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의 오슬로 여행기를 읽기 전에 먼저 노르웨이가 어떤 나라인지 살펴보자. 노르웨이는 유
럽대륙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북극에 가까운 나라다. 면적은 약 38만 5천㎢, 인구는 약 490만 명이다.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웨이인들은 콜럼버스에 앞서 12세기에 이미 지금의 캐나다로 건너가 1년 이상
거주하다 돌아왔을 정도로 개척정신이 뛰어나다. 어업이 주산업이었지만 최근 북해에서 대규모 유전
이 개발되면서 산유국으로서 한층 가파르게 경제발전을 이룩해가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노르웨이
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5만 5천 달러로 세계 4위의 부국이다. 한때 스웨덴의 식민지로 억압을 받다
가 1905년에 독립하여 지금까지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은 구미의
어느 나라보다 투철하다.
오슬로의 호텔에서는 투숙객들이 아침마다 직접 자기 방 변기 청소를 해야 한다. 영국의 2층 버스, 파
리의 노천카페, 네덜란드의 풍차 등은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모방하지 않는다. 빌은 모르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도 2층 버스, 노천카페, 풍차 등이 있는데, 부끄럽게도 이는 순전히 왜국을 모방한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점잖게 줄을 늘어서 있다가도 막상 버스가 도착하면 줄이고 뭐고 서로 먼저
타려고 아귀다툼을 벌인다. 독일인들은 유머라면 질색을 하고, 스위스인들은 대체로 오락을 싫어한
다. 이탈리아인들은 조심성이 전혀 없어 유럽에서 자동차사고를 가장 많이 내고, 스페인인들은 대개
자정 무렵에 저녁식사를 한다. 이러한 차이점과 반대로 유럽인들은 대부분 독서를 즐기고 소형차를
선호하며, 오래된 마을의 작은 집에서 살기를 좋아하고 축구를 즐긴다. 술은 따뜻한 곳에서 마시기를
좋아하지만, 침실에서 잘 때는 춥게 잔다.
빌은 여행지의 국민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외국
여행의 묘미다. 그저 어린이 같은 호기심으로 저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해 하는 게
더 재미있다. 아무것도 들을 수 없고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때, 비로소 아, 내가 해외
여행을 왔구나, 실감한다. 호텔에서 그 나라 TV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라마다 다른
포맷으로 방영되는 프로를 시청하면서, 도대체 무슨 얘기이기에 저리도 재미있게 웃을까 하며 신기
하게 여기는 것도 TV 시청의 또 다른 재미다.
함메르페스트에서 돌아오니 오슬로에서는 모든 게 그저 좋게만 느껴졌다. 날씨는 여전히 춥고 길가
에 쌓여 있는 눈들은 오랫동안 흙탕물이 계속 튀겨 더럽게 변해 있었지만, 함메르페스트에 비하면 온
사방 활기가 넘치고 사람들은 쾌활하여 비로소 사람 사는 도시에 온 느낌이었다. 특히 얼음에 뒤덮여
있는 항구 저편으로 건너다보이는 숲이 총천연색으로 우거져 있는 경관은 사방이 흑백으로만 보이던
함메르페스트에 비해 더없이 아름다웠다. 빌은 박물관에도 가보고 영화도 감상하고 백화점에 가서
필요한 일상용품을 구입하기도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했다. 상가 진열장을 밝히고 있는 밝은
조명 또한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것도 여행자로서 최적의 조건 가운데 하나일까? 빌은 여행 안내책자를 볼 때마다 이미 그 나라, 그
도시에 가 있는 것처럼 잔잔한 흥분에 휩싸인다. 그는 특히 영국에서 발행되는 <토마스 쿡 시간표>
를 좋아하는데, 우리 돈으로 2만 원가량 하는 500쪽짜리 안내서에는 유럽의 모든 나라와 도시, 기차
와 배와 버스의 시간표 및 요금, 숙박시설 및 주변 식당 등 여행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자세하게 수록
되어 있다. 빌은 지금까지 출판된 책 가운데 <토마스 쿡 시간표>가 가장 훌륭하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책을 읽다 보면 여행을 떠나고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방을 펼쳐놓
고 옷가지를 집어넣고 있다나?
유럽 각국을 연결하는 유로철도는 열차 한 조의 길이가 400m다. 객차에는 각 칸 별로 베를린‧바젤‧바
르샤바‧제네바‧상트페테르부르크 등 평소 가보고 싶어 하던 도시의 이름들이 적혀 있어 한층 여심(旅
心)을 일으킨다. 가는 곳마다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빌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잠깐씩 여러 곳을 다니는 방식을 ‘본격적인 여행’이라고 표현해놓았는데, 그의 여행은
대부분 ‘본격적인 여행’이라나. 때로는 <토마스 쿡 시간표>의 한 귀퉁이에 작은 글씨로 써놓은 각주
(脚註)를 제대로 읽지 않아 쫄쫄 굶으며 수백㎞를 돌아서 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도 ‘각주를 제대로
읽지 않아 여행을 망친 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는 글귀를 읽으며 진짜 ‘본격적인 여
행’을 만족스러워 한다고.
이 대목에서 빌은 ‘함메르페스트 여행은 준비운동이었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려 한
다’며 독자들의 구미를 한껏 달궈놓는다. 유럽 각국을 돌아다니며 영어에는 없는 기호로 설명해놓은
물건을 사고, 그 나라가 아니면 도저히 유행할 것 같지 않은 히트곡을 들으며 향수에 잠기고, 평생 다
시는 인연이 닿지 않을 듯한 사람들과 어울려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각자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술
잔을 부딪치며, 나라마다 다른 공중전화 사용법을 새로 배우는 즐거움도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
가운데 하나라는 기나긴 설명도 곁들인다.
빌의 여행기를 읽다 보니 각중에 전 KBS 아나운서 손미나 생각이 난다. 그녀는 여행기에 이런 기교
를 부릴 줄 모르는 ‘영원한 아마추어’다. 그녀는 아마도 평생 사실이 아닌 얘기는 쓰지 않을 듯싶다.
누구의 여행기를 읽든 손미나가 생각나는 것은 그녀가 너무 안타까워서다. 해박한 지식과 매끄러운
진행솜씨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그 좋은 직장을 버리고, 이혼까지 불사한 채 돌아다니며 쓴 여행기
가 너무 허술하기 때문이다. 겨우 그 정도 여행기를 쓰기 위해 그 많은 것을 버리고… 나는 방금 인터
넷에 들어가 손미나의 여행기인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를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바구니에
담았다. 머잖은 장래에 손미나를 따라 만년설이 쌓여 있는 안데스산맥을 함께 둘러보자. 그녀의 외로
움을 달래주기 위해서, 읽는 김에 우리의 먼 핏줄인 인디오들의 집안도 기웃거리며.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현대.기아차의 부품사 협력업체가 부도를 낸 기사를 읽었습니다. 국내 완성차의 수출.내수가 부진한 탓과 인건비 상승 그리고 미중 무역전쟁까지 겹친 기업환경 악화가 원인 인데 일감이 없어 휴업중인 해양플란트를 단 한건도 수주치 못한 현대중공업의 노조는 성과급 250%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간 역행적인 양상을 봅니다. 모든게 뒤틀린 불협화음이 그대로 국가경제 위기로 치닿는 원인이 되고있어 염려스럽습니다. 낮동안의 무더위, 잘이겨 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