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제이콥스 저/김영진 역 | 서해문집 | 2020년 10월 25일
책소개
"나는 유대인이고, 141129번 수용자였으며, 수용소 내 치과의사였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덜 중요한 사람이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1941년 5월 5일 아침 나치에게 끌려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 1945년 5월 3일 해방을 맞기까지의 나날들을 담은 이 책은, 그렇지만, 여느 홀로코스트 회고록과는 달리 고문을 당하거나 존엄성이 짓밟히는 고통스러운 순간에 주목하지만은 않는다. 우리는 지은이가 수용소 내 의사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강제수용소에 대한 우리 인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쓰러져 죽거나 가스실에 끌려가 죽는 등 유대인 학살에 집중된 이미지들을 떠올려볼 때, 이런 질문이 남겨진다. 수용소에 의사가 있을 필요나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하지만 ‘강제노동수용소’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수용소는 단순히 유대인을 말살시키고자 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동시에 수용자들에게서 노동력을 짜내고, 그들 노동력을 팔아넘기는 공간이기도 했다. 수용자들이 노동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살려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또 나치 친위대원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수용소 내에는 의무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에 있는 것이 고작 붕대나 요오드, 진통제뿐이었을지라도. 이 책이 다른 홀로코스트 회고록과 구별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은이는 수용소 내 치과의사로서 수용자들 입안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나치 입안을 들여다보았고, 치과의사라는 직업상 여느 수용자들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서 수용소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 군상은 상당히 복잡하고 미묘하다.
목차
서문
추방
폴란드의 작은 유대인 마을
전격전
독일의 점령
게토
첫 번째 수용소: 스테이네츠크
사랑에 빠지다
고문
두 번째 수용소: 구텐브룬
가족들의 죽음
아우슈비츠로 가는 화물차 안에서
세 번째 수용소: 아우슈비츠
네 번째 수용소: 퓌르슈텐그루베
전쟁의 막바지: 1943~1945
죽음의 행진
다섯 번째 수용소: 도라-미텔바우
재앙이 덮치다
침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전쟁 후의 독일
후기
옮긴이의 글
저자 소개 (2명)
저 : 벤저민 제이콥스 (Benjamin Jacobs)
1919년 브로네크 야쿠보비치Bronek Jakubowicz로 태어났지만 1949년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벤저민 제이콥스로 이름을 바꿨다. 1941년 5월 5일 폴란드의 작은 유대인 마을 도브라에서 나치에게 끌려가 1945년 5월 3일 카프 아르코나 호에서의 참사로 해방을 맞기까지 4년간 다섯 개 강제노역수용소에서 포로 생활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 보스턴에 정착해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홀로코스트 경험을 증언했다. 미국에서 1987년까지 사업가로 살았으며, 해방 후 반세기가 지난 1995년에 이르러서야 수용소 생활에 대한 회고록, 《아우슈비츠의 치과의사》를 냈다. 2004년 1월 숨을 거뒀다.
역 : 김영진
1976년 서울 출생. 어릴 적부터 독서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책을 가까이하며 자랐다. 특히 역사에 많은 흥미를 느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내 꿈은 역사학자라고 당당히 외고 다녔다.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토머스 모어, 거지왕자를 구하다』를 썼고,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핀켈슈타인의 우리는 너무 멀리 갔다』 『세일럼의 마녀들』 등을 번역했다. 역사는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한다. 여러 시민강좌와 독서모임에서 시민들과 소중한 경험을 했다. 조금이라도 쉽고 재미있게 역사를 대중에게 소개하려 노력하고 있다.연히 대학은 사학과로 진학했으며, 대학원을 거쳐 강단에 서는 오늘까지도 손에서 역사 등 인문학 관련 서적을 놓지 않고 있다. 처음 강단에 섰을 때 놀랐던 점은 많은 학생들이 나처럼 인문학을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되도록 인문학을 재미있게 소개하고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늘 고민하고 있다.
학교 강의 외에도 교하도서관, 성북정보도서관, 강동도서관 등에서 시민 강좌를 통해 인문학에 관심 있는 시민들과 소중한 경험을 함께했다. 지금은 파주시 도서관 운영위원으로서 많은 이에게 좋은 책들을 소개할 기회를 마련하고자 고심 중이다. 『하워드 진 살아 있는 미국 역사』, 『2차 대전의 숨은 영웅들』, 『핀켈슈타인의 우리는 너무 멀리 갔다』, 『세일럼의 마녀들』, 『지도 밖으로 꺼낸 한국사』를 번역했다.
출판사 리뷰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는 가능한가? 이 너무나도 유명한 명제가 간명하게 말해주듯이, 홀로코스트가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학교에서부터 이 참상을 배울뿐더러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책과 영화가 존재하기 때문에(심지어 우리는 VOD 서비스에서 ‘홀로코스트 영화’라는 분류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렇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이 이야기를 소개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거꾸로 던져보아야 한다. 왜 그토록 많은 책과 영화가 필요했을까? 과연 홀로코스트 작품들은 충분할 만큼 많은가? 프리모 레비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지금까지도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400만 명인지 600만 명인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언제나 수백만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살아 돌아온 극소수, 그들 중에서도 몇몇 이들만이 자신이 겪은 것을 대중 앞에 말할 수 있었고, 이제 그들 대부분은 생을 마감했다. 1919년에 브로네크 야쿠보비치로 태어났으나 종전 후 1949년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벤저민 제이콥스로 이름을 바꾼 지은이 역시 2004년 1월에 숨을 거뒀다. 그는 오랫동안 미국 전역을 오가며 자신의 홀로코스트 경험을 증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회고록 《아우슈비츠의 치과의사》를 낸 것은 종전 후 반세기가 지난 1995년, 후두암에 걸려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한 뒤였다. ‘아우슈비츠’로 표상되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은 박물관 전시실 속에나 남겨질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1941년 5월 5일 아침 나치에게 끌려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 1945년 5월 3일 해방을 맞기까지의 나날들을 담은 이 책은, 그렇지만, 여느 홀로코스트 회고록과는 달리 고문을 당하거나 존엄성이 짓밟히는 고통스러운 순간에 주목하지만은 않는다. 우리는 지은이가 수용소 내 의사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강제수용소에 대한 우리 인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쓰러져 죽거나 가스실에 끌려가 죽는 등 유대인 학살에 집중된 이미지들을 떠올려볼 때, 이런 질문이 남겨진다. 수용소에 의사가 있을 필요나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하지만 ‘강제노동수용소’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수용소는 단순히 유대인을 말살시키고자 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동시에 수용자들에게서 노동력을 짜내고, 그들 노동력을 팔아넘기는 공간이기도 했다. 수용자들이 노동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살려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또 나치 친위대원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수용소 내에는 의무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에 있는 것이 고작 붕대나 요오드, 진통제뿐이었을지라도. 이 책이 다른 홀로코스트 회고록과 구별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은이는 수용소 내 치과의사로서 수용자들 입안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나치 입안을 들여다보았고, 치과의사라는 직업상 여느 수용자들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서 수용소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 군상은 상당히 복잡하고 미묘하다.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이들이 있는가 하면 끝끝내 신앙을 지킨 이들이 있었고, 이득을 취하고자 동료들을 밀고하는 수용자가 있는가 하면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수용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총살하면서도 어떤 순간에는 인간적인 면을 보이는 나치가 있었다. 이렇듯 복잡한 면면은 지은이에게서도 드러난다. 그는 한편으로는 의사라는 직업에 따르는 사회적 존경이 수용소 내에서는 ‘특혜’(더 많은 배식, 고된 노동으로부터의 배제 등)로 돌아오기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죽은 수용자들 입안에서 금니를 빼내라는 명령에 치를 떨고 역겨움에 몸서리친다. 고통스럽고 모욕적인 나날들이 이어지는가 하면 믿을 수 없게도 수용소 바깥의 폴란드인 소녀와 사랑을 나누는 나날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유대인을 향해 사악한 행위를 거리낌 없이 저질렀던 이들이 그들 각자의 집에서는 좋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듯이, 수용소 역시 온갖 잔학한 행위가 벌어지는 한편 수용자들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양가적인 공간이었다.
다섯 개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보낸 4년을 담담히 써내려간 이 책은 그곳에서 먹고, 자고, 치과진료소로 오는 이들을 치료하고, 누군가를 만나거나 작별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헤어지고, 고문을 당하거나 예상치 못한 선의를 받고, 기쁘거나 슬픈 일을 겪은 기억들로 빼곡하다. 5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이 기억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수용자들 사이에 서 있는 당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온라인 서평은 이 놀랄 만큼 생생하게 남아 있는 기억에 혹시 지어낸 게 아니냐는 의문을 내비치기까지 했지만, 다른 많은 홀로코스트 회고록이 보여주듯이(홀로코스트 회고록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세월호, 광주 등 거대한 비극에 휘말렸던 이들이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고통은 인간 마음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겨놓는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따라서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다른 홀로코스트 생환자이자 198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이 이렇게 말했듯이. “기억이 없다면, 우리 존재는 빛이 스며들지 않는 감옥처럼 황량하고 불투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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