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루스의 카스피해>
이란 여행기 9
"테헤란 - 찰루스"
2013년 10월 4일 7:30분, 하마단발 테헤란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한 줄에 3명씩 앉게 되어 있고, 앞뒤 의자 사이의 간격이 넓어서, 너무 편안해, 대부분 사람들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잠시 뒤에 잠을 깨보니 조수가 운전수에게 대접하는 것이 시녀가 상감마마 대접하듯 했다. 연신 유리를 닦고, 운전 기사에게 더운 물을 따라 주고, 먹을 것을 건네 주었다. 좀 시간이 지나자 기사가 졸릴까 싶어 말을 걸었다. 체형이 거대한 조수가 그렇게 상냥하다니, 보기와는 딴 판이었다. 이란에서 조수, 그것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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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에는 찰루스를 가야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할당된 테헤란 구경 시간은 당일 오후뿐이었다. 11시 30분에 테헤란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1시 30분부터 테헤란 구경에 나섰다. 버스를 대절하여 골레스탄 궁전으로 갔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본 것이 거의 대부분, 궁전 아니면 모스크이었으므로, 이 궁전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막상 도착해보니, 일부는 수리 중이었고 일부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선머슴 벌초하듯 건성건성 구경하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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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estan Palace>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서울의 남대문 시장 같은 곳이다. 입구에 있는 과일 가게에 저녁 빛이 스며들어 과일의 색감을 환상적이었다. 과일의 빛에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우리 일행이 사방으로 흩어져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 정신을 차려 키 큰 복만씨를 따라 잡은 것은 행운이었다. 좁은 골목에 뭐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물건을 살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 수십년 굶은 비둘기 떼 빵 조각 보고 달려들듯, 좁은 골목에 "날 죽여라"하고 몰려들었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도저히 여기서는 있을 수 없으니,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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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시내가 잘 보인다는 지점으로 가서 테헤란의 전경을 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올라가서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또 셔틀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보다 걷는 사람이 더 많았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위에는 넓은 광장이 있었는데, 별로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번지 점프를 하기도 하고, 공놀이를 하기도 하고, 배드민턴을 치기도 했다. 시내를 구경하고 있는 데, H님이 나에게 말했다. "저 앞에 엄청 멋있는 남자가 있는데, 그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어서 제가 좋은 생각을 해냈습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그 사람 앞에서 서 있을테니 사진을 찍어 주세요."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술책도 비상했지만, 미남을 보면 여자들의 마음이 저렇게 변하는 것은 내 처음 알았다. 나는 미녀를 좋아하는 것은 남자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었다.
사진을 찍어도 찍어도 여자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나를 보거나, 잘 생긴 남자를 벌갈아 보았다. 나에게 계속 찍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우리 아줌마들은 잘 생긴 이란 남자에게 눈이 팔려, 동그랗던 눈이 점점 게슴츠레해지고 있었다. 하도 오래 찍어대니, 결국 이란 남자가 우리의 술수를 알아채 버리고 말았다. 마음 놓고 자기를 보고, 사진을 찍으라고 윤허 해줬다. 빵집에 불난 듯이 난리 법석을 피워대며 셔터를 눌러대던 동포 여성들을 누가 말리지 않으면 그날 밤은 아마 거기에서 날 샜을 것이다.
이미 어둠에 휩싸인 칙칙한 테헤란 시내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버스를 타고 호텔로 오면서, 여자들은 핸드폰에 담아둔 사진을 보고 또 보고, 핸드폰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난데 없이 미남의 애인을 못 마땅하게 여겼다. 여러 단계 인물이 떨어진 여자가 저런 남자를 애인으로 두다니, 이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올라가서 두 사람을 떼에 놓아야 한다고도 했다. 하여튼 그래서 하루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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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척하며 미남을 실컷 보다>
호텔에 돌아와 이발을 하러 나갔다. 호텔 근처에 있는 이발소 아저씨는 나를 보더니 한 동안 말 없이 멍하니 서 있었다. 별놈 다봤다는 표정이었다. How much? 내가 요금을 물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3000원에 해당되는 이란 돈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내가 OK 하니, 그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쓱쓱 깎기 시작하더니 정확하게 3분만에 이발을 마쳤다. 헤어 드라이기로 남은 머리를 털어내는데 20초, 결국 3분 20초만에 이발의 모든 과정이 끝나고 말았다. 내 평생 이발을 해본 중 최단 신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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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루스를 향해 테헤란을 떠난 것은 2013년 10월 5일 8시 30분이었다. 테헤란 시내를 벗어나는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거기서부터 버스는 굉음을 내면서 오르막길을 달렸다. 얼마를 갔을까? "호수다!"라는 함성이 나왔다. 이란 사막에 호수가 있다니 너무 신기했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냇물을 막아서 댐을 만들었다. 높은 산에 쌓인 눈이 녹아 내리는 물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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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잠시 쉰 곳의 어떤 가게 앞에 흰 주머니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무엇인가를 발효시키고 있다고 주인은 말했다.>
그 이후로 차는 계속 달렸고, 가끔가다 나타나는 몇 가구 안되는 마을을 제외하고는 나무 한 그루 없는 삭막한 산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느덧 버스는 4850미터의 알람쿠산이 있는 해발 2500미터 고개를 넘고 있었다. 고개를 넘자마자 드디어 나무로 덮인 산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풍경과는 완전 딴판인 세상이 전개된 것이다. 사람이 살 만한 세상에 입성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버스는 가파른 길을 갈지자를 그리며 쏜살같이 내려뽑고 있었다.
그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란에 비가 오는 곳이 다 있다니! 나무, 풀, 꽃, 비 --- 이 모든 단어들이 낯설게만 느껴지더니, 한 순간에 바로 그 속에 내가 있게 되었다. 카스피해의 습기가 2500미터의 산맥을 넘지 못해, 테헤란이 사막이 되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날 오후 내내 비가 오고 바람이 몹시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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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착한 곳은 카스피 해와 맞닿은 45평 정도되는 콘도였는데, 한 방에 네 명씩 배당되었다. 창문을 여니, 강풍에 파도가 으르렁 거리며 바다 바닥에 흰 이빨처럼 포말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가 카스피해구나! 나는 휘몰아치는 카스피해의 습한 바람을 맞아가며 바닷가로 나갔다. 육지로 둘러싸인 거대한 이 호수를 사람들은 카스피 바다라고 부른다! 육지에 있는 바다 또는 호수 중,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이다. 438,000 평방키로다. 남북한 합한 것이 22만 평방키로이니, 이것은 한반도의 두배의 크기다.
나는 이 물이 짠지 짜지 않은지 손가락을 물에 담갔다가 맛을 보았다. 우리가 마시는 보통 물보다는 짜고 한국의 동해안에 있는 물보다는 택도 없을 정도로 싱거웠다. 소금기가 있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심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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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것은 유네스라는 복만씨 친구였다. 온몸이 근육으로 덮여있고, 허리가 곧은 그는, 우리가 찰루스에 머문 3일 동안 우리를 안내해주고 보살펴 주었다. 복만씨와 유네스가 친구가 된 사연도 재미있다. 복만씨는 태국의 방콕에서 유네스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거기에서 서로 주소를 적어 주고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서, 친구가 되었고, 우리가 여기에 오기전 복만씨가 한 번 유네스의 집에 다녀 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복만씨는 이번이 두 번째로 찰루스에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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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루스에 있는 3일간, 우리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을 작정이었다. 우리는 조를 짜서 식사 당번을 정하고, 각 조는 본인들이 메뉴를 정하고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찰루스 시장을 가야했다. 마침 비가 와서 자동차 정비소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비소 아저씨는 기름이 묻은 옷을 벗고 새옷으로 갈아입더니, 자기가 시내까지 데려다 줄테니 자기 차를 타라고 했다. 이란 사람들 참으로 친절하다.
비오는 찰루스 시장을 누볐다. 이란 사람들이 이상한 듯이 바라보았다. 쌀과 고기 그리고 과일과 채소를 바리바리 사들고 돌아왔다. 하마단에서 담근 김치와 닭백숙, 불고기, 파전, 호박죽 ...... 한국에서나 있을 법한 온갖 음식이 밥상에 올라왔다. 아! 그날부터 찰루스를 떠날 때까지 우리는 일 주일 굶은 이리 떼처럼 주야장창 먹어댔다. 내 팔자가 왜 이리도 좋은지 웃음이 모든 사람의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그러다가 배가 불러 일어나지도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다니면서, 내 팔자가 왜 이리 기구한지, 얼굴의 미소는 팔자 타령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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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지도>
다음 날, 유네스는 자기의 고향인 켈라르다쉬트에 가 볼 것을 제안했다. Lonely Planet에도 "이란의 천국이라고 불려지며, 자연을 좋아하는 테헤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등산, 송어 낚시, 스키, 트레킹 등을 할 수 있다" 라고 기술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간 곳이 나마카브루드이다. 카스피 해의 해안가를 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라가야한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모두 telecabin이라고 부르고, telecabin이 영어라고 생각한다. 케이블카 매표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표를 사려고 기다리는 긴 줄이 있었다. 대부분이 이란 사람들이었고, 우리 앞에 거무튀튀한 이라크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이라크 사람들을 보더니 유네스는 "Arab people are bad."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Why?"라고 물으니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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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사람들>
<케이블 카에서 바라본 카스피해>
케이블카가 점점 올라가자 드디어 멀리, 둥글게 말아돌아가는 카스피해의 윤곽이 나타났다. 해안선을 따라 뻗어 있는 해변을 따라서 넓은 평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평원에는 빨간 지붕을 머리에 쓴, 낮은 집들이 올망졸망 우의 좋게 소근거리고 있었고, 하늘에는 언제 올지 모를 비를 품은 먹구름장이 눈썹을 치켜 뜨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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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미터의 정상에 오르니, 안개가 몰려왔다 사라지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정상은 아마존의 정글에서나 볼 수 있는 원시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을씨년스럽고 차가운 기운이 산을 덮고 있었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산에는 음산한 기운을 타고 천년 묵은 늑대가 나타날 것같은 분위기였고, 안개 속을 걷는 사람들의 무리가 나를 잡으로 접근하는 염라대왕의 사자(使者)처럼 무섭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무엇을 먹거나, 사진을 찍고, 물담배를 빨아대기도 하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임에도 이란 사람들은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달려들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분위기는 밝아지고 너나 할 것 없이 한패가 되어 웃고 떠드는 소리가, 큰 칼 옆에 차고 하늘을 향해 소리치는 고구려 장군의 목소리처럼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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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라르다쉬트로 가는 길은 비포장 산길이었다. 비가 와서 축축하고 미끄러운 진흙길로 버스는 달렸다. 길 옆에는 가끔가다 조그만 음식점이 있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오들오들 떨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옥수수를 불에 굽는 장면이 보이기도 하고, 얼마나 오랫 동안 장작불로 찻물을 끓여왔는지, 검댕을 뒤집어 쓴 주전자가 애닯고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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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목적지에 다 와서도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멀리 산 중턱에 그리고 산 위에 별장이라고 생각되는 집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밭은 무엇을 심은 흔적이 보였으나 농작물은 보이지 않았다.
막상 목적지에 와보니 조그만 동네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알고 보니 거기에서 한참을 더 가야 등산코스가 있고 낚시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시간상 거기는 갈 수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근처에, 지금은 사람을 받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이상한 호텔이 있었다. 지붕이 공룡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그 위에 백마를 탄 장군이 붉은 용과 싸우는 모형이 있었고, 지붕에는 화분이 놓여져 있었다. 한 때는 장사가 잘 되어 손님이 많았겠지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 초라한 호텔은, 화려한 과거를 가진 매래가 없는 술주정뱅이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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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라다쉬트에서 한 일은, 점심먹고 옆에 있는 이 아기 사진 하나 찍어준 것이 전부다>
<중간에 길 옆 시장>
<밤에 길에서 만난 사람들>
다음 날 아침, 해안선을 따라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해안선을 따라 높은 건물이 들어서 있어서 길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으며, 바다를 보려면, 중간 중간에 나 있는 샛길을 따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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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길을 따라가니 큰 건물이 나오고 무슨 건물인지 모르지만, 마치 에덴 동산처럼 정원을 가꾸어 놓은 빌딩이 나타났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면, 여름 한 철 사용되는 콘도 같았다. 거기에서 다시 바닷가 쪽으로 가니 방파제가 있었다. 카스피해의 바닷물이 성난 폭군처럼 벽에다 자신을 부딪치고 있었다. 몸이 바람에 날려 똑바로 걷기가 힘들었다. 비틀거리며 계속 바닷가를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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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개울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두 사람이 그물을 끌고 가고 있었다. 어제 비가 많이와서 아마 고기가 많이 잡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접근하여 잡은 고기를 보자고 했다. 그들은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고기도 잡지 못하면서 왜 아침부터 나와서 이러는지 내가 물었다. "고기가 잡히건 말건, 비만 오면 우리는 이곳에 옵니다. 그리고 그물을 끌지요. 뭐, 고기를 잡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파도치는 저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이곳에 나온 것에 대한 본전은 뽑은 겁니다. 세상에는 값이 없는 것이 더 소중하고, 더 큰 기쁨을 주지요."
그와 작별하고 큰 길로 나왔다. 한 동안 그의 말이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가 않았다. 그 사람이 왜 그런지 다시 보고 싶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나를 보고 빙그레 웃고 있었다. 윤동주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났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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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다음 회(제 10회)에 끝납니다.
(2013년 11월 9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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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카스피해!! 잘생긴 남자 그리고 용평의 아지트에서 산해진미를 준비하시고 맞아주셨던 빨간상을 연상시키는 풍성한 먹거리!! 이란으로 향하고 싶어요!!비바람치는 카스피해도 궁금하구요!!
다음에는 찰루스에서 테헤란을 거치지 않고 직접 도그베아짓으로 가는 것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