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나침반불교성전 96쪽, 제3분2품3장5절(믿음)
1. 몸은 밥을, 마음은 진리를 먹이로 삼나니
여러분! 그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모두 합장하시기 바랍니다. 부처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중생들은 밥이 있은 즉 살고, 밥이 없으면 죽고 마느니라.” 실로 그렇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밥을 먹어야 생존(生存)이 가능합니다. 사람은 물론 산하를 헤매는 짐승들도 한 끼의 밥을 위해 종일 허덕입니다. 생존(生存 : living)과 생활(生活 : life)은 차이가 있습니다. 짐승들과는 달리 오직 인간만은 생존을 뛰어넘어 생활을 개척한 존재입니다. 문명의 길을 개척한 인간만이 종교생활을 합니다. 왜 인간은 종교생활을 하는 걸까요? 몸은 밥을 먹이로 삼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은 진리를 먹이로 삼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법식(法食), 즉 진리를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차가 움직이지 않을 때 마차를 쳐야 할까요? 말을 쳐야 할까요? 당연히 말을 쳐야겠죠. 그처럼 사람을 끌고 가는 것은 마음입니다. 그러기에 불가에서는 마음을 ‘주인공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넘어지고 실패하는 인생이 되는 것은 육신이 병들어서가 아닙니다. 주인공인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병들면 온갖 괴로운 경계가 나타나고, 마음이 건강하면 안락하고 행복한 세계가 전개됩니다. 마음의 건강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음의 건강을 도모하기 위해선 진리의 음식, 곧 법식을 규칙적으로 섭취하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몸은 조금만 아파도 병원으로 달려가고 약국으로 달려가지만, 마음은 심히 아파도 방치하기 일쑤입니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은 번뇌에 이끌리고 미망에 사로잡힌다는 뜻입니다. 번뇌에 이끌리고 미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방법은 딱 하나, 진리의 음식, 즉 법식을 섭취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귀의한 사람들이 일반인들과 다른 점은 ‘부처님께서 주시는 진리의 음식을 섭취한다’는 사실입니다. 부처님께서 주시는 진리의 음식은 팔만대장경 - 불교성전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팔만대장경 - 불교성전 읽기에 힘쓰고 법회에 출석하여 부처님 법문 듣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2. 불교신자는 불교성전 읽기와 부처님 법문 듣기를 즐겨야
불교성전을 읽고 법문을 듣는 것은 인생항로에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진리의 음식을 공급받는 일은 인생의 주인공인 내 마음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불교성전을 읽고 부처님 법문을 듣기에 힘쓰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내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불교성전을 읽고 부처님의 법문을 섭취하면 성공으로 가는 길, 성불로 나아가는 문이 저절로 열리게 됩니다. 불교성전을 읽고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면 열반의 경지로 나아가는 해탈의 문, 즉 법문이 저절로 열립니다. 그러므로 불교성전 읽기를, 법문 듣기를 소홀히 한다면 신앙적 패러다임(paradigm)을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예전에는 그토록 돈독하고 뜨거웠던 신심이 지금은 왠지 식어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분명하던 신앙의 좌표가 희미해지고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면 지금이 다시 발심할 때입니다. 신심이 식어지고 신앙의 좌표가 희미해져 방황하고 있다는 것은 불교성전 읽기를 멀리하고 부처님 말씀을 먹이로 삼는 일에 게을러졌다는 증표입니다. 진정 그러하다면, 지금이 바로 부처님께서 주시는 진리의 음식, 곧 법식을 공급받기에 힘써야 할 때입니다. 불교성전을 읽고, 법문을 경청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이요 핵심입니다. 불교성전을 독송하면 내 안에서 깊이 잠든 불성을 다시 일깨울 수 있습니다. 불교성전을 독송하면 발심과 원력을 지속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고통과 시련이 주어지면 절망하거나 방황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을 믿는 우리 불심의 사람들은 오히려 그 시련과 고통이 주어질 때 더욱 발심합니다. 그래서 포고발심(怖苦發心)입니다. 나의 신앙생활에 문제가 주어지고 시련과 좌절과 퇴보가 느껴진다면 지금 다시 부처님의 존안을 우러러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지금 다시 불교성전을 읽기에 힘써야 합니다. 다시 법문 듣는 귀를 열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침판으로 삼아 신앙의 등불을 밝혀 힘차게 정진해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부처님께서는 우리 앞에, 여러분 앞에 평안과 행복의 길을 열어주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비로소 성불의 길, 열반의 길, 극락세계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는 법입니다.
3. 부처님 법문에서 인생항로의 답을 찾는 사람이 불교신자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일엽편주(一葉片舟)를 몰고 가는 선장입니다. 인생항로의 망망대해로 나아가기에 앞서 자신의 배를 모는 선장들은 반드시 나침판과 해도를 챙겨야 합니다. 나침반과 해도가 있어야 방향을 잃지 않고 위험물을 피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고, 목적지에 안착할 수 있습니다. 인생항로는 고달프고 험난합니다.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 불자들이 반드시 불교성전을 챙겨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불교성전으로, 부처님의 말씀으로 나침반을 삼으면 인생항로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평안의 길, 행복의 길, 성불의 길로 무사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불교성전 읽기를 권면합니다. 재일이면 법회로 나아가 법문 듣기에 힘쓰시기를 권면합니다. 불교성전을 가까이 하고 불교성전 읽기를 반복하면 부처님께서 밝혀주시는 진리의 말씀으로 험난한 미로를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이 축복의 길인지, 불행의 길인지를 가리지 못해서 난감해 하지 않습니다. 갈팡질팡하지 않습니다. 방향을 잃지도 않습니다. 좌로나 우로도 치우치지 않습니다. 욕심의 파도에 휩쓸려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땀과 눈물을 애써 외면하거나 회피할 생각도 않습니다. 힘들고 고단해도 오히려 그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보람을 찾습니다. 육신이 편하고 고되다는 것을 가지고 행복을 논하지도 않습니다. 재물의 많고 적음으로 행복과 불행을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섭취하면 세상을 복되게 사는 참된 지혜를 발견합니다. 그 가르침으로 행복의 길로 안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불교성전을 읽기를 습관화하시고 법문 듣는 것을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
4.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이제 말씀을 정리할 시간입니다. 지난 2002년 12월, 룸비니회 임원들이 미륵도용궁사를 찾아와 지도법사 직분을 맡아줄 것을 요청한 이래로, 어느새 2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지난 20년 세월을 지나는 동안 코로나로 인하여 약 2년, 그 후 정기법회가 사라진 2년 정도를 제외하면, 2003년 1월부터 2024년 9월 오늘까지 총187회에 걸쳐 여러분에게 법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동안 지도법사 직분을 맡아 나름 성심을 다했지만, 돌이켜보면 아쉬움도 큽니다. 나는 법문을 재미있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재미있게 법문을 하는 스님을 찾는 여러분의 갈증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갈증 때문에 법문을 듣는 법회보다도, 곡차를 기울이면서 식사를 하는 소위 [닷지법회]와 [봉사활동]에서 의미를 찾는 여러분을 보면서 지도법사로서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입니다. 나는 그런 여러분을 지켜보면서, 이제 이별을 고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그래서 이제 지도법사 직분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지금 여기서 지도법사의 직분을 내려놓지만, 룸비니회원 법우 여러분이 미륵도용궁사로 순례법회를 오신다면 언제라도 환영하겠다는 약속을 드리면서 법우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권면합니다. 풍경소리 제2차 결집본 서두의 [대종사 법어]에서 충분히 강조했습니다만 신도단체는 신앙생활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신도단체, 신앙공동체는 법회가 위주여야 합니다. 신도단체는 그 목적이 재일을 지켜 매월 정기법회를 거행하는 것입니다. 매월 정해진 날에 정기법회를 하는 것이 신도단체의 생명입니다. 그런 법횟날을 봉사활동이나 친목활동을 하는 날로 바꾸어서는 아니 됩니다. 봉사활동은 봉사단체가 하는 일입니다. 친목활동은 친목회가 하는 활동입니다. 물론 신도단체도 봉사활동을 할 수 있고, 식사와 술을 나누며 친목모임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봉사나 친목모임은 매월 거행하는 정기법횟날이 아닌, 다른 날을 잡아서 실시해야 합니다. 신도단체는 봉사단체나 친목단체가 아닌, 신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매월 정해진 법횟날에 규칙적으로 정기법회를 준행하는 신앙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신도단체, 신도공동체는 그 중점을 정기법회에 두어야 하고, 그 목적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경청하고 실천하는 신앙생활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혹여라도 정기법회에 출석하는 법우들이 줄어든다고 해서, 법문 듣는 법회보다 봉사활동과 친목활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한다고 해서 정기법횟날에 법회를 하지 않고 봉사활동이나 친목활동을 한다면 이는 옳지 않고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신도단체로서의 목적성과 창립정신을 상실한 것이 됩니다. 목적성, 창립정신을 상실했다면 그 목적성과 창립정신을 회복하든가, 아니면 해산을 하든가 양자택일(兩者擇一)을 해야 하는 것이 신도단체가 나아갈 바입니다. 부처님 법 만나는 것이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이거늘 해산하는 길로 나아갈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신도단체로서의 목적성과 창립정신을 회복하는 룸비니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곧 진리의 음식을 충실히 공급받고 정진하는 신앙공동체로 다시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불도성취에 힘쓰는 신도, 그런 신드들의 신앙공동체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긴 말씀 경청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앞날에 부처님의 가호하심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면서, 이것으로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설법일지 : 2024—09-12(목)19:00 여여원 통영룸비니회 9월 법회 (룸비니회 고별법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