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행복
I. 유모차
집사람과 내가 매일 아침 걸으러 가는 집근처 쇼핑몰에 유모차를 빌려서 쓸 수 있는
시설이 있다. 쭉 겹쳐있는 유모차 중에서 하나를 빼려면 현금으로 5불을 넣거나 신용
카드로 결재를 해야 한다. 유모차를 다 쓴후에 도로 가져다 유모차 라인에 다시 끼워
놓으면 50전이 동전 구멍으로 떨어지게 된다.유모차를 돌려온 대가로 5 0전을 돌려
받는 자동 시스템이다. 어느 날 9살배기 우리 손자 녀석을 데리고 집사람과 셋이 쇼
핑몰에 갈 일이 있었다. 파킹장에 주차를 하고 내리는데 손자가 우리가 주차한 건너
편에 누가 남기고 간 유모차 하나를 발견했다.손자 녀석이 신이 나서 그 유모차를 밀
고 왔다. 공돈 50전이 생긴 것이다. 녀석이 희색이 만면해서 앞장서서 유모차를 밀며
쇼핑몰 입구로 거의 돌진하다싶이 했다. 손자가 넘어질 것같아 나는 뛰지 말라고 냅
다 소리를 질렀다. 쇼핑몰 자동문이 열리고 손자가 얼마 안 갔을 때 반대편에서 오던
백인 남자가 손자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한손으로는 아이 하나를 안고 다른 한 손
으로는 조그만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있었다. 그의 말이 유모차를 자기가 쓸 수 있겠
냐는 것이었다. 손자 녀석의 순간적으로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약간 혼돈된 모습
이었다.대답 대신 우리 쪽을 쳐다봤다. 아내와 나는 거의 동시에 손자에게 유모차를
건네주라고 했다. 그 남자는 아주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하면서 안고 있던 아이를 유
모차에 태우고 갔다.우리 내외는 손자의 눈치를 살폈다. 실망하지 않았을까 조금은
염려도 됐다. 우리는 손자가 오래 전부터 돼지 저금통에 동전이 생길 때마다 돈을 넣
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손자에게 말을 걸어서 무슨 말이라도 해주
고 싶었다. 괜찮으냐고 Are you alright? 물었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괜찮다
고 I'm OK 했다.다소 마음이 놓였다.쇼핑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가 유모차
이야기를 다시 꺼냈더니 손자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They needed the cart
real bad and I am glad I was able to help.(그 사람들 유모차가 아주 필요했는데
내가 도와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앞 좌석에 앉았던 우리 내외는 말없이 서로 쳐다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속으로 "그놈 어린 것이 제법인데."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
는 길이 흐뭇하고 유쾌했다.
II. 김치찌개
집 근처에 있는 대형 그로서리 스토어에 푸드코트(food court)가 있다.한식, 일식,
중식이 다 있다. 가격도 괜찮고 팁에 마음 쓰지 않아도되기 때문에 이따금 들르는
곳이다. 마누라가 여행으로 며칠 집을 비운 동안 라면 끓이기 귀찮아 들른 어느날
오후.조금 늦은 점심 때인데 빈 자리가 거의없다. 내 나이 또래의 부부처럼 보이는
골프장에서 막 돌아온 듯 한 옷차림을 한 남녀가 서로 마주 앉아 있다.남자가 앉아
있는 옆자리 의자가 비어 있다. 여기 앉아도 될까요? 하니까 건너편에 앉아 있는
여자가 손짓까지 해 가며 예, 예, 앉으세요. 한다.나는 들고 있던 신문을 테이블에
놓고 카운터로 가서 음식을 주문하고 돌아와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치찌개,
밥 하나 추가! 하는 소리가 카운터 쪽에서 나고 내 옆의 노인이 부리나케 일어나
서 쟁반을 가져온다. 김치찌개를 시키고 밥만 한 그릇을 더 시켜 둘이 나눠 먹는 것
이다. 밥 한 그릇에 1불이니 1불을 더 보태면 두 사람의 식사가 된다.가장자리가 아
직도 보글대는 김치찌개 뚝배기에 두 노인 숫가락이 함께 들어가는 모습이 정겹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