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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는 교회 창립 1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999년 12월 수원에 처음 와서 개척을 하면서 갈등을 했습니다.
주변에 교회가 많았습니다. 주변에 교회들이 많으니 나까지 개척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다르게 주님은 저를 사용하셨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쉽게 목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많은 인재들을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여하튼 목회경력이 없는 저는 교회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이왕 또 하나 교회가 생기는데 똑 같은 교회보다 색다른 교회를 하자. 그리고 건강한 교회로 만들어보자.” 그래서 교회 비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교회가 커지면서 힘들었던 이유도 바로 이런 꿈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설계자를 움직여서 제가 제신 금액보다 3배나 큰 예배당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10년이란 세월이 되어 오늘 10주년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번 주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정말 주님이 우리 교회에게 원하시는 것을 여쭈어 보았습니다. “주님 우리 교회가 어떻게 가야 합니까? 주님! 우리 교회가 가야 할 길을 열어 주십시오.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길을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금주 금요일 새벽에 주님이 진한 감동을 주셨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분들은 알 것입니다.
천안함 사건을 말씀하게 하시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비참하게 죽어간 젊은이들을 알지? 깊은 심해 속에 생명을 잃은 그들을 알지?
너무 불쌍하단다. 나도 그들이 너무 불쌍하단다. 숨이 막히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아들아. 내가 너를 볼 때 그렇다. 지금 이 세상이 함미에 죽어가는 군인들과 같단다.
내가 알려 주는 거야. 내 마음을 알려 주는 거야. 급하다. 죽어가는 이들을 살려라“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제게 바울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된 다메섹 사건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다시 사도행전 9장을 세밀하게 읽었습니다.
이것은 10주년이 된 몸된 교회 우리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사울은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죽이러 다녔던 사람입니다. 그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바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지금까지 사울로 살았다가 바울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말은 그렇습니다.
1)자기 판단만 믿고 옳았다고 생각한 것을 바꾸게 된 것입니다.
2)자기 인생을 위해 살았던 것을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3)실제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지로 돌아다니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바울이 되었습니다. 전혀 다른 인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교회는 이곳에 1년 전에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교회 이름도 바꾸게 되었습니다. 수원연동교회에서 하늘 꿈 연동교회로 바꾸었죠.
처음 수원 연동교회로 이름을 지을 때 선배 목사님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지역 이름을 따서 짓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역 이름에다가 1, 2, 3을 붙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인천 제일 교회가 있지요. 제가 알기로는 몇 년 전까지 인천 제 7교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원연동교회로 이름을 짓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으로 오면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하늘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 교회가 지역에 국한 된 교회만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며 아버지의 꿈에 동참하는 교회인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아멘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 교회에 무엇을 원하실까? 마치 사울이 바울처럼 바뀐 것처럼 바울의 삶을 묵상하면서 교회가 가야 할 방향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첫째 바울처럼 온전하게 복음을 만나 깨어나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바울은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 사람입니다.
열심히는 어떤 바리새인보다 더 심했습니다.
그는 강원도 정도의 거리까지 걸어가서 하나님을 잘못 믿는 무리들을 체포하는 일을 할 정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열심히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방향이 중요합니다.
목적이 중요합니다. 왜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지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성적 기능과 예언자적 기능입니다.
영성적 기능이란 구원의 기능입니다. 예언자적 기능이란 사회정화의 기능입니다.
이 두 가지 조화 있게 움직여야 기독교의 힘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봉사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르신들을 도우려고 합니다. 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당연히 섬겨야 합니다.
또한 정치적인 눌림에 대해서 올바르게 가치관이 세워져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바로 선지자들이 잘못된 사회구조에 대해서 정치적인 비난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이런 것이 기독교의 기능입니다.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자살이 죄인지 아닌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복음을 믿고 살아가고 있는 지 이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한국교회에서 복음에 대한 설교를 들으려면 십자가 설교를 들으려면 1년에 1회 부활절 때에 듣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왜냐면 복음을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 수요기도회에 복음학교를 하고 있습니다.
사역자반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하고 있습니다. 설교 할 때마다 복음이 선포됩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복음에 중심으로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바울이 변화된 것은 복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만났기 때문에 뒤집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적어도 하늘 꿈 연동교회 교인들은 꼭 복음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복음을 만나도 사울처럼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러 다녔습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서울 장충동에 가면 박종화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경동교회가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설교본문을 항상 구약과 신약을 함께 읽습니다. 서울 연동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읽는 구약은 유대인들도 읽고 이슬람교도 읽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신약을 읽는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복음을 만난 것은 어떤 것이지 아십니까? 진심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진심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복음을 전심으로 믿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울이 바울로 바뀐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알속에 있으면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릅니다. 온도, 습도, 먹을 것이 좋고 풍부합니다. 그래서 그곳이 전부인지 알고 기도합니다. 좀 더 큰 알에 살게 해달라고, 화장실 2개 있는 알에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안에서 더 오래 살게 해달라고,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아니요. 아닙니다. 알에서 나와야 합니다.
복음을 만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깨어난 사람들입니다.
알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나오니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배가 고픕니다. 고기도 먹고 싶습니다. 바람도 붑니다. 태양도 내리 쬡니다. 때대로 적의 공격도 받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 교인들이 모두 온전한 복음을 만나 깨어나는 지체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둘째 바울처럼 겸손해져서 주님의 뜻을 따르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그 은혜가 너무 컸습니다.
그런데 그는 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주님을 만났는데 눈이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주님의 의도하심이 있지 않겠습니까? 왜요?
사실 바울은 똑똑한 사람입니다. 배운 것이 많은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입니다.
가방 끈이 긴 사람입니다. 그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 바울을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에게 가서 안수를 청하라고 한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목사님 내외가 계십니다. 한번은 아이를 데리고 와서 밥을 먹는데 갑자기 안수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오신 목사님이십니다. 참 제가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겸손하게 부탁을 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귀한 겸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만나고 나서 그 사람에게 원하는 것은 겸손입니다.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울 왕을 버린 것은 교만함 때문이었습니다. 교만은 마귀의 속성입니다. 따라서 절대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할 때 주님이 나를 사용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제부터 더욱 겸손한 교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예전부터 잘 알려진 교회이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있어서 모르지 잘 알려진 유명한 교회입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왜 우리 교회가 부흥이 되고 유명해졌을까요?
물론 저희 교회의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크게 4가지의 큰 기둥이 있습니다.
바로 자유, 생명, 꿈, 공동체입니다.
아마 처음 우리 교회에서 제일 찐하게 느끼는 것은 자유일 것입니다.
제가 순복음교회 재단인 한세대학원에서 강의를 했기 때문에 순복음 출신 목회자들이 우리 교회를 많이 다녀갔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은 우리교인들이 너무 자유하다는 것입니다. 옷도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얼굴이 너무 찐하고 환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제게 말씀하시더군요. 처음 우리 교회 와서 등록하지 못한 것이 너무 환한 모습이 힘들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유함 때문입니다.
사실 복음 외에 우리는 자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인들과 노래방 가서 재수 없는 사람은 복음성가 하는 분들이십니다. 좋아하는 노래 부르십시오. 저는 교회는 자유하기 원하는 분들이 오는 곳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도 인자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누구를 불러 오신 것입니까? 죄인을 부르러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 중에 담배를 피우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야한 옷을 입은 분들을 환영합니다. 남자들 중에 귀걸이나 코걸이를 끼고 나오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이런 분이 그 속에서 성령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의 특징은 소그룹입니다.
소그룹에서 나눔이 왜 중요합니까? 설교는 듣고만 갑니다.
그런데 나눔은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꿈이 생기게 됩니다.
이 네 가지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훌륭하지 않습니까? ^^
제가 외부에서 강의할 때 이 네 가지를 가지고 강의를 했지요. 교회의 구조상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총회 개척교회 세미나 주 강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잘났습니다. ^^
잘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니 가만히 10년을 생각해보니 늘 잘난 척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정말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데 겸손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1. 당연히 주님이 하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노력할 뿐입니다,
나머지는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교회를 세워주신 것은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런 주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시다. 아멘...
저는 우리교회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늘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욕심이 있습니다.
교회의 기둥은 기도와 전도입니다.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이제 말로만 주님이 하셨다는 고백이 되어서 안 됩니다.
주님의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어떻게 주님의 일에 동참을 합니까?
2. 주님이 하셨다고 믿으면 중보 기도자로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멘?
지금 세상이 어떠합니까? 아니 우리나라만 보면 어떻습니까?
지난 7월 미국 뉴욕 타임즈는 한국을 IT 강국에서 미신 강국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에 무속신앙이 부활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수도권에만 무속 사당이 300여개요 무당이 80만 명이나 됩니다. 압구정동에 점쟁이들이 줄 서 있고 주 고객이 20대 청년들입니다. 옛날에는 점쟁이를 찾아갈 때 몰래 갔었는데 이제는 버젓이 갑니다. 무속인 들이 수입이 일 년에 1조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젠 우리교회가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바라보거나 감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교회가 이런 영적전쟁을 맡아야 합니다. 10살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이런 아말렉과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하였습니까?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힘들어하니 아론과 훌이 기도해주었습니다. 중보기도의 위대함입니다.
중보기도는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링컨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남북전쟁에 우리 북군이 이기도록 기도를 하지 않았다. 단지 우리 북군이 하나님 편에 서달라고 기도를 할 뿐이다.” 저는 이것이 정말 겸손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내 뜻대로 구하는 기도가 아닌 주님의 뜻을 가지고 기도만하는 겸손한 지체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제 우리 교회도 중보기도로 세상을 바꾸는 교회가 돼야 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이러한 중보 기도자는 바울처럼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이 바울을 부르신 것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잘 먹고 잘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게 살다가 죽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만났으면 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꼭 해야 합니다.
심각합니다. 요사이 환경을 보면 무화과나무가 풍성해진 것을 느낍니다.
주님이 가까이 오실 날이 정말 가까워졌습니다.
지진, 기근, 바다가 3분의 1이 피로 변하는 진노의 날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두려워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이때 우리 교회가 10주년이 되었을까요?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이 하셨다고 믿으십니까! 그러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런 은혜를 전해야 합니다.
오늘 10주년을 맞이한 하늘 꿈 연동교회에 기도와 전도와 선교의 불이 임하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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