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自敍傳) - 두꺼워지는 기록
서문곤
나이가 들면,
사람은 세월의 흔적을 더 이상 숨기지 못한다.
거리에 서 있으면 스쳐 지나가는 얼굴마다
각자의 책 한 권을 들고 걷는 것처럼 보인다.
표지는 닳아 있고,
어떤 이는 비에 젖어 얼룩졌고,
어떤 이는 조심스럽게 닦아낸 흔적이 남아 있다.
얼굴에는 문장이 있다.
주름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오래 접어 두었던 생각이 접힌 자리이고,
웃음은 반복해서 읽힌 문장처럼 익숙하게 번져 있다.
옷차림은 한 줄의 문단이다.
과하게 꾸민 문장은 종종 불안하게 흔들리고,
단정한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또렷하다.
비싼 문장이 반드시 깊은 뜻을 가지는 것은 아니고,
낡은 문장이 반드시 가벼운 것도 아니다.
걸음걸이는 문체다.
급한 사람은 쉼표 없이 이어지는 문장 같고,
느린 사람은 여백을 아는 글처럼 숨을 둔다.
말투는 선택된 단어이고,
침묵은 쓰이지 않은 문장이다.
곁을 지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
그 안에는 이미 수없이 수정된 문장들이 들어 있다.
누군가는 세상을 의심하며 읽고,
누군가는 이해하려 애쓰며 읽는다.
나이가 들수록 자서전은 숨겨지지 않는다.
행동은 문단이 되고,
태도는 문장이 되며,
삶의 방향은 책의 구조처럼 드러난다.
거칠게 살아온 사람의 책은
페이지가 찢겨 있고 잉크가 번져 있으며,
조용히 버텨온 사람의 책은
희미하지만 끝까지 이어져 있다.
지적인 삶은 문장이 정돈되어 있고,
무지한 삶은 단어가 흩어져 있다.
이기적인 마음은 여백이 없고,
배려하는 마음은 타인을 위한 빈칸을 남겨 둔다.
가난은 때로 종이를 얇게 만들고,
넉넉함은 두꺼운 표지를 씌운다.
그러나 책의 무게는
종이의 질감이 아니라
그 안에 쌓인 시간으로 정해진다.
어떤 이는 초라한 문장을 숨기려 애쓰고,
어떤 이는 단정한 문장으로 스스로를 지탱한다.
자신의 분수를 아는 책은 균형을 이루고,
모르는 책은 과장된 문장으로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써온 문장만큼의 얼굴을 갖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조금 더 두꺼워진 자서전을 들고
아무 말 없이 거리를 걸어간다.
첫댓글 세오님
때로는 초라한 문장을 숨기기도 하고
때로는 단정한 문장으로 지탱도 하며 살아 온 것 같습니다
뒤돌아 보면
후회되는 일도 많고요
각자 얼굴에는
살아 온 삶이 그려져 있죠
나이들며 자서전엔 부끄러움이 없도록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