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값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꼬마가 전철 매표소에서 표를 끊으려고 하면서 직원분에게 하는 말, “나 얼마에요?”
아마도 어린아이가 혼자서는 전철을 처음 이용했던가 봅니다.
자신이 가야 할 목적지를 말해야 하는데 지불해야 할 비용을 먼저 말했나 봅니다.
이 이야기는 이진우 목사님의 칼럼집 제목이면서 내용중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나 얼마에요? 라는 물음은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물음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몸 값을 매길 수는 없습니다.(물론 프로 선수들의 경우에 몸 값(연봉)을 말하지만 경우가 다르다 하겠습니다.)
누군가의 몸 값을 말하거나 흥정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미 그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요.
사람의 몸 값을 매길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가능성 여부 또한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잘 보여주는 성경적 사례를 들 수 있는 말씀이 구약성경 레위기 24장에 나오는 배상법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레위기서 24장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짐승(동물)과의 관계로 구분된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사람이 사람을 살인하게 되면 반드시 죽일 것을 말하는데 반하여, 사람이 짐승을 죽였다면 짐승을 갚아야 합니다.
또한 사람이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가해자에게도 동일한 상해를 입게 합니다.
(출애굽기 21장에는 조금 더 구체적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동일하게 살아있는 생명을 죽였음에도, 사람의 생명값은 가해자의 목숨으로 지불해야 하지만 동물(짐승)은 다른 짐승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율법에서 이러한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그것은 호흡하는 생명은 동일하겠지만, 인간과 동물의 근원적 차이를(간극) 알려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있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동물을 만드셨다는 기록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유일하게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고, 또한 그 코에 하나님의 숨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이것은 곧 인간과 동물은 존재론적으로 비교불가함을 보여 준다하겠습니다.
그런점에서 하나님의 작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생명 값은 생명으로만 대체할 수 있음을 율법으로 규정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표현한 찬양 가운데 하나가 밀알이라는 찬양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흘려야 할 피가 필요하다면/
죄인을 대신하기 위해/ 희생의 제물 필요하시다면
내 생명 제단 위에 드리니/ 주 영광 위해 사용하소서
생명이 또 다른 생명 낳고/ 주님 볼 수 있다면
나의 삶과 죽음도/아낌없이 드리리
죽어야 다시 사는/ 주의 말씀 믿으며
한알의 밀알되어 썩어지리니/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하소서
길잃어 지친 양을 찾아/ 마음상해 이리저리 헤메이는
한 영혼 찾아 아파하는/ 예수님 마음 내게 주옵소서
십자가 온 세상 위한/ 그 희생 눈물로/ 그 길 가게 하소서
생명이 또 다른 생명 낳고/ 주님 볼 수 있다면
나의 삶과 죽음도/ 아낌없이 드리리/죽어야 다시 사는/ 주의 말씀 믿으며
한알의 밀알되어 썩어지리니/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하소서>(밀알, 천관웅)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생명 값은 매겨서도 안되며, 매길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이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신자는 타인에 대하여 속단이나 정죄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없이 하시려고 십자가의 대속물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믿는 이라면, 나를 위하여 피흘리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총을 기억하며 자신의 가치와 존엄성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