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삼성의 초격차 전략
서울대총동창신문 제488호(2018. 11.15)
권오현(전자공학71-75, 66세)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지난 10월 31일 삼성전자는 2018년 3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반도체 부문에서 13조 6,5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동기 대비 37% 증가한 수치이며 역대 최고 실적이기도 하다. 같은 날 통계청은 9월 산업활동동향을 발표, 현재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6개월 연속 하락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장기 하락은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악재가 많았던 2016년 4월 이후 2년여 만에 처음이다.
국내 경기의 침체 국면에도 불구하고 독야청청 호황을 누리는 삼성 반도체. 그 밑바탕에는 ‘경쟁사가 넘볼 수 없을 만큼 기술적 격차를 크게 벌려 슈퍼 사이클(장기호황)을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초격차 전략이 숨어있다. 신간 ‘초격차’는 초격차 전략을 창시하고 실행한 권오현(전기공학71-75)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의 리더십과 경영전략이 담긴 책이다.
서울대 학부와 카이스트 석사 졸업 후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권오현 동문은 미국 스탠퍼드대 유학시절 막연히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접고 삼성에 입사한다.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보통 대학 교수가 되는 국내와 달리 미국 특히 스탠퍼드대 출신들은 학계 진출보단 회사에 취업했고 졸업 대신 창업을 하기도 했던 것. 이러한 분위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권 동문은 유년시절 즐겨봤던 만화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의 윤 박사처럼 무언가 만들겠다는 어릴 때의 꿈을 다시 펼치기로 한다. 권 동문은 그 후 1980년대 4Mb DRAM 공정기술 개발에 이어 1990년대 세계 최초로 64Mb DRAM 반도체를 개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땐 연구개발직에서 시스템LSI(비메모리) 사업부로 자리를 옮겨 처음으로 ‘경영’을 하게 된다. 퇴출 직전의 대형 적자를 기록하고 있던 사업체를 여럿 회생시켰고 그 과정에서 과감한 시도와 다양한 경영 아이디어를 실험하면서 전문 경영자로 커리어 전환을 이뤘다.
초격차의 격은 멀어지다는 뜻의 격(隔)이지만 이 책에선 품위를 뜻하는 격(格)의 의미로도 쓰인다. 이는 경영자 즉 리더의 삶이란 지위나 권위가 아닌 삶의 방식 그 자체라는 통찰에서 비롯된다. 리더의 품위와 수준의 차이가 초격차 실현의 전제가 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1장 ‘리더 탄생과 진화’에선 리더의 필수 내적 덕목으로 진솔함₩겸손₩무사욕 (無私慾)을, 외적 덕목으로 통찰력₩결단력₩실행력₩지속력을 제시하면서 이 모든 것들을 다 갖추고 동시에 발휘될 때 초격차를 가능케 하는 리더가 탄생된다고 말한다. 2장 ‘조직 원칙과 시스템’에선 리더라면 어떤 인재를 쓸지 고민하기에 앞서 조직도 자체를 새로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3장 ‘전략 생존과 성장’에선 ‘삼성의 초격차’를 으레 ‘승자독식’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짚으면서 초격차는 절대적 기술 우위와 끊임없는 혁신, 그에 걸맞은 구성원들의 품격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4장 ‘인재 원석과 보석’에선 공부만 열심히 한 명문대생보단 특별한 경험을 가진 지방대생이 훨씬 낫다고 평하면서 인재 발굴 및 양성 방법을 제시한다.
권 동문은 “경영은 감성적인 영역에 대한 관리”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답도 없고 천차만별이라고. 그러한 경영을 오래 해왔기 때문일까. 책의 내용은 삼성의 전문 경영인다운 폭넓은 통찰과 냉철한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독자를 대하는 문체만큼은 정중하고 따뜻하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