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3년을 기다려 '드디어' 라는 단어가 걸맞는 예술의 섬 나오시마로 향했다.
3년 전 부터 가보겠다고 별렀지만 두번의 불발로 인연이 닿지를 못했다.
처음에 함께 가겠다던 사람들은 의지가 약했던지 엔화가 갑자기 휘리릭 올라버리는 바람에 주춤했고
그 다음 해에 두번째 합류한 사람들은 방사능 사태에 경악을 하며 발뺌을 하여 결국 무산.
일년은 일본과 거리 두기를 하고 방사능이 잠잠해-여전히 진행중이지만- 올해 또 다시 혼자라도 가야겠다 싶어 마음 속에 품은 나오시마를 꺼내기 시작했다.
때 마침 3월 초에 시코쿠쪽에서 무설재를 찾아 드신 일본 여행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나오시마와 시코쿠 순례길 일명 오헨로 순례길1번 부터 88번까지로 여행하는 것이 희망사항이라는 말을 전했더니
아주 반가워 하면서 흔쾌히 자신의 집이 순례길 75번과 88번에 가깝다며 숙식 제공을 해주겠다는 언질을 주었다.
그러나 남에게 민폐 끼치는 일이 정말 싫은지라 있는대로 거절을 하였더니만 진실로 화를 내면서
곁에 함께 한 일본여행전문가 박인숙씨와 꼭 함께 오라는 부탁을 하셨다.
물론 동행을 자처한 그녀의 딸도 일본으로 날아와 자신의 엄마와 즐거운 한 때 를 보내 달라는 부탁을 하니
별 수 없이 꼭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하고야 말았다.
여행지에 가서 남의 집에 신세를 진다? 우리나라라면 조금 가능하겠으나 일본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
쉽게 자신의 집을 내어주지도 않지만 오라고 청을 하였어도 진심인지 알 수 없게 구는 것이 또 일본 사람들인지라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직장생활가지 하였던 그러나 지금은 다른 나라에 있는 딸에게 연락을 취하여 물어보았다.
"당연히 일본 사람들은 인사차 초청하는 것이지만 워낙 엄마가 그들에게 잘해주셨으니 진심일 것"
이라는 답변이 돌아와 일단은 마음 편하게 여행길에 나섰다.
5월 20일, 오직 카메라만 중요할 뿐이지만 전과 달리 이번 여행길에서는 어쩐지 모습이 찍힐 것 같은 돌발상황이
생길 것을 염려하여 날짜별로 복장을 챙겼다.
헌데 웬 일이냐...공항 가는 길에 3박 4일의 여정이 5박 6일로 늘어났다.
에고고...챙긴 복장도 나무아미타불이니 번갈아 가며 옷을 꾸려입는 센스를 발휘해야할 판이지만
그래도 이왕 집 나온 것 마구마구 즐겨주셔야 마땅함이니 남편에게 전화를 하여 사정 이야기 하고
잘 지내다 오겠다는 말로 마무리 한 뒤 그야말로 '일정이 늘어나서 더 좋아'를 연발하며 공항으로 날아갔다.
알고 보니 우리를 초청해준 구보다상 가족이 처음 부터 3박 4일은 예정이 아니었고 일요일까지 함께 지낼 스케줄을 이미 계획하고
비행기편까지 알아 보았던 것이니 돌아오는 비행기 편만 바꾸면 되는 그런 여행길을 오르게 된 것.
아,아.. 그야말로 횡재 수순의 여행이라니 아니라도 나오시마 여정의 3박 4일이 수박 겉핧기 식이 될 것 같아
너무 짧겠다 싶었는데 와우, 와우.
일단 12시 55분에 인천공항에 들어가 수속을 마치고 머물게 될 집에 드릴 준비한 음식과 물건들 중에
모자라는 깻잎김치와 고추장을 추가하고 옛날 돈가스 먹으러 식당가로 향하였다.
돈가스 하면 일본이니 비교 차원에서 먹어보고 떠나자는 센스, 하지만 끝내 이번 여행에서는 먹을 기회는 없었고
번번이 일본 여행을 다닐 때 마다 먹어보았던 돈가스와 비교할 기회도 오지 않았다.
아시아나 항공기에서 마일리지 체크를 하고 자동 출국 확인을 받고 면세점으로 향하였다.
박쌤이 화장품을 구입하였더니만 보너스로 주는 티켓으로 구보다상이 좋아하는 젓갈류를 구입해주는 혜안.
어차피 다른 곳에서는 사용할 수 없도록 시스템이 되어 있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누구나 들려가는 곳이 면세점이라지만 별로 필요한 물건이 없는지라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한 바퀴 휙 도는 순간 전 세계 어느 공항에도 없다는 '루이뷔통' 면세품점이 시선을 확 끌어 주신다.
과연 유명제품 소비의 제왕 대한민국을 알아주심이군 싶었지만 무관한 관계로 눈팅만, 3시 40분 떠나야 할 시간이다.
아시아나 항공에서 제공하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또 다시 숨을 못 쉬도록 헉헉.
'사누키' 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기어이 왔구나'를 실감하면서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
얼마나 많은 사누키 우동을 먹게 될까 행복한 상상을 하였지만 실제는 다섯끼니 먹고 아, 밥이 먹고 싶다 였다는.
그렇게 한 시간 여를 날아가 다카마쓰 공항에 도착하니 비님이 오신다.
비, 문학쪽으로 말하자면 만남을 의미하니 다카마쓰 공항이 우리를 환영하는 것이요 앞으로 만나게 될 구보다 가족과의 만남이
기분 좋은 환영으로 이뤄질 것 같은 예감을 안고 공항을 나서니 저 멀리서 구보다상이 달려와 와락 껴안는다.
짧은 만남이 긴 시간을 허락할 것 같은 또 다른 예감과 기대가 슬며시 올라오고 내리는 비에 대해
만남의 미학을 의미한다고 말해주었더니 정말 그러냐고 좋아라 한다.
그러나 어지간히 내렸던 비가 그나마 잠시 소강상태라는 구보다상의 말에 의하면 완전 날벼락을 동반한 엄청난
폭우가 하루종일 진을 치셨다는 것인데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도착할 시점에는 비님이 잦아드셨다는 것.
어쩐지 조짐이 좋아보인다.
날마다 맑고 푸른 날은 사진작가로서는 재미가 없는 법이니 얼씨구나 다.
흐린 날의 묘미나 비 오는 날의 아릿함을 사진에 담아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싶어 야호...좋아 죽겠다.
일단은 처음 만나는 구보다상의 남편에게 눈인사를 하고 그들이 정해놓은 스케줄을 따라 움직인다.
더불어 일본여행전문가 박인숙님의 말 한 자락 보태자면
"다카마쓰 공항에서 하늘과 땅이 만나는 것 처럼 다카마쓰가 우리가 오는 것을 환영하여 비를 내려주심이니
차분한 분위기에서 여행을 하게 되는 즐거움이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네요. 오기 전에 간밤에 비 오라고 기도했어요"
다들 죽자고 웃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서둘러 공항을 빠져 나오니 출국장 입구에 가가와현의 자랑인 사누키 우동 자랑질이 눈에 들어오고
돌무덤같은 것이 눈길을 끄니 역시 제주도와 같은 섬나라 라는 같은 동일선상의 느낌을 뒤로 하고
그들이 정해놓은 곳으로 향하자니 제법 비님이 내려주는 모양새.
흐릿한 풍광의 거리와 집들이 눈에 들어와 가볍게 한 컷 날려 주셨다.
뒤 이어 도착한 곤삐라 온천장, 바다의 신 곤삐라의 염원을 담은 온천장이라는데 온천이 목적이 아닌고로 관심은 노,
진면목인 에도시대의 거리 풍광이 눈에 들어와 환호성을 지르며 사진 촬영에 돌입.
고토히라구 신사 올라가는 게단은 무려 785개. 게단 양쪽으로는 토산품점이 즐비하고 장인들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는데 어두운 밤이라 다들 문을 닫아 아쉬웠다...비님도 오셔 주시고.
보시다시피 쥔장과 구보다상 그리고 구보다상의 남편과 일본여행전문가 박인숙씨와 구보다상.
일본에서는 사진을 찍을 때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죽는다는 속설이 있어 부부는 가장자리로.
그러나 이 여행기 마지막 편 까지 잘 들여다 보시면 그들 부부가 한국여자들에 의해 어떻게 변하는지 알게 되실 터이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이다.
그들의 몸과 마음과 복장과 행동거지도 일정 부분이 적극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는 후문.
사실 일본인들은 거의 온천 후 식사 그리고 온천 또 그 다음 날 아침에도 온천의 수순을 거친다지만 그저 눈앞에 보이는
비오는 날의 거리 풍경을 놓칠새라 정신은 반쯤 접어놓고 사진 촬영에 몰두하다 보니 다시 비가 억수로 내린다.
하여 별수 없이 오래되었다는 JR고토히라 역사를 눈으로 즐기고 다음 행선지로 찾아들어 우동에 탐닉.
하여 별수 없이 오래되었다는 JR고토히라 역사를 눈으로 즐기고 다음 행선지로 찾아들어 우동에 탐닉.
첫 날부터 시작된 우동 순례는 나오시마에서 정점을 찍고 아무리 사누키 우동이 유명하다 하여도 거기가 한계인고로
우리는 더 이상 우동에 대한 미련이 없는 대한민국의 여자들, 그 이름도 찬란한 아줌마들이다.
어쨋거나 소한 우동집에서 맛보는 오뎅은 그야말로 머리를 뜷고 나올 정도의 아찔함을 선사하였으니 아 그놈의 겨자.
모르면 물어야 하는 법이건만 잘난 척 하고 그저 담겨 나온 오뎅을 낼름 집어먹었다가 머리가 날아갈 뻔 했다는 말씀이니...무식함이여.
좌우지간 늦은 저녁을 탐식하고 觀音지에 있다는 구보다상의 집으로 고고고...얼마 전에 새로 지은 집을
처음으로 외부인에게 공개하는데 그것이 우리가 첫 손님이라는 말씀인 셈.
친척들이 제사를 지내러 와도 집안에서 재우지 아니하고 여관에서 재우는 일본인들의 습성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대접을 받는 셈이니 고마운 일이다.
게다가 그녀의 시어머니를 모신 불단 앞에 찾아들어 그녀가 한국의 친구들이 날아왔음을 고하는 장면을 보니
그토록 원형 탈모를 일으킬 만큼 힘들게 하고 고달프게 한 시어머니지만
지금은 원망은 사라지고 안타까운 마음만 든다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뭉클하였다는 말이다.
박쎔을 곁에 두고 시어머님의 불단에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들을 자랑하며 설명 중인 구보다상이 가장 좋아한 것은
박쌤이 마련한 김치도 라면도 김도 고추장 및 기타등등 반찬류도 아닌 쥔장이 준비해간 인삼과 염주와 직접 덖은 차와
손수 만든 수제품 류와 깍뚜기도 제낀 대한한국에서 열풍이요 유행중인 냉장고 바지였다는 사실...목에 두르고 한참을 웃었다.
허나 구보다상은 간만에 만난 즐거움에 빠져 잠을 재우지 아니하고 우리는 물먹은 솜처럼 피곤한 몸을 가누느라 힘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예의상이라도 열심히 경청하며 열심히 웃어주고 "오겡끼데스까?"와 "아리가도우 고자이마스" 를 연발할 수밖에.
그리고 새롭게 마련한 방석과 새로이 장만해준 이부자리와 잠옷을 입고 꿈나라로 쑤우욱...결국 잠 못드는 밤이 되었다.
낯선 집에서의 숙면은 애시당초 쥔장의 사전에 없다.
워낙 무설재 자체가 적막강산인 곳이요 조용한 곳에서의 수면에 익숙한지라 여행을 떠나면 잠 못자는 것은 각오해야 하는 법.
게다가 동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보다 먼저 잠이 들어야 하건만 기회를 놓쳤으므로 선잠을 자며 날밤을 새웠다는 말씀이지만
그래도 태양은 떠오르고 몸은 고달퍼도 즐거운 마음으로 이른 아침에 나서는 발걸음은 흥겹기만 하다.
기쁜 마음으로 다카마쓰 항으로 가는 길에 운전기사를 자청하며 눈에 보이는대로 자신의 지역 자랑거리를 설명하느라
신나하는 모습을 보이는 남편을 보니 그 또한 흐뭇하였다.
자, 이제 둘째 날 일정,
근사하고 멋진, 설렘과 기대감으로 그득했던 나오시마 입성기를 기대하시라.
첫댓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것처럼 선잠으로 날밤을 지새워도 내일은 또다른 에너지가 팍팍 샘솟으셨으리라 믿으며... 더 멋진 사진 기대하겠습니다
그러게...거의 잠을 못 자고 다녔지만 나름대로 엄청 즐거웠으니 상쇄 될 만하지.
더구나 나오시마에서 몰래 찍은 사진들은 사용은 못하지만 나는 좋기만 하다.
나 혼자라도 볼 수 있으니 ㅎㅎㅎㅎ
구보다상의 천진난만한 웃음에, 쥔장님의 여행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네요, 사진과 글을 보며 같이 느껴봅니다. 부럽네요~~~^^
네, 정말 구보다상 덕분에 많이 즐거웠어요.
바쁘기도 했구요...
오뎅에 뭍어 있는 겨자맛이 머리가 찡했던건감~?
우와 재밌다 재밌어~! 부럽부러~! ㅎㅎㅎ
머리가 하늘 위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는.
와사비가 정말 장난이 아니게 톡 쏘는데 눈물은 둘째 치고 머리가 날아가는 줄 알았답니다요.
와우 ~ 일본여행 그도 예술을 찾아서 흥미진진합니다.
오래 기다렸다 찾아간 나오시마 라서 더욱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