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불이 계속 들어오기를 바라는 분의 뜻을 받들어?
돌이켜 보면 묘한 인생살이다
60평생을
서울에서 30년
경상도에서 20년
전라도에서 10년..........
지역 감정 해소 차원에서 그리 살았나 ?......^&^......
11살때
국민학교 4학년때
서울로 갔으니
어린나이에 머 그리 대단한 기억거리가 있으련만......
풍남국민학교 4학년때 갔는데.....
50년이 훌쩍 넘어버린 세월이지만
그래도 풍남국민학교 선생님 세분의 성함은 기억이 난다
이수남 교장선생님과
1,2학년 담임이셨던 이정호 선생님 (동명이인)
그리고는 친구 한녀석 이름도 기억이 없다....
당시 풍남국민학교는 노송동? 변두리에 있었고
비포장 도로에서 약간은 비스듬이 올라가는 교문과 교정....
약간 걸어 나오면 철길이 있었고....
연기를 뿜어대던 증기기관차가 머물던 역 과의 중간에
지금은 명성을 알 수 있는 전주북중과 전고....
학교 뒤 로는 상고?가 있었던가?
지금도 정확한 지명을 알 수 없지만 기찻길 터널 지나 바로
"함멸땅" 이라고 기억되는 전주천의 약간 물이깊던곳....
위에 있던 정자 한벽루 ..이름을 따 "한벽당" 이였는진 몰겠고......
여름철엔 홀딱벗고 헤엄도쳤었는데.....
그곳에서 시내쪽 으로는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천변에서
돈 받고 빨래를 삶아주던 몇 곳이 성업? 중이였고
동네 아낙들이 기십명은 될 정도로 많이나와 빨래를 했었는데......
탯자리를 자주 찾지 못했던 무심함도 있지만....
어린시절을 기억 해보면...
풍남문....
경기전...
오목대....
중앙국민학교 앞에 있던 전주성당.....
비포장으로 당시에는 가장 넓었던 백도극장앞 도로....
그리고
어렴풋이 청석동? 파출소에서 한번인가? 두번인가? 꼬부라져서 위치했던 "삼백집"......
우아동..용머리고개는 그당시
너무너무 촌이고 변두리라 힐끗 지나치던 곳 이였는데......
지금은 전주교대가 되어있을
사범학교....
전주천 다리밑에서 국악을 하며
약을 팔던 약장사
지금으로 말하면 국창 이라 불리울 만한
실력을 가졌던 여자분이 아편쟁이가 되어 거기서 창을 했었다는
그 분 얼굴도 어렴풋이........
당시에는 경기전옆에 경찰서도 있었고......
참 오래된 세월이기는하다
반세기가 되었으니......
풍남문 옆으로 당시만해도 겨울철이면 떨어진 솔잎을
엄청나게 크게 둥치를 만들어 몇개씩 리어카에 놓고 팔기도 했었고.
풍남문옆 시장에서 희금자죽 심부름도 했었고
시장 건너편 송약방에도
심부름 다닌 기억이.....
당시 교동에 있던 "문화연필" 공장에 큰불이 났었는데
그자리에 그 공장은 있는지?.....
그냥 이렇게 머릿속에
그려져만 있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추억은.
아스름한 기억은
그걸로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