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세배를 받고,
설날 아침 밥상을 늦으막이 끝냈다.
어디로 갈까?
그래 오늘은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으로 가볼까.
그제 석촌호수 떼거리 훈련 뒤 하루를 쉬었으니 오늘은 트랙 30 바퀴 정도 슬슬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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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바닥에 발을 들여놓은 후
뛸 만한 장소를 물색하고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석촌호수, 올림픽공원 (외곽코스, 조깅코스, 몽촌토성), 백제고분, 탄천, 양재천, 한강 주로, 한체대 트랙, 대치동 트랙, 잠실운동장 보조경기장 ...
오늘 그 마지막으로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을 경험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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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에서는 우선 주차비를 4000원 받는다.
일단 들어서면 시간 관계 없이.
종합운동장은 모든 문이 잠겨져 있다.
보조경기장은 미로 같은 길을 들어가니 문이 열려 있다.
평소에는 운동장 사용료를 받는 모양이다.
대인 평일 1000원, 휴일 1300원이란 간판이 붙어 있다.
오늘은 입구에 아무도 없다.
그래서 둘러보고 운동장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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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 훈련이다.
'독립군' 이 용어 또한 이 바닥에 와서 그 의미를 알았다.
그래 오늘은 독립군이다.
기온은 0도 정도.
바람이 없어 포근하다.
트랙의 잔설이 녹아내리고 있다.
아무도 없다.
나 혼자 덩그라니.
고요하다.
햇빛은 청명하고.
일단 25바퀴 10km를 돈다.
그저 오늘따라 또렷한 내 몸뚱아리 그림자만이
날 주인이랍시고 종종종 따라온다.
내 진정한 친구와 동반자는 그림자뿐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뛴다.
발목이 안 좋으니 그도 신경이 쓰이고.
혼자 조용한 곳에서 뛰면
다리는 정속 모드로 놓으면 자동으로 가니 그대로 두고,
생각은 내가 뛴다는 것은 잊고 날개를 펴 이리저리로 떠 다닌다.
자식 생각, 부모형제 생각, 내 노후 생각, 회사 생각 ...
하나 생각을 펼치면 몇 바퀴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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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바퀴를 돌았으니,
이제 휴식.
준비해간 따뜻한 인삼꿀차를 한잔 마시고 그리 급하진 않지만 화장실을 가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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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중화장실은 참 좋다.
사철 깨끗하고 겨울에는 보온으로 따뜻하다.
특히 양재천 수양딸 모임 장소 옆 화장실은 무슨 휴게실 같다.
도대체 인적이 없는 곳에서 혼자 달리다 화장실을 들어서려니 음산까지는 아니지만 좀 생경한 분위기다.
문을 밀치고 들어서니,
아니 저게 뭐람?
걸인이다.
화장실에서도 좀더 따뜻한 쪽에 죽어가는 외톨이 짐슴처럼 웅크리고 누워 있다.
볼일을 보고 소지품 둔 데로 가서 먹으려고 가져온 인삼꿀차와 떡과 지갑을 챙겼다.
가는 도중 떡 하나가 눈에 떨어진다.
대충 털어서 다시 봉지에 담는다.
떡이 달랑 세 갠데 떨어졌다고 버리면 두 개밖에.
그의 행색은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소지품이라고 바퀴 달린 카트형 가방이 옆에 있다.
우선 차를 종이 컵에 따르고 떡 봉지를 내놓았다.
경계를 푼 그의 손이 떡을 집는다.
지갑에서 쩐 2마넌을 건내니 검은 손으로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그는 아무런 말이 없다.
고맙다느니 뭐니.
당연하다.
이 명절에 그는 아무도 없는 후미진 곳 화장실에 누워 있다.
명절인지는 알까?
왜 이런곳까지 찾아들었을까?
한길에서 한참은 멀고 또 보통은 알 길이 없는 곳인데.
생각해 봤다.
아마 안전해서 그럴거야.
그는 사람을 문명을 소음을 사는 속도를 무서워 하는 거야.
그는 뒤쳐진 인간이거든. 그 무서운 생존의 경쟁에서 낙오된 인간.
나오며 손을 들어 인사 표시를 했다.
그리고 뭔가 속으로 축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에게 도대체 뭘 축원을 해야 한담?
그래 내 축원이 실현되었다 치자 그가 최대한 복을 받는다면 그건 뭘까?
답이 없다 답이.
좀 잔인하지만 곱게 일찍 이생을 떠나는 것???
엄동설한 명절에 후미진 화장실에서 웅크리고 있을 바에야 차라리...
그렇다고 죽으라는 축원을 한다???
나도 모르겠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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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주로에 들어 10 바퀴를 돈다.
갑자기 생각하게 된다.
난 너무 많이 가졌는지도 몰라, 돈이 아니더라도 모든 부분에서.
그리고 불만도 가득하지.
입만 벌리면 불만을 부정적 말을 쏟아내지.
이 한마디가 다시 떠오른다.
知足 지족
만족할 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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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홈리스 Homeless,
소위 집도절도 없다는 뜻.
물론 가정도 없고.
집과 가정 가지고 거지를 직업(?)으로 할 수가 있으니 거지하고는 다르다.
불쌍하기는 홈리스가 더하지 않을까?
BLUE
설날에
첫댓글 마음이 따뜻한 친구~ 새해 좋은일만 있을껴 ~~~^&^
올해 BLUE가 큰일 낼거야 독립군으로 뛰댕기니 수요일날 보자꾸나
좋은일 했네 복받을꺼
새해 복 많이 받고 행복 하거라.
조금 뛰고 와야겠다.
많은 생각을 잠시나마 해 본다..........
새해 BLUE에게 좋은 일만 있기를...
날씨가 왜 푸근한가 했더니~~~~~~~~이유가 있었구나~~~~~~`멋진~블~~~~~~~루~~~~~~~~`
runningholic에 단단히 걸렸구먼.
한참 뛸 때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