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형 방과가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각종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우는 것을 익히 봐 왔던 이방원은 부강한 나라의 구축을 위해서는 강력한 왕과 왕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고려에서 힘센 왕족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정도전은 부강한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무능한 왕보다는 현명한 장관들이 조금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영국에서 왕당파와 의회파의 힘겨루기 싸움이 오랜 기간 동안 지루하게 계속되었다거나 옛 로마나 나폴레옹 전후의 프랑스에서 황제의 힘이 있다가 없다가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비슷한 맥락이지요.
하여튼 어쨌거나 부강한 새 나라를 꿈꾸었던 조선의 임금들 중에서 자녀 수가 많은 순서대로 한 번 정리해 보면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 같군요.
공식적인 통계상으로 가장 많은 자녀를 둔 임금은 16남 13녀를 둔 태종 임금입니다.
장남 양녕대군은 세자가 되어 아버지와 함께 임진강에 가서 왜선을 잡는 거북선 훈련도 보고 오는 등 잘 나가는 듯하다가 누구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나 임금 안 할 거야” 하면서 빗나가기 시작했고, 차남 효령대군은 “그럼 난 부처가 돼야지” 하면서 출가해 버리는 일이 벌어졌지요.. 그래서 결국은 얼떨결에 셋째가 임금이 되기는 했지만, 이방원의 뜻대로 29명의 남매들이 모두 힘을 합쳐 막강한 왕국 건설에 도움을 주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자식을 많이 둔 임금은 16남 11녀의 성종 임금입니다. 일찍 요절한 3남 4녀까지 합하면 모두 34명이 되고, 궁궐 밖 여자들에게서 낳은 아이들까지 합하면 100명도 넘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는 판국에... 성종이 과연 뜻이나마 태종처럼 “강력한 왕족 패밀리 구성을 위해서”라는 목적이 있었을까요? 성종이 낮에는 누구보다도 우수한 임금이었지만 밤만 되면 기생들과 노는 호색한이 되었으니 무슨 원대한 뜻이 있었겠습니까? 여자관리를 잘못하여 얼굴을 여자 손톱에 긁히기나 하고, 그것 때문에 나중에 그 아들 연산군이 미치광이가 되어 버렸고...
세 번째로 자식을 많이 둔 임금은 임진란 때 열심히 도망만 다녔던 선조 임금인데 14남 11녀에 모두 25명을 두었지요. 18세의 어린 광해군에게 세자 자리와 함께 전쟁 관리 업무를 모두 맡겨 놓고서는 자기는 열심히 아가들만 만들어 댔지요. 누가 광해군이 좀 괜찮은 것 같더라 말만 하면 “나 임금 안 해” 하고 나자빠지는데 그러기를 무려 21번... 나중에는 영창대군과 광해군 둘을 저울질하다가 결국은 둘 다 불행하게 만들어 버린 참 이상한 임금이었지요..
네 번째로 자식 많이 둔 임금은 2년 남짓 임기에 15남 8녀 23명의 자녀를 둔 정종 임금인데요.. 본래 아버지 이성계를 닮은 순수 군인 체질인데, 왕자의 난을 일으킨 10년 연하의 동생 방원이 때문에 42세에 본의 아니게 잠깐 임금이 되었던 분이지요. 그래도 동생 이방원과 마찬가지로 많은 자식을 선호했으나, 이들이 나중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다섯 번째가 18남 4녀 모두 22명의 남매를 둔 세종대왕이지요. 아들 수로는 최다 안타에 최고 타율을 자랑하고 있지요. 8남 2녀를 낳은 첫 부인을 잃고 크게 상심하여 장남인 세자에게 모든 업무를 맡겨 버리고서는, 차남 수양대군과 매일 집현전에서 밤새면서 새로 만든 훈민정음 글자로 “월인천강지곡”을 만들고, 3남 안평대군은 천하의 명필로 키웠고.... 정말 아버지 이방원이 꿈꾸던 막강 왕족 패밀리가 탄생하나 했는데요.... 뚱땡이 비만증 세종이 54세에 죽어 버리고 장남 문종도 38세에 죽고, 글자도 잘 모르는 손자 단종이 임금 되고 하는 통에 막강 왕족의 화려한 꿈은 다 깨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막강 지략가 한명회가 순진한 책벌레 수양대군을 임금으로 올려 놓고서는 이 화려한 왕족들을 모두 풍비박산시켜 버렸지요...
아, 괜히 나열해 봤나 봅니다... 이상 조선 왕족 패밀리의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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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문학박사 황재순(인천 부개고등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