에 세계적인 새로운 사상이 있다면 예술뿐만 아니라 정치, 종교, 경제, 사회의 구분 없이 모든 분야에서 포스트 모던이즘이 머리를 들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까지 가져왔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모든 것이 틀렸다. 지금의 제도나 방법, 형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 새로운 방식, 새로운 이념을 추구하여 새 세상을 꿈꾸는 운동이 일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물결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새 시대, 새 세상, 새로운 사상은 마지막 때 세상을 지배할 적그리스도의 통로가 될 것이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 때에 나타나는 적그리스도가 바다에서 나온다고 증명하고 있다.
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