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국회를 통과한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대규모 유통업법)’이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감에 따라 대형 유통사들이 신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공정위의 수수료 인하 요구가 맞물리면서 그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면서 상황을 관망하는 분위기다.
롯데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수수료 인하로 인해 발생하는 연간 비용이 200억 원이고, 유통업법을 적용해 평소대로 MD개편을 진행할 경우 예상되는 평균 비용이 200억 원 가량이다. 이 금액이 영업이익에서 빠져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MD를 안 하거나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실제 롯데는 올 춘하 시즌 MD개편에서 본점과 영플라자, 노원, 관악, 부평, 강남, 인천, 창원, 상인 등 상당 수 점포를 배제하거나 미뤘다.
본점과 영플라자는 리뉴얼 및 확장을 앞두고 MD 개편이 현재 진행형에 있지만 나머지 점포들은 대규모 유통업법에 따른 비용 부담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되고 있다.
한번 MD개편을 단행하게 되면 적어도 2년 이내에 입퇴점을 진행할 경우 그 과정이 매우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명확한 필요성이 생길 때까지 미루거나 당분간 아예 MD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우고, 비용을 최소화하는 한편 유통업법의 실제 적용 상황을 관망한다는 입장이다.
유통업법 규정에서 백화점 측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항목은 불공정 행위 입증 책임을 납품 업체가 아닌 협력사에 지운 부분이다.
이에 따르면 통상 2년으로 정해진 계약 기간 이내에 특정 매장을 퇴점시킬 경우 이 퇴점이 협력사의 자발적 의지에 따른 것임을 백화점 측이 소명해야 한다.
또 퇴점 시나 매장 위치, 면적의 변경 시, 그에 따른 인테리어 등 설비 비용을 잔여 계약 기간 상당분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
백화점과 협력사가 나누어 지불해 온 마케팅 및 판촉비용도 행사에 따른 이윤을 따져 지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협력사가 50% 이상을 지불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협력사의 자발적 참여 의사를 백화점 측이 입증해야 한다.
이번 MD 개편에서 백화점 측이 특히 조심스러워 하고 있는 상황은 ‘자라’, ‘유니클로’, ‘갭’ 등 해외 SPA의 신규 입점에 대한 부분이다.
롯데, 신세계 등은 올해 이들 SPA를 일부 점포에 입점시킬 계획을 잡고 있으나 이들을 입점시킬 경우 기존 브랜드 매장 상당수를 철수시켜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롯데는 광주점과 대전점에 당초 올 춘하 시즌 ‘자라’를 입점시키로 한 계획을 추동 시즌으로 미루고, 매장 규모도 줄이는 등 계획을 수립했다.
관련 바이어는 "SPA라고 해서 무조건 대형 매장으로 입점시키지 않고, 2~3개 매장을 합친 규모로 입점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SPA 뿐 아니라 일반 브랜드 매장보다 규모가 큰 편집숍 등의 개설도 간단치 않아졌다.
이 역시 기존 입점해 있는 브랜드 매장의 철수가 불가피한데 그에 따른 비용 발생이나 문제 제기의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 환경을 개선한다는 취지지만 단기적으로는 신규 브랜드들의 입지가 매우 어렵게 됐다. 결과적으로 법의 취지와 달리 현실적 적용이 어려울 경우 실효성이 매우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