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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 Letter(197) 2017. 10. 18
주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부부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안부를 전합니다.
무덥고 바쁘고 분주하던 계절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코트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열흘간의 긴 연휴도 지났습니다. 사역 하면서 이처럼 긴 연휴도 처음으로 보낸 것 같습니다. 조용하게 세미나 준비에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연휴 기간 10월 6-7일에 사역 가운데 함께 동역하는 인도자들을 중심으로 <The Basic Life of Leadership>이란 주제로 지도력 계발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45명의 동역자들이 참석하여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영권 형제 부부는 통영에서 근무관계로 동참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래와 같은 네 가지 주제로 함께 말씀을 나누며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 지도자는 날마다 복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2) 지도자는 주님과 동행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 (3) 지도자는 사랑, 겸손과 본으로 팀을 인도해야 한다. (4) 지도자는 효과적인 복음증거를 통하여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해야 한다. 앞으로 시간이 되는대로 정리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곳의 소식으로는 황종호 형제가 또다시 KOIKA 요원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지난번과 같이 미얀마 양곤 공과대학교 자문교수로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출국 전에 시행하는 8주간의 연수중에 있습니다. 앞으로 보다 효과적으로 주님께 쓰임받게 되도록 기도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류철 형제가 지금의 직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하였습니다. 이제 회사의 중역이 되었습니다. 또한 꼴까타의 문대헌 선교사의 막내 아들, 브니엘이 방콕에서, 11-14일에 열린 <동남아 청소년 꿈 발표 제전 본선>에서 장려상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기쁜 소식입니다. 각 가정에 주님의 풍성한 은혜로 복되고 기쁜 소식들이 넘쳐 나기를 소망합니다. 건강하며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복음 안에서 동역하는 박 남규 부부 서신
복음으로 사는 삶 (A Leader Lives by the Gospel Everyday)
◾마이클 호튼은 ⌜복음이 이끄는 기독교⌟에서 “신앙 여정의 첫 시작만이 아니라 중간과 끝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음이다.”라고 하였다.
‘예수님 더하기 무엇’이라는 공식은 대수롭지 않게 보인다. 그리스도에 무엇을 더한다면 마이클 호튼(Michael Horton)이 말하는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가 될 뿐이다. 존 칼빈(John Calvin)은 “우리의 마음은 우상 생산 공장”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희석시키는 첨가물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우상을 도려내는 대수술을 날마다 행함으로 복음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한다. 복음이외의 어떤 것이라도 추가할 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만으로는 구원의 은혜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다른 복음이 될 수 있다. 오늘날 값싼 은혜에 대한 반작용으로 주님의 은혜만을 가지고는 온전한 구원이 없다고 하는 경향이 도처에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물론 복음(회개)에 합당한 거룩한 삶의 열매들을 맺어야 하지만, 합당한 삶이 따르지 않는다고 하여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주님의 은혜를 폄하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갈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인간이 율법을 온전히 준행하는 일은 불가능한 수준이다.(Impossible standard) 율법의 요구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유익이 있지만 율법으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율법의 중심에는 언제나 자기 의, 자기 공로, 자기 자랑이 자리 잡고 있다. 다만 율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초등교사)의 역할을 할 뿐이다.(갈3:24)
갈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복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날마다 구원의 은혜와 감격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복음은 무엇인가? 복음이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이 복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자기 의에 사로잡힌 바리새인과 죄책감에 짓눌린 죄인 모두에게 필요하다. 복음은 오직 죄인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날마다 우리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또한 보다 중요한 것은 소망과 즐거움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좋은 소식은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게 해주며, 하루를 맞이할 수 있는 용기를 주며,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위에 계속 머물 것이라는 소망을 준다. 우리가 선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만을 의지하며,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삶이 복된 삶이다.
◾애3:22-25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에 자신에게 베푸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회상하며 그 사랑에 감사하며 감격하며 마음에 기쁨과 소망과 새로운 용기를 회복하는 삶이 복음을 날마다 자신에게 전하는 삶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감격으로 하루를 넉넉히 승리하며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너무나 사로잡힌 결과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 이외에는 자랑할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고, 세상적인 어떤 일에도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복음에 반응하여 날마다 살아가는 삶이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2.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간구하는 것이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이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으로 살아가는 것이 복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John Newton이 쓴 <Amazing Grace>의 가사에는 매절마다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있다. 4절의 가사 속에 4번이나 그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찬양하며 감격하면서 주님의 은혜로 충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놀라운 주님의 은혜인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갈5:1-4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여기에서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는 의미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진 사람입니다”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입니다“는 뜻이다.
복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다. 내 힘, 내 공로, 내 의지로는 살아갈 수 없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자기 의, 자기 노력에 의지하면 실패한다. 성취할 수 없다. 날마다 자신의 죄악(죄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간구하는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배경-루터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일)를 결코 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죄에 대한 민감성, 죄를 미워함, 철저한 자백과 회개를 날마다 행하였다. 그는 수도사 앞에 고해성사를 얼마나 상세하게 하였든지 듣고 있던 수도사가 ‘이제 좀 그만해라’ 할 정도로 죄에 대한 각성을 하고 살았다. 그러나 결코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깨닫게 되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삶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기초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매일의 삶도 은혜로 살아가야 한다.
롬5:1-2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너무나 많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다 결코 우리의 성과를 더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다면, 왜 우리는 “나쁜 날”과 “좋은 날”식의 사고방식에 빠져드는가? 단순히 복음은 불신자만을 위한 것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자신이 조금만 부족하면, 잘못하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다. 경건의 시간을 잘 가지면 그날은 형통하며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실 것 같은 <좋은 날>의 느낌을 가진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날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훼방을 하시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 <나쁜 날의 감정>에 사로잡힌다.(Jerry Bridges,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라, 참고)
복음의 좋은 소식은, 우리 생각에 가장 형편없는 날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위해 항상 예비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생은 복음과 제자도(훈련, 거룩한 삶, 봉사)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제자도 역시 복음의 동기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죄 사함의 감사와 감격 가운데 제자도를 행할 때 그것이 고역이 되지 않고 즐거움과 기쁨이 된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제자도의 훈련에 있어서 은혜의 두 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는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용서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한 우리에 대한 무조건적인 용납이다. 둘째는 죄의 지배로부터의 해방과,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우리 안에 계셔서 능력을 주시는 성령의 능력이다. (Jerry Bridges,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라, 115p)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를 훈련하신다.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우리의 영적인 행복을 위하여 훈련하신다.
율법은 “달려라 존 달려라”고 명령하지만, 그러나 앞뒤로 흔들 손도, 달릴 발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복음은 더 좋은 소식을 전해 준다. 복음은 나더러 날라고 하고는 날개를 달아 준다.
◾롬12:1-2, 고후5:14-15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서 우리의 헌신이 깊어진다.
히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여기에서 <그러나>의 의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만, 그나마의 뜻이다.
“그나마 오늘의 내가 있기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덕분입니다. 나는 이 자비와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일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현대어 성경)
바울이 이와 같이 고백한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이 얼마나 크신 것인가를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의 최선의 선물이다.(고후12:9)
•딛2:11-13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양육된다.(성화된다) 칭의와 성화의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의해 이루어진다.고후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람되도록 사용하라는 것이다.
3. 날마다 성령께 굴복하는 삶이다.
복음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성령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이다. 성령의 선물이 바로 복음이다.(요14:16-17) 날마다 복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날마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성령께 굴복하는 삶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는 성령과 율법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갈3:1-5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우리는 주님의 영(성령)으로 우리는 변화된다. 주님의 영으로 주님의 형상으로 닮아간다. 결코 율법이나 수양이나 자기 노력과 의지로써 우리는 변화될 수 없다. 갈라디아서에는 이 점을 분명하게 다루고 있다.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 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령의 능력으로 온전히 변화될 수 있다.
•갈5:16-24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복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날마다 성령께 굴복하는 삶이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삶이다. 성령의 지배와 통치를 받는 삶이다.(갈5:16) 또한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이다.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인격적인 변화와 성장과 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복음(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4. 날마다 복음 증거의 원동력이다.
날마다 복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 하는 삶이다. 자신에게 베푸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일꾼의 삶이 복음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3:6-8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복음증거는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영혼에 대한 긍휼과 사랑이 더욱 더 강하게 일어난다. 잃어버린 영혼들에게도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동일한 은혜가 임하여 그 은혜를 경험하도록 간구하며, 복음의 통로로 쓰임받기를 원하게 된다.
성 프렌체스코는 그의 제자들에게 늘 “나는 죄인 중의 죄인이요 모든 신자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하였다. 제자들이 선생님이 절말 가장 작은 자라면 어찌 우리의 선생이 되었겠습니까?“ 물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긍휼)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또한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다른 영혼들이 받게 되었다면 이 세상에서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라고 고백하였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가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임하는 은혜의 통로로 사용되어지기를 날마다 소망해야 한다. 시96:2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宣播)할지 어다”
5.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삶이다.
우리가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임을 인정하고 사랑하게 된다. 나 같은 죄인도 사랑하셨는데, 이 땅 가운데 사랑하지 못할 영혼이 어디에 있겠는가? 영혼들을 바라보는 시야와 관점이 달라진다. 모두가 사랑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주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다.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국적에 상관없이, 신분에 상관없이, 성별에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우리들, 더구나 동일한 비전과 부르심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야말로 사랑으로 하나된 형제 자매이다. 형제의식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 이 땅에서는 네비게이토, CCC, IVF 등 많는 선교단체들과 지역 교회들로 나누어지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하나님의 가족(권속)이요, 형제요, 자매이다. 천국에는 나누어진 지체도 없다. 나누어진 기업도 없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권속들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땅 가운데 계실 때 우리의 하나됨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요17:20-22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Oneness in Christ)
온전히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이 효과적인 선교의 원동력이다. 자신도 이와 같은 사랑의 공동체 안에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 일으켜 주어야 한다. 선교의 적(enemy)은 공동체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 서로 싸우며 반목하며 불화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복음 안에서 하나됨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또한 그렇게 살기를 명하셨다.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날마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며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갈2:20의 말씀의 실천이다.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이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자신의 힘으로, 노력으로, 의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롤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복음으로 시작하여 복음으로 생애를 아름답게 마친 믿음의 선배들이 있다.
네비게이토 선교회 창시자이신 Dawson Trotman 선교사님은 주님의 복음을 깨닫고 복음으로 세계 열방가운데 수많은 주님의 일꾼들을 길러내었고, 마지막에는 주님처럼 복음을 위하여, 영혼을 위하여 기꺼이 생애를 마감하셨다.
Park-197nn(Leadership Dev.Seminar).hwp
또한 C.C.C 선교회 창시자이신 Bill Bright 선교사님께서도 젊은 시절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위하여 일생을 사시다가 마지막에는 복음으로 생애를 맞이하셨다. “His(Bill Bright-called to the Lord. July 19, 2003)greater legacy, Judy says, is reflected in his answer when people asked what they could pray for him: "Pray that I don't lose my first love for the Lord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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