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Anak)
프레드 아귈라(Freddie Aguilar)
1970년대 TV에 낯선 외국 가수가 등장했다.
통기타에 긴 머리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노래를 부른 가수는 필리핀 태생의
프레디 아귈라(Freddie Aguilar)였다.
노래의 제목은‘아낙(Anak.아들)’
그의 노래는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세계
28개국에서 번안되여 당당히 8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아낙(Anak)은 부모와 자식 간에 벌어지는
감정적인 갈등을 그린 노래다.
그는 마닐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서 한칸의 교실에 유일한
공부방 아낙학교를 운영하는 가수다.
그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연필 한 자루까지
공연을 통한 수익금으로 채운다.
그가 가장 큰 성공을 누렸을 당시 필리핀은
마르코스 독재에 신음했던 가혹한
시절이었다.
그때 프레디 아귈라와 필리핀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일대 사건이 벌어겼는데
마르코스 독재에 니노이 아키노가 공항에서
암살된것이다.
민중은 분노했고 독재에 항거하여 거리로 나섰다.
프레디 아길라는 그들의 중심에서 민중의 삶을
노래했고 자유를 외치는 곳이면
항상 그들의 숨결속에서 노래를 하였다
1970년대 프레드 아길라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의사나 정치인이 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
음악이 좋아서 기타를 들고 집을 나와
음악 활동과 독재 정치를 반대하는
민중 속에서 시위에 참여 했단다.
그는 투쟁하는 민중 가수로 빈민가의 어린아이들을
보살폈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서민으로 살았다고 한다.
특히 그는 세계 80여 국에서 선풍적으로
유행했던 이 “아낙”을 작곡할 때 악보를 보지도
만들 줄도 몰라서 가사를 기록하면서
그 가사위에 키타 코드를 녹음기로 녹음을 하며
십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악보를 보지 못한 채로 해외노동자 감옥에
갇힌 죄수 환락가 아가씨를 위로하는 많은
노래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며
58세의 나이로 아낙 재단을 설립하여 빈민가의
어린이를 돕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상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