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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행 외에는 절대로 이혼이 불가한가?
마태복음 19:3-9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혼이 일상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혼율이 높습니다. 오래전 미국 L. A.에서 집회를 인도한 후, 멕시코 국경을 넘어 벧엘신학교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3,000명 정도 되는 큰 교회에서 설교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들은 말인데, 멕시코에서는 목사들이 이혼에 대한 설교를 더 이상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혼하고 재혼한 목사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올해 러시아에서 현지인들을 상대로 목회하고 있는 친구 목사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때 들은 말인데, 그 교회에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생쯤 되는 러시아 소녀가 출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을 상대로 이혼과 재혼에 대한 설교를 한 후로 그 여학생이 교회에 안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가서 교회에 왜 안 나오는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목사님이 이혼하면 죄라고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다수가 2-3번은 이혼하고 재혼합니다. 우리 엄마도 이혼하고 재혼하여 현재 3번째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어떻게 지루하고 재미없게 한 남자와 평생을 살아요?" 하더랍니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이혼율이 점점 치솟고 있습니다. 황혼이혼까지 늘어나면서 이혼이 단지 사회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혼에 대해 연구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이혼과 재혼에 대한 성경적인 올바른 지침을 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로이드 존즈는 "이것이 수많은 난제로 둘러싸여 있는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혼이 "설교자들이 피하는 경향이 있는 주제"라고 하면서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이것을 슬쩍 지나치고 취급하지 않는 주석가들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도 이 주제를 실제로 연구해보니 생각보다 어려워서 겁도 나고 참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럼 제가 이번에 조심스럽게 연구하고 깨닫게 된 이혼에 관한 진리들을 용기를 내어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구약시대의 이혼 규정과 신약시대의 이혼 규정이 다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이혼에 대한 첫 가르침은 산상수훈에 나타나 있습니다.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태복음 5:31-32)
이 말씀의 문맥을 살펴보면 왜 오늘날 이혼율이 그렇게 높은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기 직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태복음 5:27-30)
이혼에 대한 가르침은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설명의 한 부분입니다. 간음과 이혼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 즉 정욕과 색욕이 바로 이혼의 가장 보편적인 원인입니다. 사람들이 이혼하는 이유는 마음의 간음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간음하는 것 그것이 이혼의 출발점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으로 간음하던 것을 실행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상처투성이인 이혼을 감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5장 31-32절은 이혼에 대한 가르침의 요약판입니다. 마태복음 19장에 같은 주제에 대한 더 확장된 설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태복음 19:3-9)
또 병행구절이라고 하지요. 같은 말씀이 마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이르되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마가복음 10:2-12)
그래서 저는 이 말씀들을 본문으로 삼아 이혼과 재혼에 대한 진리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무리들을 가르치실 때(막10:1),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을 햇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순수하게 모르는 것을 깨닫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운 질문을 하여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시험이 되는 이유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면 헤롯의 이혼 및 재혼을 반대하고 죽임을 당한 세례 요한을 부정하는 것이 되고,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면 율법을 반대할 뿐 아니라 헤롯의 결혼에 반대한 세례 요한과 같은 입장이 되어 헤롯의 표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를 간파한 예수님은 즉답을 피하고 "모세가 너희에게 무엇을 명하였느냐?"(3절)라고 역으로 질문하셨습니다. 그들은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4절)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구약성경이 이혼을 허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인데, 그들은 이혼이 성경에서 명령된 적이 없으며 단지 허용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신명기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신명기 24:1)
여러분도 들으셨겠지만,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랍비들의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샴마이(Shammai) 학파는 이 구절의 "수치스러운 일"을 증인이 있는 성적 부정으로 보고 이것을 제외한 어떤 이유로도 이혼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에 가장 권위 있는 랍비인 힐렐(Hillel)이 이끌었던 힐렐 학파는 아내가 그 남편을 불쾌하게 했을 때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는 음식을 태운 것 같이 사소한 일로도 남편은 아내에게 "나는 당신과 이혼하겠고!"라는 말만 하면 그만이며, 그 말을 세 번 반복하면 이혼이 성립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미쉬나 케투봇(Mishnah Ketubot) 7장 6절에 의하면 다른 남자와 이야기하는 것, 부모를 면전에서 저주하는 것, 길거리를 배회하는 것 등도 이혼시킬 수 있는 사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힐렐 학파의 견해에 매료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한 성경구절을 두고 어떻게 이렇게 해석이 다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서로의 초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샴마이 학파는 그들이 혼전 또는 혼외의 성적인 범죄로 이해한 "수치 되는 일"에 초점을 맞춘 반면, 힐렐 학파는 같은 구절에 나오는 "(그녀를) 기뻐하지 아니하며"(24:1)이라는 문구와 3절에 나오는 "(그녀를) 미워하여 이혼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샴마이 학파는 결혼에 초점을 맞춘 반면, 힐렐 학파는 이혼에 초점을 맞춘 것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한복음 7:17)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질문자들은 구약성경이 이혼을 허용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명령이 아니라 허용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봅시다. 그들은 자신이 한 질문의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의 대답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교정하는 말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마가복음 10:5)
마태는 이 부분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마태복음 19:8)
놀랍게도 예수님은 이혼을 허용한 신명기 24장 1절이 본래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양용의 교수님은 한술 더 떠서 이 구절에 대해 과감하게 이렇게 썼습니다.
"19:8에 따르면 예수님은 사실상 그의 제자들과 관련하여 구약의 이혼 규정을 무효화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제자들에게 창세기 2:24에 계시된 결혼의 첫째 원리로 돌아갈 것을 교훈하신다."
처음에 저는, 이 말의 과격함에 놀랐고 좀처럼 동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이혼에 대해 성경을 연구하면서 결국 이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혼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왜 모세는 이혼을 허용했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마음이 완악하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성경에 이 단어가 자주 쓰인 사건이 나옵니다. 출애굽을 시도하는 모세와 그것을 저지하려고 한 바로가 서로 대립했던 사건입니다. 모세가 바로와 대결할 때, '바로가 점점 마음이 강퍅해졌다. 완악해졌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고집만을 피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완악함입니다! 그런데 이혼할 때 이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이와 비슷한 심리가 작용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나는 반드시 이혼을 하고야 말리라'라고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완악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이런 완악함 마음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나님께서 이혼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혹 여러분 안에도 이런 완악함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늦기 전에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한편, 그렇다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악과 타협하거나 굴복하신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마이클 윌킨스는 하나님께서 이혼을 허용하신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썼습니다.
"이혼이 고대 세계에서 널리 퍼진 현상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규율을 제정하셨는데, 그것은 세 가지를 행하도록 의도되었다:
(1) 결혼 관계를 더럽히는 '추잡한 행위'에서 결혼을 보호함.
(2) 이유도 없이 여자를 내보내는 남편으로부터 아내를 보호함.
(3) 여자를 창녀나 도망한 간음자로 생각하지 않도록 합법적으로 이혼한 여성으로서의 신분을 보장함."
이 중 세 번째와 관련하여 신현우 교수님은 실제로 이혼증서에는 "당신은 어느 누구에게든지 자유롭게 시집갈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혼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허용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이혼하지 말라고 해도 완악한 사람들은 이혼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여성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데 그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목회하는 어떤 목사님은 "이혼 - 허용이 아닌 약자보호법"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명기 24장에는 여러 경우의 약자보호법이 있습니다. 맷돌 위짝을 전당잡지 말 것, 동족을 유인하여 종으로 삼지 말 것, 나병환자 돌보는 법,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줄 때 전당물을 직접 취하지 말 것, 가난한 자의 전당물을 해지기 전에 반드시 돌려줄 것, 노동자의 품삯을 당일에 지불할 것, 고아나 객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 것, 추수 때에 가난한 자를 위해 곡식이나 과일을 다 추수하지 말고 좀 남겨둘 것 등 다 약자보호법입니다. 이러한 약자보호법들을 기록하고 있는 신명기 24장에서 가장 먼저 이혼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이 단순히 이혼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약자보호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악과 타협한 것이 아닙니다. 약자인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혼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한 마음 때문에 허용된 것임을 알려주신 후, 이제 예수님은 허용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십니다(롬12:2).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마가복음 10:6-9)
예수님은 구약시대 때 일시 허용되었던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근본적이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창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창조질서를 언급하십니다. '창조질서는 모세법보다 시간적으로 우선하는 법으로서 모세법보다 상위법'입니다. 창조 때 하나님은 남녀를 만드셨고 창세기 2장 24절에 의하면 남자가 그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상기시키시면서 이제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세기 2장 24절에서 그 안에 내포된 모세법보다 더 오래된 원칙을 이끌어내십니다. 그것은 바로 부부를 하나로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셨다면 그것이 다시 분리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부부를 하나로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사람이 그것을 나누려는 시도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도전입니다. 그러므로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중의 하나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태복음 5:17)
그런데 그 대표적인 실례가 마태복음 5장 21-48절에 나오고 그리고 이혼에 관한 이 말씀도 하나의 실례입니다. 양용의 교수님은 『마태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탁월한 책에서 이것을 다음과 같이 잘 정리하여 진술했습니다.
"모세의 이혼 규정(신24:1-4)은 이혼을 하도록 명령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완악한 마음' 때문에 이혼을 허용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허용 규정은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셨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원래 의도는 앞서 언급한 창세기 2:24의 원리다: '그러므로 남자가 그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5절). 그런데 예수님의 메시아적 성취는 제자들로 하나님의 원래 뜻에 도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따라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원래 뜻, 곧 결혼의 첫 번째 원리로 돌아가야 함을 밝히고 계신다. 옛 시대를 위한 허용의 조치는 메시아시대의 제자들에게 더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원리로 돌아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신명기 24장의 이혼 규정의 한계를 지적할 뿐 그 율법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각 율법에는 각각에게 주어진 적절한 기능이 있다. 곧, 창세기 2:24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적인 뜻을 진술하는 기능을 하고, 신명기 24:1-4은 마음이 완악하여 그 이상을 유지하는 데 실패한 사람들을 위한 조치로서의 기능을 한다. 그런데 메시아의 도래와 더불어 메시아의 통치는 인간의 마음의 완악함을 해결할 수 있게 해주었고, 따라서 신명기 24:1-4은 메시아의 도래와 더불어 그 문자적 기능을 창세기 2:24에 내어줌으로써 그 궁극적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날드 헤그너가 잘 지적했듯이 결국 예수님의 말씀의 요지는 "모세 율법이 허용한 이혼을 예수님은 허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즉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최초의 의도가 구약의 유대인과 달리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폐지되거나 변경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에 이혼이 허용된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의 완악함 때문이었는데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36:26)라고 에스겔이 예언한 대로 부드러운 마음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24장 1절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혼에 대해 연구하면서 이런 진리와 맞닥트리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이 제가 예상한 것과 달리 음행의 예외 규정은 언급하지도 않은 채 다음과 같이 끝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마가복음 10:10-12)
예수님의 이 말씀은 더 과격할 수 없을 정도로 과격한 말씀입니다. 아니 두려운 말씀입니다. 구약시대에 간음을 저지르면 사형입니다.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신22:22). 또 신약성경에는 더 무서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간음을 저지르면 지옥불입니다.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됩니다(고전6:9-10). 그런데 예수님은 이혼이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솔직히 저는 이런 말씀을 드리기 위해 이 설교를 준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성경을 따라가다 보니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차적으로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것이 제 의도와 다르지만 그러나 저는 이로 인해 도리어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낍니다.
존 스토트는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과 바리새인의 생각의 차이를 다음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 바리새인들은 이혼의 이유에 몰두했었으나 예수님께서는 결혼 제도에 몰두하셨다."
"2. 바리새인들은 이혼에 대한 모세의 규정을 명령이라고 생각했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인간의 마음의 완악함으로 인한 양보라고 생각하셨다."
"3. 바리새인들은 이혼을 가볍게 생각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매우 중대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에 단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한 모든 재혼을 간음이라고 생각하셨다."
그 후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그의 부정한 아내 이스라엘을 다시 돌이키려고 하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 않은가?(참조. 렘2:1, 3:1, 4:1, 호2:1-23) 따라서 누구나 이혼의 합법성에 관하여 물으며 이러한 주제에 관한 논의를 시작해서는 안 된다. 이혼의 근거에 몰도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정죄하셨던 바로 그 바리새주의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책에서 그는 또 이렇게 썼습니다.
"화해는 기독교의 핵심이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나는 하나의 간단한 규칙을 따라왔다. 즉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혼에 대해 질문을 던질 때, 나는 결혼과 화해라는 주제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그 질문에 대답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우선순위를 따르려는 간단한 시도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이혼의 근거에 대해 물었을 때 예수님은 그에 대한 대답 대신 결혼이라는 원래의 제도에 대해 말씀하셨다. 우리가 결혼과 결혼의 이상 대신 이혼과 이혼의 근거들에 몰두한다면 우리는 바리새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결혼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이혼이 아니며 하나님의 복음은 화해의 복된 소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혼이라는 분리된 주제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보아야 한다."
저는 존 스토트의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이혼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먼저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라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참으로 만족감을 느낍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예수님이 어떤 경우에도 이혼을 불허하신 것은 아닙니다. 마가복음 10장의 병행장인 마태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태복음 19:9)
이처럼 배우자가 음행을 했을 때는 이혼이 가능합니다. 그런 경우 이혼을 해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신명기 24장에서와 같이 허용이지 명령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이런 이유로 인한 이혼을 권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유로 인한 이혼을 금하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배우자가 간음을 저질렀다고 이혼부터 생각하지 마십시오. 호세아서에서 하나님께서 아내인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하여 영적인 간음을 저질렀을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냥 이혼해 버리셨습니까? 아니지요. 선지자를 보내 인내심을 가지고 회개를 촉구하고 다시 화합하길 원하셨습니다. 이로보건대 이혼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뜻은 여전히 이혼이 아닙니다. 이혼은 여전히 허용된 하나님의 뜻일 뿐입니다.
물론 배우자가 음해을 저질렀을 경우 여러분에게는 이혼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배우자의 외도가 반복되는 경우에는 이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런 경우에는 이혼을 하셨습니다.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예레미야 3:8)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관찰해본 후, 저는 이동원 목사님이 한 다음과 같은 말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혼이 합법화될 수 있는 상황이 ... 있습니다. ... 배우자의 부정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우자가 한 번 부정했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적인 이혼의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 부분들을 조심스럽게 연구해보면, 부정이 습관화되어 있는 사람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혼이 합법화됩니다."
