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지맥 (2006년 2월 10일~15일까지, 5박 6일) 화원지맥이란? 한마디로 해남군의 가장 길게 뻗은 산줄기이다. 산경표에 의하면 백두대간의 증손뻘 되는 작은 산줄기로서 전남 강진군 도암면 봉황리와 해남군 옥천면 백호리를 가름하는 마루금 이면서도 군계이기도 하고 땅끝기맥 이기도한 가시잡목의 천국인 첨봉(354m)에서 시작되는 화원지맥은 해남읍을 감싸 안으면서 비산 비야로 이어지다가 18번 국도를 여러번 넘나들면서 마지막 용트림으로 운거산 을 빚어놓고 화원면 매월리 목포구등대 아래로 잠긴 도상거리 80여km의 산줄기를 화원지맥이라고 한다.
종주첫날 (2006년 2월 10일, 금요일, 흐림) 종주구간(첨봉 ~ 우슬치) 남해 산줄기(남해지맥)종주를 1차 3일간 마치고 춘천에서 내려온 김우항씨와 해남의 화원지맥 종주를 위해우리 집에서 04.00시 집을 나섰다. 3일간의 심설 산행에 약간의 피로를 느끼면서 새벽 운전으로 해남까지 갈려니 계속 졸음이 쏟아진다. 하산지점에 차 한대를 갖다놓고 옥천면 백호리 자경동 마을 입구에 오니 세멘 포장길엔 눈이 쌓여 차가 올라 갈수 없었다. 결국 한쪽 가에 주차 시켜놓고 약 20여분 눈길을 걸어 올라가니 오늘 시작해야할 지점인 자경 고개이다. 이곳에서 좌측 첨봉을 향해 다시 길도 없는 가시 잡목 길을 30 여분 올라가니 땅끝기맥 종주때 지나 갔었던 첨봉에 도착 지난날의 추억을 기억해 보기도 했다. 부산 건건 산악회와 광주의 신공식, 맨발, 정아의 시그널이 보인다. 중간 편백 조림지역이 눈길이라 미끄럽고 운행하기가 어렵고 가시 잡목과 넘어져 있는 억새위의 눈을 밟으면 등산화가 푹푹 빠지는 정도이다. 이번 산행은 춘천의 산악인 김우항씨와 둘이서 하기에 외롭진 않고 길을 찾을 때도 둘이서 의논하여 진행하기도 했다. 가스에 시원하지는 않지만 주작산의 공룡 갈기 같은 암릉이 어렴풋이 보이기도 한다. 12시 20분 건들재에 도착 왼쪽에 상가 저수지를 두고 조금 진행하니 상가 마을이 있어 물도 구할 겸 회관으로 가니 현관 안이 아주 따뜻하기에 점심으로 준비한 빵을 여기서 먹고 갈려고 하니 할아버지 할머니 10여분이 시내 식당에서 점심 먹고 온다며 손님인데 이렇게 대접해야 되겠냐며 커피를 타 주신다. 잘 단장된 묘지를 지나 잡목 숲을 헤치고 올라가 주능은 아니지만 왼쪽의 덕음산에 갔다 다시 내려왔다. 삼각점도 없는 그저 숲속에 쌓인 전망없는 그런 산 이었다. 416봉에 이르자 암봉의 연속이며 만약 맑은 날씨라면 경치가 아주 좋을 것 같은 그런 예감이다. 오른쪽의 옥천면과 왼쪽의 삼산 면계이기도한 이렇게 전망 좋은 산 을 왜 해남사람이 이토록 내버려 뒀는지 이해가 안 간다. 옥천면의 넓은 들판과 해남읍의 조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였다. 깔판이 없어졌다. 가시 잡목의 방해가 있긴 해도 우리가 가는 길은 막지 못한다. 그러나 깔판만은 빼앗겼다. 조금 진행하니 해남 터널 위 옥천면쪽의 4차선 국도에 많은 차량이 오 가는 게 보이며 곧이어 옥천면과 해남읍을 연결하는 18번 도로가 지나는 우슬치에 도착 오늘의 산행은 17시 35분 마치기로 했다.
종주 2일째 (2006년 2월 11일 토요일 날씨 맑음) 종주구간 (우슬치 ~ 806번지방도) 5. 18 민중항쟁 사적지 소공원 앞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그 옆의 좋은 길을 못 본채하고 절개지 사면을 치고 오르는데 얼었던 눈이 녹으며 미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무덤을 지나 5분 정도 운행을 하니 아까 외면했던 그 길과 연결되는 것이다. 지맥의 주능선을 고집하며종주하는 것이 종주자의 고집이다. 1시간정도 오르니 암봉 구간인데 왼쪽으로 돌아간다. 엄청 큰 바위 군이다. 오른쪽 농공단지의 기계 소음이 힘을 실어 주고 왼쪽엔 학생 수련원의 벽돌건물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내 능력으로 보낼 수 있는 최대의 찬사를 아낌없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자연의 조화란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사람이란 기회만 있으면 감상적 상념을 불러일으키겠지만 봄비 내리는 아침이 아니라도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의 낙엽이 아니라도 아름다움에 도취된다면 누구나 사춘기 때의 시절로 돌아가게 마련일 것이다. 눈 덮인 바위하며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그 모습은 글로 표현할 능력의 부족함을 절실히 통감하며 사각사각 눈을 밟으며 지맥종주를 하는 것이다. 반갑고 그리운 최남준씨의 시그널이 보인다. 왔다 간지 상당히 오래된 모양이다. 햇빛에 바래고 바람에 퇴색되어 말려 있는 모습이 나이를 먹으면 인간도 저렇게 될 것인가 염려 스럽다. 오늘의 산행은 만대산(481m)과 금강산(482.7m)을 거쳐 유목재 14번 군도를 통과하여 아첨재(291.2m) 를 거쳐 역마산(308.3m)아래 806번 지방도로 상의 해남농협미곡건조장 옆까지 갈 계획이다. 세 개의 암봉을 이곳 해남 사람들은 삼봉이라 부르는 전망 좋은곳을 통과하여 좋은길을 조금 내려 가니 헬기장이다. 우린 우측으로 내려 간다. 금강산을 향해서(해남의 금강산) 빠른 발품을 산다. 만대산 정상은 이정목이 없다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펑퍼짐하고 특색이 있는 그런 산 중턱 같은 느낌이다. 금강재에서 미끄러운 눈길을 힘들게 올라오니 우측의 은적사와 역마산이 보인다. 옥천과 해남읍의 경계를 따라 왔지만 이제부턴 해남읍과 마산면의 경계를 따라 가게 된다. 마침. 이정목이 서 있는 운동장만한 헬기장에 도착하니 금강산 정상이 건너다 보이고 도면상 죽산성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10시 50분 산불 감시 초소가 있는 금강산 정상에 도착 소나무 아래 눈 없는 곳에 배낭을 내리고 충분히 쉬었다. 간식도 먹고, 날씨는 따뜻한 편이다. 개스 때문에 시야는 별로다. 여기까지는 길이 좋았으나 이제부턴 고통과 시련의 연속일 것이다. (해남11 1990복구)의 1등 삼각점을 확인하고 가는 데 발자국이 있다. 한 사람이 지나갔다. 그래도 길의 흔적은 조금은 있었다. 깬 자갈을 깔아 놓은 아침재에 도착 깨끗한 눈 녹은 곳에서 쉬었다가 14번 군도인 유목재를 통과했다. 강원도 산에 비하면 높이로 볼땐 아무것도 아닌데 실제로 이곳에 3~400m의 산이라도 오를라치면 강원도산 8~900m정도의 산과 맞먹을 그런 느낌이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겐 밤이 길고 피곤한 사람에겐 길이 멀 듯이 약간의 길 흔적이 있긴 해도 험한 것은 사실이다. 남에게는 베풀고 이치에 맞게 행동하며 남을 사랑하고 위해 주며 비난 받지 않게 처신하는 것이 더 없는 행복이라고 불가에서는 말하지만 가시 잡목을 헤쳐 가며 미지의 길을 인도하는 것도 하나의 보람이고 행복을 느낀다고 할 수 있겠다. 역마산 에서 내려오면 무덤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꺽어 내려오면 되는데 내려오는 분지같이 넓은 곳은 도저히 마루금을 찾을 수가 없어 그냥 눈도장만 찍고 넓은 들판의 농로를 따라 806번 지방도로에 도착 산행을 마쳤다.
종주 3일째(2006년 2월 12일 일요일 맑음) 종주구간 (806지방도로 ~ 황산 초등학교) 오늘은 음력 정월 대 보름날이다. 집사람이 이번 화원지맥은 보름밥 을 먹고 떠나라 했는데 춘천 김우항씨 때문에 내려온 김에 같이 하기로 했던 것이다. 황산 초등학교주차장에 차 한대를 갖다놓고 우리는 806번 지방도로로 갔다. 보름달이 너무 크고 아름답다. 이곳은 양파를 많이 재배 한다. 멀칭 한 비닐사이 제법 굵게 자란 것도 있고 아주 작은 것도 있었다. 각자 출하 시기가 틀리게 재배하는 모양 이다. 얼었다 녹은 진흙이 신발에 붙어 다리가 한 짐 이다. 돌아가기가 싫어 수확을 끝낸 고구마 밭은 눈길 이상으로 발이 빠진다. 신발은 물론 바지까지 진흙 투성 이다. 그러나 걱정 없다 조금만 지나면 깨끗해 지니까! (가시 잡목을 헤치고 지나면 흔적도 없이 다 털어진다) 18번 국도와 새로 난 4차선 국도가 거의 같이 지나는 흰재에 도착 절개지 위에서 잠간 쉬면서 집으로 전화했다. 오늘은 보름이니 오곡밥 많이 먹고 나무 석짐 대신 종주 많이 하란다. (오곡밥이 어디 있다고 많이 먹어?)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이 좋아라고 아우성치는 느낌 속에 제법 가파른 능선을 올라 먼 산 마루금 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은 나비되어 어디론가 훌훌 날아 가고픈 충동을 느끼기도 하며 지난날 미흡했던 부분들이 나의 가슴을 압박하여 오지만 그래도 욕심내지 않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지금의 나를 주축으로 꿋꿋하게 살려고 한다. 이산이 생기고는 아마 처음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일 것이다. 두 사람은 교대로 앞에서 길을 내면서 진행한다. 2기의 무덤 앞엔 굵은 동선이 지나고 콘크리트 전주도 서 있으며 조금 더 진행하니 움퍽 움퍽 파인 구덩이가 여러 곳 있으며 납작한 돌 파편이 많이 있는걸 보니 구들장 돌을 떠낸 곳 인 것 같다. 많은 눈으로 소나무가 이리 저리 넘어져 있어 가는 길을 최대한의 방법으로 방해한다. 1 시간에 1km를 못가니 길의 상태가 짐작 될 것이다. 16번 송전탑에 10시 55분 도착 좌측 땅 끝 쪽의 쪽빛 바다와 푸른 하늘이 겹쳐 보이고 왼쪽 화산면의 해남천 과 남천이 만나는 합수 지점의 푸른 강물과 넓은 들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다. 다시 4차선 국도를 통과 17번 군도에 도착하자 넓고 큰 밭에 배추가 꽉차있고 한창 수확하여 상차를 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밭에는 전부가 배추 뿐 이다. 가을 배추 인데도 특별히 관리 한 것도 없으면서 깨끗한 상태의 채소는 상당히 비싼 값으로 팔려 갈 것이라 기대하면서 잘 사는 농어촌이 되어야만 나라의 균형 있는 발전을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만큼 느끼는 법이다. 그 경험의 폭은 반드시 지적인 것에 국한 된것이 아니라 시각적 경험으로는 삶의 체험 모두를 말하는 것이라 본다. 도상 명당치를 지난 명당봉(101.8m)에 오르니 온 천지가 배추 밭 뿐이다. 밭 언덕을 가는데도 진흙이 붙어 등산화에 덧신을 또 무겁게 신어진다. 미끄럽기도 하여 조심에 조심을 기한다. 이럴 때 스틱이 중심을 잡는데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다시 지방도로와 4차선 도로를 넘는다. 77번 도로를 건너 수장산(58m)을 거쳐 다시 공사 중단된 4차선 도로 현장을 넘어 다시 18번 국도로 진행하다 황산면사무소 뒤를 돌아가니 깨끗하게 만들어진 게이트볼장이 있고 용수로 밑을 통과 여기서는 황산 초등학교까지 시내로 걸어갔다. 아무 의미도 없겠고 밭 언덕을 더 갔다간 신발 씻기가 싫어서도 그냥 학교로 와서 차량을 회수했다.
종주 4일째(2006년 2월 13일 월요일 맑음) 종주구간 (황산초등학교 ~ 고당리) 산행 중 좋은 모텔을 찾는다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것 같다. 산사람답게 고저늑하며 약간은 쳐지는 듯한 집을 찾아야 값도 싸고 취사도 방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상대적으로 이용하기 편리한 점이 있다. 다소간 불편하면 텐트한다 생각하면 모든 것이 깨끗이 해결되니까..... 오늘도 황산초등학교 주차장에 차를 두고 18번 국도를 건너 낮은 봉우리를 넘고 다시 18번 국도를 넘어 덕암을 거쳐 다시 24번 군도를 넘게 되며 배추를 차에 실고 있는 넓은 들을 지나 세멘포장길로 다시 국도에 나와 도로로 가면서 옥석공예전시장도 들려 구경도 하면서 여유 있는 시간을 가졌다. 옥석거리를 지나자 옥동초등학교 담사이 문내면과 황산면의 경계 이정표가 서 있다. 옥매산(174.4m)에 오르자 옥돌을 채석한 곳이 크게 웅덩이가 파여 있으며 물이 고여 있고 산을 아주 흉하게 만들어 놓은 모습이 보기가 씁쓸하다. 옥매산을 거쳐 내려오다 비닐하우스 옆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곤 계속 18번 국도로 따라가며 문내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거북산(63.4m)으로 치고 오르는데 억새와 가시잡목이 보통이 아니다. 33번 군도와 증평 마을가는 사거리 승강장에서 한참을 쉬었다. 때마침 수 십 마리의 기러기 떼가 완전히 V자를 그리며 질서 있게 날아간다. 리더를 말없이 따라가는 짐승들의 행렬이 우리 인간들도 본받을 점이 많다고 본다. 저 많은 배추를 언제 다 처분할까? 남의 일 같지 않아 걱정이 앞선다. 너무나도 많으니까 말이다. 만약 안 팔리고 저 자리에서 썩는다면 그 꼴을 어떻게 보겠나. 하루라도 빨리 팔려 농민들의 환한 얼굴을 기대해보며 우리는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6시 25분 고당리의 세 그루 소나무 앞에서 오늘의 산행을 종료했다.
종주 5일째(2006년 2월 14일 화요일 비 옴) 종주구간(고당리 ~ 절골) 비가 온다. 가기가 싫지만 그래도 이곳까지 와서 호화스럽게 여관방에서 쉰다면 시간만 가고 경비가 더 나게 될 것이 두려워 용감하게 두 사람의 종주꾼은 일성산을 향해 무거운 발을 옮겼다. 사람들은 생태적으로 흔한 것은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식의 화려함에는 잘 현혹되면서도 평범하고 소박한 가운데 진실과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쉽게 놓쳐 버린다. 그래도 허탈감이나 손해봄을 모르는 것은 인간의 무한한 욕심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어제 산행을 마칠 때만 해도 건너 일성산(335.1m)의 산의 모습이 뚜렷했는데 오늘은 하나도 안 보인다. 시계 15m정도의 침침한 길을 세멘포장농로로 한참을 올라가니 묘지에 다달았다. 이젠 길은 끝났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염려되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치고 오른다. 약 30분 오르니 마루금에 도착 우측으로 희미한 길의 흔적이 있어 그 길을 찾아 일성산에 오르니 어깨에 큰 바위가 있고 담장넝쿨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고당리 마을 이장의 아침 안내 방송이 잘 들린다. 특별 조치법과 농기계구입에 대한 얘기가 끝나자 영동지방에 폭풍피해가 대단하다는 라디오 방송도 나온다. 바위를 지나 넘어가니 아주 좋은 길이 나타난다. 고당리나 성산리에서 이용하는 등산로이며 안내 표시도 있고 약수터도 있으며 정상까지 굵은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 것이 특별하고 삼각점이 2m간격을 두고 있는 것도 이상했다. 하나는 지적 삼각점이며 다른 하나는 (화원 308 2002 재설)삼각점이다. 옷이 젖어 들어 온다. 약간의 한기를 느껴 빨리 움직여야겠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시 빽하여 마루금을 타고 또 다른 일성산(153.8m)쪽으로 진행하는데 길의 흔적도 있고 이 정도면 고속도로다 하면서 우리는 좋아했다. 중간에 멋있는 입석바위가 있어 사진도 찍었다. 저쪽 작은 바위에 올라가서 찍었으면 좋으련만 바위에 눈도 있고 또 렌즈에 물이라도 들어갈까 싶어 쉬운 대로 밑에서 찍었다. 뜻밖에 목포노적봉산악회 시그널이 달려 있는 260봉 정상에 도착했다. 소나무 조림을 한 지역을 내려오는데 잡목을 베어낸 것이 어떻게나 걸리는지 운행에 많은 장해를 준다. 드디어 77번 국도에 도착했다. 비도 내리고 바람도 약간 불어주니 추워서 옆 민가의 대문간을 빌려 떡국을 끓여 그 국물에 점심을 먹었다. 국도를 건너 호암산(155m)을 향해 가는데 개 사육장에서 우리를 보고 짖어대는 개가 쉴 줄을 모른다. 앞으로 이 길을 찾아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문제가 될 것 같다. 시야는 제로이고 숲은 짙었으니 어떻게 찾아가느냐가 문제이다. 그래도 호출산(270.5m)까지는 잘 찾아 갔다. 설명이 필요없는 아주 지저분하고 성가신 길을 계속 걸을려니 짜증도 나고 싫증도 난다. 차라리 자연 상태로 라면 헤집고 갈만 하지만 아무렇게 베어서 넘겨 놓은 나무는 더 걸리적거리고 진행하기 까다롭기만 하다. 그래도 어떻게 초봉골산(215.3m)까지는 잘 갔으나 우리는 이곳에서 빙글 빙글 돌았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고 보니 방향 감각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결국 마루금만 찾아 간다고 찾아 간 것이 232.8봉에 도착 삼각점을 찾아도 찾을 만한 곳이 없다. 어지럽게 베어 놓은 나무만 걸리적거리는데 여기서 결국 길을 놓치고 말았다. 우측으로 가야할 것을 좌측으로 빠져 버렸다. 내려가니 조그만 소류지가 있었고 이곳까지 전기가 올라왔고 약간의 임도같은 길이 있어 하산했다. 인지리로 잘못 왔다. 이제는 택시라도 타고 고당리로 가야 한다. 일이 꼬일려고 하니 내 차 키를 봉고차에 두고 왔고 고어 택스 장갑도 신발 닦을 때 덤벙가에 두고 왔으나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실수투성이였다. 마침 택시가 오기에 8000원 주고 고당리로 와서 내 차를 다시 회수하고 화원면 소재지 모텔에 들었다.
종주 6일째(2006년 2월 15일 수요일 비 오다 우박도 옴) 종주구간(절골 ~ 목포 구 등대 ~ 수루미등대) 오늘로써 화원지맥을 마치게 된다. 5박 6일 동안 길 좋고 경치 좋은 금강산 구간도 있었고 때로는 비산비아의 농로나 밭두렁을 지나기도 했으며 수확을 끝낸 밭을 질러가기 위해 밭을 가로 질러 가기도 했으며 그러다 보니 등산화에 덧신을 신은 꼴도 보았으며 대부분 가시잡목과 씨름한 산행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보통 사람이 보면 미친 짓이라고 보는 이 짓도 리드가 있고 개척자가 있는 法이다. 그러면 또 길을 따르고 찾는 자가 있으니 그 분이 바로 신산경표를 이 세상에 내어 놓은 박성태 선생님이시고 우리는 그의 뜻에 따라 행동에 옮기고 확인해 보는 행동 대원에 불가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를 이해하고 그 뜻에 따라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자찬하며 오늘도 수많은 가시 잡목을 헤치며 화원지맥 종주를 마치기 위해 등대앞 차가 갈 수 있는 끝까지 차 한대를 세워두고 다시 돌아와 사동고개를 돌아와 마지막 구간 종주를 시작했다.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꽤나 근수가 나갈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별것 아님을 느낄 것 이다. 모를 땐 답답하고 암흑을 헤매는 것 같지만 알고나면 그저 별거 아님을 스스로 느끼게 되며 자신의 실수를 정당화시킬려고 하는 것이 인간인지라 어제의 잘못 내려온 길을 확인 종주해야함에도 마치는 날이라 잔꾀를 부려 약 1시간 구간을 빼 먹게 되어 약간의 양심가책을 느낀다. 비록 첩첩산중은 아니지만 이 짙은 소나무속에서도 사람이 다니겠끔 길이 있다는 것은 산과 물이 만나는 것과 같고 말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일것이며 무질서 속에서도 질서가 존재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상징적인 의미가 부여되는 이미지의 만남과 같은 것이다. 7시 15분부터 우측의 절개지를 치고 오르는데 길이 너무 좋다. 등산로 정비를 해 놓은 것이다. 어디까지 했는지는 몰라도 기대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운거산(316m)에 오르니 초소가 2개나 있다. 하나는 2층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단층이다. 우측엔 석산이 있는 지 기계 파열음이 아주 시끄럽게 들린다. 운무에 가려 시야는 없어도 길이 좋으니 참으로 얼마만의 횡재냐! 325.9봉에서 오른쪽으로는 지령산(268.8m)이 있고 (화원 1990 복구)의 1등 삼각점이 있는 이곳에서부터 길이 약간 희미하고 그래도 이 정도면 좋은 편이다. 한참을 정신없이 가다 보니 옛날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의 비행기의 잔해가 나딩굴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마음 찡함을 느꼈다. 시체를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이 자리도 피할 겸 빨리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서둘다보니 어느새 잘못 든 길임을 알았을 땐 약 1시간정도 헛길을 걸었다. 빽해서 다시 길을 찾았을 때는 이미 2시간 정도의 아까운 시간이 흐르고 말았다. 그러나 어쩌겠나. 우리는 제아무리 장애물이 많고 길이 없어도 이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이다. 우박이 내리고 비가 내리기도 하고 마음을 더욱 바쁘게 한다. 당포에서 등개 마을로 넘어 다니는 22번 군도에 도착했다. 영암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마음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길이 좋다. 약2m폭으로 깨끗이 베어져 있다. 245봉의 매봉산이 제법 높아 보인다. 거침없이 달린다. 이렇게 좋은 길을 만들어 주신 관계자에게 감사드리며 우리는 기분 좋게 아우토반을 가고 있는 것이다. 날씨만 좋다면 참으로 환상적인 코스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도상 뒷산(214m)이란 곳에 도착했다. 무조건 가는 거다. 주변이 안 보이니 어쩔 수 없다. 깃대봉 도착 229.9m 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목포 443 1986 재설) 삼각점에서 쉬었다. 남은 빵을 하나씩 나눠 먹고 우리는 이제 내리막길을 가는 것이다. 산죽을 좀 높이 베어 놓으니 그 밑등이 상당히 걸리지만 그래도 얼마나 고맙고 좋은지 모른다. 마지막 150봉에 내려 서는데 큰 화물선이 지나가며 뱃고동을 울린다. 아주 크게 들린다. 드디어 등대만 비포장길에 도착 춘천의 김우항씨와 서로 종주를 축하하며 악수했다. 그리고 등대 주변을 둘러보고 여기는 목욕탕이 없어 목포로 가서 목욕을 하고 간단한 저녁을 먹고 김우항씨는 광주로 나는 해남으로 해서 집으로 오는데 3시간 30분걸렸다. 도움 준 많은 분께 감사드리며 광주의 “따라가기 신공식씨”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우리집사람과 애들에게도 감사드리며 화원지맥도 많은 산꾼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하고 바라면서 화원지맥 완주의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다. 아름다운 강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