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토)에 떠나 22일(토)에 옵니다.
다녀 온 뒤에 추석입니다.
계절이 바뀌니 건강 조심하시고요.
여행 떠날 차비를 하다보니 지난 날에 다녀 본 동남아 몇 몇 곳의 생각이 납니다.
1999년 12월 묵은 여행기입니다.
10년 뒤 지금, 다음 달 유럽행을 작정합니다.
묵은 기억 속에 새로운 곳에 대한 궁금증을 더 키워 봅니다.
여기서 꽃분이는 밤을 파는 여인들이 아닙니다. 우리 한국인을 상대로 열심히 자기 나라의 문화를 따듯한 입담으로 파는 현지의 도우미 여인들입니다.
10년이면 변하는 강산, 지금의 동남아 여행을 어떤지요?
신혼 여행을 다녀온 지 22년이 지나고, 비 오고요 바람 불고요 하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부부가 비행기 타고 바다 건너본지 이번이 처음이니.
비행기에서 하루 자고 호텔에서 네 밤을 자고 잘 놀다 잘 먹고 왔다.
그러나 여독은 방콕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를 타면서 왔다.
저녁을 멀쩡하게 잘 먹고, 동행 35명 중 11명이 맛사지를 받으러 가는 동안 현지 가이드는 남은 우리들에게 "2시간을 버스에서 남으시겠오, 그것보다 건강을 위해서 맛사지를 받으시겠오" 했지만 한 사람당 40불씩 내고 안마를 받기에 벅차고, 아깝기도 했었다.
안마시술소 건너에 있는 <그레이스 호텔> 라운지에 우리 일행의 아낙들은 바가지 커피 요금 걱정으로 값을 알아보니, 단 2불 50센트라.
마음 놓고 떠들고 말레지아 풍 미인 가수의 마이웨이 류의 60년대의 팝송에 박수를 힘주고 쳤었고, 함께 간 일행 중 하나인 전 국제건설 인사부장이었던 최부장은 10불을 "기분!" 하며 여가수에게 주었다.
가수는 "I'll buy beautiful shoes" 하며 기뻐했었지.
그 < 기분!>은 나중에 남은 가족들의 공동 부담이 되었다. '쯧쯧 기분 내기는, 녀석' 하며 나는 속으로 투덜댔다. "녀석" 소리를 들어 마땅할 그는 대학 후배이며 회사 동료이기도 했다.
그때, 함께 갔던 일행의 한 남정네는 저녁 먹은 것이 체해서, 기력이 빠지고 손을 얼음에 넣은 듯 차가워져 있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내가 나서서 이쑤시개로 손톱 위를 사관 틉네 하고 땄으나, 환자는 아파할 뿐. 마침 침을 가지고 다니는 70의 노객 한 분이 사관을 떠서 겨우 온기가 돌아왔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슬슬 내게 체기가 돌더니 꼼짝 못하
겠다. 자리는 이코노미 맨 앞 줄, 아내의 눈빛이 걱정스럽게 나를 지키고 있고, 나는 앙다문 입으로 6시간 반의 귀국행을 하고 있으니.
시작이 그렇치는 않았었다.
11월 30일 비행기는 10시에 김포를 기분 좋게 출발하였었다. 여기는 겨울이지만 우리가 가는 동남아는 여름이라, 겉옷을 벗으면, 바로 여름 옷 차림으로 우리 일행 6명. 남 대 여 3 대 3. 아낙들이 5년간 만원씩 얼마씩 모아서 떠나는 길이었다.
1박은 비행기 속에서 4박은 호텔방에서, 합쳐 6일에 499,000 원. '싸구나' 하면서 '이 정도면' 하고 나선 길이었다.
쌀 짐을 다 싸고, 나는 카메라로 펜탁스 SFXn 28-80mm와 빅터 디지털 비디오를 챙겼는데, 무게가 만만치 않으니 3킬로그램. 아내와 카메라 건사가 첫걸음부터 힘에 부치니 "카메라는 가벼운 걸로 해요" 하는 아내의 말에 "가깝게 멀리 찍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던 카메라는 출국 시에 꼭 세관에 확인을 받아야 했다.
싱가폴 항공의 좌석에는 좌석마다 모니터가 설치되어 헤드폰을 나누어 주고 21개가 넘는 채널마다 영화와 뉴스와 스포츠가 나왔지만 "밖을 봐야지" 했으나 내다보이는 거라고는 구름, 구름. "구름 위를 가고 있네" 하는 그 구름 위는 영하 51도라.
"그래서, 여기도 추운가보다"할 만큼 썰렁하다. 기내에서는 베개와 가벼운 덮개를 나누어줘서 어깨까지 덮는 승객이 많아졌다. 점심은 기내식으로 해결했다.
싱가폴 입국 수속할 때 한국인 가이드는 "입국이 까다로우니, 웃는 얼굴로 하세요" 했지만, 여권을 현상범 보듯 하는 세관원에게 싱겁게
웃기가 얼마나 쑥스러운 일인지. 웃지 않아도 수속은 바로 끝났다. 그리고, 짐 검사도 없이 바로 통과였다.
대단하구나. 무슨 물건을 들고 들어오는지 모르는데…. "여기서는 마약을 14그램 이상 들고 들어오다 적발되면 사형이예요" 하는 가이드의 말에 내가 마치 마약을 들고 들어가는 양 겁부터 났었다.
싱가폴의 창기 공항에는 관광 버스가 미리 와 있었다. 우리 일행의 한국 가이드는 버스에 올라서서 우리에게 이런 설명을 했다.
"여기 무사히 도착을 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출발서부터 도착까지 모십니다. 그러나 현지에 도착을 하면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
시겠습니다.
현지 가이드의 현지 설명이 있기 전에, 저는 악역을 맡고 돈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현지 생활을 하시는 동안 짐을 내리고 가지고 가실 때 팁을 주셔야 하고, 호텔을 나오실 때도 팁을 주시고, 현지 가이드나 버스 운전자에게도 주셔야 합니다.
그 일을 여러분이 개인 개인이 하시려면 번거롭습니다. 그런 일의 처리를 제가 하지요. 그러려면 여러분이 하루에 5불씩 30불, 거기다 추가 비용을 예상해서 5불해서 35불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
관광객들은 조용해진다. 무슨 말야. 머릿속에 계산기 때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때 한 사람이 나선다. "그 돈은 우리가 집행할 돈이고, 검증을 해 봐야겠으니, 나중에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눈 뒤에 합시다" 해서 서울가이드를 물 먹여 놓았다.
싱가폴 현지 가이드는 한국인 이재선, 자기를 <쟈스민 리>라고 불러달란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 여기서 결혼하고 여기서 산다고 했
다.
가이드는 열심히 오른 쪽을 보세요, 어쩌고, 왼쪽을 보세요, 저쩌고
하지만 제대로 귀에 들려올 턱이 없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니 무슨 말을 하거나 말거나.
싱가폴에 오면 겁나는 것은. 뭔가 잘못하면 벌금이라며…" 겁내실 것 없어요. 담배를 함부로 피면 500s$이지만, 에어컨이 되어 있는 실내의 경우에 그렇고요, 길에서는 피면서 가도 되지요. 재는 바람에 날라가니까요. 그러나 꽁초는 아무데서나 버리지 마세요. 화장실에서 물
을 내리지 않아도 1,000s$이고요. 껌을 씹으면 10000불(미국돈 만불)의 벌금예요. 껌은 금수품입니다."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싱가폴은 마치 초록의 보석 같았다. 거리 전체가 나무와 숲으로 파묻혀 있었고, 길은 대개가 일방 통행이었다.
밀리고 막힘 없이 차는 달리며, 차의 경적음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교통 경찰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는 차 때문에 늦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답니다. 길이 일방 통행이라서, 막히는 곳이 없지만, 만약 지나 가면 다시 한 바퀴를 돌아야지요. "
쟈시민은 우리를 국립 오치드 정원으로 데리고 갔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수없이 열대의 가로수와 눈인사를 했으니, 정원에서는 특별 나게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다만, 꽃들은 피어 있고, 여기는 우기인지라 때때로 가는 비가 우리 꽁무니를 따라 다닐 뿐. 향기 없이 핀다는 꽃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으나, 이 꽃이 지면, 저 꽃이 피는 지라 꽃이 지니 가슴 아파라 하는 정이 여기서도 있을라구.
우리나라 잔디밭과는 달리 여기서는 들어가지 마시오 하는 말이 없어도 잔디는 촘촘하게 자라서 사람들의 발길을 더 반기는 듯. 으레 하듯 현지인들에게는 따분한 풍경이 관광객들에게는 신기한 구석이 한 둘은 아니니 어쩔 수 없이 카메라는 계속 찰각거리고, 일행 35명 중
에서 4명은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왔으니 너 나 할 것없이 "남는 것은 사진뿐…" 하고 열심히 찍었다.
한 바퀴 돌고 나니 시장기가 돌고, 싱가폴에서 해지는 시간도 우리와 거의 같게 여섯 시가 되니 해가 슬슬 잠자리를 피러 갔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현지 가이드 쟈스민 리는 "여기는 중국인들이 많고. 중국어가 잘 통한답니다. 식사를 하고 나서 인사가 뭔지 아세요. 꼭 하나 배우고 가십시오. 아시는 분 계세요? 안 계시네요. 그럼 따라서 해보세요. 시팔놈아."
하하하. 시팔놈아.
"밥 먹었나? 하는 말이랍니다."
나는 가이드가 재미있게 하려는 그 말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그 말이 내가 부끄럽다. 그 말은 취판러마?로 해야 한다.
남 나라 말을 욕처럼 가르쳐주는 가이드의 유머 감각에 오싹해진다.
사람들은 가이드처럼 하고 남의 나라 말에 혀가 꼬부라지니 비슷한 느낌이 있기는 하나 우스개가 지나쳤다.
작은 공원 같이 깨끗이 손질된 너른 잔디와 나무가 어울린 광장 옆에 Korean Food 점이 있었다. 천 명은 앉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줄줄줄 있었는데 첫 집으로 들어섰다. 첫 집에는 거의 200여 명이 버글대고 있었는데, 그 200여 명은 바로 와글와글 시끌시끌 "여기 밥 하나, 물 좀 주고…" 하고 떠드는 우리 코리안들이었다.
다른 가게에는 현지인이나 다른 외국인들도 받는 듯 하지만 손님이라고 한둘이고 망해서 나간 집도 여럿 보였다. 가이드가 한국인들만 열심히 몰고 다니는 가게만 살아 남아 있다.
여기는 뷔페식으로 하는 집이었다. 고기는 소, 닭, 양, 염소, 새우, 조개가 있고, 상추며 고추와 마늘도 나온다. 신기하지. 고추는 한 입 먹기 무섭게 혀가 떨어져 나갈 듯 맵다. 새우는 어른 손가락 한 매듭 만하다.
실컷 먹어도 된다지만 새우젓 담갔던 새우인가? 왜 그리 짜던지. 가스렌즈에서 각 상마다 끓여 먹게 되어 있는 열 판에서 새우가 지글댔고 금새 익었지만 서너마리 먹고는 다들 젓가락을 떼고는 소고기를 굽는다.
밥 한 공기는 안남미쌀로 된 밥을 먹으니 60년대 구호미로 안남미를 먹던 생각이 난다. 여기 사람들은 우리나라 쌀처럼 차진 쌀을 소화를 못시킨다고 한다. 날씨가 더워서 소화가 잘 안되니 차진 쌀은 위에 버거워 소화를 시킬 수가 없다고 한다. 그 말이 일리가 있다.
과일은 망고와 수박과 바나나가 있다. 바나나는 원숭이 바나나. 우리나라에서 보는 팔뚝만한 바나나는 볼 길이 없고, 그런 바나나는 여기서는 사람이 먹은 것이 아니고 가축사료라니….
수입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 보기를 가축 대하듯 하는 심보가 아니고 뭐랴. 나중에 원숭이 바나나 한 뭉치를 단 1불에 샀다. 여섯 명이 질리도록 먹고도 남을 만큼 준다. 대개의 관광 여행은 관광객들은 피로해서 떨어질 만큼 돌린다.
싱가폴의 유명한 위락지는 센토사 섬에 있다. 섬 입구에서 케이블 카를 타고 섬 안으로 들어갔다. 고공 60미터에서 내려다 보는 싱가폴은 온통 빛나고 있었는데. 단지 등불이 아니고 관광객에게 기쁨을 주게끔 조정되고 통제되는 듯하게도 보였다. 가이드 쟈스민은 수족관 관람은 옵션이라며 "보실 분은 보시고, 안 보실 분은 여기서 대기하시겠어
요. 세계에서 보기 드문 희귀종을 다 모아 놓았기 때문에 보시고는 후회란 있을 수가 없답니다. 보시는 금액은 1인 당 25불입이다. 원하시는 분은 어서 말씀해주세요. 바로 분수 쇼가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습니다."
25불? 3만원 돈 아닌가. 두 사람이면 6만원. 이왕 나선 걸음 돈 쓰려고 나온 걸음 아닌가? 내 일행 두 가족에게 권했다. 이렇게 나선 사람이 10명이었다.
수족관이라면 63빌딩의 아이 장난 같은 규모에 익은 우리 눈에는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너무 많은 종류에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이 물고기들이 과연 우리 세계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날이 갈수록 사라져 가고 있는 이 생명들에 대한 우리 인간의 존재는 얼마나 잔인한 이기주의자인가. 지오그라피의 지구 탐험이 여기서는 현실이었고. 마치 자연 도감을 가져 다 놓은 듯했다.
30분 동안에 달리듯 볼 수 없는 노릇이었으나, 구간에 따라서는 바닥이 움직이는 장치가 되어 있었으나, 그 위를 걸으면서까지 시간에 쫓기면서 봐야 했다.
센토스에서는 크리스마스 기분이 넘치고 있었다. 해피 뉴이어, 메리 크리스마스의 점멸등과 전등 트리는 장난이 아니게 20-30층 높이의 빌딩에 가득 빛나고 있었다. 대강대강 만든 것이 아니고, 지상에서 볼 때와 하늘에서 볼 때를 고려해서 모양이 나게 만들어져 있으니, 누군들 여길 또 오고 싶지 않겠는가 하고 스스로 묻게 된다.
거리의 간판과 안내판은 영어와 한문으로 거의 다 되어 있어서 여기가 어딘가 저긴가 궁금한 것을 눈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한글이 제일이라며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며 외국인들의 방향감각을 시각적이 아니고 동물적 감각으로 만드는 참 묘하게 불친절한 나라임을 남의 나라에 와서 절감한다.
센투사 유원지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우리 일행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심한 갈증을 느꼈다. 가이드 쟈스민은 "여러분들이 동남아를 다니시면서 물은 꼭 사드셔야 합니다. 그러나 싱가폴에서 만은 호텔의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도 잡술 수 있을 만큼 깨끗합니다" 해서 공원의 음료대를 찾았으나 있지 않았다.
최 부장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콜라와 먹을 물을 사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가이드가 들고 온 물로 실컷 마시고 물 트림을 하고 있었으니 최부장 부인은 "좀 참지 못하고 돈 쓰고 싶어서…" 하면서 남편에게 타박이다.
적당한 피로가 다리에 매달리고, 어디를 간다는 것보다 좀 쉬고 싶을 때에 우리는 버스에 올라 고토센 스트리트에 있는 프라마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2인 1실, 트윈 베드
"이것 참 신혼여행이군."
"기대해도 될까?"
신혼여행 때와는 달리 대담해진 아내에게 나는 좀 주눅이 들렸다.
잠 좀 잘까? 했던 참에 그냥 잘 수 없었던 우리 일행이 내 방으로
왔다. 타이거 깡통 맥주와 망고라던가 그리고 우리 입에 낯선
과일과 친해진 바나나가 펼쳤다.
이렇게 여행 첫날은 가는구나. 우리가 정말 외국에 나왔나? 남이 해주는 밥, 낯선 나라. 그러나 고달픈 일이 없으니, 나는 그냥 편했다.
다만 불편한 것은 외국에 오면서 현지 가이드 책 한 권 없이 혼불 9,10권만 챙겨온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적당하지, 외국에까지 나오면서 이것은 지나친 것 아닌가? 나 자신, 내가 참 딱하게 보였다. 가이드가 설명을 해주지만, 현지에 와서야 겨우겨우 짐작하는 현지 사정의 한계가 답답했다.
혼불도 좋지만 현지 안내서도 필요했다.
호기심보다 피로가 매달리니 노는 것도 젊어 한때. 노새노새 젊어서 노세, 이제 그 말 뜻을 알겠구나.
내일은 말레지아와 싱가폴 내의 관광이 이어진다
"우리 신혼 부부 하자" 하면서 내가 실없이 눙치자 "힘 남았으면 용치" 하고 아내가 정곡을 찌른다.
싱가폴의 밤은 깊어가는데 신혼의 추억을 현실로 만들기 쉽지 않구나.
싱가포르의 아침은 모닝콜로 시작된다.
나그네는 떠나면서 피곤한가.
트윈 베드지만, 부부가 트윈에서 자나. 싱글을 더블로 알고 에어컨을 꺼도 으스스 한기가 느껴져 유달리 감각 신경이 예민한 아내의 왼쪽 몸은 얼음이 되어있었다.
밤새 나는 보온병 노릇을 하며, 자기는 잤으나 잠이 모자랐다.
식사는 2층, 부페식
이미 창문가 분위기 있는 자리는 코쟁이들이 차지하고 우리 코리언들은 창밖이 안 보이는 식당 복판에서 와글와글했다. 싱가포르의 별미가 뭔지 알 리 없고, 입에 낯설지 않은 빵과 버터와 수박, 파인애플이며 친구 같은 음식만을 서로서로 챙겼다.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는 다리 하나만 건너면 말레이시아에서 두 번째 큰 조호바로가 된다. 우리말을 예쁘게 배운 말레이시아인 꽃분이가 펑퍼짐하나 덕성스롭게 안내를 맡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담만 시장 골목의 상인들은 우리말을 험하게 잘도 했다.
"빨리, 빨리. 싸게 싸게 줄게. "
"좆같이 굴지 마. "
하는 말을 예사로 했다.
기능공들이 말을 함부로 하고 현지인들은 그 말을 따라서 하니 어찌하겠는가. 말이란 부메랑 같아서 하는 대로 따라 온다.
625직후에 우리는 갓뎀이나 선어브비치하는 말을 GI에게 배우며, 그 말이 욕인 줄 모르고 우리도 GI에게 갓뎀이니 선오브비치하고 주절대고는 치도곤을 당했었지.
꽃분이의 우리말은 우스개까지 섞어가며 대단한 수준이었다.
"말레이시아는 잔디가 많아요. 축구 좋아해요. 한국 축구 따봉예요."
"우리나라 사계절 없어요. 꽃이 매일 피지요. 향기 없어요. "
꽃분이는 우리를 자기들 민속 마을로 데리고 갔다. 악기 연주하는 텁석부리 남자와 여인 하나가 그들의 민속 악기를 치고 가늘고 가는 몸매의 아가씨 세 사람이 우리 일행을 위하여 춤을 춘다.
관광 자원은 무엇인가.
큰 빌딩인가.
우리는 빌딩을 보러 왔는가.
아니다 아니지.
가는 몸매의 소녀들의 정다운 춤과 낯선 가락에 문득 예나 우리나 다름 없구나하는 감정과 우리와 다른 생활을 찾아 온 것이 아닌가.
우리 가락 아리랑까지 연주를 해서 들려준다.
우리 관광객들은 따라 부른다.
얼마나 남다른 맛인가.
무희가 춤추는 곳은 민속마을의 간이 무대, 이목구비가 단아한 소녀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두 손을 마주 탁 치고, 한 바퀴 돌고, 양팔로 덩실 덩실 다시 손뼉 한 번 조용한 춤이다.
공연이 끝나면, 무희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말레이시아 신부나 신랑 복장을 하고 사진 찍기도 한다. 과일과 현지 특산품을 파는 가게에서는 달라도 받고 우리 돈 천원도 받는다. 딸라보다 우리 돈 천원을 주는 것이 우리에게 돈이 덜 나가는 것이다. 큰 장소에서는 우리 돈이 안 통했지만, 구멍가게는 현지에서 관광객을 상대하는 상인들은 우리 돈을 다 받았다.
차를 타고 달렸다
차창 밖에 무궁화가 보였다.
꽃분이는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꽃
아 좋다.
우리를 웃겼다.
군밤타령도 부르고
과연 꽃분이로구나.
조오바로에서 꽃분이의 안내를 받는 나중 사람들아
꽃분이에게 안부를 전해다오.
즐거웠다고
좋은 신랑 얻어서 행복하게 살고
지금처럼 예쁜 한국말 잘해보라고
꽃분이는 두 시간동안 우리와 함께였고, 다시 헤어질 때는 10년 동안 사귄 사람을 헤어지 듯 섭섭했다. 다시 싱가포르로 들어왔다. 주롱 새공원으로 갔다. 마침 새쇼 BIRD SHOW가 한창이었다. 사람 몸통 반만 한 새들이 조련사의 신호에 따라 여기저기서 날아오고 춤추고, 대단하구나. 관객은 천여 명의 시선을 잡아 놓고 있었다. 새대가리란 말이 있지만, 새대가리도 다루기 나름이구나.
앵무새에게도 말을 시킨다.
재패니스하니
좃도마떼 구다사이이이이
해서 관객들을 웃긴다.
원 트 스리 포 하이브……텐
하고 숫자를 열까지 하는 앵무새가 거기 있다.
꼴에 싱가폴 노래까지 부르고.
훈련은 어찌 시키기에
해피버스데이 투 유까지 불러댄다.
관광 코스는 새공원을 한 바퀴 도는 모노레일을 타고 도는 것이 있다.
거기에는 영어와 중국어와 일본어와 우리말로 안내 방송이 나오게 되어있었다. 얼마나 많이 오면 우리 말 안내까지 나올까. 국력이 컸는가.
새쇼나 보려고 여기다 돈 쓰는 게 헛된 일인가. 교훈을 배우는 사친회비라 생각하자. 철저한 관리와 수많은 새를 모아놓고 보여주는 그 열성은 대단하다. 여기는 여기 지역과 환경에 맞춰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자연 보호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점심은 몽고리언 바비큐를 먹었다.
자기가 먹고 싶은 고기와 야채를 들고 주방장에게 주면, 넓은 조리 판에서 지글 지글 볶아서 준다. 이것도 특별나구나.
차이나타운으로 차는 접어든다.
옛 것을 부셔버리지 않고, 정답고 멋스럽게 복원해놓고 있는데다가 골목에는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먹을거리를 팔고 있었다.
안내원 재스민은 머리는 사자이고 몸은 물고기모양의 멀라이언상이 있는 공원에 갔다. 이 곳 사람들에게는 너무 낯이 익은 곳이니 관광객들만 동화의 나라구나.
안내원을 따라다니면 꼭 물건 파는 곳에 데리고 간다. 가면 거의 안 낫는 병이 없다는 편자환을 파는 약국에 데리고 가면서 여기만 진짜를 판다고 강조를 한다.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작은 가게에는 일용 잡화가 넘쳤지만, 그런 물건에는 너무 낯익어진 사람들에게는 구멍가게 같이 보여서 물건을 사지 않는다. 물건을 살 때마다 안내인은 일정율의 수당이 있어서인가.
안내인은 열심히 권하지만 다들 천만에 하고 구경만 한다. 하면서 촌스롭군하는 표정을 얼굴 가득 담는다. 안내원은 하루만 보는 우리 편이 아니다. 찾아온 고국의 관광객은 자기의 생활을 돌봐주고 생활비를 얻게 해주는 돈주머니로 생각한다.
찾아온 관광객들도 적당히 약아 있다. 상점에다가 뿌려놓았다고, 물건을 막 사는 바보는 없다. 함께 관광을 가면, 이렇게 물건 사는 가게에 잡히거나 버스에 꼭 잡혀 한 시간을 꼼짝 못한다. 내 돈을 내고도 내가 버스라는 감옥에 잡히고 만다. 그러나 체념 항의하는 사람도 없다. 어디를 가자하면 옵션입니다. 최소한도 20불이나 30불이다. 상점에서 사람이 나왔다.
관광을 다니면 시간은 더 빨리 간다. 밥 때가 된다. 저녁 때 차에 탄 사람들은 식도락가가 아니기 때문에 먹을거리는 한식만 바란다. 저녁 6시가 되면 싱가포르의 거리는 벌써 퇴근 기분이 난다.
그 거리를 여긴가 저긴가 가다가 한식당에 닿는다. 한정식이 우리를 기다린다. 사람들은 마치 우리나라 전주식당에서 처럼 밥을 먹는다. 밥을 먹고 우리 일행은 반씩 나눠줘서 선두 일행은 우리보다 먼저 방콕행 비행기를 탔다.
후발대에 우리 일행이 남았다. 차라리 남은 것이 다행인 것이 예정에 없이 남은 시간동안 힌두 사원에 갈 수 있었다. 원래 인도에 있는 건물들은 당당하고 위엄이 있겠으나, 여기서는 시멘트로 바르고 소홀한 티가 역력하였다.
그러나 사원을 찾는 인도인들의 눈빛과 드리는 자세는 경건하고 조심스로웠다. 힌두사원의 신상들은 동화에서 보는 얼굴은 하나지만 팔은 여럿 달렸다. 그만큼 신들은 능력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 보다. 이런 볼거리는 남의 종교이지만 소중하고 안내자에게 고맙기까지 하다.
힌두 사원을 조금 지나서는 중국인들의 차이나타운이 노상 먹을거리 가게를 열고 있었다. 어스름이 자리하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시간이 있었으면 우리도 앉아서 한바탕 웃음도 좋으련만 우리에게는 지나칠 수 있는 자유는 있어도 머물 자유는 없는 단체 관광객….
안내인은 우리를 차이나타운에서 태워서는 바라사 바사 로드의 DFS갤러리아로 화끈하게 쇼핑하라고 데리고 갔다. 그리고 선두 일행은 공항으로 몰고 가고 남은 시간 동안은 우리에게 쇼핑하라는 참으로 친절한 행동이었다.
이곳은 백화점식 규모라서 우리가 물건을 얼마나 사도 안내자에게는 단 한 푼의 보상금이 안 나오는 곳이다. 충무로 신세계 백화점 규모만큼 컸고, 외제란 외제는 다 들어와 있었다. 버글 대는 사람들은 수학여행 온 일본 여학생들과 한국인과 중국인들이었다. 지하는 싱가포르의 원산지 생산물이었으나 볼 것은 있으나 살 것은 없었다.
한 바퀴 돌다가 아내는 딸애가 좋아한다며 30불짜리 향수 세트를 산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눈이 가는 만년필 코너를 두리번대었으나 살려는 마음보다 여기서는 몽블랑이 얼마나 가나? 남대문 가격이었다.
우리들의 눈도 높아졌는지 사고픈 물건도 욕심나는 물건도 없을 밖에
무슨 메이커 백도 함께 간 이웃 아낙은
"30만 원짜리 백도 서울 이태원에서는 똑같이 만든 것이 5만원이라니까."
하니 살 맘도 없던 다른 사람들은 다들 보기만 한다. 보다보다 지처서 근처에 있는 햄버거 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선두를 공항에서 방콕으로 보내려고 갔던 안내인은 왔다.
아직 선두팀은 비행기가 뜨지를 않아서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하면서
"여러분들은 행운예요."
한다.
자, 이제 공항으로 여러분이 가실 차례입니다.
우리를 싣고 차는 공항으로 달렸다. 크리스마스 기분은 한껏 내고 있는 싱가포르 중심지 네온의 불빛을 뚫고 우리는 다시 또 다음 목적지인 방콕으로 간다. 그 방콕에는 우리를 물주로 생각하는 방콕 주재 안내인이 이 밤의 어둠을 노려보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줄 우리들은 알 까닭이 없었다.
우리 일행이 방콕으로 날아가니 그 때가 12월 1일 저녁이었다.
방콕에서 입국 때, 놀랠 일이 짐 검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래도 되는 건가.
공연히 걱정이 된다.
입국 공무원이 뭐라 뭐라 해서 우리 패키지여행 일행 중 한 사람이 늦었다. 알고 보니, 그 때가 퇴근 시간이라서 공무원이 소지품을 챙기면서 하는 말이 다른 출구로 거봐요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뭔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잡힌 줄 알았다니 태국 공항 공무원의 철저한 직업의식이다. 관광객 너희들이 서 있어도 나는 근무끝, 집에 가야겠다하는 직업의식과 시간관념이 대단하구나.
누가 태국을 우리보다 후진국이라 할 수 있는가.
돈 몇 푼 없다고 깔보지 말라.
우리가 언제부터 돈 가지고 있었더냐?
공항에는 마침 2층 높이 전세 버스가 와서 대기해 있었다.
1층은 짐칸이었다.
그 곳은 운전사의 침실이기도 했다.
어둠에 잠기고 목소리까지 잠긴 현지의 한국인 가이드가
"1진을 모시느라고 피곤합니다. 바로 모시고 지금 오는 길입니다."
버스 안의 조명이 흐려서 그의 목소리로 마흔이 채 안되었지.하고 나는 그의 나이를 셈했다.
우리는 바로 시내의 Fortune hotel 로 들어갔다. 여기서도 부부는 한 침실이지만 베드는 트윈이다. 실내가 추워서 에어컨을 끈다.
둘의 체온이 난방 아닌가. 낄낄…….하고 나는 아내가 흉보는 웃음소리를 낸다.
가이드가 하는 말이 호텔 방안에 유료 TV채널이 있다고 해서, 돌리기만 해도 돈 내는 건가. 하면서 적당한 타락을 꿈꾸며 여기 저기 돌려보지만 연속극과 CNN과 스타티브이 밖에…
방콕이란 도시가 퇴폐에 젖은 듯 한 착각은 착각으로 끝났다. 무서운 것, 선입관. 이래서 그 나라를 보려면 그 나라에 와봐야 한다.
일본은 어떤가.
호텔에 들어가면 채널에 따라 메뉴 따라 달라지는 요지경에 밤잠을 못 잤었다. 어린 것들이 별 요변을 떠는 난장판이 황홀했는가. 어떤가. 휴지가 필요합니다. 준비하세요. 대단한 일본 서비스에는 다음 날의 피로가 약속되었었지. 여기는 그런 것이 없다.
잠이 잘 온다. 아내하고야 피곤할 일이 어디 매일 있나.
그렇게 숙면 속에 방콕의 첫날밤을 보냈다.
아침에 모닝콜이 깨운다.
전화벨이 울린다.
핼로오하고 받으면. 사람이 아닌 기계음이
"일어나세요. 약속시간이랍니다. 좋은 아침이잖아요."
하고 지껄이다가 내 핼로우를 무시하고 사라진다.
아침은 으레 하듯 부페식 조찬이다.
일행 중 하나인 여행 단골인 누구 엄마는
"잘 나오는 거예요. 유럽에서는 빵하고 커피만 겨우 나와요. 이건 잔칫상예요."
여행이라고는 처음 떠난 다른 식구들은 이렇게 든든하게 먹여주는 아침 인심이 황송하다.
전망 좋은 이층 높이의 버스에 오르면 태국 운전사가 턱밑이 꺼칠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조수인가 차장인가 여자 하나가 관광객들이 차에 오르면 말없이 기사 옆 출입구에 있는 쪽 보조의자에 앉는다. 발이 편하게 뻗을 수도, 등을 죽 기댈 수도 없는 의자에서 시작만 있고 끝이 안 보이는 듯 한 관광길을 간다.
이 여인은 누구인가.
관광보다도 우리들은 그 여인의 정체가 궁금했다.
대리 운전자 ?
그래그래, 궁금증을 묻어놓자. 때가 되면 알겠지.
버스에 타서는 한국인 현지 가이드는 태국인이 되어 태국에 대해 좔좔 푼다. 한 낮이니 그가 제대로 보인다. 관광 안내를 하면서도 머리는 스포츠형이다. 마흔이 안되었다. 일이 재미있다했다. 10년째 여기 있다나.
"태국은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가 안 된 나라입니다. 감히 딴 나라 사람이 손을 못 댔습니다. 그래서 태국을 리틀 타이거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국왕이 부처와 동격입니다. 보세요. 길마다 왕의 사진이 있지요. 저 모습은 50대 모습이지만 사실은 지금 일흔이 넘어선 할아버지이지요. 이 나라 사람들은 참 온순, 진실, 준박이라는 말로 국민성을 말할 수 있답니다. 그러나 잘 참다가 한번 꼭지가 돌면 보이는 게 없이 맹렬합니다. 킥복싱을 아시지요. 우리나라 태권은 발을 주로 쓰지만 , 킥복싱은 안 쓰는 부분이 없고 안 때리는 부분이 없는 무서운 운동입니다. 여기는 킥복싱을 하는 나라예요. 강하지요. " 하면서
"공부하세요. 자려고 온 것 아니잖아요. 자, 자… 여기는 부자라고 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눈 흘기는 일이 없습니다. 불교나라 답지요. 업이라는 거예요. 현생에 가난하다면 전생에 업이 있다는 겁니다. 가난도 부자도 다 업이니 가난하다고 억울할 것이 없지요, 내생에는 내가 부자가 되고 상대가 가난해질 수 있으니 부자를 원망하는 일이 없어요. 여기 부자는 엄청 부자입니다. 저 산을 보세요. 여기서 저 산까지 어떤 사람 혼자서 가지고 있지요. 그 정도면 여기서는 좀 산다하는 부자예요. 부자는 상상 못할 부자지요. 여기는 중산층이 거의 없습니다. 빈부의 차이는 절벽만큼 아득하답니다."
" 여기 땅은 스펀지 같습니다. 비가 오면 대지에 그냥 스며들어요. 대신 고층건물을 지으려면 기초를 무지무지하게 합니다. 삼성이 그렇게 해서 성공한 경우지요. 대신 지상 건물의 내부는 아주 가볍게 합니다. 어제 여러분이 주무실 때, 옆방에서 도란대는 소리를 다 들으셨지요. 여기에서는 브럭을 안 쓰고 경량 칸막이를 씁니다. 건물 무게를 줄이려고 하는 겁니다. "
" 보십시오. 차들을 보고 놀라셨지요? 웬 폐차가 구르느냐고요. 그렇습니다. 여기서는 차량 검사가 없습니다. 부서질 때까지 타고 다니는 겁니다. 그러니 시뻘겋게 녹슨 차가 구르는 거지요. 버스 요금은 기본이 우리 돈 300원이지만 거리마다 금액이 다릅니다. 택시는 기본이 1000원이구요. 여러분이 여기 현지 기분 내려고 나다니시면 큰 일 납니다. 큰 거리에서는 그런 일이 없지만 골목에 들어가시면 나올 수가 없어요. 외국인이 보이지만 그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상당한 공부를 하고 왔고, 위험한 곳은 피해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헤맸다가는 위험합니다. "
"여기는 쿠데타의 나라입니다. 10번의 쿠데타가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적에 대해 무자비한 숙청은 없습니다. 이 나라는 사관학교가 6년제이고 지금 방금 지난 곳이 사관학교이지 육사나 공사, 해사라는 구분이 없습니다. 2년은 공통 과목을 배우고 3년 뒤부터 나눠지니 친구처럼 서로 친해지는 거지요.
대학은 4년제입니다. 들어 갈 때는 널찍하지요. 그러나 나올 때는 쉽지가 않아서 중간에 탈락되는 학생들이 많지요. 거리를 보시면 여기는 학생들은 대학까지 교복을 입습니다. 워낙 빈부의 차가 심하기 때문에 교복으로 빈부의 차를 잠재우자 하는 것도 있겠지요. "
우리는 강가에서 모터보트를 탔다.
거기부터는 태국인 안내인 똑순이가 안내를 맡았다.
우리말은 서툴지만, 태국 말을 한 마디도 안하고 우리말로만 기총 소사처럼 말을 쏟아 넣는다.
노력이 대단하다.
수산시장을 향해 가고
무너져 내리는 강상 주택도 볼거리이다.
행상배가 있는 곳에서는 짜 맞춘 듯 배가 서고(사실 짜고 하는 장사이다. 행상배를 장사시켜주겠다는 그 정신을 우리도 본받아야한다.)
몽키 바나나 한 다발이 천 원 천 원
일행 여섯이 먹고 남는다.
바가지가 아니다.
에메랄드 왕궁으로 갔다.
관광객으로 뒤덮여있었다.
에메랄드 사원의 황금빛 지붕이 햇살에 눈부시게 빛났다.
여기저기를 볼수록 우리나라와 비교를 하게 된다.
태국은 자기 말을 가지고 있다. 자기 글씨를 가지고 있다.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사용한다. 그러나 태국 말과 영어를 나란히 써 놓았기 때문에 보는 데는 별로 불편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물의 규모가 너무 크다. 우리가 우리 것을 자랑하지만 이제 남의 것도 존중할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절감한다. 우리의 서울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건물의 규모는 사람의 체격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의 깊이와 크기에 비례한다.
태국인이 커 보이고 대단해 보였다.
대신 우리의 것이 지나치고 거품이 들어보였다.
대단하다 하면서 우리는 우리 것을 깔보는데.
이 사람들은 아끼고 존경한다.
왕궁에는 미니 스커트 안 돼요.
반바지도 안 됩니다
그래서 긴치마를 빌려주고 천원을 받는다.
점심은 BAYYOK타워에서 했다. 83층 빌딩의 76 층에 뷔페식당이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63빌딩을 자랑하지만, 창피하다.
동양 제일 , 한국 제일은 동네 안 개구쟁이의 짓거리가 아닌가.
거기도 한국인이 버글 버글
어디 가나 버글 버글 시끌 시끌
아 악몽이다. 너무 티가 난다.
한국인을 피해 왔건만, 여기서 까지 한국인 물결 속이 흔들린다.
점심을 먹고서 방콕을 떠나서 파타야로 간다.
파타야
그곳은 해변과 에메랄드 빛 바다가 있다지.
정말, 정말일까 ?
고속도로를 타다가 국도를 타다가 환락의 도시 파타야로 갔다. 저물어가는 오후의 파타야는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다. 그러나 밤의 환락을 위해 충전중이라는 것이다.
어떤 밤이기에….
파타야에 있는 엠버서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내일 아침에 창가에 서보세요.
바다가 쫙 보입니다.
한국 안내인이 침을 튀긴다.
특별히 방 배정을 했습니다.
그의 자랑이다.
우리는 창밖 진한 어둠을 원수의 얼굴을 보듯 노려보았다.
내일, 두고 보자.
네 말이 맞나.
어둠속에는 등대도 없었다.
나의 동남아 여행기 (4/끝) 태국
관광 마지막에 가이드는 제 돈 벌자고, 관광객들을 쇼핑으로 옵션으로 몰고 가는데
태국에서의 여로는 파타야에서 방콕으로 가면서 슬슬 끝나가는 참에
가이드는 자신만만하게
"코끼리 트래킹은 옵션이 아니니 겁 내지 마시고 코끼리를 타보십시오. 코끼리가 차가 가듯 가는 것이 아니니, 코끼리 잔등에 있는 의자에 탁탁 부딪치면 며칠동안 골탕먹습니다."
코끼리를 차에 비교하면 그랜저 크기도 있고, 티코 크기만한 것도 있다.
아내와 나는 소나타를 탔고, 다른 가족은 그랜저요, 또 다른 가족은 티코를 탔다. 코끼리 트래킹은 일정한 거리를 코끼리를 타고 한 바퀴 도는 것이다. 운동장이나 한 바퀴 돌겠지. 했더니 아니 올씨다 였다.
풀밭을 지나고 개울을 곤두박질하듯 머리를 박기도 하고 거친 길에서 요동 치기도 한다.
코끼리 머리에 걸터 앉은 코끼리 조련사는 코끼리를 다를 때 무엇을 쓰는가?
채찍?
얼마나 순박하고 낭만적인 생각인가?
채찍으로 때려 보았자, 코끼리 가죽에는 반응은 안 온다.
우리가 생선가게에서 보는 생선 집는 갈고리 같은 것을 태국인들은 가지고 코끼리 머리를 탁탁 내리쳤다. 코끼리마다 머리통에 갈고리에 찍힌 상처에서는 피와 딱지로 얼룩이었다.
나중에 나는 가이드에게
"코끼리가 그런 대접을 받고 반항하는 일은 없습니까?"
했더니 가이드는 배를 잡고 웃는다.
"여기는 그런 일이 없어요. 트래킹에 나오는 코끼리는 어렸을 때부터 맞고 자라서 맞는 것이 당연한 줄 압니다. 아주 큰 코끼리라도 겁이 아주 많아요. 눈 앞에다가 주먹을 흔들면 겁을 내고 눈을 찔금 감을 정도니까요. "
맹수의 왕인 사자를 제압하는 코끼리도 인간에 잡히면 생쥐꼴이구나.
아무리 몸집이 커도 사슬에 묶이면 이렇듯 딱한 처지가 된다. 인간도 인간을 그러하는 판에 코끼리야. 슬픈 운명을 슬퍼할 겨를 없이 가던 길을 가고 또 가고, 머리에는 늘 핏자국이며, 한 무더기 바나나가 낙이로구나.
코끼리 트래킹을 하고나서 우리는 코끼리 쇼장으로 갔다
공을 굴리고, 공을 골에 차넣고 농구 골에 넣고 그 무거운 몸으로 얼마나 모진 훈련을 받았을까.
태국의 코끼리는 이렇게 겨우 생존을 하고 있다.
갑작스로운 비명
작은 코끼리가 농구 골에 공을 못 넣고 있다.
조련사가 갈고리로 코끼리의 머리를 계속 찍고 있다.
코끼리 머리에서 피가 흐른다.
쇼장에서 나온 그 코끼리는 다시 훈련을 받으면서 공을 못 넣을 때 마다 갈고리가 계속 코끼리 머리에 박힌다. 비명이 터진다.
일행은
저런, 저런
하지만
저런, 저런으로 끝날 뿐
아니 보느니 못하구나.
가이드는 애걸 반 권유 반 하면서 악어 농장을 꼭 보라고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싱가폴에도 악어 농장이 있지만, 애들 장난이지요. 여기는 세계 최대입니다. 6만 마리가 버글 버글 댑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놈도 있습니다. 부화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이 단계별로 나옵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겠습니까.?"
가이드는 치사할 정도로 우리를 몬다.
우리가 먹고 자고 한 돈을 다 제 부담으로 했다는 설명이 또 나온다.
한국 관광회사에서는 관광객을 그냥 밀 듯 내보내고 현지의 가이드가 옵션을 팔아서 관광객들을 등치라는 것이다.
먹고 살아야 하지 않냐 하며 애걸조의 반강제이다.
1인당 20불.
그래 보자, 네가 힘들면 우리도 힘들지.
악어는 몇 만리 볼 때가 신기하지. 몇 천인지 몇 만인지 엉켜 있는 모습을 보면 금새 싫증이 난다.
어찌 놈들은 마치 만들어 놓은 악어처럼 꼼짝 안하고 동작 그만의 상태로 있는지.
먹이를 던져야만 그야말로 빛을 따라 잡는 속도로 나꿔챈다.
무서운 놈들.
그 놈들 틈에 들어갔다가 살아서 나오면, 주겠다는 스포츠 카를 아직까지 타간 사람이 없다고 한다.
빛 좋은 개살구
확률 제로게임
그래도
누군가 한 번 들어가보지 하는 악마의 마음이 일어난다.
서로 그런 마음, 아직 아무도 감히 들어가지 않았다.
들어가서 몇 발짝 되기 전에 육시처참이 되리니 누가 감히, 어림없지.
악어 농장을 보고서 가이드는 한국인이 하는 실로암 숍에다 우리를 뿌렸다.
" 많이 사주십시오. 여러분이 사주신 금액의 6%는 제 몫입니다."
하던 그 가게에는 가오리 지갑이 65불 했다.
언제 가오리 지갑을 써 봐.
아내가 기분 내고 카드를 끊어서 내게 준다.
실로암 숍을 나와서는 가이드는 jewly trade center 빌딩으로 데리고 간다.
보석을 사라는 권유이다.
24층에는 한국인이 하는 보석상이 있었다.
옥차장이라는 여자가 보석 설명을 한다.
육덕이 있는 그 여자는 그 가게 사장의 마누라라던가?
두 시간을 잡아놓는다.
보석 진열장에 아낙들이 줄 선다.
정작 사는 사람도 있겠지.
외상으로도 되고, 통관할 때 슬쩍 하는 방법도 일러주었으니….
그 곳을 나와서는 장주 생약 연구소라는 약파는 곳을 데리고 간다.
가이드의 말을 그럴싸하지.
"말이 생약 연구소지 한약방 같은 곳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몸에 이상이 있으신 분은 진찰을 받아보십시오. 중국인 한의가 족집게처럼 병을 잡아 냅니다. 불편하신 분은 침을 맞아보세요. 대침예요. 기분이 달라지십니다."
하던 그 생약 연구소에 파는 물건은 무엇인가.
한약방에는 약에 대한 설명을 하는 50대가 청산유수면서 약장수는 아닌 양하는 말투로
"긴급시 사용하십시오. 입 삐뜰어지는 구와나사에는 48시간 내 쓰면 입이 제대로 돌아 오는 우황 청심환 진짭니다. 비상약으로 집집마다 있어야 합니다. 북한제로 엄선된 자료로 만들어 북한에서 만든 안궁 우황환은 웬만한 병을 다스립니다. 그리고 편자환 아시죠 편자환은 간경화 치료에 이것만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행 중에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약을 먼저 가져 가시고 5일내에 제가 한국에다 만든 계좌에 입금만 시켜주시면 됩니다."
사람들마다 진맥을 하고 한문으로 가득 쓴 진찰서를 들고 한국인 50대에게 가면 그 세가지 약 중에서 한 가지 이상을 먹어야 된다며 처방을 내린다.
약아진 사람들은 쉽게 넘어 가지 않는다.
침을 놓아준다면서 한 사람도 침을 맞은 사람이 없다.
갈 길이 바쁜데 어느 세월에 몇 사람이 침을 맞고 있는단 말인가. 어림 없는 소리.
무슨 병이던 단 한 방으로 끝나는 병이 있다면 세상 구석에 무슨 병이 이토록 많아. 한국행 비행기는 자정 가까이 있다.
남은 시간을 여유있게 만들어 가이드는 교활할 정도로 시간 계획을 짜서 상품사는 곳으로 이렇게 계속 몰고 간다.
지겨워진다.
제대로 된 여행 안내는 꿈꾸지 말자.
3시간 가까이 여유가 있다.
가이드는 그 시간을 다 계산하고 있기에 안마를 하라고 꼬득인다.
몸에 얼마나 좋으며, 근육을 쫙 풀어 준다는 등 , 안마를 받는 동안 돈 보다도 열심히 해주는 태국사람에게 너무 미안해 진다는 등
그 말에 넘어간 사람 반, 진짜로 근육을 풀어보려 가는 사람 반
다른 일행은 그렇게 갔지만 우리 일행은 안 갔다.
대신 챠오파 파크 호텔 로비에 있는 커피점으로 몰려갔다.
거기서 마이 웨이를 듣는다.
나는 여가수의 얼굴을 그려서 건네준다.
방콕의 밤이 갑자기 찢어지면 폭죽이 터진다.
챠이나 타운에서 하늘로 하늘로 폭죽을 터트린다.
하루 뒤부터 올 몸살과 감기를 아직 예감 못한 체 기분 좋은 상태로 방콕의 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맛사지간 다른 사람들이 끝나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 로비 분위기에 맞는 70년대의 팝송이 가슴에 젖고, 밤을 적시고 있었다.
첫댓글 여행기 너무나 실감나게 Summary하셨군요...., 새로 떠나는 분들에게 조은 정보가 되겠습니다! 상기 나열한 관광지 저도 수년전 갔었지만 이런 추억들도 기록을 남기지 않다보니 이젠 희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